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시체 구더기
***
범죄자들을 처리하는 행위는 운동거리도 되지 않았다. 충렬이 주변을 쓸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충렬은 성녀가 있는 곳으로 차분히 걸어갔다.
‘저 여자가 성녀인가.’
만약 성녀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보았다면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일국의 성녀라고 부르기에는 거지꼴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입고 있는 옷의 재질 자체는 충분히 좋아 보였다. 하지만 이곳으로 끌려온 후부터는 전혀 관리를 하지 못했는지 너무나 더럽혀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그녀 자체가 더럽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성녀 특유의 분위기가 그 모습마저 숭고하게 만들었다.
성녀는 충렬이 다가오자 힘겹게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정확히 충렬을 향하고 있었다. 두 눈이 뜨여 있지 않았는데도 다가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충렬이 알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
다만 성녀의 상태가 걱정이었다. 그녀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서다.
자리에서 겨우 일어선 성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해 왔다.
“감사합니다. 설마 여기까지 도움을 주러올 의인이 계실 줄은…….”
충렬은 인사하는 성녀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무리해서 일어나서인지, 그녀의 다리가 순간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받친 충렬이 말했다.
“감사 인사는 다음에 하시죠. 일단은 앉아계십시오.”
우선은 그녀를 부축하며 자리에 앉게 했다. 성녀의 반응을 보니 대충 마렉에게서 상황을 전달받은 것 같았다.
어쨌거나 충렬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는 실비아예요.”
“이충렬입니다.”
자기소개를 한 그녀는 잠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대신해 쓰러진 드워프들과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마렉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뜨이지 않는 눈에서부터 눈물이 살짝 흘러나왔다. 옷소매로 눈가를 닦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슬퍼서 우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냥 이렇게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라서요. 안심하게 되니 이러네요.”
충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묵묵히 들어줄 뿐이었다. 어쨌거나 성녀를 포함한 드워프들을 구할 환경이 만들어지자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2시간 뒤, 당신의 영지로 향하는 포탈이 생성됩니다.]
[그 포탈을 이용해 성녀와 드워프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이곳에서 탈출시키십시오.]
[영지 귀환석을 이용해 혼자 탈출하게 되면 임무는 실패입니다.]
추가적으로 아이들까지 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아이들을 이런 곳에 두고 갈 정도로 충혈은 냉혈한이 아니었다. 아무리 득실을 따지는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개념은 있었다. 그리고 시스템은 의외의 보상을 제시했다.
[임무 성공 시 보상: 1레벨 상승.]
‘레벨을 상승시켜 준다고?’
지금 충렬의 레벨은 11이었다. 레벨이 12가 되려면 100,000카르마가 필요했다. 그런데 무려 레벨을 한 단계나 상승시켜 준다니. 그저 2시간 뒤에 생겨나는 포탈에 탈출시켜 주는 것만으로 말이다. 2시간만 버티면 100,000카르마를 공짜로 벌어 가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좋은 일만 자꾸 생기는 것이지?’
악인들부터 시작해 카르마를 많이 주는 범죄자들까지. 자꾸만 행운이 찾아왔다. 계속해서 좋은 일만 생기니 충렬은 문득 불안해졌다. 그러나 불안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카르마가 얼마나 모였는지를 확인해 보아야겠군. 상태창.’
충렬은 현재 보유한 카르마로 레벨을 올릴 수 있다면 당장에 올릴 생각이었다. 그래야 이득이었다.
생각해 보라. 12레벨이 되면 레벨을 상승시키려고 할 때 11레벨일 때보다 더욱 많은 카르마가 필요했다. 그러니 이왕이면 레벨을 하나라도 상승시킨 뒤,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리라.
그랬기에 충렬은 보유 중인 카르마를 살핀 것이었고, 마침 딱 적당한 카르마가 모여 있었다.
[보유 카르마: 101,000]
‘아슬아슬했군.’
저기서 카르마가 조금이라도 부족했더라면 레벨을 상승시킬 수가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충렬은 곧장 레벨부터 올렸다.
“시스템, 레벨을 올려줘.”
그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100,000카르마가 소모됩니다.]
[레벨이 11에서 12로 상승합니다.]
[현재 레벨: 12 (다음 레벨까지 120,000카르마 필요)]
봐라. 만약 임무를 완수했다고 가정했을 때, 당장에 20,000카르마를 이득 보았다. 100,000카르마에서 120,000카르마를 가져가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충렬이 한창 만족할 때였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운은 계속해서 따라주지 않았다.
잠시나마 느낀 불안감이 정말이었을까? 시스템은 곧 좋지 못한 소식을 알려왔다.
[‘악인’들에게 섬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악인’들이 곧 생겨날 포탈의 존재를 인식하고 몰려듭니다.]
흩어져 있는 악인들이 제 발로 찾아오면 좋지 않느냐고? 당연한 소릴. 카르마를 쓸어 담을 수가 있으니 반갑게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흘러갈 리가 없었다. 단순히 악인들만 상대하는 것이었다면, 시스템이 막대한 보상을 약속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무려 레벨을 한 단계나 상승시켜 주는 그런 엄청난 보상을 말이다.
역시나, 시스템은 심상치 않은 정보들을 알려왔다.
