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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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이 마렉의 안내를 받아 한창 섬의 안쪽으로 진입할 때였다. 마렉이 목적지로 삼은 곳은 정말로 성녀가 위치한 곳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알았냐고? 목적지에는 성녀로 추정되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성녀의 모습은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성녀라 함은 순백의 깔끔한 복장에 더하여 감히 다가가기 힘든 성스러운 느낌을 뿜어내는 이미지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모습은 순백과는 거리가 멀었다. 온몸에 뒤집어쓴 흙먼지와 땟국이 성녀라기보다는 정처 없이 떠도는 난민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직접 몸을 움직여 가며 고생을 했다는 것이리라.
그런 모습을 가진 성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수십 이상의 드워프들과 몇몇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물론 성녀를 제외하고 제대로 서 있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가 섬의 환경에 의하여 병이 생긴 것이었다. 외상뿐만이 아니었다. 좋지 않은 기운으로부터 발생한 내상도 수두룩했다.
그런 그들을 돌보기 위해 성녀는 바삐 움직였다.
하지만 성녀의 상태 또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리 움직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무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잠을 자지 못한 것인지, 일어서서 움직이는 그녀의 몸은 연신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휘청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렉이 느꼈던 다수의 신성한 기운은, 사실 어린아이들로부터 발생했던 것이었다.
성녀와 함께 온 드워프들과는 다르게, 어린아이들은 애초에 이곳에 버려져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은 이어지는 성녀의 말을 들어본다면 알 수가 있었다.
“불쌍한 아이들… 잠재된 신성력이 풍부하다고 이곳에 끌려와 방치되어 있었다니…….”
성녀를 이곳에 보낸 변절자들. 그들은 훗날 신성국의 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칠 새싹들을 이렇게 미리 짓밟아 버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더 이상 푸념하지 않았다. 푸념을 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저 쓰러진 이들을 돌보기 위해 움직였다.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드워프들에게 다가가 간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움직이는 성녀의 두 눈이 이상했다.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일까? 그녀의 두 눈은 감겨 있었다. 하지만 성녀의 시선은 정확히 아픈 이들에게 가 있었다. 두 눈을 멀쩡히 사용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보고 움직일 수 있는지는 몰랐다.
어쨌거나 그녀는 당장에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런 성녀의 모습을 보며 낄낄 웃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의 숫자는 제법 많았다.
“크큭. 실비아 성녀님. 고생은 그만하십시오. 그래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런다고 저들이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림도 없습죠. 이곳에서 버틸 수 있게 도움을 주느니 그냥…….”
“내버려 둬. 저러다가 포기하겠지. 우리는 귀여운 성녀님께서 도망가지 않도록 감시나 잘하자.”
“흐흐. 우리 성녀님께서 도망을 가시겠어? 미친놈들로부터 지키기나 잘하자고. 괜히 기존에 있던 죄수들이 건드리면 골치가 아프니까 말이야.”
그랬다. 사실 실비아라고 불리는 성녀와 드워프들, 그리고 아이들은 커다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신세였다.
실비아는 울타리 밖에서 수많은 조롱이 들려왔지만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간호에 전념할 뿐이었다. 저들의 조롱에 반응을 해보았자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실비아는 성녀가 되는 순간, 시력을 상실했다. 대신 그녀는 신에게서 ‘심안’이라는 새로운 눈을 부여받았다. 대상이 가진 내면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시켜 주는 그러한 눈을 얻은 것이다.
그런 그녀의 시야에 보이는 울타리 밖의 사람들. 그들은 추잡하고 더러운 괴물로 보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탐욕에 물들어 변절자들의 하수인을 자처한 이들이었으니까.
물론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신성국 내에 있을 때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죄다 인간의 탈을 쓴 괴물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항상 밖을 돌아다니며 봉사에 전념했지만, 결국 그런 활동을 하다 보니 이곳에 끌려오게 되었다.
저들은 자신을 밖으로 꺼내줄 생각이 없었다. 새로운 성녀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끝없이 이곳에 가두고 감시할 계획일 터.
비록 상황은 최악이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일단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시간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는 것이 먼저였으니 말이다.
***
성녀가 수많은 조롱을 받아가며 다친 이들을 간호할 때였다. 마렉과 충렬은 한 지점으로 끝없이 이동했다. 이동을 방해하는 것은 악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들어선 수많은 식인목들. 그것들이 나뭇가지를 움직여 마렉과 충렬을 휘감아왔다.
어떻게 보면 날카롭지만 가만히 있는 악풀들보다, 가지로 휘감아오는 식인목들이 더욱 거슬렸다. 길을 지나갈 때마다 방해를 해대니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렉과 충렬이 당할 일은 없었다. 최대한 방해를 뿌리치며 지나칠 뿐이었다.
그렇게 끝없이 펼쳐진 수풀 위를 날아가는 마렉과, 그 뒤를 바짝 쫓아 달려가는 충렬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났다. 둘의 앞을 가로막은 존재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악인이었다.
[미쳐 버린 악인이 등장합니다.]
[악인이 당신을 인식하였습니다.]
