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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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록은 정신 지배의 대상을 잘못 골랐다. 하필 골라도 충렬을 고르다니. 덕분에 녀석은 지독한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녀석의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왜냐고? 충렬이 끈질긴 탓도 있었지만 정작 문제는 단순히 끈질김 때문이 아니어서다. 충렬은 마음대로 전투를 시작했다가 끝내어도 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점을 적극 활용했다.
그런 이유로 발록은 고통을 받아야 했다. 충렬이 언제 정신계로 들어와 자신을 공격할지를 몰라 하며 전전긍긍해야 했던 것이다.
충렬은 대충 20분에서 30분정도 발록과 놀아주고 얼마 정도 쉬었다가 오는 등. 끊임없이 그러한 행위를 반복했다. 그래서 지치지 않는 충렬과는 달리, 발록은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발록을 한창 골려준 충렬은 뒤늦게 허기가 진다는 것을 느꼈다.
“밥은 먹으면서 해야지.”
그리고 식당으로 이동해 허기를 달래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밥을 먹는 것도 금방이었다.
잠시 뒤, 대충 끼니를 해결한 충렬은 방으로 돌아와서 시스템에게 말했다.
“크으. 배부르게 잘 먹었겠다. 소화시키러 좀 가볼까? 시스템. 정신계로 이동시켜 줘. 발록과의 전투를 다시 시작한다.”
그러자 시스템이 말했다.
[5초 뒤, 정신계로 이동합니다.]
물론 추가 주문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왕이면 발록의 어깨 위로.”
그렇게 5초가 지나자, 충렬의 시야가 바뀌었다.
시스템은 충렬의 주문대로 발록의 어깨 위로 이동시켜 주었다. 충렬은 정신계에 진입하자마자 발록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며 인사했다. 물론 충렬의 공격은 무의미했다. 놈이 유지하고 있는 암흑 투기의 방어막이 타격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록이 스트레스를 받기에는 충분했다. 누군가 뒤통수를 때린다는 것 자체가 화가 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이루.”
충렬이 건넨 인사는 지구에서 인터넷을 할 때 사용하던 인터넷 용어였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알 턱이 없었던 발록은 소리를 지르며 악다구니를 쳤다. 도대체 얼마나 괴롭혀진 것인지 녀석은 뒤통수를 얻어맞자마자 반격하기는커녕, 충렬과의 거리를 벌렸다.
[발록이 암흑 투기의 힘을 이용하며 일시적으로 먼 거리를 이동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발록의 몸이 번쩍였다.
파앗!
그렇게 저 멀리로 이동한 발록의 음성은 충렬을 깔보던 처음과는 달라졌다.
“그, 그만해라! 제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자!”
그런 발록을 향해 충렬이 피식 웃었다.
“너는 정정당당해서 남의 정신을 지배하려고 했냐? 시끄럽고. 파괴 광선.”
동시에 충렬의 눈으로부터 새빨간 광선이 발사되었다. 물론 파괴 광선은 발록의 암흑 투기에 의하여 막혔다.
[암흑 투기로 구성된 발록의 방어막이 파괴 광선을 막아냅니다.]
본래 파괴 광선은 암흑 투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정신계였다. 때문에 충렬은 간단히 사용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파괴 광선을 사용하냐고? 원거리에서 상대를 그 즉시 요격할 수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충렬도 처음부터 파괴 광선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계속된 공방전 도중에 발록이 파괴 광선을 사용했었기에, 충렬도 따라하여 사용할 수가 있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놈이 암흑 투기로 만들어낸 방어막을 이용해 파괴 광선을 막아내었다고는 해도 충렬은 재차 스킬을 사용했다. 당장에 통하지는 않아도 반복적으로 행동했던 것이다.
“흐음. 또 막냐? 그럼 한 번 더 사용해야지. 파괴 광선.”
그러자 발록은 미쳐 날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의 파괴 광선을 암흑 투기도 없는 저 인간이 재현해 내다니. 상대하기가 너무 피곤했다.
무척이나 정신계에 적응이 빠른 놈이었다. 덕분에 자신은 공격할 틈도 없이 방어만 해야 했다.
“제발! 그만 좀……!”
그런데 사실 발록에게 있어서 충렬이 파괴 광선을 재현해 내는 것은 새발의 피였다.
