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해전
대결이 끝나자 관전 상태에 들어가 있던 다른 도전자들의 상태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충렬은 다음 지시가 떨어지기 전, 얻은 카르마를 어디에 사용할지 살폈다.
[보유 카르마: 174,500]
‘엄청 많이 모였네.’
얼마 전에 폭업을 한 충렬은 또다시 쌓여가는 카르마를 질린 듯이 바라보았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레벨을 올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곳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 용도는 바로 스킬의 랭크 상승이었다. 물론 문제가 있었다.
‘어느 스킬을 올려야 하나…….’
선택지가 많으니 그것이 고민이었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였다. 충렬은 암흑 투기를 올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암흑 투기 자체가 많이 유용한 스킬이니까.’
고민을 짧게 끝낸 충렬은 시스템에게 말해 암흑 투기의 랭크를 상승시켰다.
“시스템, 암흑 투기의 랭크를 올려줘.”
[100,000카르마를 소모하여 암흑 투기의 랭크를 상승시킵니다.]
[암흑 투기의 랭크가 B랭크에서 A랭크로 상승하였습니다.]
그렇게 랭크가 올라가자, 두 가지의 변화가 나타났다.
[암흑 투기의 최대 보유량이 증가합니다.]
[암흑 투기의 이해도가 증가합니다.]
[이제부터 ‘방출’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암흑 투기의 스킬 설명이 바뀌었다.
[암흑 투기 - A랭크: 발록이 가지고 있던 무척이나 패도적인 어둠의 힘이다. 체내에 자리 잡은 암흑 투기는 원할 때 그 언제라도 사용할 수가 있다. (방출: 암흑 투기를 일시에 터뜨려 주변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 (9랭크까지 150,000카르마 필요)]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가 되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보유하고 있던 암흑 투기를 마치 폭탄처럼 일시에 터뜨려, 주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소리였다. 이전까지는 암흑 투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일일이 적을 하나씩 요격해야 했다.
‘하지만 방출을 사용한다면 귀찮은 피라미들은 단번에 정리가 되겠군.’
물론 그만큼 암흑 투기의 소모량은 급격히 증가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방출은 재사용 대기 시간이 없는 것이리라.
‘흠, 그나저나 방출을 사용하고 시체 폭파를 사용하면 엄청나겠는데?’
충렬은 아직 암흑 투기가 시체 폭파를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실험해 보지 못했다. 시체 폭파는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줘 왔기에,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이전에 악인들을 상대할 때도 사용할 기회가 있었지만, 일행들이 단번에 몰살될 것을 염려해 사용하지 않았다.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타격을 주는 시체 폭파는 그만큼 위험했다.
‘나중에 실험을 해봐야겠어.’
만약 암흑 투기가 시체 폭파의 위력을 어느 정도까지만이라도 버티게 해준다면, 충렬은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폭탄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충렬이 스킬의 랭크를 살필 사이,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시야를 가렸던 자욱한 안개가 사라집니다.]
[유령선을 차지한 다른 도전자들과 조우합니다.]
***
시스템의 음성이 끝나자마자 주변을 잠식했던 바다 안개가 사라졌다. 그러자 보였다. 엄청난 숫자의 유령선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음을 말이다.
‘여기에 우리들만 온 것이 아닌가?’
물론 안개가 걷혀지지 않은 지역도 있기는 했다. 희미하게 보이는 바로는 그 안에도 유령선들이 보였다. 아마 유령선을 탈취하기 전까지는 안개가 사라지지 않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스템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정보를 알려왔다.
[여러분들이 타고 있는 배는 본래 ‘바다 괴물’을 토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입니다.]
[‘바다 괴물’은 바다를 돌아다니며 주변에 파멸과 재앙만을 남기는 극악무도한 몬스터입니다.]
[유령 선원들은 살아생전, 바다 괴물 토벌에 실패하였습니다.]
[때문에 유령들조차 이기지 못하는 실력으로는, 이번 토벌전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유령들에게 승리하여 유령선을 탈취하였고, 토벌전에 참여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유령선을 부려 ‘바다 괴물’을 토벌하십시오.]
물론 토벌은 지금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은 대기하는 시간이었다.
[다른 도전자들의 유령선 탈취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탈취에 성공한 유령선만 토벌에 참여하게 됩니다.]
[탈취를 시도하는 중인 유령선: 10척]
[탈취에 성공한 유령선: 54척]
[탈취에 실패한 유령선: 236척]
[당신이 탑승한 배: 발라무트의 배]
역시나,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유령선들은 전부 다른 도전자들이었다. 유령선을 탈취할 때만 하더라도 단순히 간단한 것을 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토벌전이라니.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기에.’
시스템의 음성을 듣고 나서 도전자들이 충렬의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안개가 걷히고 드러나는 장내의 상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친, 우리 말고도 배가 이렇게나 많았어?”
“그만큼 어렵다는 거 아냐?”
하지만 충렬은 그들의 수군거림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바다의 표면 위에는 수많은 묘비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부표처럼 말이다. 그것들을 살피는 것이 먼저였다.
어차피 서로의 머리 위에 이름이 표시되었고, 대결을 통해 실력을 보았기에 통성명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다 괴물 이름, 악티니언.
-이거 사냥에 성공하신 분 있나요?
-나 성공함. 개 쉬움. 탁탁 때려주니 톡톡 터져 죽음.
-진짜요? 난 어렵던데.
-병신 새끼, 성공했으면 묘비에 글 남겼겠냐. 뇌가리에 똥참?
-님아, 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같이 뒈져 버린 처지끼리.
떠다니는 묘비는 수두룩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은 것인지, 배에 부딪치며 밀려나는 묘비들은 끝이 없었다.
