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성녀 실비아
***
포탈을 넘어 온 충렬은 갑자기 간지러운 듯 귓가를 긁었다.
‘누가 내 이야기를 하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도착한 장소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분명 섬일 터였다. 그러나 도착한 장소는 절대로 평범한 섬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이곳은 어디지?’
분명 섬은 맞았다. 그렇지만 보통 섬이라고 하면 사면을 둘러싼 것은 물과 소금으로 이루어진 바다였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일반적인 바다가 아닌, 용암으로 이루어진 바다였다.
이어지는 시스템의 음성 또한 이곳이 평범한 섬이 아님을 알려왔다. 출발하기 전에는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지만, 도착하자 섬의 정체에 대하여 드디어 밝혀온 것이다.
[악인 수용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성녀와 드워프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방문했습니다.]
[우선은 그들을 찾아내십시오.]
[그러면 탈출 지점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랬다. 충렬이 도착한 섬의 정체는 바로 악인들을 가두는 수용소였던 것이다. 수용소라고 해서 딱히 어떠한 시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섬 자체가 하나의 수용소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충렬이 시스템의 음성을 듣고 있는 찰나, 뒤따라 도착한 성기사들과 윌리엄이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악인 수용소라는 섬에 도착하자마자 까무러칠 듯 놀라했다.
“이, 이곳은……!”
“헉… 성녀님께서 수용소에 계신다고……?”
“어째서 이러한 곳에…….”
왜 저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단순히 성녀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런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저들의 반응이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당장에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한 마렉이 윌리엄에게 물어보았다.
[이봐, 반응들이 왜 그래? 여기가 어딘데?]
그러자 윌리엄은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말까지 더듬거리며 겨우 답했다.
“이, 이곳은 저희 신성국에서 극악한 악인들을 가두는 장소입니다.”
그러면서 이내 정신을 차린 그가 버럭 성을 내었다.
“이유 없이 재미로 몇 백 명을 살해한 살인귀부터, 살아 있는 어린아이로 생체 실험을 한 미치광이까지. 온갖 악행을 일삼은 자들을 가두는 장소란 말입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 보내지는 장소가 바로 이곳인데…….”
성을 내는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저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화가 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리라. 악행이라고는 보여준 적이 없는, 선행을 일삼는 성녀를 이곳에 가두다니. 그는 상상하지도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윌리엄의 말을 들은 충렬이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인가.”
그러자 레일리가 충렬의 말을 이어갔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들이 운영하는 장소에 성녀를 가둘 정도로 변절자들이 많다는 소리겠죠.”
전자가 정답이든, 후자가 정답이든. 결론은 신성국이 썩을 대로 썩어버린 곳이라는 것이었다. 윌리엄의 반응을 본다면 성녀는 결코 악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악인을 가두는 곳에다가 성녀를 가두었다고? 그것도 그들이 운영하는 장소에서 말이다. 이 정도라면 그전까지 그런 소굴에서 버텨내었던 성녀가 정말로 대단했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드워프들을 돕는 도중 이런 일을 당한 것이다.’
역시나 신성국의 타락이 어느 정도인지 감히 측정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악의 소굴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였다. 물론 윌리엄이나 성기사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실한 이들이 존재하겠지만, 그 수는 많지 않으리라.
그러나 일순간 소란스러워진 주변과는 다르게, 악인 수용소의 섬에 도착하자 헬 하운드로부터 색다른 반응이 왔다.
[헬 하운드가 문양 밖으로 나와 용암 근처에서 뛰어 놀고 싶어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말에 충렬이 입을 열었다.
“문양 밖으로 나와. 대신 강아지 모습으로 조용히 놀아라.”
오랜만에 지옥과 비슷한 향기를 맡으니 좋았던 것일까? 녀석은 충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양 밖으로 나왔다.
충렬은 뛰어 놀고 싶지만 참고 있는 하운드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곳에서 성녀를 어떻게 찾아야 하나…….”
하지만 성녀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마렉이 그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흐음… 저기서 엄청난 신성력을 가진 존재가 느껴지는데?]
마렉이 성녀로 추정되는 존재의 위치를 추측하자마자 윌리엄이 감탄했다.
“역시 선지자님이십니다!”
물론 마렉은 윌리엄이 원하는 선지자가 아니었다. 다만 신성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마렉의 표정은 왜 진지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곧 어렵지 않게 밝혀졌다.
[이곳은 악인 수용소라면서? 근데 저곳에서 느껴지는 신성한 기운이 한둘이 아니잖아.]
그랬다. 악인 수용소하고 말하기에는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던 탓이다.
***
마렉이 한 곳에서 다수의 신성한 기운을 느꼈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성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악인 수용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수의 악인들 또한 존재했다.
뛰어놀고 싶어 하던 헬 하운드. 녀석이 악한 자들의 존재를 인식하였기에 알 수가 있었다.
[헬 하운드가 악한 영혼을 가진 자들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이 알려오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하운드의 식욕이 왕성해집니다.]
[악인들의 영혼은 헬 하운드에게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악인들을 처지하고 그들의 영혼을 헬 하운드에게 줄 수가 있습니다.]
[하운드가 악인들의 시체를 섭취하면 자동적으로 영혼까지 흡수가 됩니다.]
도대체 하운드에게 얼마만큼의 영양분을 공급하기에 이렇게까지 알려오는 것일까.