진정한 문제는 이러다가 몇 년, 혹은 몇 십 년, 또는 평생을 인간의 정신계에서 혹사당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미 본체는 사라졌기에 빨리 인간의 몸을 차지해야 했다. 혹여나 충렬의 몸을 차지하기도 전에 충렬이 죽어버린다면 자신도 여기에서 끝이었다. 그러니 발록은 자연히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악! 그만! 그만 좀 하라니까……!”
솟구치는 짜증을 이기지 못한 발록의 정신이 순간이나마 흐트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놈의 암흑 투기가 더 이상 공급되지 못했다.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니 가상으로 만든 암흑 투기의 공급이 중단되었던 것이다.
암흑 투기가 공급되질 않으니 놈을 보호하던 방어막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충렬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파괴 광선.”
다른 스킬과는 달리, 곧바로 짓쳐드는 파괴 광선이 발록의 몸을 순식간에 꿰뚫었다.
푸슉!
[파괴 광선이 발록의 하복부를 꿰뚫고 지나갑니다.]
[꿰뚫린 하복부 주변이 타들어가며 재가 됩니다.]
동시에 발록에 꿰뚫린 피부와 주변이 점점 먼지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설마 공격에 당할 줄은 몰랐던 발록은 급히 암흑 투기를 다시금 만들어 나가려고 시도했다.
발록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이었다.
“내, 내가 당하다니!”
그래도 놈은 다행히 충렬의 이어진 공격에 추가적으로 당하기 전, 암흑 투기를 만들어낼 수가 있었다. 다시 만들어진 암흑 투기가 녀석의 몸에 발생한 상처를 수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전세는 이미 역전되었다. 이제는 충렬과 발록이 더 이상 비등비등한 상황이 아니었다.
[발록에게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발록의 영혼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발록의 의식 일부를 흡수합니다.]
그러면서 거대했던 발록의 크기가 일순간 약간 줄어들었다. 충렬은 그 광경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옳거니. 이제야 제대로 한 방을 먹인 것인가.”
더군다나 시스템이 알려온 소식은 발록에게 입힌 피해만이 아니었다.
[발록의 의식 일부를 흡수했기에 정신계 개척도가 5% 상승합니다.]
[현재 정신계 개척도: 20%]
놈의 의식을 일부 흡수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개척도가 무려 5%나 상승했다.
‘이렇게 쉽게 5%가 상승한다고?’
그러나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개척도의 상승 이상으로 놀라운 것을 알려오는 시스템의 음성이 있었으니 말이다.
[발록 본연의 힘이 당신의 체내에 미약하게나마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암흑 투기’를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암흑 투기는 아무리 정신계에서라도 따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에너지의 원천 같은 것이었지, 따로 사용하는 스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충렬도 암흑 투기를 사용할 수가 있었다.
[암흑 투기 - F랭크: 발록이 가지고 있던 무척이나 패도적인 어둠의 힘이다. 신체를 강화하는 등, 사용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발록은 이것을 이용해 보호막을 만들거나, 응축해 쏘아내는 파괴 광선이라는 스킬을 주로 사용했다. 그러나 F랭크의 수준으로는 많은 활용을 할 수가 없다. 랭크를 상승시키려면 발록의 힘을 더욱 흡수해야 한다.]
그렇게 충렬에게 유리한 상황이 한번 발생해 버리자, 이후의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흘러갔다.
***
충렬에게 암흑 투기가 주어졌을 때부터 발록의 힘을 흡수하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현실에서 테스트해 본 결과 아직은 신체를 강화하는 것에 그칠 뿐이었다. 그렇지만 정신계에서는 달랐다. 정신계에서만큼은 자유자재로 다룰 수가 있었다.
물론 암흑 투기를 사용할 수가 있게 되었다고 해서 충렬이 그렇게까지 유리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발록의 정신이 이미 무너졌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놈은 충렬이 정신계에 나타나면 도망치기에 바빴다.
“제기랄! 쫓아오지 마라! 도대체 정체가 뭐냐! 혹시 인간의 탈을 쓴 마왕이더냐!”
솔직히 발록은 충렬에게 충분히 저항할 수가 있었다. 최소한 당하지는 않을 수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놈은 더 이상 충렬이 인간이라고 믿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인간이 정신계를 이렇게 운용할 경우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저 인간의 탈을 쓴 마왕이 자신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 수를 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발록 스스로의 승산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간단하게 내 힘을 흡수하려고 수작을 부린 것이었구나! 제기랄!”
