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악티니언
레일리가 적대적인 이들을 한차례 막은 후, 더 이상 다른 도전자들의 공격은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위치에 있던 이들은 그들끼리 서로를 공격하거나 방어해 내기 바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스템이 알려왔다.
[15척의 탈주가 종료되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령선: 24척]
60척이었던 숫자는 단번에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상황이 암담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시스템은 충렬에게만 따로 음성을 전달했다.
[망망대해에서 수많은 도전자들이 사망하였습니다.]
[본래라면 당신과의 접촉이 없는 도전자들은 주민으로 데려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새벽을 관장하는 자’가 일정 수의 영혼을 당신의 영지에 강제로 이동시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엄청난 숫자의 주민이 불어났음을 알 수가 있었다.
[신의 힘이 작용하여 해골 일꾼으로 태어날 주민들이 해골 경비병으로 태어납니다.]
[25의 해골 경비병이 당신의 영지에 추가됩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신전과 관련된 주민이 태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태어나는 숫자만 해도 무려 25였다. 그것도 평범한 해골 일꾼이 아닌, 고급 주민에 속하는 해골 경비병이었다.
덕분에 충렬의 영지에는 전투 병력이 보강되었다. 당연히 이곳에서 사망한 도전자의 숫자는 25라는 숫자보다 훨씬 많을 터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공짜로 얻어가는 것이 어디인가. 감지덕지해야했다.
‘통이 큰 신이네.’
물론 아쉬운 점은 있었다.
[당신을 위해 힘을 사용한 신이 당분간 당신의 여정을 지켜보지 못합니다.]
그 말인 즉, 당분간 신의 개입은 없다는 소리였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도움을 주는지는 대충 알 것 같기도 했다.
‘아마 성녀를 데리고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
그 추측은 정확하다는 것을 곧 알 수가 있었다.
[‘새벽을 시켜보는 자’가 성녀를 잘 돌보고 있으라고 합니다.]
거기까지였다. 이후로는 더 이상 신과 관련된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호의를 베푸는 신에게 혜택을 받고서 행복해할 때였다.
[바다 위에서의 소란 때문에 바다 괴물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악티니언이 해저에서 수면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바다 괴물.
악티니언이라는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대포를 담당하는 것은 충렬의 해골 보병들이 하기로 했다. 도전자들이 대포를 담당하기에는 인력이 아까웠으니 말이다. 어차피 데프론 또한 배 밖으로 나갈 일은 없었기에, 녀석이 지휘를 한다면 효율적인 사용이 가능할 것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칠 사이, 토벌해야할 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다 괴물, 악티니언이 등장합니다.]
[악티니언을 처치하고 망망대해에 평화를 되찾으십시오.]
그와 동시에 바다 한가운데가 갈라졌다. 모세가 홍해 바다를 가른 것처럼, 일순간 바닷물이 갈라진 것이다. 바다 자체가 갈라지는 모습은 무척이나 신기했다. 하지만 감탄할 때는 아니었다. 갈라진 틈에서 말미잘 같이 생긴 몬스터가 꾸역꾸역 올라오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생김새만 말미잘일 뿐. 녀석의 덩치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아르타디아가 드래곤으로 변신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큰 덩치를 보유한 녀석이었다. 녀석의 덩치에 충렬은 말문이 막혔다.
‘저런 거를 고작 유령선으로 상대해야 한다고?’
군함에서도 거의 항공모함 급이 와야 상대할 수가 있을 수준이었다. 물론 항공모함도 평범한 것으로는 명함을 내밀 수준이 아니었다.
‘놈을 처치하려면 약점을 공략하는 수밖에 없겠군.’
아르타디아가 알려준 약점, 그것 외에는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녀석의 등장을 지켜보며 충렬은 머메이드 여왕에게서 받은 아이템을 꺼내었다. 동시에 속으로 생각했다.
‘그나저나 악티니언도 바다에 사는 생명체니, 포획의 구를 사용해서 포획이 가능하겠지?”
하지만 충렬은 이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충렬이 악티니언을 대상으로 포획하고자 생각하자, 포획의 구에서 확률이 표시되었던 것이다.
[대상: 악티니언 암컷]
[포획 성공 확률: 0.0001%]
포획 성공 확률을 본 충렬은 말문이 막혔다.
‘엄청나게 극악한 확률이잖아.’
그래도 로또 1등에 당첨되는 확률보다는 높았다. 그렇지만 충렬은 고개를 저었다.
‘녀석의 포획은 포기해야겠네.’
지치게 만들면 포획 확률이 늘어난다고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늘어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애초에 지치게 만들 수가 없는 존재였다. 놈의 약점을 공략해 처치하던가, 아니면 이쪽이 당하던가. 둘 중 하나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악티니언의 등장에 옆에서 지켜보던 아르타디아가 다행이라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휴우… 그래도 약한 녀석이 등장했군.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녀석이다. 인간으로 치면 이제 막 10대 중반을 넘겼을 정도지. 저 정도라면 어렵지는 않겠어.”
엄청난 위용을 보이며 등장하는 악티니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가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녀석이라니.
‘만약 완전히 성장한 녀석이 나타났더라면…….’
정말로 위험했으리라. 지금껏 그녀가 설명해 준 악티니언은 상상을 불허하는 괴물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안심하는 그녀가 설명을 이어갔다.
“기본적인 스펙 자체는 완전히 성장한 녀석보다 훨씬 뒤떨어진다. 그 점을 감안하고 상대하면 할 만할 거야.”