‘아마 적은 양은 아니겠지.’
그래도 하운드의 진화도가 엄청나게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당장에 악인들을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선은 빠르게 성녀와 드워프들부터 찾아내어야 해.’
***
섬에 도착한 이상 시간을 허투루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왕 도착을 했다면 빠르게 목표를 달성해야 했다. 성녀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마렉을 선두로 일행들이 뒤를 따랐다.
사면이 용암으로 둘러싸인 것을 제외하면 이곳은 평범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 섬이었다. 들판과 초목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은 그러한 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평범한 섬일 리는 없었다. 해변가를 벗어나 제대로 된 육지에 입성하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곳 섬에서는 이동하는 것 자체도 쉽지가 않다고.
괜히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주는 장소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 풀들은 뭐야?]
선두로 걸어가던 마렉은 곧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멈춘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가 처음으로 내딛은 땅에 자라난 자그마한 풀. 정강이 아래까지 올라온 풀의 잎이 마렉의 발목에 피해를 주어서다.
[날카로운 악풀의 잎이 마렉의 족근골을 베어냅니다.]
[보호받지 못한 마렉의 발목뼈가 크게 베입니다.]
과연. 악인을 수용하는 섬이 아니랄까봐 풀의 이름도 악풀이였다.
‘그나저나 큰일이로군.’
마렉의 발목은 풀잎에 의해 절단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고작 한 번 긁혔을 뿐인데도 말이다. 악풀의 잎이 긁고 지나간 곳은 마렉의 뼈였다. 물렁물렁한 살덩이도 아닌, 무려 뼈라는 소리다.
그럼에도 어렵지 않게 베어 내다니. 그런 풀이 전방에 수두룩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렉은 앞으로 전진했던 발걸음을 뒤로 물리며 너덜거리는 자신의 발목뼈를 치료했다. 그러면서 뒤따라온 이들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지? 이대로 지나갈 수는 없겠는데.]
그의 말 그대로였다. 평범한 수법으로는 악풀들이 자리를 잡은 땅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만약 지나가려면 적지 않은 상처를 입어야 하리라.
하지만 충렬은 다치지 않고 지나갈 수가 있었다.
[암흑 투기가 악풀의 날카로운 잎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합니다.]
혹시나 싶어 암흑 투기를 일으켜서 살짝 발을 담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암흑 투기를 이용하니 악풀의 잎으로부터 몸을 지켜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충렬이 지나갈 수가 있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충렬 외에 다른 이들이 지나갈 수가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윌리엄과 성기사들에게도 딱히 뾰족한 수는 보이지가 않았다. 그들도 이곳에서 주의해야할 정확한 사항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장소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실제로 온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방법이 없다고 해서 죽치고만 있다면 이 이상은 진행이 불가능했다.
‘방법이 없다면 만들어내면 된다.’
악인들도 이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도 돌아다니는데 이쪽에서 돌아다니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악풀 사이를 멀쩡히 지나갈 방법은 필시 존재할 터. 그리고 그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우선은 가지고 있는 전력으로 충분히 극복이 가능했다.
“레일리, 이 풀들을 태워 버리면 어떻습니까.”
“네. 저도 방금 그런 생각을 떠올렸어요.”
그러면서 그녀가 즉시 움직였다.
“해골 마법사 소한.”
해골 마법사들을 소환한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기초 마법을 난사했다. 자라난 풀들을 태우거나 죽이며 지나가기 위해서다. 물론 그녀는 안전한 장소에 블링크를 사용하며 조금씩 이동해도 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의 이동을 위해서는 길을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길은 만들 수가 있었다. 아무리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풀잎이라고 하더라도 그녀의 마법에 불타 버리니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해골 마법사들의 기본 마법도 풀을 죽이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해서 이동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는데.’
확실히 빠른 속도로 전진할 수는 없었다.
레일리를 따라 데프론도 합세했다. 그러나 작업은 빠르지 않았다. 데프론이 오러를 두른 무기로 풀들을 베어갔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냥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풀잎들을 처리하며 이동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모두가 이동하려면 이 방법밖에는.’
물론 충렬은 이대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저랑 마렉은 먼저 가보겠습니다.”
마렉이 잠시나마 안내를 위해 걸어가기는 했지만, 그는 날개를 이용하여 날아갈 수가 있었다.
‘그 말인 즉, 풀잎의 영향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가 있다는 소리다.’
때문에 풀잎의 날카로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충렬은 마렉과 함께 먼저 이동하기로 했다. 데프론도 듀라한의 갑옷 덕분에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놔두고 갈 생각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모두를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데프론이라도 레일리를 도와 길을 가로막는 악풀들을 제거하는 데 힘을 써야 했다.
어쨌거나 다른 이들도 충렬과 마렉이 먼저 출발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간절히 원했다. 특히 윌리엄은 절실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어서 빨리 성녀님의 안위를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는 늦게라도 뒤따라가겠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의 말을 듣고서 충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성녀와 드워프들에게 도착하여 상황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었으므로 즉시 출발할 것이었다. 충렬은 강아지의 모습으로 변한 하운드에게 말했다.
“하운드. 너도 저들과 함께 와.”
그러면서 남겨진 이들에게 이어서 말했다.
“그럼 조심히들 오시기를. 마렉. 저희는 먼저 이동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