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유령선 탈취
이번의 차례는 용 사냥꾼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였다. 직업부터 무언가 평범하지 않은 그의 상대는 지금까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적이었다. 적은 단 하나였다.
<3등 항해사 유령>
3등 항해사라는 유령이 들고 있는 것은 커틀러스였다. 물론 무기 또한 유령의 몸처럼 표현되었지만, 평범하게 생긴 녀석은 외형과 달리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3등 항해사 유령은 등장하자마자 심상치 않은 기세를 내뿜었다.
[‘3등 항해사 유령’이 스산한 한기를 주변으로 내뿜습니다.]
[주변이 꽁꽁 얼어붙어 갑니다.]
그 말을 끝으로 들이치는 놈을 가뿐히 상대하려던 용 사냥꾼은 당황했다. 갑판을 시작으로 그곳에 붙어 있던 그의 발이 꽁꽁 얼어간 것이다. 물론 시스템이 얼어붙는다고 말은 하였지만 그는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무슨……!”
당연히 발만 얼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갑판과 붙어 있는 그의 발을 시작하여 하체, 그리고 상체까지 그 범위를 점점 넓혀갔다.
쩌저저적.
그가 무언가 수를 써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용 사냥꾼의 상체까지 얼어붙는 것은 금방이었고 그는 얼굴마저 얼리기 전에 마지막 말을 외쳤다.
“사, 살려……!”
하지만 그의 음성은 거기까지였다. 그의 전신은 완전히 얼어버렸다. 그래도 도전자의 육체 덕분인지 그는 아직 사망 판정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여유롭게 다가온 3등 항해사 유령. 녀석이 커틀러스로 도전자의 목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으니 말이다.
유령이 커틀러스를 휘두르자 무기가 일순간 실체화되며 그의 목을 쳐내었다.
얼마나 꽁꽁 언 것인지, 그의 목은 유리가 부서지는 것처럼 단번에 박살 났다.
와장창!
그와 함께 시스템이 알려왔다.
[‘용 사냥꾼’이 사망하였습니다.]
[대결 진척도]
[승리: 4회]
[패배: 1회]
그리고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다음 희생양을 찾아갔다.
[여섯 번째 대결을 지원할 도전자는 거수하여 주십시오.]
[등장하는 적: 3등 항해사 유령 2마리.]
***
3등 항해사 유령 하나가 저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녀석을 무려 두 마리나 상대해야 한다니. 물론 다른 도전자들과 다르게 충렬은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상대할 만하다.’
문제는 다른 도전자들이었다. 충렬이 이긴다고 하여도 다른 도전자가 한 명 더 이겨야 했다. 그래야 유령선을 차지할 수가 있었다.
‘유령선을 차지한 후에는 도대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기에…….’
고작 대결에서조차 이런 어려움을 보이는 것일까. 그러나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여섯 번째 대결을 과연 누가 진행할지가 관건이었다. 손을 드는 도전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
“…….”
충렬은 자신이라면 이번 대결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 나서면 안 된다는 판단하에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이들 중에서 레벨이 꽤 높은 축에 속했다. 그렇다면, 카르마도 카르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나는 최대한 마지막에 나서서 승리를 거머쥐어야 한다.’
그래야 유령선의 탈취가 가능했다. 지금 나서서 승리한다고 해도 나머지 인원들이 패배한다면 결국 유령선을 탈취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도전자들의 침묵을 지켜보고만 있을 시스템이 아니었다. 시스템은 거수하는 도전자가 없자 무작위로 대결할 자를 선택했다.
[거수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여섯 번째 대결에 출전할 도전자를 무작위로 선택합니다.]
그렇게 선택된 이는 처단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였다.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자발적이지 않고 강제적인 대결이라면 큰일이었다. 그것은 상대할 자신이 없다는 뜻이었고, 앞으로 발생할 대결도 승산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소리였으니까.
충렬이 걱정하거나 말거나 대결은 진행되었다.