물론 안심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것은 드래곤의 기준에서였지, 도전자들의 입장에서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놈과의 전투에서 그 점을 절실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녀석의 사냥은 절대로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을.
***
악티니언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괴성을 질렀다. 감히 자신의 잠을 깨운 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놈의 괴성은 마치 아르타디아의 피어에 당했을 때처럼 뇌리를 진탕시켰다. 하지만 다행히도 녀석의 피어는 시끄럽기만 할 뿐, 직접적인 피해는 입혀오지 못했다.
그저 인상을 찡그릴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렇게 놈의 괴성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놈이 등장한 장소는 충렬과 제법 거리가 되는 장소였다.
‘하필 저쪽에 먼저 등장하는군.’
한창 서로 뒤엉키며 전투를 벌였던 유령선들 쪽에서 등장한 것이다. 그렇지만 제법 센스가 있는 이들이었을까? 그들은 막상 눈앞에 거대 괴물이 나타났음에도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아마 그들 또한 알고 있어서리라. 묘비에서는 쉽게 공격하지 말라는 글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치는 이어질 수 없었다. 악티니언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
한편 자신들의 유령선 근처에 악티니언이 등장하자, 도전자들은 죽을 맛이었다.
“젠장! 뭐가 저렇게 커!”
“이거 뒤로 빼야 하는 거 아니야? 공격하면 미친 듯이 재생한다고 했잖아.”
“도망갈 곳도 없다고!”
“그래도 일단 벗어나자! 항해사! 놈과의 거리를 벌려!”
그들도 묘비에서 글을 보았기에 알고 있었다. 놈은 간단히 공격하는 것으로 처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말이다. 다만 충렬과는 달리 아직은 공략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악티니언의 주변에 위치하던 유령선들은, 모두 일시적인 후퇴를 선택했다. 최소한의 탐색전이라도 펼치려던 것이다.
하지만 악티니언이 그들을 멀쩡히 보내줄 리가 없었다.
녀석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다란 촉수를 일시에 움직였다. 그리고 주변 유령선들을 향해 쏘아갔다. 주변에 위치한 유령선의 숫자는 10척이었다. 제자리에서 가만히 있던 녀석이 사방으로 촉수만 움직여 쏘아내니 실로 괴랄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쉬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촉수들. 그것들은 머지않아 주변의 유령선들에게 도착했다. 대충 유령선 하나당, 악티니언의 촉수 2개가 짓쳐들었다. 하나하나 전봇대 정도의 두께를 가지고 있는 촉수들은 강화되지 못한 유령선의 갑판을 단번에 꿰뚫었다. 도전자들의 유령선은 촉수의 공격으로 너무나도 쉽게 부서지고 있었다.
콰직!
콰드득!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배의 갑판을 꿰뚫은 악티니언의 촉수는, 곧 힘을 주어 유령선들을 끌어당겨갔다. 유령선들을 모은 뒤, 한 번에 처리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유령선에 탑승하고 있던 도전자들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그들에게는 관찰할 시간도 없었다.
결국 악티니언의 촉수에 당한 유령선, 그곳에 탑승해 있던 도전자들은 온갖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막상 눈앞에서 악티니언의 공격이 행해지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제기랄! 여기서 그냥 뒈지느니 공격이라도 해보자! 설마 아무런 타격도 없겠어?”
“그래! 한 따까리 하자고!”
“혹시 모르니 누가 불속성 공격 먼저 해봐!”
“내가 할게! 화염의 정령이여, 적을 요격…….”
“나도 사용한다! 파이어 스트라이크!”
그렇게 어떤 이는 마법으로, 또 어떤 이는 화려한 스킬로 촉수를 베어내거나 태워 버리기 시작했다.
콰광!
쾅!
서걱!
의외로 악티니언의 방어력은 좋지 못했다. 도전자들이 스킬을 사용하는 족족, 녀석의 촉수는 쉽게 피해를 입었다. 물론 악티니언의 덩치를 고려하면 빙산의 일각 정도의 피해에 불과했다. 수백 개 촉수 중, 겨우 대략 이십 개 정도의 촉수에 피해를 입힌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고통에는 민감했던 것일까? 악티니언이 괴로워했다.
-키이이이이이이이이!
동시에 놈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내질렀던 촉수들을 다시금 수거해 갔다. 물론 공격을 시도했던 촉수들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대부분이 잘리거나 타버리며, 심상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
그 모습에 도전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뭐야? 상대하기가 쉽잖아?”
“그냥 공격만 해도 되겠는데?”
“그냥 뱃머리를 돌리지 말고 싸우자고!”
“그래! 내가 큰 마법을 준비할 테니…….”
하지만 그들의 환호는 이어질 수가 없었다. 도전자들에게 당했던 악티니언의 촉수에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부글부글.
일순간 물이 끓는 것처럼, 녀석에게 생긴 상처 부위의 세포가 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끓는 것은 잠시뿐. 대략 10초에서 20초 정도가 지나자, 새로운 촉수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스치는 정도의 상처를 입은 곳에서도 새로운 촉수가 돋아나기 시작했고, 아예 베여 버린 단면에선 그 이상의 촉수들이 자라났다.
시스템 또한 그러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악티니언의 상처로부터 새로운 촉수들이 계속해서 생성됩니다.]
그 음성에 도전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광경은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으니 말이다. 놈은 급격이 재생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더욱 많은 촉수를 만들어내자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도전자 하나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씨발, 좆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