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영지전
비솔라와의 식사가 끝나고, 충렬은 그녀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무언가 당장 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야에 계속 아른거리는 시스템의 글이 쉬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일단 시스템이 알려오는 것을 확인하기 전에, 먼저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늦기 전에 대장간에 한번 방문해야 했다. 오란이 무언가를 준비한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충렬이 가려고 하자 비솔라는 매우 아쉬워했다.
“조금 더 쉬다가 가시지… 주무시고 가셔도 되는데…….”
물론 여기서 쉬어도 되었다. 하지만 편히 쉬지는 못할 것 같았다. 특히 시종들이 근처에서 계속 야릇한 눈빛을 보내는 탓에 기만 지속적으로 빨렸다. 그래도 비솔라와는 제법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괜찮습니다. 나중에 또 들를게요.”
충렬의 말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바쁘실 텐데 어쩔 수 없죠. 내가 다리만 있었어도 따라가는 건데…….”
하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충렬을 배웅했다.
“대신 꼭 금방 다시 들러주세요!”
그러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붙어 있고 싶다는 듯, 충렬이 수면 위로 올라갈 때까지 그의 한쪽 팔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충렬은 그렇게 비솔라가 아쉬워할 때 떠나며 자신을 더 간절히 생각하게 만들었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
자르딘은 당분간 해골 경비병들과 함께 호숫가에 주둔하며 주변을 정찰할 예정이었다. 아무리 그녀들이 호수 망령들을 쉬이 상대할 수 있다고는 하나, 혹시나 몰랐다. 지상에서 일이 발생한다면 이쪽에서 도와주어야 했다. 자르딘의 실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니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잘 대처할 수가 있으리라.
지금 충렬은 영지의 중심부로 되돌아가며 시스템이 알려오는 것을 살폈다.
[당신의 직업 수준은 ‘노련함’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영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신좌와 관련된 마스터들의 임무들 중 하나를 간접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가상의 ‘영지전’에 참여하시겠습니까?]
[승낙하신다면 2일 뒤, 당신에게 가상의 ‘영지전’이 발발합니다.]
‘가상의 영지전이라.’
마스터들이 하는 임무 중 하나라니, 그것도 무려 신좌와 관련된 것이었다.
‘쉽지는 않겠는데?’
[어떤 종류의 영지전이 발생할지는 무작위입니다.]
[패배를 하더라도 페널티는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페널티 같은 것은 없었다. 아직 마스터에 비한다면 그 수준이 낮아서 그런지 봐주는 듯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참여하는 것이 좋으리라. 나중에 하게 될 임무를, 미리 체험해서 나쁠 것은 없었으니까.
시스템의 물음에 충렬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참여한다.”
그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아직 대전 상대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대전 상대가 정해지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충렬의 중앙 상단의 시야에 다음과 같은 글이 보였다.
[대전 상대를 찾는 중입니다.]
[예상 소요시간: 2시간 이내]
[이충렬(네크로맨서) VS ???]
아마도 대전 상대가 정해질 때까지 이 글은 사라지지 않을 듯했다. 충렬은 가상의 영지전이 과연 어떨까 생각하며 곧 목적지로 도착해 갔다.
***
충렬은 도착하자마자 대장간부터 들렸다. 그러자 오란이 반겨왔다.
“오! 어서 오게!”
그러면서 곧장 일을 하고 있는 드워프들에게 크게 외쳤다.
“이 녀석들아! 누가 가서 그것 좀 가져와!”
족장의 외침에 드워프 셋이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뒤, 드워프 셋은 거대한 검을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한눈에 보아도 180센티미터는 될 법한 엄청난 크기의 양손 검이었다.
충렬은 그 대검을 바라보더니 의문을 표했다.
“설마 이것을 주시려는 겁니까?”
“그래! 자네의 듀라한을 보니 변변찮은 검을 들고 있더구만. 이 정도는 들어줘야 전사라고 명함이라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랬다. 그가 주는 선물은 데프론을 위한 것이었다. 충렬은 드워프들이 건네는 양손 검을 별 생각 없이 받아 들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검의 무게가 상당한지라, 순간 검을 놓칠 뻔했다.
‘헉.’
