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것은 충렬뿐만이 아니었다. 박해일도 시스템의 음성을 들었는지 정보의 전달이 끝나자마자 충렬을 바라보았다. 충렬과 해일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을 받아들이자는 뜻이었다.
***
“저의 영지에서 잘 지내주시길 바랍니다.”
성녀는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스템이 굳이 말을 꺼내는 것을 보면 의사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신성 왕국을 돌보던 헬리오스의 신은 ‘새벽을 관장하는 자’입니다.]
[본래 그는 자애가 깊은 신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변절한 자녀들과, 주변의 위협을 안타깝게 바라본 그는 더 이상 자애로운 모습만 보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이어지는 시스템의 음성은 놀라웠다.
[실비아와 윌리엄, 그리고 성기사들의 고난을 지켜보던 신이, 그들에게 혼돈의 힘이 적용되는 것을 허락합니다.]
[주민이 된 그들에게 새로운 힘이 부여됩니다.]
[앞으로 당신의 여정을 ‘새벽을 관장하는 자’가 눈여겨봅니다.]
헬리오스의 신들 중 하나가 자신을 눈여겨보게 된다니. 놀랄 일이었지만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윌리엄을 포함한 성기사들의 몸 주변으로 빛이 번쩍였기 때문이다.
화악!
그 빛은 빛과 어둠이 뒤섞여 만들어진 탁한 회색이었다.
[신에 대한 강력한 믿음과 신앙이 사제 윌리엄을 높은 수준의 사제로 만들어냅니다.]
[사제 윌리엄이 ‘혼돈의 주교’로 승급합니다.]
[성녀와 윌리엄의 곁을 굳건하게 지킨 성기사 7명에게 막대한 힘이 부여됩니다.]
[성기사 7명이 ‘징벌의 기사’로 승급합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로부터 이전과는 다른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렉과 비슷한 힘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느껴지는 기운은 각자 달랐다. 윌리엄이 조금 부드러운 느낌이었다면 성기사들… 아니, 징벌의 기사가 된 7명의 기운은 무척이나 패도적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힘을 얻은 그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저들의 반응을 보니 어둠의 힘이 포함되어있다고는 하나, 전혀 문제될 것은 없어 보였다. 무려 그들이 모시던 신이 허락한 힘이었으니까.
“어, 어떻게 이렇게 강력한 힘이…….”
“저는 신성력 자체도 엄청나게 상승했습니다!”
“나도야! 오오… 신께서 우리를 돌보시다니……!”
그들은 새로운 힘을 얻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서 경건한 자세로 눈을 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신에 대한 경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거나 징벌의 기사가 된 그들의 말을 대충 들어본다면, 혼돈의 힘 안에 들어 있는 신성력 자체도 엄청나게 상승한 것 같았다.
보이지는 않지만 성녀도 같은 상황을 겪고 있을 것이리라. 하지만 시스템의 음성이 없는 것을 보면, 혼돈의 힘이 허락되기만 할 뿐. 다른 이들처럼 따로 승급 같은 것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시스템의 음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을 새로운 주민으로 받자, 충렬의 영지에도 혜택이 주어진 것이다.
[‘새벽을 관장하는 자’가 당신의 영지에 신전을 선물합니다.]
[‘혼돈의 신전’을 곧바로 건설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위치를 선정하십시오.]
가상으로 보이는 반투명 신전. 그것의 크기는 제법 컸다. 충렬의 영지에 있는 모든 건물들을 합쳐도 신전 하나의 크기가 더욱 클 정도로 말이다.
그나저나 건물 하나를 통째로 주다니.
‘이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 것인가?’
헬리오스에 신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제야 확신할 수가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런 그들에게 관심을 받는다면…….’
이렇게 좋은 일이 자주 생길 것이 분명하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성녀의 구출과, 그들을 주민으로 받기를 잘한 것 같았다.
충렬은 신전이 설치될 위치를 해일에게 맡기고, 신전에 대한 설명을 살펴갔다. 그냥 신전이 아닌, 혼돈의 신전이니 무언가 기능이 있을까 싶어서다.
그리고 역시나, 일반적인 신전과 달리 새로운 기능이 있었다.
[혼돈의 신전: 관련된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혼돈의 힘으로 외부로부터 영지를 보호한다. 허락받지 못한 자가 혼돈의 신전이 건설된 영지를 밟으면, ‘환상’상태에 빠지게 되며 영원히 길을 헤매게 된다.]
그러지 않아도 충렬이 없는 사이, 도전자의 침공이 한차례 발생했었다.
‘하지만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는 걱정을 줄일 수가 있겠군.’
그만큼 신전의 기능은 엄청났다.
충렬이 신전의 기능을 살피는 사이, 박해일은 어디다가 신전을 놓을지를 결정했다. 그렇게 잠시 뒤, 신전이 설치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혼돈의 신전이 건설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예비 신자’가 됩니다. 앞으로 아이들은 신전 내에서 생활하여 추후 신전과 관련된 직업을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녀와 드워프들의 구출에 대한 보상도 일단락되었다.
***
영지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 제법 시간이 지났다. 성녀도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지금은 신전에 머물러 아이들을 직접 돌보고 있었다.
그녀를 포함해 영지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일을 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영지를 발전시키려면 할 것이 많았으니까. 더욱이 해골 일꾼들을 가만히 놔둘 이유는 없었다.
물론 성녀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하였고, 왜 눈은 뜨지 못하는지에 대한 사소한 것까지 말이다.
