# 154화.
?타락술사 김시민
<저주> <부패> <마법>
이 세 가지를 재능으로 선택하여 타락술사가 된 김시민. 그는 그 어떤 상대도 쓰러뜨릴 만한 스킬과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상대를 완벽히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이 영 달갑게 느껴지는 상황은 아니었다.
‘흠, 그래도 혹시 몰라 근처에 구덩이를 만들어놓았는데. 그러길 잘했군.’
자신의 직업 때문일까? 시민은 주로 어디 지역을 부패시켜라, 오염시켜라 등의 임무를 심심치 않게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런 임무를 부여받을 때면 간혹 자신과 다른 임무를 받은 도전자들과 마주치곤 했다.
물론 지금까지는 적수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도전자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1명씩 등장할 뿐이었고, 자신의 스킬이라면 당하지 않을 이가 없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도전자가 혼자인 것 같기는 한데 말이야.’
그의 눈앞에 있는 둘의 이름이, 한 도전자의 소환수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렇기에 추측할 수 있는 정보였다.
<네크로맨서의 듀라한>
<네크로맨서의 본 드래곤>
‘네크로맨서라…….’
이름만 보아서는 자신과 비슷한, 어둠과 관련된 직업을 얻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소환수들의 반응을 보면 자신을 처치하라는 임무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 저들의 눈에는 명백한 경계가 깃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지.’
다행히 운이 좋게도 혼돈천사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 소환수를 단번에 처치했다. 이제 남은 것은 듀라한과 본 드래곤, 그리고 20마리의 해골 보병들뿐이었다.
김시민은 지체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다크엘프의 모습을 한 본 드래곤이, 곧 자신을 향해 들이치려 했기 때문이다.
상대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 장소에서 모든 스킬을 쏟아 넣기로 했다.
‘당장 이곳에서 패배할 수는 없다.’
자신의 직업 특성상 기본적인 스킬로는 언데드에게 타격을 주기 힘들었다. 그러나 언데드마저 상대할 수 있는 상위 스킬이 있었다. 극의에 이른 저주와 부패는 거기에 저항력이 뛰어난 언데드에게도 통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그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드러내 사용하고자 했다. 한눈에도 짤짤한 스킬 따위로 눈앞에 있는 적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으니까.
***
아르타디아는 본 드래곤으로 변하려 했던 생각을 바꾸었다. 본 드래곤이 되면 기본적인 스펙이 월등히 상승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심상치 않은 한 명을 상대할 때는, 다크엘프의 모습이 좋았다. 괜히 덩치가 커지면 크기가 월등히 작은 상대를 대상으로 제대로 된 공격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최대한 상대에 대한 정보를 빼내어야 한다.’
때문에 상대를 면밀히 지켜보기 위해서라면 다크 엘프의 모습이 좋으리라.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아르타디아는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데프론, 무조건 저 녀석을 여기서 쓰러뜨린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한다면, 최대한 적에 대해서 알 수가 있을 터였다. 아르타디아의 뜻을 파악한 데프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환된 정예 보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원, 타락술사를 처치하라!]
데프론의 명령이 떨어지자 해골 보병들은 흉흉한 안광을 순간 번뜩였다. 그리고 타락술사를 향해 달려갔다. 그 선두에는 양손에 드래곤 본 대거를 착용한 아르타디아가 있었다.
아르타디아는 상대와의 거리가 일정 이상 가까워지자,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단검을 투척했다. 마법으로 들이치기에는 조금 먼 거리였다. 그렇기에 단검으로 우선 상대를 공격하려던 것이었다.
그녀가 단검을 투척하자 투척된 단검은 엄청난 빠르기로 타락술사를 향했다. 단검은 바람을 가르며 거칠 것 없이 날아갔다.
쌔애애액!
웬만한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보다 더욱 빠른 투척 속도였다. 그러나 그녀의 단검은 그를 적중시킬 수가 없었다.
“어둠의 장막.”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앞에 검은색의 막이 생겼다. 그리고 그 막은 짓쳐오는 단검을 집어삼켰다. 그러자 아르타디아가 던진 단검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그 모습에 달려가던 그녀가 말했다.
“역시 쉬운 상대는 아니었군.”
그러면서 아르타디아는 한쪽 손에 다시 대거를 만들어내었다. 상대의 술수 때문에 드래곤 본이 약간 손실되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것은 나중에 생각해 볼 문제였다. 지금은 오로지 적을 향해 돌진할 뿐이었다.
타락술사 김시민은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가 달려옴에도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아르타디아의 투척을 막아낸 후, 곧바로 반격했다.
“타락한 자들의 늪지대.”
그가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아르타디아를 포함한 데프론, 그리고 해골 보병들이 밟은 땅을 포함해 주변이 일순간 흐물흐물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게 변하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데프론은 질주라는 스킬이 있었고, 아르타디아 또한 날쌘 몸놀림으로 그 지역을 빠져나가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타락한 자들의 늪지대는 땅바닥을 평범한 늪지대로 만드는 스킬이 아니었다. 늪지대로 변이된 땅에서 한 가지가 더 추가된 스킬이었다.
무엇이 추가되었느냐고? 바로 타락한 자들의 손아귀가 추가된 것이었다.
