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112화 (112/237)

# 112화.

?고통받는 발록

***

아르타디아는 충렬에게 도움을 주자마자 떠났다. 신성국에서 충렬의 영지를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낄 요량으로 곧바로 출발했다.

그녀가 나가고 잠시 후, 충렬이 쉬고 있는 방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들어온 이는 휴식을 끝마친 드워프 족장이었다. 그는 아르타디아가 충렬의 방에서 나가는 모습에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침대에서 막 일어나 부스스한 충렬의 차림에 시선이 가 있었다.

“크흠, 둘이 그렇고 그런…….”

그러나 차마 뒷말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둘 중 하나는 두려움의 대상인 드래곤이었으니까.

하기야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꽤나 오랜 시간 밖에서 기다렸다가 들어왔는데, 충렬이 침대에서 부스스하게 일어나는 모습을 본다면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드워프 족장은 따로 용무가 있어서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않아서 인사차 방문한 것이었다.

그는 어느새 침대에서 일어난 충렬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전엔 고마웠다. 충렬이라고 했었나? 내 이름은 오란이네.”

오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그에게 충렬이 답했다.

“어차피 발록은 처리해야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덕분에 나와 철부지 녀석 둘이 살아남을 수 있었지.”

그러면서 그가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 우리 부족민을 구하기 위해 간다면서.”

충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에서는 더 이상 슬픔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힘들어하던 것도 단 하루뿐. 맥주를 퍼마시다가 일어난 그는 무척이나 생산적으로 움직였다.

“고맙다. 어차피 함께 가보았자 나의 실력으로는 걸림돌만 되겠지. 그래서 자네가 떠나 있는 동안 이곳에 대장간을 하나 짓는 것이 어떤가 싶어서 말이야. 나와 다른 드워프들에게 대장간이 주어진다면 밥값은 충분히 하겠네.”

대장간이 생긴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터였다. 아직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더군다나 발록이 납치할 정도의 종족이었다. 틀림없이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으리라.

오란이 술기운에 영지민이 되겠다고 말을 한 것은 맞지만, 이곳에서 살아가겠다는 것만큼은 진심인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했던 말과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야 고맙죠. 그런데 저는 영지를 자주 비우는 몸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그런 내용에 관해서는 해일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면, 그가 흔쾌히 도움을 줄 겁니다.”

“아, 그런가? 알겠네.”

동시에 그는 헤벌쭉 웃으며 나갔다. 노장과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흐흐. 영주의 허락도 맡았겠다. 근처에 철광부터 찾아봐야겠군. 이제 내 취미 공간… 아니, 일할 공간을 만들러 가볼까. 그럼 나는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네.”

자세히는 몰랐지만 드워프라는 종족은 대장간에서 일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잠깐 오란의 방문이 끝나자 충렬은 다음 임무까지 남은 시간을 살폈다.

[포탈이 사라지기까지 9시간 12분이 남았습니다.]

제법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정신계에서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낸 결과였다.

‘아직 여유는 조금 부려도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잠시 쉬었다가 발록과의 전투를 시도해 보아야겠어.’

충렬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발록을 상대하기로 했다.

***

정신계를 어느 정도 개척했기 때문일까? 조금밖에 쉬지 않았음에도 피로는 금방 사라졌다. 도전자의 몸이라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그 이상으로 효과가 뛰어났다.

[포탈이 사라지기까지 7시간 2분이 남았습니다.]

겨우 2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않았다. 그렇지만 수면을 푹 취한 것처럼 개운했다.

“그럼 이제 발록 녀석을 상대하러 가야겠군. 그나저나 시스템. 발록과의 전투에서 중간에 빠져나올 수 있나?”

충렬의 물음에 시스템이 답했다.

[가능합니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본 것인데 역시나, 아르타디아가 했던 말 그대로였다.

“그럼 정신계에서 발록과의 전투를 준비시켜 줘.”

[알겠습니다.]

[정신계로 이동합니다.]

[30초 뒤, 당신의 정신계 한편에 속박된 발록의 구속을 해제합니다.]

***

다시금 정신계로 오게 된 충렬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방문 목적이 달랐다. 이전에는 아르타디아에게 배우기 위해서 방문하였다면, 이번에는 발록을 상대하기 위해서 방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정신계의 풍경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아르타디아가 충렬의 정신계 내부 풍경을 평범한 들판처럼 바꿔주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준에 비해 한참 미약했던 충렬은 아직 지형지물까지는 마음대로 구성하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지금부터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발록이었으니까.

‘일단 준비부터 해볼까.’