그 후에 충렬에게는 개인 시간이 주어졌다. 다음 임무 지역으로 이동하라는 시스템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탓이다.
아직 집무실 같은 것은 없었기에, 충렬은 여관 내에 위치한 방 하나를 차지하여 쉬는 중이었다. 그런 충렬의 방으로 누군가 노크했다.
똑똑.
“들어오십시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존재는 다크 엘프의 모습을 한 아르타디아였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후우… 나이 먹고 이 짓을 하려니까 힘이 드는군.”
신성 왕국에서 이곳으로 오지 못하게 하려는 작업을 이제야 끝마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녀의 표정을 본다면 다행히 일은 잘 끝마친 것이 분명했다.
“일은 잘 마무리하셨습니까?”
“그래.”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 충렬에게 무언가를 건네었다. 아르타디아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알 수 없는 가죽이었다. 예상치 못한 물건에 충렬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건……?”
“다녀오는 길에 철이 매장된 땅을 하나 발견했다. 그곳을 표시한 지도야.”
그녀가 건네주는 지도를 살핀 충렬은 근처에 그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걸 드워프들에게 건네어주면 좋아하겠지. 그러지 않아도 새로운 철광을 찾아내기 위해 돌아다니던데.”
“감사합니다.”
그렇게 충렬에게 한 장의 지도를 건네준 그녀는 용무를 마쳤다는 듯이 밖으로 나갔다.
“그럼, 나중에 보도록 하지.”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본 충렬은 이제 슬슬 일어나기로 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쉬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 볼까.’
아무리 다른 이들이 열심히 일을 해주고 있다고 해도, 자신도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어야했다. 헬리오스에서 터전이 될 영지가 빠르게 발전해야 도태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충렬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도 전에,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해골왕의 기사, 빈센트가 당신의 영지로 방문하고자 합니다.]
[그의 방문을 허락하시겠습니까?]
***
빈센트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을 리는 없었다. 이곳의 영지를 준, 해골 왕의 기사였으니 말이다.
빈센트의 방문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충렬은 아르타디아에게서 받은 지도를 드워프들에게 건네어주었다. 막상 대장간을 건설하였지만 제대로 된 일을 시작조차 못 했던 그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어쨌거나 빈센트가 방문하다니.
‘무척이나 오랜만이네.’
무슨 용무 때문일까? 그 내용에 대해서는 곧 알 수가 있으리라.
그렇게 그의 방문을 허가하고 잠시 뒤, 충렬의 영지에 포탈 하나가 생성되었다.
***
여관의 식당으로 들어온 빈센트는 충렬을 보더니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고 있었나?]
“예, 저야 잘 지내고 있죠. 그나저나 해골 왕께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전하께서는 늘 바쁘시지. 아직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으셔서 말이야.]
그는 도착하자마자 발전한 영지의 모습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영지는 무난하게 잘 꾸려 가는 것 같군. 그래, 필요한 것은 딱히 없나?]
그의 물음에 충렬이 답했다. 당장에 무언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예의상 물어보는 말에 평범한 답변을 해주었다.
“괜찮습니다.”
[전하께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나 말하라고 하셨다. 하도 소식을 들려주지 않아 조금은 서운해 하시더군.]
해골의 관심을 받다니, 조금 생소한 기분이었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하기야, 충렬은 지금까지 많은 일을 수행해야 했던 탓에 소식을 전할 겨를도 없었다.
그것보다 그는 용무가 있음이 분명했다. 바쁜 와중에 이렇게 인사나 하자고 방문할 리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추측은 정확했다.
[그나저나 시간이 괜찮으면 의뢰를 하나 받아주었으면 하는데…….]
평범한 해골 기사처럼 보일지라도, 예전 분쟁 지역에서 해골 왕의 대리인을 맡을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이가 바로 빈센트였다.
그런 그가 직접 충렬의 영지로 방문했다. 그리고 의뢰를 전달하려 한다면, 분명 범상한 내용은 아닐 것이리라.
“어떤 의뢰인지……?”
[정확히는 우리들 쪽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말인 즉, 해골 왕에게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머메이드라고 들어보았나? 평소 왕래가 종종 있는 이들인데, 그쪽에서 중재자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더군.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중간에서 판단할 수가 있는 이가 필요한 모양이다.]
‘머메이드?’
언데드는 아닌 것 같았다. 더군다나 중재자를 파견해 달라니. 도대체 무슨 내용인 것일까.
[상반신은 인간 여성의 몸에,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을 한 인어다. 그들 간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너무 난해한 문제라서 말이야.]
보통이라면 그들 선에서 처리했겠지만, 충렬에게 손을 내밀 정도로 골치가 아픈 일인 듯싶었다.
어쨌거나 빈센트의 말이 끝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새로운 임무 ‘영주의 자격’이 발생하였습니다.]
[영주란 모름지기 시비가 붙은 영지민들의 사건을 올바르게 해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다른 지역의 사건이지만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여 현명한 결과를 도출하십시오.]
[판결한 결과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 됩니다.]
충렬이 동의하기도 전에, 임무는 이미 수락되었다.
‘물릴 수가 없는 것인가 보군.’
영주의 자격이라는 것을 보니 어떤 방식으로든, 언젠가는 해야 하는 임무인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시스템의 말을 들어 보면 대충 상황을 보고 판단하면 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물릴 수도 없게 되었다. 때문에 충렬은 빈센트를 향해 말했다.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렇게 충렬에게는 기존의 임무와는 궤를 달리하는 임무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