[식인귀로 각성한 130년 묵은 악인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170년 동안 스스로를 강화한 미치광이 연금술사가 거처에서 벗어납니다.]
[식인목과 한 몸을 이룬 식인목 관리자가 땅에서 뿌리를 뽑고 걸어오기 시작합니다.]
[용암을 주식으로 하는…….]
하지만 시스템이 경고를 주는 녀석은 다름이 아닌 마지막 녀석이었다.
[경고. 시체 구더기가 주변의 악인들을 먹어치우며 당신을 향해 접근하는 중입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어본다면 일반 악인들뿐만이 아니었다. 각성한, 또는 네임드 악인들이 깡그리 몰려오는 중이었다.
‘다크나이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녀석들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랬다. 다크나이트들이 지금까지 상대했던 각성한 악인들은, 그저 일반 악인들보다 조금 강한 수준의 악인들이었다. 지금 충렬을 향해 오는 악인들은, 다크나이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인 악인, 그것들보다 훨씬 강력한 놈들이었다.
***
섬 전체에 있는 악인들이 온통 몰려오게 되었다. 충렬은 데프론과 레일리가 제레미와 윌리엄, 그리고 성기사들을 빨리 데리고 왔으면 했다. 악인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겁이 나서가 아니었다.
‘여기 있는 많은 인원들을 혼자서 지킬 수는 없다.’
그냥 대판 싸우기만 하는 것이라면 걱정이 되지 않을 터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니지 않은가. 걱정이 한창일 때, 엉뚱하게도 마렉의 숙련도가 최대에 도달했다. 90% 후반에 가 있던 그의 숙련도가, 드워프들과 아이들을 치료하다 보니 그만 100%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혼돈의 천사 마렉>의 숙련도가 최대에 도달했습니다.]
충렬은 우선 다른 일을 처리하기 전, 마렉의 상황부터 재빨리 살폈다. 물론 충렬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마렉은 혼돈의 천사와 관련된 옵션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으니까.
마렉에게 추가된 옵션은 다음과 같았다.
[마렉이 ‘부활’을 배웠습니다.]
[부활: 사망한 대상을 되살려낸다. 사망한 지 일정 시간이 지나 있다면 되살릴 수가 없다. (재사용 대기 시간: 6시간)]
[마렉의 숙련 등급이 C등급으로 상승합니다.]
마렉이 새롭게 배운 스킬을 확인한 충렬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부활이라고?’
사망한 대상을 다시 되살려낸다니. 설명은 매우 간단했다. 그렇지만 그 효과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무려 죽은 대상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 물론 그만큼 엄청난 스킬이었기 때문인지, 지금껏 보지 못한 재사용 대기 시간이 주어졌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엄청나군. 6시간이라니.’
그래도 죽은 존재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어디인가. 어차피 충렬의 네임드들은 전투 불능에 빠져도 다시 소환할 수가 있었다. 대신 영지에 살아가는 이들은 아니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들을 다시 되살려낼 수가 있으리라. 그 외에도 쓰일 곳은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새로운 스킬에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아쉽게도 근처에 있던 악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목책 너머로, 평범한 악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직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악인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키아아악!”
“캬아악!”
놈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충렬이 있는 장소까지 들려왔다.
지금이라면 저 정도는 충렬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해 낼 수가 있었다. 문제는 그 이상의 숫자가 들이칠 때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마렉의 치료를 받은 드워프들. 그들이 약간이지만 체력을 회복하며 하나둘씩 일어섰기 때문이다.
“이놈들아 엄살은 그만 피워. 어서 우리도 일어나자.”
“끄응… 허리야…….”
“허리는 무슨. 족장님께서 보내오신 분들을 고생하게 할 참이냐.”
“그래, 여기서 더 누워 있을 수는 없다고.”
“자자, 어서들 무기를 챙겨.”
마렉에게 말을 들어서일까? 그들은 충렬이 그들의 족장, 오란이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드워프들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못했지만 그들은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드워프라서 그런 것인지 위태해 보이지는 않았다. 기본적인 체력이 되니 그나마 무리를 해서라도 움직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전투력이 뛰어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자신들의 몸만 지킬 수 있다면 충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리라.
드워프들이 사용할 무기는 주변에 즐비했다. 충렬에 의해 죽은 범죄자들이 무기를 남겼으니 말이다.
그렇게 드워프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성녀도 일어서려 했다.
“저도 도와야…….”
그러나 충렬이 제지했다.
“쉬고 있으십시오.”
성녀가 일어서려는 모습을 본 드워프들도 충렬의 말에 동의했다.
“고생 많으셨소, 성녀여. 우리도 마냥 도움만 받고 있을 수는 없지.”
“어차피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한 목숨. 이번에는 그쪽을 지키는데 쓰도록 하겠수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성녀가 얼마나 힘겹게 간호해 주었는지 모르지 않았다. 특히나 드워프들의 시선은 어린아이들에게 가 있었다. 아무리 종족이 다르다고는 하나, 어린아이를 보는 시선은 다르지 않았다.
“꼬마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그렇고말고. 한번 신명나게 움직여 보자고.”
그렇게 몸을 일으키는 드워프들과 함께, 충렬과 마렉은 다가오는 악인들을 맞이할 준비를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