그렇게 늪지대로 변한 장소에서 일순간 엄청난 손들이 솟아올랐다.
본 드래곤인 아르타디아조차 놀라는 순간이었다.
“……!”
그녀는 심상치 않은 손들이 땅에서 솟구치자 재빨리 땅을 박차 늪지대를 벗어났다. 늪지대의 범위가 꽤나 넓었기에 온 힘을 다 써야 했다. 그러나 데프론과 해골 보병들은 아르타디아와 달리 늪지대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빠르게 달릴 수가 있다고 한들, 그것은 달리는 것뿐이었다. 순발력 자체를 상승시키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몸 자체가 무거우니, 자연히 늪지대에 발이 잠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타락한 자들의 손아귀가 없었다면 늪지대를 쉽게 벗어날 수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결국 타락한 자들의 손아귀는 자신들의 위를 지나는 데프론과 해골 보병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발목이 붙잡힌 데프론과 해골 보병들은 더 이상 앞으로 전진을 할 수가 없었다. 발이 멈춰 버린 것이다. 발이 멈추자 관성의 법칙에 의하여 상체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리고 한번 꼬꾸라지면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몸이 엎어지자 온몸을 대상으로 손아귀가 감싸오며 늪지대 밑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해골 보병들이 그렇게 당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래도 해골 보병들과는 다르게 데프론은 조금이나마 저항을 하는 중이었다. 대검에 주입한 다크 오러를 이용해 솟구쳐 올라오는 손아귀들을 베어내었기에 가능했다.
데프론은 수없이 많은 다크 오러를 소모하며 계속해서 올라오는 손아귀들을 소멸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솟아오르는 손아귀들은 끝이 없었다. 그 끝없는 공세에 데프론 또한 더 이상 버티질 못했다. 몸이 점점 늪지대 밑으로 잠기는 것을 인지한 데프론이 당황한 음색을 내었다.
[이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저항을 이어갔다. 당연히 그 저항은 무의미했지만 말이다. 결국 데프론은 자신의 상체까지 완전히 늪지대에 잠겨갈 즈음, 아르타디아에게 말했다.
[죄송합……!]
물론 데프론 음성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만약 충렬의 암흑 투기처럼 다크 오러를 신체의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가 있었다면 어느 정도 저항할 수가 있었을 터였다. 그러나 데프론에게는 아직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무리 마법 저항력이 있는 듀라한의 갑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타락한 자들의 손아귀에 저항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스킬 한 번에 데프론과 보병들이 전멸해 버렸다. 아쉽게도 데프론은 공격을 시도도 해보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르타디아뿐이었다.
***
아르타디아와 타락술사만이 장내에 남게 되었다. 둘만이 남게 되자 곧 그들만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과연 아르타디아는 타락술사를 상대로 전혀 꿀리지 않는 전투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웬만한 암살자들은 보이기가 힘들 정도의 움직임과 기교를 보였다.
그 덕분일까? 둘만의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타락술사는 목숨이 끊길 뻔한 순간을 여러 번이나 겪고 있었다. 방심하는 순간 아르타디아의 단검이 그의 급소를 노리며 들이쳤고, 타락술사는 서늘한 느낌의 단검이 언제 어디서 자신의 목과 심장을 꿰뚫을지 몰라 잔뜩 긴장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빙계 마법인 아이스 스파이크와, 드래곤 본연의 특성 스킬인 드래곤 피어까지.
그 둘을 사용하니 김시민은 정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녀의 공격 하나하나가 전부 날카로웠다. 이대로 간다면 패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 순간이 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술사인 그는 당하지 않았다. 어둠의 장막이라는 스킬을 적절한 시기에 사용함으로써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을 모조리 벗어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부패의 손.”
그가 스킬을 사용하자 일순간 그의 손에서 검은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스킬이 아르타디아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그는 변화된 손으로 아르타디아를 붙잡으려 했다. 마법 직종이라서 그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았다. 때문에 아르타디아는 어렵지 않게 그의 손을 회피해 내었다. 그랬는데 그 순간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분명 피해내었음에도 그녀에게 피해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 피해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타락술사가 당신이 방금까지 있었던 장소를 부패의 손으로 휘저었습니다.]
[그 장소에 머물렀던 당신의 신체 부위가 급속도로 썩어 문드러집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방금까지 아르타디아의 머리가 있었던 공간을 타락술사가 손으로 휘저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공격을 아르타디아는 분명히 회피했다. 그런데도 아르타디아의 머리는 급속도로 부패하기 시작했다.
언데드의 속성을 가진 아르타디아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적용된 부위가 그냥 완전히 썩어버리며 거기에 더하여 마모된 것처럼 닳아가고 있었다.
‘이게 뭣……!’
저항할 틈도 없었다. 애초에 타락술사에게 근접 거리를 내어주면 안 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아르타디아는 마렉과 데프론에 이어 마지막으로 당하면서 혼자 생각했다.
‘이렇게 된다면 녀석을 상대하는 방법이 브레스밖에 없는 것인가…….’
물론 그녀는 일부러 브레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만약 상대가 당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손해였고, 특히 지금은 적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빼내어 충렬에게 알려주어야 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충렬의 모든 소환수들이 모여 그를 상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첫 전투에서의 승리는 타락술사인 김시민. 그가 가져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