악인의 모습은 무척이나 기괴했다. 놈에게서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녹아서 흘러내리는 피부와 날카롭게 돋아난 손톱. 그리고 이성을 상실한 눈빛까지. 그 모습을 본다면 그저 한 마리의 몬스터로 보일 뿐이었다.
녀석은 마렉과 충렬을 발견하자마자 달려들었다. 마렉은 하늘을 날고 있으니 덤비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탓일까? 악인이 당장 달려든 대상은 충렬이었다.
신기하게도 악인은 악풀과 식인목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았다. 그만큼 환경에 잘 적응을 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라면 무슨 수를 쓴 것이었을까.
그러나 궁금증을 해결할 시간은 없었다. 충렬은 당장에 달려드는 악인을 맞이해 주어야 했으니 말이다.
악인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먼저 반응한 것은 충렬의 스킬이었다. 적으로 인식된 존재가 일정 거리에 들어오니 그의 스킬이 반응한 것이다. 사용된 스킬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 랭크가 상승하며 한층 더 강해진 라이프 드레인이었다.
[라이프 드레인이 미쳐 버린 악인에게 적용됩니다.]
[미쳐 버린 악인의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흡수합니다.]
식인목이나 악풀에는 작용하지 않던 라이프 드레인이 악인에게는 쉽사리 사용되었다.
라이프 드레인이 자동적으로 적용되자 녀석의 피부가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애초에 흘러내린 피부였기에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놈의 피부는 전보다 더욱 좋지 않게 변해갔다.
하지만 놈은 당황하기는커녕, 더욱 광분했다.
“캬아악!”
미쳐 버린 것이 정말이었는지, 침까지 흘려대며 충렬을 향해 돌진하는 악인이었다. 그 모습은 하나의 악귀를 닮아 있었다.
막무가내로 달려오는 악인의 모습에 마렉이 스킬을 사용하여 충렬을 도와주려 했다. 그렇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악인의 강함은 충렬이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충렬은 자신에게 괴물 같은 손톱을 들이미는 악인에게 주먹으로 화답해 주었다. 암흑 투기로 둘러싸인 충렬의 주먹이 움직이자 주변의 바람이 밀려났다.
후우웅!
그런 충렬의 주먹이 악인의 손톱과 부딪쳤다. 그러자 그 결과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기에도 미안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민망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충렬과 악인의 손톱이 부딪치자마자 부서진 것은 악인의 손톱이었다. 악인의 손톱은 충렬에게 전혀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순식간에 박살이 나버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충렬은 맹렬하게 내뻗은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속도를 내어갔다. 그 목적지는 악인의 복부였다.
충렬이 주먹을 더욱 내뻗어옴에도 악인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를 못했다. 손톱이 박살 난 순간에 생긴 엄청난 고통이 그의 정신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키아아악!”
그렇게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악인의 복부에 곧 충렬의 주먹이 들어박혔다. 동시에 엄청나게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북을 세게 치는 느낌이었다.
퍼엉!
그 소리를 끝으로 악인의 몸뚱이가 저 멀리 날아갔다. 날아가는 악인의 몸은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악인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았으니 그런 것이었다.
악인의 몸뚱이가 날아가는 도중, 시스템이 알려왔다. 악인의 몸이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전에, 녀석이 처치되었음을 말이다.
[악인의 오장육부가 온통 터져 나갔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악인이 괴로워하며 사망합니다.]
[미쳐 버린 악인을 처치하였습니다.]
[5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너무나 간단했다. 주먹 한 방에 처치할 수가 있었다. 딱히 별다른 고생 없이 단 일격에 상대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악인이라기에 무언가가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만 그냥 허접한 몬스터에 불과했다.
악인은 지금까지 만나왔던 그 어떤 몬스터보다 형편이 없었다. 녀석이 헌납하는 카르마의 양에 비한다면 말이다.
‘괜히 걱정했군.’
그저 환경이 무서운 곳이었을 뿐. 악인 자체는 별것도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이는 충렬이 강해졌기에 상대적으로 악인이 약해 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곳에 있는 악인은 충렬의 상대가 되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악인은 여럿이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충렬은 걱정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과 함께하지 않아도 굳이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더욱 빠르게 이동하기로 했다. 혹여나 나타날 악인 때문에 방금까지는 조금 주의를 기울이며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악인의 수준을 보니 이제부터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섬의 안쪽에 들어서자 악인들이 나타나는 빈도가 확실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악인들은 하나같이 충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만약 충렬과 마주친다면 그저 카르마를 상납하고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하나가 나타나든, 둘이 나타나든, 혹은 그 이상이 나타나든 소용이 없었다. 결과는 모두가 한결같았다.
그리고 말이 악인이었지, 녀석들은 사람이 아닌 몬스터에 불과했다. 이곳 수용소라는 섬에서 무슨 영향을 받은 것인지 전부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충렬은 뒤따라오는 하운드가 악인들의 시체를 잘 처리할 것이라 믿으며 계속해서 전진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마렉을 따라가던 충렬은 성녀와 드워프들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마침내 발견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