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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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이 왕궁에 진입하자 안쪽에서 큰 외침이 들려왔다.
“오! 드디어 나를 도와줄 이가……!”
아무도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으나, 충렬은 그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머리 위에 고고하게 올라가 있는 왕관이 그녀의 지위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말이 왜 중간에 끊겼던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충렬 때문이었다. 그녀는 충렬을 발견하자 두 눈을 빛내며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호오라, 탐스럽게 생긴 인간…….”
하지만 그녀는 이내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는지 침을 꿀꺽 삼키며 억지로 본능을 억눌러 갔다.
“크흠. 드디어 이 일을 해결할 이가 왔군.”
그런 여왕의 반응에 빈센트가 입을 열었다.
[이 인간에게는 관심을 끄도록. 정기가 필요하면 다른 녀석을 납치하던지. 주변에 머맨들이 많지 않았나?]
빈센트의 말에 여왕이 크게 성을 내었다.
“놈들은 못생기지 않았느냐! 놈들의 씨앗을 받을 바엔 확 혀를 깨물어 죽고 말지. 그나저나 빈센트여, 그 까칠함은 여전하구나.”
여왕에 말에 빈센트가 히죽 웃으며 답했다.
[칭찬은 고맙게 받도록 하지.]
여왕과 일개 기사의 대화치고는 무언가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뭐 굳이 충렬이 알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여왕이라는 자의 시선은 여전히 충렬에게 향해 있었다. 여왕이 그러한 반응을 보이거나 말거나 충렬과 빈센트, 그리고 성녀를 안내해 온 머메이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그녀가 안내한 자리는 여왕이 앉아 있는 곳의 앞에 마련된 자리였다. 마침 대전의 바닥에는 사건의 축을 담당하는 머메이드 둘이 있었다. 행색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둘이 이번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충렬은 그 둘을 보며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흐음…….’
옆에 앉은 성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곧바로 답을 얻은 듯했다. 실비아는 충렬과 잠깐 눈을 마주치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고?’
그녀는 눈을 뜨지 못했다. 심안을 얻는 대신 두 눈을 잃었으니까. 물론 그녀가 눈을 뜰 수 있다고 해도, 지금 보이는 그녀의 눈은 평범한 눈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검은자위가 자체가 없었다.
오로지 새하얀, 백안의 눈동자만 있을 뿐이었다. 잘못 보면 조금 무서운 모습이었다. 마치 귀신의 눈을 보는 듯했으니까.
어쨌거나 그녀의 두 눈이 어떻게 뜨였는지는 곧 알 수가 있었다.
“신께서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궁금해하세요.”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새벽을 관장하는 가’가 성녀 실비아의 두 눈을 빌려 당신을 지켜보기 시작합니다.]
[그는 당신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지 무척 궁금해합니다.]
[설마 성녀의 심안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생각이었냐고 의문을 품습니다.]
‘제길.’
성녀를 이용하여 쉽게 해결해 나가보려고 했는데, 헬리오스의 신은 충렬이 꼼수를 부리지 못하게 미리 차단했다. 직접적으로 성녀의 도움을 받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저 말은 도움 없이 해결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성녀를 통해 가볍게 해결하지 못한다면 직접 실마리를 찾아보아야 했다.
‘일단은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먼저겠지.’
그렇게 충렬은 바닥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는 머메이드 하나와, 아이를 품에 꽉 안고 있는 머메이드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
사건의 중심지에 놓인 머메이드 둘의 이름은 비솔라와 아키라였다. 비솔라는 아이를 잃었다가 드디어 찾은 머메이드였고, 아키라는 기존에 아이를 키우다가 갑자기 억울한 누명을 쓴 머메이드였다. 물론 그 진실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는 아직 몰랐지만 말이다.
충렬은 진지하게 참여하기로 한 이상, 깊이 생각했다. 뒤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는 여왕 아란티아도 충렬이 어떻게 해결하나 호기심 있게 바라보았다.
충렬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론을 내었다.
‘핵심 키워드는 모성애다.’
과연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들에게도 모성애가 있었을까? 충렬은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아란티아에게 묻기로 했다.
“질문을 하나 하여도 됩니까?”
아란티아는 눈앞의 머메이드가 아닌, 자신을 향해 물어오자 의문을 품었다.
“나에게 말이냐?”
“예.”
“그래, 물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지?”
그녀가 허락하자 충렬이 즉각 궁금한 점을 질문했다.
“머메이드는 자신의 자식을 아낍니까?”
충렬의 질문이 어이가 없었던 것일까? 그녀는 싱겁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고말고.”
물론 충렬의 질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로요?”
“흐음… 보통 인간 여성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남의 자식에겐 관심도 없겠지만 말이지.”
그녀의 말을 통해 충렬은 대충 확인할 수가 있었다. 머메이드라도 사람과 같이 모성애는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야기는 단순하다.’
심증만으로 사건을 해결해야 했지만, 이번 사건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 모성애를 자극한다면 둘 중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있겠지.’
만약 밝혀지지 않는다면 다른 수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충렬의 말에 의하여, 사건은 단번에 종결되었다.
충렬은 자신의 뒤에서 부담스럽게 쳐다보는 여왕에게 말했다.
“둘 다 자신의 아이라고 하니, 공평하게 아이를 반으로 갈라 각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아란티아가 충렬의 말에 감탄했다. 사실 아란티아는 어떻게든지 이 시끄러운 소란을 잠재우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억울한 상황을 만들면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러던 그때 제시된 충렬의 제안은 그녀에게 있어서 실로 솔깃한 내용이었다.
“오! 과연!”