[‘처단자’가 3등 항해사 유령 2마리를 상대로 대결을 준비합니다.]
동시에 그가 갑판으로 이동되었다. 길게 늘어진 쇠고리에 연결된 큼지막한 도끼. 그것을 들고 있던 그는 이동되자마자 울상이 되었다.
“자, 잠깐! 나는 물리 공격에 특화되어서 마법적인 것을 막기가 힘들다고!”
하지만 시스템은 자비가 없었다.
[5초 뒤, 적이 등장합니다.]
시스템의 말에 그는 더 이상 울먹이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움직였다.
“제기랄! 이렇게 된 바에야……!”
그는 작정이라도 한 듯,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유령들 쪽으로 몸을 이동했다. 몸이 어떻게 되기 전에 승부를 짓겠다는 뜻이었다.
그런 시도 자체는 좋았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잠시 뒤 등장한 3등 항해사 유령 2마리. 녀석들로 인해 ‘처단자’는 단번에 얼어버렸다. 용 사냥꾼이 얼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엄청난 속도로 얼어붙은 것이다.
쩌저적.
이번엔 상대가 둘이라서, 혹은 놈들에게 가까이 접근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관건은 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해 버렸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와장창!
그의 몸 역시 커틀러스에 의하여 단번에 박살 났다. 지켜볼 것도 없이 너무나 깔끔한 패배였다.
[‘처단자’가 사망하였습니다.]
[대결 진척도]
[승리: 4회]
[패배: 2회]
그리고 이어지는 일곱 번째 대결. 대결은 점점 더 타개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
일곱 번째 대결은 산적이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스스로 나섰다.
“젠장. 어차피 나중에 더 어렵게 가느니 지금 상대해 보겠어.”
그 말을 남기고 대결을 시작한 그. 그는 얼마가지 못하고 사망했다.
결국 남은 인원은 마법학도, 마나 공학자, 네크로맨서.
이렇게 셋이었다.
먼저 승리를 쟁취한 도전자 넷은 자꾸만 어려워지는 적의 수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휴, 미리 하길 잘했네.”
“정말이야. 하마터면 나도…….”
저 꼴이 날 뻔했다는 말이겠지.
그들이 안도를 하거나 말거나 충렬을 제외한 남은 둘은 고민했다. 이대로 간다면 승리를 떠나서 자신들의 죽음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여덟 번째에 등장하는 적은 2등 항해사 유령 한 마리였다. 3등 항해사만 해도 가벼이 여길 수준이 아니었는데, 2등 항해사는 더욱 엄청나리라.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중에 죽나 지금 죽나 같았다. 그럴 바에야 미리 나서서 조금이라도 쉬운 상대와 대결을 하는 것이 나으리라.
이번에 나선 이는 마법학도였다.
평범한 복장에 한 손에는 조그만 완드를 들고 있는 이였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거수하여 나섰다.
[5초 뒤, 2등 항해사 유령이 등장합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으며 마법 학도라는 직업을 가진 그는 주문을 외웠다. 적이 등장하자마자 공격해 버릴 심산에서다. 그냥 스킬명을 외치는 것과 달리, 약간의 준비가 필요한 스킬이었나보다.
“끝없이 상대를 불태우는 화마여. 나의 부름에 일어나 적을 소멸하소서.”
그렇게 5초가 지나 적이 등장하자, 그가 스킬명을 외쳤다.
“익스플로전!”
동시에 그가 사용한 스킬이 등장한 유령을 뒤덮었다. 일시에 솟아오른 불기둥. 그 기둥에 의하여 2등 항해사라는 유령은 모습도 보이지 못하고 불타야 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저 불기둥 속이라면 그 어떤 존재든 쉬이 생존을 장담하기가 힘들었다.
‘저 정도라면 진작 나서지.’
만약 3등 항해사였다면 충분히 처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2등 항해사 유령의 마법 저항력은 상당히 뛰어납니다.]
[익스플로전이 유령에게 경미한 피해만을 입힙니다.]