충렬은 놈이 오해를 하거나 말거나 그대로 두었다. 그냥 한쪽 귀로 흘리며 놈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파괴 광선.”
그렇게 정신계 전투의 양상은 뒤바뀌었다. 발록은 무한정 도망치기에 바빴고, 충렬은 느긋하게 따라가며 공격 스킬을 난사할 뿐이었다. 도중에 녀석의 힘을 몇 번 흡수할 수가 있었다.
덕분에 충렬의 정신계 개척도와 암흑 투기의 스킬 랭크는 눈에 띄게 상승했다.
‘이거. 다음 임무 지역으로 가기 전에 끝장을 볼 수가 있겠는데?’
지금 발록의 크기는 대략 2미터 20센티미터 정도였다. 처음에 비하여 그 덩치가 너무나 줄어들었다. 그만큼 충렬에 의해 영혼이 손상되었다는 소리였다.
포탈이 사라지기까지는 아직 2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지금 속도라면 아마 다음 지역으로 가기 전에 발록을 처치할 수가 있으리라.
하지만 시간은 더 지체하지 않아도 되었다. 발록의 움직임도 거기까지였다.
‘슬슬 끝내볼까.’
정신계 개척도가 월등히 상승한 충렬은, 이제 정신계 내에서 지형지물조차 마음대로 바꿀 수가 있었다. 그런 충렬이 도망가는 발록의 앞에 돌부리를 만들어주었다.
도망치기에 바빴던 발록이었다. 녀석은 갑작스레 생겨난 돌부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만 거기에 걸려 넘어져야 했다.
콰당!
당연히 넘어진 녀석은 일순간 정신 집중을 할 수가 없었고, 결국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가 된 발록에게 충렬의 공격이 이어졌다.
“파괴 광선.”
파괴 광선이 이번에는 발록의 머리에 직격으로 쏘아졌다. 발록은 충렬의 파괴 광선이 들이치는 모습에, 넘어진 자세에서 절규했다.
“내가 이런 꼴이 되려고 정신 지배를 사용한 것이 아닌…….”
물론 녀석의 음성은 거기까지였다. 발록과의 질겼던 인연은 여기서 끝이었다. 녀석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파괴 광선이 발록의 머리를 꿰뚫어 버린 것이다.
푸슉!
놈의 머리가 꿰뚫리는 소리를 끝으로 시스템이 알려왔다.
[발록을 처치했습니다.]
[발록의 영혼이 가진 힘을 모조리 흡수합니다.]
발록을 처치하자 두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첫 번째 변화는 정신계의 개척도였다.
[정신계 개척도가 월등히 상승합니다.]
[현재 정신계 개척도: 50%]
[당신의 정신계가 한층 단단해집니다. 당신의 정신계로 들어온 존재는 이제부터 당신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활동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변화. 그것은 바로 암흑 투기였다.
[암흑 투기의 랭크가 B랭크에 도달합니다.]
[암흑 투기 - B랭크: 발록의 힘을 흡수하여 B랭크까지 상승시킨 무척이나 패도적인 어둠의 힘이다. 체내에 자리 잡은 암흑 투기는 원할 때 그 언제라도 사용할 수가 있다. (A랭크까지 100,000카르마 필요)]
암흑 투기는 B랭크까지만 상승했다. 아무리 발록의 힘을 전부 흡수했다고 하나, 놈이 가지고 있던 실제 힘이 별로 없다 보니 그 이상은 무리였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카르마를 이용하여 상승시킬 수가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B랭크라면 어느 정도 수준이지?’
혹시라도 발록처럼 실제로 파괴 광선을 사용할 수가 있다면 대박이었다. 그러나 충렬은 고개를 저었다. 암흑 투기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면서, 지금의 랭크로는 그 정도까지를 구현할 수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가 있어서다.
‘그래도 B랭크라면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다. 정확한 측정이 필요했다.
일단은 성녀를 구출하러 가기 전에, 암흑 투기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 같았다.
발록의 영혼을 흡수해서인지 추가적인 카르마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암흑 투기라는 힘을 얻었으니 절대로 손해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