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새롭게 생성된 촉수들, 그것은 기존의 전봇대 두께의 촉수보다는 조금 가늘었다. 하지만 가늘다고 얕볼 수는 없었다. 진정한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기 때문이다.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촉수가 다시금 유령선의 갑판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새롭게 생겨난 얇은 촉수들은 주변에 위치한 도전자들의 몸을 꿰뚫기 위해 퍼져 나갔다.
얇아진 만큼 그 속도는 두꺼운 촉수보다 빨랐다. 이전보다 더욱 빨라진 촉수의 속도는 집중하지 않으면 피해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초, 촉수들이 엄청나게 들이친다!”
“당장 흩어져!”
“피해!”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도전자들은 대부분 피해낼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잠시 멍하니 있던 도전자들, 그들은 새롭게 자라난 촉수에 의해 몸이 꿰뚫려야 했다. 몸을 피할 틈은 없었다. 촉수들이 들이칠 때 주시하지 않았다면 당할 수밖에.
푸슉!
푸욱!
푹!
몸을 꿰뚫은 촉수는 도전자를 사망시킬 정도로 치명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지독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시스템은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각각의 유령선에 탑승한 도전자들에게 알려주었다.
[<황혼의 관망자>가 악티니언의 지배를 받습니다.]
[<제국 마창사>가 악티니언의 지배를…….]
[<정령 노래꾼>이…….]
촉수에 당한 도전자의 숫자는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적으로 돌변한 그들은 장내에 혼란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악티니언의 지배를 받는 도전자들이 당신들을 향해 공격을 시도합니다.]
[촉수를 끊어내어도, 지배는 한동안 유지됩니다.]
그 말인즉, 이미 촉수에 당한 이들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는 소리였다. 그들과 연결된 촉수를 끊어내어도 일정 시간 동안 지배가 유지된다니. 그 소식에 도전자들은 구해내는 것을 포기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배에 당한 도전자들을 구하려다가 도리어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전자들이 고민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지배를 당한 도전자들이 곧바로 멀쩡한 이들을 향해 짓쳐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무표정하게 곧장 움직이는 그들은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도전자들이 외쳤다. 상대하기가 실로 꺼려졌지만 상대하기는 해야 했다.
“마, 막아!”
“어쩔 수 없다고! 죽여!”
“애로우 헤드샷!”
그래도 멀쩡한 도전자들의 숫자가 많아서인지, 지배에 당한 이들은 금방 정리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악티니언은 쉬지 않았다. 곧 주변의 다른 도전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짓쳐들어 갔다. 그 광경에 몇몇이 입을 열었다.
“가… 가망이 없어!”
“튀, 튀어!”
“배를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는 없잖아! 나는 도망을 가겠어!”
각자의 유령선에는 항해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전자들과 대결을 했을 때처럼 도와주지는 못했다. 그저 배를 몰기 위해 존재하기만 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황이 심각하게 변하자, 대부분의 도전자들이 유령선을 포기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바다 위에는 묘비들이 수두룩했다.
발만 잘 움직인다면 익사할 일은 없었다.
***
도전자들이 악티니언에 무참히 당하던 그 시각.
10여척의 배가 당하는 모습에 충렬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도전자가 충렬의 심정을 대신 표현해 주었다.
“저런 멍청한 짓을 하다니! 분명히 공격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제기랄, 고작 촉수 재생을 단 한 번만 했을 뿐인데도 엄청나잖아. 도대체 왜 공격을 한 거야?”
하지만 저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에 눈앞으로 공격이 들어오는데, 어쩔 수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이쪽으로 곧바로 튀어 오지.’
공격이 실패한 것을 깨달은 도전자들은, 뒤늦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바다 위에는 부표처럼 떠 있는 묘비가 많았기에, 수영을 못하는 이라도 그것을 밟고 쉽게 도망갈 수가 있었다. 뭐, 솔직히 도전자의 몸이었기에 수영 따위는 겁낼 이유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도망을 선택해서 다행이다.’
도전자들은 유령선이 당하자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고 배를 포기했다. 만약 억지로 버티면서 촉수들을 더 공격했다면, 상황은 암담해졌으리라. 촉수가 재생될수록 상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충렬의 유령선은 곧장 악티니언이 난동을 부리는 지역을 향해 움직였다.
“발라무트, 배를 더 빨리 몰아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조금이라도 저들을 구하는 것이 좋을 터였다. 그렇지만 충렬은 오로지 도전자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유령선이 있을 때, 최대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놈의 약점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그나마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녀석이라 그런지, 녀석의 촉수가 재생하는 데에는 제법 여유가 있었다.
‘포탄으로 간을 보다가 한 방에 처치해야 해.’
놈의 약점인 중심부까지 단번에 이동할 방법은 있었다. 지금 믿는 것은 바로 아르타디아의 스킬. 즉, 그녀의 브레스였다. 드래곤의 브레스에 당해도 녀석의 촉수는 다시금 재생을 이어갈 테지만, 재생에 10초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면 승산은 충분히 있었다.
‘잘만 하면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가 있겠지.’
다른 유령선들과는 소통이 힘들었다. 각자의 역량으로 악티니언을 사냥해야 했다.
하지만 이쪽에서 선두로 상황을 만들어 나간다면, 나머지들은 자연히 따라올 것이리라. 어차피 뒤는 절벽이었다. 물러설 곳은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머뭇거리기만 하던 다른 유령선들이 충렬의 배가 선두로 움직이자 뒤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 소통하지는 않아도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최대한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몰랐다. 충렬은 다른 유령선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기로 했다. 혹여 악티니언을 섣불리 공격하지 않게.