곧바로 암흑 투기를 사용한 충렬은 양손 검을 겨우 들어 올렸다. 왜 드워프 셋이서 낑낑거리며 들고 왔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어쨌든 충렬이 검을 들자, 대검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블랙 츠바이헨더: 드워프들이 만든 양손 검이다. 보통의 투 핸디드 소드보다 길며, 두껍고, 무겁다. 흑광물이 함유되어 있기에 엄청난 무게를 자랑한다. 대신 강력한 공격에도 파괴되지 않으며 당신의 힘이 강하다면 무척이나 파괴적인 공세를 가능하게 한다.]
설명은 단순했다. 그러나 충렬은 본능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이 양손 검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오란은 츠바이헨더를 만든 과정을 대충이나마 설명했다.
“마침 그 발견하기 힘들다는 흑광석을 약간이나마 발견했다네. 그것을 제련한 다음, 여러 금속들과 섞어 만들었지. 아직은 다양한 재료가 없어서 거기까지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튼튼하다는 것은 내가 장담하지.”
굳이 그런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별다른 테스트를 해보지 않아도 튼튼하다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 말이다.
“후… 무겁군요. 어쨌거나 감사합니다.”
“껄껄. 잘 쓰시게. 그나저나 그걸 한 손으로 들다니. 자네가 사용해도 되겠구먼.”
물론 충렬은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이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닐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데프론에게는 제격일 것 같았다. 대충 용무를 끝낸 오란은 충렬을 보내기 전에 말했다.
“아 참, 나중에 시간이 되면 듀라한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검은 이쪽으로 넘겨주게. 보니까 거의 고철이 다 되었더구만, 그 낡아빠진 검은 대장간에서 재활용하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데프론의 검은 본래 아라크네의 지역에서 얻은 독 속성의 검이었다. 하지만 오래 사용을 해서인지, 이제는 더 이상 독의 기능이 발생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금 낡기까지 했다. 조만간 녀석에게도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다 싶었는데, 마침 오란이 무기를 마련해 주어서 다행이었다.
‘지금 데프론을 불러서 넘기도록 해야겠군.’
***
데프론은 새로 얻은 양손 검을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했다. 그런 데프론에게 충렬은 오란을 찾아가 그 감사함을 표하라고 명령했다.
그 후에는 충렬도 별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여관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대충 3시간 정도 잠을 청하자, 피곤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충렬은 시야의 상단을 살폈다. 한숨 자고 일어나자, 대결 상대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대전 상대가 정해졌습니다.]
[당신의 대전 상대는 드미트리, 오크 신봉자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 아래에는 일정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충렬(네크로맨서) VS 드미트리(오크 신봉자)]
[영지전이 발발하기까지 남은 시간: 45시간 11분.]
이름을 보니 대충 러시아인 같았다. 그런데 직업이 오크 신봉자라니.
‘조금 이상한 직업이네.’
하지만 상대 또한 영지를 가지고 있는 이였다. 결코 가볍게 볼 인물만은 아니리라. 어떠한 방식의 영지전을 치르게 될지는 몰랐지만, 그에 관해서는 45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시스템은 저 정보 외에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나저나 마침 할 일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샤오링의 상태나 살펴볼까.”
그 동안 영지에만 계속 머물도록 했는데, 얼마나 강해졌는지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다. 데프론도 새로운 무기를 구했으니 딱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
데프론과 샤오링의 결투. 둘의 대결은 신전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별것 없었다. 성기사들. 아니, 이제는 징벌의 기사가 된 이들이 관전하고 싶다고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딱히 밖으로 나갈 기회가 없는 그들을 위해 충렬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들도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이번 기회에 안목을 기르고 싶은 것이리라.
‘조만간 연무장도 하나 지어야겠군.’
징벌의 기사들과 각종 이들이 무예를 갈고닦을 수 있게 말이다.
어쨌거나 넓은 공터에는 거대한 양손대검을 손에 쥔 데프론과, 블랙 데스를 무기로 삼은 샤오링이 마주보고 있었다.
당장에 보이는 장비로는 데프론이 우위였다. 해골의 모습인 샤오링은 무척이나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샤오링의 수준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곧 알 수가 있었다.
“시작해.”
충렬이 말하자 데프론과 샤오링은 즉각적으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샤오링의 몸이 일순간 사라졌다.
