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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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레일리 혼자 시체 구더기를 상대해야 했다. 다른 이들은 물밀 듯이 들이치는 나머지 악인들을 처리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혼란 속에서 시작된 녀석과의 전투였다. 레일리는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놈을 상대하려는 생각일까?
강력한 마법을 사용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재사용 대기 시간이 주어진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스킬들로만 승부를 보아야 했다. 물론 남은 스킬로는 압도적인 화력을 보여주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움직였다. 오히려 시체 구더기의 앞으로 순간 이동을 했다.
“블링크.”
그러자 레일리와 해골 마법사들이 일시에 시체 구더기의 근처에 도달했다. 멀리 도망을 다니며 요격하고 다녀도 모자랄 판에, 도리어 거리를 좁히다니. 무척이나 대담한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우선 놈의 근처로 이동한 레일리는 지체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리치 레일리>가 해골 마법사들과 함께 시체 구더기의 왼쪽 다리에 마법을 일점사합니다.]
동시에 그녀의 트리플 파이어 볼트와 해골 마법사들의 각종 마법들이 시체 구더기의 왼쪽 다리를 향해 날아갔다. 레일리의 파이어 볼트 3개와 해골 마법사 4기의 기초 마법들까지. 총 7가지의 마법이 뒤섞인 것이다.
그렇게 날아간 마법들. 그 마법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시체 구더기의 다리에 손상을 입히기 시작했다.
콰광!
쾅!
푹!
퍼벙!
펑!
역시, 놈의 가까이로 이동한 이유는 최대한 화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한 지점을 노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아무리 기본 마법일지라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시체 구더기는 애초부터 여러 몸뚱이가 뒤섞인 것일 뿐. 방어력 자체는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 증거로 거칠게 움직였던 시체 구더기의 몸이 당장에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아예 마법을 이용해 한 지점을 터뜨리니 녀석의 한쪽 다리는 단번에 기능을 상실했다.
육중한 몸뚱이를 가진 녀석이 무릎을 꿇었다.
쿠웅!
놈이 전투력을 상실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레일리는 시체 구더기를 완전히 농락하기 시작했다. 무서운 덩치로 짓쳐오는 시체 구더기였지만, 녀석에게 원거리 공격 스킬이 없는 이상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레일리가 해골 마법사들을 조작하여 흩어지게 합니다.]
놈을 중심으로 레일리는 해골들을 사방으로 분산시켜 갔다. 그리고 시체 구더기의 사방에서 놈의 몸뚱이를 요격하려 했다. 해골들을 흩어지게 한 이유는 혹시라도 녀석이 공격해 올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한 지점에 모여 있는 것보다 서로가 흩어진다면 동시에 당할 리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놈을 향해 사방에서 마법들이 들이치기 시작했다.
콰광!
펑!
퍼벙!
쾅!
푹!
서걱!
치직!
마법이 적중될 때마다, 시체 구더기의 일부분이 된 살아 있는 악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고통을 느낀 것이다.
“키아악!”
“키아아악!”
“카아아아악!”
동시에 피해를 많이 입은 악인들이 시체 구더기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멀쩡한 악인들이 채워 나갔다.
레일리와 달리 해골 마법사들의 기초 마법은 각각 속성이 달랐다. 불 속성 마법이 있는가 하면, 얼음 속성 마법도 있었고, 전기 속성, 그리고 바람 속성 등. 그 속성이 매우 다양했다.
그 덕분에 시체 구더기의 몸은 불타거나 얼어버리고, 베이거나 지져지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피해를 입어야 했다. 당연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놈이 부담해야 했다.
쓸모가 없어진 몸뚱이를 버리고, 새로운 몸뚱이로 교체할수록 그만큼 녀석의 덩치는 줄어들어갔다.
물론 다리를 복구한다고 해도 녀석은 일어설 수가 없었다. 레일리가 해골 마법사들과 함께 녀석의 다리를 재차 공격해 갔으니 말이다.
레일리가 녀석을 상대하는 것을 본 충렬은 거기서 시선을 돌렸다. 저 정도라면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상대하네.’
이제부터는 저쪽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들이치는 악인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대로라면 당하는 것은 이쪽이다.’
그만큼 악인들의 물결은 끊임이 없었다. 슬슬 드워프들도 지쳐가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회복되었다고는 하나, 충분히 휴식을 취해 주어야 했을 몸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격렬히 움직이니 드워프들도 하나둘씩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악!”
“크윽.”
몇몇 드워프들이 악인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장면을 목격한 충렬이 즉시 마렉에게 외쳤다.
“마렉! 쓰러진 드워프들을 안쪽으로 옮겨주십시오!”
마렉은 즉시 답했다.
[알겠어!]
동시에 그는 공중을 날았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쓰러진 드워프들을 옮기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덕분에 아직 사상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방어선이 점점 무너진다.’
드워프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하자, 그들을 쓰러뜨린 악인들은 자연스럽게 주변에 있는 이들이 감당하게 되었다. 충렬의 네임드들이 앞으로 나서서 아무리 선방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 수가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악인들이 그들을 지나쳐 몰려오고 있었다. 보이는 숫자만 해도 이제는 수천 단위를 넘어갔다. 고작 백 단위도 되지 않는 숫자로 악인들을 막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쪽의 실력이 아무리 출중하다고는 해도 말이다.
더군다나 영지로 향하는 포탈이 열리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제길… 방법이…….’