전부에게 동시에 연락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방법은 있었다.
“마렉, 부탁합니다.”
마렉은 하늘을 날 수가 있었다. 그를 통해 이쪽의 생각을 다른 유령선들에게 전달할 생각이었다. 아르타디아는 비상시에 활동해야 했으니 그녀를 보낼 수는 없었다.
어차피 마렉을 정보통으로 활용하자는 계획은 방금 전 나온 이야기였다. 무슨 정보를 전달해야 할지를 알고 있던 마렉은, 머뭇거리지 않고 답했다.
[그럼 다녀오겠으니 조심들 하라고.]
그렇게 마렉은 가장 가까운 유령선부터 차근차근 접촉해 나가기 시작했다.
***
마렉을 정보통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은 정말로 옳은 선택이었다. 서로 흩어졌던 유령선들이 충렬을 중심으로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소식을 전달받지 못한 유령선들도, 모여드는 유령선들을 보더니 자연스레 합류해 왔다.
그들 외에도 합류하는 인원이 있었다. 바로 파괴된 유령선에서 탈출한 도전자들이었다. 그들은 부표와 같은 묘비를 밟으며 열심히 이동한 결과, 근처에 위치한 유령선으로 도착할 수가 있었다.
충렬의 유령선에도 대략 열 명 이상의 도전자가 새로이 합류했다. 얼마나 열나게 뛰었는지 그들의 호흡은 매우 거칠어져 있었다.
“허억. 헉.”
“사, 살았다.”
그런 그들을 기존에 충렬과 함께 탑승하고 있던 이들이 반겨주었다. 어쨌거나 이제는 함께 싸워야 하는 처지였다.
“어서들 오라고.”
“고생했어.”
도중에 악티니언의 방해는 없었다. 녀석은 박살 난 유령선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남아 있는 유령선들이 모이는 것은 금방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령선: 14척]
멀쩡한 유령선은 이제 고작 14척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투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존재하는 모든 유령선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모든 유령선에 대포 4문이 장착됩니다.]
그리고 충렬의 유령선은 이전보다 한층 더 강화되었다.
[당신들이 탑승한 중형 범선이, 대형 갤리선으로 변경됩니다.]
[전투용 갤리선에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캐논 20문이 장착됩니다.]
[캐논의 대포알은 30초마다 재장전이 됩니다.]
기존에 있던 일반적인 대포보다 재장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나 그만큼 가치는 있었다.
[캐논을 통해 적중시킨다면 악티니언은 넓은 범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당연히 캐논으로 피해를 입은 부위의 상처는 재생되지 않습니다.]
그랬다. 이전의 대포보다 확실한 파괴력을 자랑했던 것이다. 이전에는 상처 수복을 저지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캐논은 실제적으로 악티니언에게 피해를 입힐 수준이었다.
동시에 충렬이 탑승해있던 배의 모양이 변경되었다. 이전에 탑승하고 있던 유령선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배가 변경되자 충렬의 해골들로만 대포를 담당하기에는 인원이 부족했다. 대포가 무려 20문이나 주어졌다. 그러나 걱정은 없었다. 새로이 합류한 도전자들부터 시작해, 여력이 안 되는 이들이 자처해서 대포를 하나씩 맡았기 때문이다.
“저는 원거리 스킬이 없습니다. 대포를 맡을게요.”
“저도요!”
“나도 대포를 담당해도 될까? 잘 쏠 자신이 있다고!”
그러한 변화를 맞이한 것은 충렬의 배뿐만이 아니었다. 충렬의 배 외에도, 전투를 선택해서 배의 강화를 받은 도전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배 또한 충렬의 유령선과 비슷할 정도로 혜택을 받았다. 물론 그 숫자는 고작 2척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탈주하지 않고 전투를 선택한 이들도 있었군.’
결국 3척의 대형 전투선이 선두로, 나머지 11척이 뒤를 따랐다. 그럼에도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악티니언의 상대가 되기에는 불가능해 보였지만, 기회는 찾아왔다.
왜냐고? 모든 유령선에는 이제 대포가 장착되었기 때문이다. 악티니언의 촉수가 재생되지 않도록 하는 대포가 말이다.
기회는 찾아왔을 때 이용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 남아 있는 유령선들의 강화가 끝이나자, 악티니언도 이쪽의 존재를 인식하였다.
[악티니언이 아직도 남아 있는 유령선들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립니다.]
[악티니언이 당신들을 요격하기 위해 다가옵니다.]
그렇게 들이치는 악티니언을 향해, 총 14척의 유령선이 돌진했다. 그 광경을 보면 자칫 바위를 향해 돌진하는 계란처럼 보였다. 그러나 유령선들이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것은 아니었다. 충렬의 유령선이 신호를 주면, 다른 유령선들은 마렉에게 전달을 받은 대로 행동할 터였다.
그들은 충분히 충렬의 계획에 동참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악티니언을 상대로 이 바다에서 후퇴할 공간은 없었으니까.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이들의 단합력은 이제부터였다. 마침 모든 배에 대포가 생겼기에, 계획의 완성도는 한층 상승되었다. 시선을 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적당한 피해를 입힐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바다 괴물과 마지막까지 남은 유령선 14척의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