그러더니 그녀는 근처에 위치한 근위병들에게 말했다. 충렬의 진정한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한 그녀는 진짜로 아이를 반으로 갈라 버리려 했다.
“여봐라! 당장 저 아이를 정확히 반으로 잘라 서로에게 나누어 주어라!”
영문을 모르는 아이만이 멀뚱히 두 눈을 뜨며 주변을 해맑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충렬은 굳이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이제부터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나, 미끼를 던졌을 뿐인데 반응이 즉각 나타났다.
아이를 잃었다는 비솔라. 갑자기 그녀가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애걸복걸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아니됩니다! 그냥 아키라에게 아이를 양보하겠습니다!”
그러나 아키라의 반응은 비솔라와 정반대였다. 그녀는 비솔라의 모습에 피식 웃더니 여왕의 결정에 찬성한 것이다.
“그게 공평하겠네요.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각자 가지는 것이…….”
하지만 아키라는 이내 곧 자신이 잘못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눈치가 없던 여왕도 아키라의 말에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실제 자신의 아이였다면 저러한 말을 할 리가 없었던 탓이다. 갑자기 여왕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뭐라? 당장 저년을 묶어라!”
그랬다. 아키라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다. 그랬기에 아이를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머메이드들이 아이를 가지는 것에 샘이 났던 그녀는, 자신과 닮은 아이를 훔쳐내었고 기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진짜 아이가 아니었기에 결국 이렇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여왕의 말에 주변을 지키고 있던 머메이드들이 곧바로 움직이더니 거짓말을 한 아키라를 묶어가려고 했다.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이제야 맡은 사건을 제대로 상대하나 싶었는데, 시작하자마자 결과나 나타나 버렸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내에 올바른 판결을 이끌어내었습니다.]
[현명한 결과를 도출해낸 당신에게 ‘영주의 반지’가 주어집니다.]
[영주의 반지: 영지에 머물고 있는 주민들을 임무 도중에 소환할 수가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소환한 영지민들이 죽게 되면, 소환 스킬로 재소환이 되는 것과 달리 진짜로 사망하게 된다. (재사용 대기 시간: 24시간)]
‘영주의 반지라고?’
아이템의 설명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영지의 인원들을 임무 도중에 소환할 수가 있다니. 이처럼 대박인 아이템이 있을까? 재사용 대기 시간은 무척이나 길었지만 상관은 없었다.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하더라도 그 효용성이 감히 짐작되지 않았다.
충렬이 엄청난 아이템에 놀라거나 말거나 시스템은 그 말을 끝냄과 동시에 충렬의 한쪽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그렇지만 충렬에게 주어진 것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새벽을 관장하는 자’가 당신의 혜안에 감탄하며 자녀들을 맡길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앞으로 당신의 영지에 유입되는 주민의 양이 증가합니다.]
유입되는 주민의 양이 증가한다는 저 말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결코 허투루 하는 소리는 아니리라.
그나저나 그냥 찔러본 말에 상황이 단번에 종결되다니, 충렬은 무언가 찜찜했다.
‘이 정도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닌가?’
그냥 자신의 유도신문에 걸린 아키라만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이는 충렬이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머메이드란 종족은 충렬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까지 섬세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애초에 해골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으리라. 물론 해골 왕 또한 이런 일에는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상황을 수월하게 풀어낸 충렬이 보상을 얻어가는 사이, 대전에서는 큰 소란이 일어났다. 머메이드들이 아키라를 포박하려 하자 그녀가 발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 잠깐……!”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쪽수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때였다. 그녀는 이대로 당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죽이려 했다.
“이렇게 될 바에는……!”
그 광경에 비솔라라는 머메이드가 크게 절규하며 달려들려고 했다.
“아, 안 돼!”
하지만 그녀가 달려들기도 전이었다.
“쯧, 목숨만은 살려주려 했거늘.”
상황을 지켜보던 머메이드의 여왕. 아란티아가 아키라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아키라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아쿠아 커터.”
그러자 그녀의 손끝에 위치하던 물이 잠시 요동치더니, 곧 잠잠해졌다. 물론 그 결과는 무척이나 강렬했다. 곧바로 아키라의 목이 반으로 절단되었기 때문이다.
서걱.
동시에 아키라의 머리가 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절단된 부위에서는 시뻘건 혈액이 흘러나오며 주변에 번져갔다.
잔혹한 장면이었음에도 장내에 있던 이들 중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심지어 성녀조차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살짝 놀란 이는 오로지 충렬 하나였다. 그것도 약간의 신선한 느낌을 받아서 그런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자신의 백성임에도 그냥 즉결 심판을 내리다니,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모습이 무척이나 새로웠다.
‘하긴, 여기는 지구가 아니니까.’
어쨌거나 비솔라는 죽은 아키라의 품에서 즉시 자신의 아이를 꺼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막상 아이를 되찾으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흐윽… 드디어…….”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이를 되찾은 그녀는 충렬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충렬이 있는 위치는 여왕의 코앞이었다. 순간 여왕을 지키던 머메이드들이 비솔라의 접근을 막으려 했지만, 아란티아가 제지했다.
“그만. 놔두어라.”
그러더니 등을 돌리며 근위병들에게 말했다.
“아키라의 재산은 모조리 몰수하여 비솔라에게 귀속시켜라. 그리고 이충렬이라고 했던가? 그대는 감사 인사를 받고나서 응접실로 오도록.”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자 아란티아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아이를 되찾은 비솔라, 그녀가 충렬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녀도 뒤늦게 깨달았다. 비록 가슴을 철렁거리게 만드는 말을 하였지만, 결국은 아이를 되찾아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상황이 어색했던 충렬은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그런 충렬의 모습에 성녀는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