파밧!
최근에 데프론이 어둠의 질주를 배웠지만, 샤오링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하기야, 당연한 소리였다. 어둠의 질주는 오랫동안 빠른 속도로 달리기 위한 스킬이었지, 짧은 시간에 순발력을 보여주는 기술이 아니었던 탓이다.
반면 샤오링은 달랐다. 샤오링은 보유하고 있는 내공과 더불어 상월보라는 보법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1성에 불과한 상월보였지만, 샤오링이 순간적으로 빠른 이동을 보일 수 있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사라진 샤오링은 데프론의 등 뒤에 나타났다.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곧바로 데프론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쉽게도 데프론은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때문에 샤오링의 검은 아무런 제지 없이 데프론의 목에 적중했다.
카강!
하지만 샤오링의 검은 데프론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막강한 방어력을 가진 데프론의 갑옷이, 피해를 완전히 흡수한 탓이었다. 내공이 있었지만 몸에만 적용할 수 있을 뿐, 아직 무기에까지는 적용하지 못한 샤오링의 일격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이어서 곧바로 데프론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듀라한 데프론>이 츠바이헨더에 다크 오러를 주입합니다.]
엄청난 크기의 양손 검이었다. 그런데 그런 무기에 오러가 주입되니, 엄청난 크기의 오러가 샤오링을 당장에 두 동강 낼 듯 짓쳐들었다. 그러나 데프론의 공격 또한 마찬가지로 샤오링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데프론이 아무리 검을 강하게 휘두른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샤오링이 재빠른 움직임으로 모든 공격을 피해내니 말이다.
데프론의 양손 검은 그저 공기만 밀어내며 안타까운 바람을 일으킬 뿐이었다.
후우우웅!
결국 싸움의 양상은 무의미한 공방전으로 이어졌다.
‘만약 샤오링에게도 오러나 암흑 투기와 같은 힘이 있었다면 데프론의 패배겠군.’
그만큼 움직임에 있어서는 샤오링이 월등했다. 충렬이 암흑 투기를 최대한 많이 끌어 올려야 할 정도로 말이다.
‘저게 내공의 힘인가.’
더 이상의 대결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충렬이 대결을 중지시켰다.
“이제 그만.”
그러자 데프론과 샤오링은 언제 싸웠냐는 듯이 곧바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지만 징벌의 기사들은 아쉬웠는지, 충렬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괜찮다면 제가 합을 섞어보아도 될까요? 이전에는 실력이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를 것 같습니다. 혼돈의 힘을 마음껏 펼쳐보고 싶습니다.”
“저는 해골 기사와 검을 섞어보고 싶습니다! 저렇게나 빠른 움직임이라니, 검을 섞어보면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의 부탁에 충렬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프론과 샤오링도 많은 경험을 해본다면 실력이 점점 쌓일 것이었으니까.
“예, 저야 그래주신다면 환영입니다. 나중에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해주십시오.”
그러면서 데프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었지, 데프론? 샤오링과 함께 이분들과 검을 섞어라.”
그래도 살살하라는 말은 못 할 것 같았다. 성기사에서 징벌의 기사로 승급한 이들이었다. 충렬이 느끼기에 이들이 가진 기운은 결코 듀라한의 아래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징벌의 기사들의 실력도 확인할 겸, 충렬은 이들의 대결도 지켜보고 이후에 영지의 잡다한 일을 돕기로 했다.
***
징벌의 기사들의 실력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듀라한이나 샤오링이 일대일로 붙으면 간발의 차이로나마 이길 수 있었지만, 두 명 이상을 동시에 상대하면 결코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빠른 시간에 제압이 되었다. 징벌의 기사가 된 7인은 엄청난 전투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그들의 실력을 확인한 충렬은, 곧 자리를 떠났다. 그들끼리의 시간을 보내라고 하고 영지에서 필요한 일들을 돕기 위해서다.
그렇게 영지에서 시간을 보낸 지도 꽤나 오래 되었다. 몇 번의 휴식을 더 취하자 마침내 영지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영지전 발발까지 남은 시간: 5분.]
충렬은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이동에 대비했다.
‘페널티가 없는 임무라 다행이긴 한데.’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