시스템의 말대로, 불기둥은 2등 항해사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고 사라졌다.
어느 정도는 통할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마법이 통하지 않자, 도전자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더니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했다.
“엘리멘탈 매직 실드!”
동시에 그의 몸을 알록달록한 실드가 감쌌다. 하지만 2등 항해사 유령은 3등 항해사와 달리 주변에 한기를 전달하지 않았다. 놈의 특징은 막강한 방어력뿐이었는지, 그냥 무작정 돌진해 왔다.
‘오히려 3등 항해사보다는 상대하기가 쉬워 보이는데?’
물론 그것은 마법 학도의 직업을 가진 그에게는 적용되질 않았다. 그가 가진 것은 죄다 마법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2등 항해사는 뛰어난 저항력으로 모든 마법의 피해를 경감시켰던 것이다.
[위력이 약한 매직 애로우가 2등 항해사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익스플로전 이외의 공격 마법은 많았다. 하지만 방금과 같이 그의 스킬은 모조리 가로막혔다.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시스템이 추가 설명을 해주었다.
[평범한 스킬로는 2등 항해사 유령의 방어력을 뚫기 힘듭니다.]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법을 사용하던 도전자. 그는 곧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도전자의 몸인데 지쳤다는 뜻은 그만큼 오랜 공방전을 했다는 소리였다.
“허억… 헉…….”
그런 그에게 도착한 2등 항해사 유령. 녀석이 도전자의 목을 베었다.
서걱.
충렬은 그 광경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남은 인원은 마나 공학자라는 인물과 충렬, 둘뿐이었다.
***
[지금까지 주변에서 4명의 도전자가 사망하였습니다.]
[그들이 당신의 영지에서 해골 일꾼으로 태어납니다.]
그것은 충렬에게만 들리는 음성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시스템이 알려왔다. 아홉 번째에 등장하는 적들은 그 숫자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말이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적이 등장하는 숫자는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아홉 번째 대결에서 등장하는 유령]
[2등 항해사: 1마리]
[3등 항해사: 2마리]
[베테랑 선원: 4마리]
[일반 선원: 8마리]
[노예: 20마리]
그러나 시스템이 알려오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진척도는 승리 4회에 패배 4회입니다.]
[아홉 번째, 그리고 열 번째 대결은 몰아서 치를 수 있습니다.]
[몰아서 치르는 대결에서 승리 시 2회 승리로 인정해 드립니다.]
그 말에 충렬의 두 귀가 쫑긋거렸다. 그리고 시스템의 설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만약 대결을 몰아서 치른다면 도전자 한 명은 대결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대신 대결에 참여하는 다른 도전자에게 50,000카르마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 말인 즉, 자신이 없다면 50,000카르마를 지불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충렬이 그럴 일은 없었다. 미쳤다고 50,000카르마를 날리겠는가?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도전자는 달랐다. 그가 충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장에 도망가겠다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최소한의 개념은 있었다. 마나 공학자라고 소개된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대충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한 충렬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공짜로 50,000카르마가 들어오게 되었으니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대결을 포기하고 싶다 이 말이죠?”
충렬의 물음에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포기하십시오. 제가 상대할 테니까.”
그러자 상대의 얼굴에서 활기가 생겨났다.
“저, 정말 그래도 됩니까?”
그는 50,000카르마라는 엄청난 손해보다는 목숨을 선택했다. 하기야,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리라.
어쨌거나 그가 의사를 내비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마나 공학자’가 대결을 포기합니다.]
[그에게서 50,000카르마를 징발합니다.]
그리고 충렬에게는 무시무시한 숫자의 적이 주어졌다.
[아홉 번째, 그리고 열 번째 대결에서 등장하는 적을 합칩니다.]
[등장하는 적]
[1등 항해사 ‘발라무트’]
[2등 항해사: 3마리]
[3등 항해사: 6마리]
[베테랑 선원: 10마리]
[일반 선원: 20마리]
[노예: 40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