-이거 진심 공략 없다.
-촉수로 공격해 오는데 잘라내지 마라. 그때부터 촉수물 시작이다.
-공격할수록 상대하기가 더욱 까다로움.
-어떻게 처치하라는 거지? 이거 어떻게 잡나요? 정말 궁금.
-그냥 포기하고 바다에 뛰어내려서 자살ㄱ. 그게 답이다. ㅇㅈ?
-ㅇㅇ, ㅇㅈ. 고민ㄴㄴ. 다함께 자살 가즈아!
얼마나 힘들었던 것인지, 묘비의 글 절반 이상이 정신 나간 소리를 해대었다. 놈에 대한 자세한 정보 같은 것은 없었다.
‘알아낼 틈도 없이 당한 것 같은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놈을 공격할수록 죽이기가 힘든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토벌하라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충렬이 묘비를 살피기 시작하자 도전자들도 이내 충렬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묘비를 살핀 도전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악티니언?”
그의 혼잣말에 아르타디아.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바다 괴물이 악티니언을 말하는 것이었나? 이런, 조금 곤란하게 되었군.”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그녀의 표정에 충렬이 물어보았다.
“상대하기가 어렵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충렬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어렵다기보다는 무척이나 귀찮지. 죽이기가 힘드니까.”
드래곤인 그녀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정말 쉬운 상대는 아닐 터였다. 어쨌거나 아르타디아는 다른 도전자들이 유령선을 탈취하는 동안, 놈의 약점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했다.
***
악티니언, 녀석은 엄청난 촉수를 가진 몬스터였다.
“흐음, 그래. 굳이 표현하자면 말미잘과 그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
물론 생긴 것만 비슷했다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우선 녀석의 덩치는 감히 말하기가 어려운 정도였다. 아르타디아도 빌었다. 제발 덩치가 적은 녀석이 나타나기를.
어쨌거나 그녀의 설명은 이어졌다.
악티니언은 촉수로 공격을 해오기에 그것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촉수가 조금 골치 아팠다.
“촉수에 찔려 연결되면 곧바로 놈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정신 지배와 비슷한 것일까? 그렇다면 충렬이 당할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신과 관련된 지배는 아니었다.
“촉수가 신경을 교란시켜서 억지로 아군을 공격하도록 하지. 놈의 촉수에 찔린다면 드래곤도 벗어나기가 힘들 정도로 지독하다. 뭐, 나이가 어린 드래곤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만.”
그러나 충렬의 무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언데드는 찔리든 말든 상관이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문제는 그런 촉수들을 공격했을 때였다.
“촉수를 잘라내도, 온갖 방법으로 공격해도 소용없어. 그럴수록 녀석의 상처 입은 부위로부터 새로운 촉수들이 재생되어 나오기 때문이지.”
그녀의 설명에 가만히 듣고 있던 레일리가 나섰다.
“그러면 태워 버리면요? 태우면 재생을 못 하지 않나요?”
하지만 레일리의 기대는 처참히 무너져야 했다.
“소용없어. 재생한다. 때문에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녀석이야.”
대충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촉수만 조심하면 전부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촉수 자체가 만만한 정도를 벗어났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그녀는 악티니언을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녀석을 처치하려면 놈의 몸, 정중앙에 있는 핵을 부셔야해.”
물론 문제도 있었다.
“거기까지 가기에는 수많은 촉수들이 기다리고 있지. 공격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촉수들보다 더 많이.”
때문에 그녀가 골치 아프다고 한 것이었다. 드래곤조차 마법으로 곧장 놈의 핵을 공격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중간에 가로막은 촉수들이 방어를 하여 단번에 놈을 처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에 놈을 처치하지 못하면 오히려 더욱 생겨난 촉수로 인해 녀석의 핵은 완벽한 방어력을 가지게 된다.
“만약 놈을 제때에 처치하지 못하면 그냥 포기하는 것이 좋아. 아니면 후일을 기약하던지. 그래도 비전투 상황에 돌입하고 시간이 지나면, 새롭게 생겨난 놈의 촉수가 다시 모습을 감추니 말이야.”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었다. 새로 생겨난 촉수가 무한정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그럼, 비전투 상황에서 촉수의 숫자가 줄어들기까지 대충 얼마나 걸리는지 아십니까?”
“빠르면 10년, 느리면 100년도 더 넘지.”
그 말인 즉, 이번에 처치하지 못하면 기회가 없다는 소리였다. 괜히 기회가 있을 줄로 알고 기대를 했지만 그것은 드래곤의 기준에서였다.
결국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놈이 아니었다. 이쪽이었다.
‘이번에 사냥에 성공하지 못하면 바로 튀어야겠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탈주가 안 될 테지만 충렬은 상관이 없었다. 영지 귀환석이 있었으니까.
‘영지를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게 아르타디아가 설명을 마치는 사이, 유령선의 탈취를 시도하던 도전자들의 상황도 모두 끝이 났다.
[모든 유령선의 탈취가 종료되었습니다.]
[탈취에 성공한 유령선: 60척]
[탈취에 실패한 유령선: 240척]
300척 중에서 겨우 60척만이 성공하다니. 그러나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아직 악티니언이라는 괴물은 나타나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시스템이 소란을 일으키는 소식을 전해왔다.
[현재 장소에서 안전하게 탈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타고 있는 유령선 외에, 다른 유령선을 침몰시키십시오.]
[그러면 현재 장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튼튼하게 만들어진 배는 웬만한 공격에도 침몰하지 않습니다.]
[고로, 유령선에 소속되어 있는 해당 도전자들을 모조리 제거하면 배를 침몰시킨 것으로 인정합니다.]
[단, 선착순 15척만 탈주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