현재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영혼 수확자의 반지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며 반지에 중첩된 숫자만큼의 언데드를 불러내는 반지. 그것을 사용한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버틸 수가 있으리라.
하지만 충렬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첩된 숫자는 고작 59다. 그 숫자를 소환해봐야 들이치는 폭포를 한 손에서 양쪽 손으로 막는 것밖에 안 돼.’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방법은 도박이었다. 바로 천사 아리엘의 깃털을 사용하는 것이었으니까.
‘이 깃털을 사용하면 분명 천사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했지.’
그러나 이것 또한 모험이었다. 거기서 쏟아져 나온 천사들은 충렬에게 결코 호의적이 아닐 터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악인들을 막기에 가능성이 보인다고는 해도 너무나 위험했다.
하지만 충렬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주변의 상황을 지켜보던 성녀. 그녀가 스킬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황을 최대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충렬을 잠시 바라보더니. 그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까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해요. 나머지 분들을 부탁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성녀가 사용하는 스킬은, 지금껏 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성역 선포.”
그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성녀 실비아가 스스로를 희생하여 성역을 선포하였습니다.]
[실비아를 중심으로 일정 반경 이내의 땅이 30분간 성역으로 변경됩니다.]
[성역 내에 존재하는 아군들의 생명력 회복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집니다.]
[성역 내에 존재하는 아군들에게 신성한 가호가 내려집니다.]
[성역 내에…….]
성역을 선포하자 엄청난 버프가 쏟아졌다. 물론 그 속성이 신성한 것들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마렉을 제외한 충렬의 언데드들에게는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성역이 적용되는 범위 밖에서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기에,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성역 내에 있던 드워프들과 마렉은 엄청난 버프에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었다.
성역이 선포되자 쓰러진 드워프들도 당장에 제 정신을 차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성역의 적용 범위 내에 존재하던 악인들이 참회합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친 그들은 참회하지 못한 다른 악인들에게 안식을 내려주기 위하여 움직입니다.]
그랬다. 성역의 범위 내에 존재하던 수많은 악인들. 그들이 일순간 아군으로 변해 버렸다.
‘뭐지? 이 엄청난 스킬은…….’
만약 성녀가 적이었다면 엄청나게 끔찍한 스킬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스킬의 효과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엄청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스킬인 만큼, 성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희생하여 스킬을 사용한 성녀의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그녀가 쓰러지자 주변의 아이들이 울어갔다. 깜짝 놀랐기 때문이리라.
“으… 으앙……!”
그와 함께 윌리엄과 성기사들 또한 당황한 표정으로 절규했다.
“아… 안 돼!”
“서, 성녀님이……!”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온다. 이번의 임무가 실패했음을 알리려던 것이다. 이번 임무는 드워프들을 구하는 것도 있었지만, 명백히 성녀를 구하는 것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성녀가 사망하였습니다.]
[임무가 실패하…….]
하지만 시스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충렬이 마렉에게 외쳤다.
“마렉! 빨리 부활 스킬을……!”
멍하게 있던 마렉이 충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킬을 처음으로 사용해 나갔다.
[부… 부활!]
그러자 마렉으로부터 혼돈의 힘이 빠져나오더니, 쓰러진 성녀의 몸뚱이로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잠시 뒤. 시스템이 알려왔다.
[성녀를 다시 되살려 내었습니다.]
[임무를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시스템의 말이 끝남과 함께 쓰러진 성녀의 몸에서 미동이 발생했다. 하지만 기력을 다한 것일까?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성녀를 살린 것은 확실했으니까.
‘십년감수했네.’
설마 성녀가 자신을 희생시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덕분에 악인들의 공세를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가 있게 되었지만 자칫하면 그녀를 구하지 못할 뻔했다.
자신의 목숨마저 버려가며 다른 이들을 구하려 하다니, 충렬이라면 쉽게 하지 못할 행동이었다.
어쨌거나 그녀 덕분에 상황은 급속도로 호전되어 갔다.
***
어느새 레일리는 시체 구더기를 완전히 처리해 가고 있었고, 들이치는 악인들도 참회한 악인들을 상대하느라 일행들에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
혹여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성역 내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급속도로 회복이 되어버리니,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영지로 가는 포탈이 생성되었다.
[포탈이 생성되었습니다.]
[포탈은 60초 동안만 유지됩니다.]
[60초 이내에 성녀와 드워프들을 포탈로 진입시키십시오.]
[그래야 임무가 완수됩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은 살짝 아쉬웠다. 성역의 혜택을 받고 있는 만큼, 여기 있는 악인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최대한 카르마를 벌어 갈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임무를 완수하려면 어쩔 수 없이 포탈로 진입해야 했다.
“윌리엄! 성기사들과 함께 성녀와 아이들, 그리고 드워프들을 먼저 대피시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충렬은 저들이 포탈로 진입하는 동안, 남은 시간만이라도 최대한 악인들을 처치하고자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충렬이 부탁한 이들을 포탈로 진입시킨 윌리엄이 외쳤다.
“그럼 저도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충렬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먼저 보내었다. 남은 시간은 대략 40초 정도. 그 시간 동안이라도 최대한 악인들을 처치할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레일리가 적절한 때에 시체 구더기를 완전히 제거했다.
[<리치 레일리>가 시체 구더기를 처치하였습니다.]
[30,0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시체 구더기를 처치한 레일리도 남은 악인들을 처치하기 위해 합류했다. 그렇게 포탈로 진입하기 전, 충렬과 네임드들은 악인들을 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