정신계에 대해 배운 것은 스킬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내가 이곳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면서 상대를 압박한다.’

생각 자체를 바꾸어 상대를 압박하는 힘. 거기에 더하여 상대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것들 또한 조금이나마 배워 나갔다. 아직은 이렇다고 말할 정도로 다루지는 못했지만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물론 스킬을 구체화하는 이유는 형체를 만들어낼 수가 있기에 상대를 압박하거나 방어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특히나 충렬은 에너지 실드라는 것을 경험해 보았다. 그래서 운이 좋게도 절대적인 방어를 해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상대를 완전히 압박할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충렬은 발록이 나타나기까지 스스로의 몸을 달구기 시작했다.

‘이곳은 정신계다.’

생각과 의지에 한계가 없었다. 그러니 아르타디아가 사용했던 메테오나 블리자드 등의 스킬을 복사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던가. 정신계 자체의 힘을 완전히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웬만한 스킬들은 구체화할 수 있었다.

‘일단은 그것들을 믿고 발록을 압박해야겠지.’

그렇게 충렬이 정신계에 들어오고 한창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큰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형체가 없는 허공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렸던 것이다.

“이놈! 감히 나를 가두어 버리다니!”

그 소리와 함께 충렬의 앞 4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검은 먼지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응축되어가는 그것은 형체를 만들어 나갔는데, 곧 발록의 모양으로 완성되어 갔다.

잠시 뒤, 발록은 충렬의 정신계에서 완전한 형체를 이루어내었다. 정신계였지만 녀석의 모습은 현실에서와 같이 거대했다.

어찌되었거나 충렬은 자신을 가두었다고 성을 내는 발록을 향해 대꾸했다.

“자기가 마음대로 들어와 놓고 남의 탓을 하는 것인가?”

충렬의 대꾸에도 발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놈은 설마 인간 따위에게 자신이 갇혀 버릴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는 듯이, 길길이 날뛰며 성을 낼 뿐이었다.

“고작 인간 따위의 정신계에 잠시나마 갇히다니! 이러한 수치를 어떻게 되갚아줘야 하지?”

충렬이 앞에 있거나 말거나 녀석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풀려난 이상 인간의 정신계 따위는 쉽사리 장악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일단 네놈의 정신에 깃든 영혼부터 흡수해 보고 생각해야겠…….”

그러나 녀석을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발록의 혼잣말에 어이가 없었던 충렬이, 녀석의 말을 끊으며 도발을 했기 때문이다.

“대꾸할 가치도 없군. 시끄럽게 하지 말고 그냥 덤벼.”

***

정신계에서 충렬과 발록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현실에서는 발록의 패배였다. 현실에서 충렬은 매우 간단하게 발록을 꺾었다. 하지만 그때는 수많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물리쳤을 뿐, 충렬 혼자만의 힘으로 이긴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이곳에서는 오로지 충렬과 발록, 단둘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정신계에 들어온 녀석과의 전투는 어떠할까? 아마 현실에서보다는 상대하기가 더욱 까다로울지도 몰랐다.

충렬은 우선 놈의 실력을 알아볼 요량으로 간단한 공격을 시도했다. 가장 확실한 화력으로 놈을 압살해볼 생각이었다. 정신계의 힘 자체를 온전히 사용할 수는 없었기에, 아르타디아에게 당했던 스킬을 재현하기로 했다.

“메테오.”

그 말을 끝으로 아르타디아가 보여주었던 메테오가 충렬을 통해 다시금 등장했다. 그러자 발록은 조금 당혹해했다.

“아니, 어떻게……!”

놈은 충렬이 드래곤의 마법을 재현해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인간 주제에 무언가를 구체화하는 수준까지 이룩한 것이냐……!”

물론 녀석이 놀란 것은 거기까지였다. 이토록 정신계를 발전시킨 인간을 보지 못했기에 잠시 놀랐을 뿐. 녀석은 여유만만한 태도였다.

“하지만 소용없다. 내가 현실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던 이유는 드래곤들에게 수많은 마기를 쏟았기에 그랬을 뿐. 여기서는 내 모든 힘을 온전히 드러낼 수가 있지. 하물며 상대의 힘을 완전히 억압하는 방법도 모르는 네 녀석의 정신계에서라면 나를 막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녀석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드러내었다.

“암흑 투기!”

듣도 보도 못한 스킬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시스템의 음성으로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은 스킬이 맞기는 했지만, 정확히 말해 사용하는 스킬이라기보다는 발록 본연의 힘이라는 것을.

[발록이 살아생전 가졌던 최고의 힘을 구체화시킵니다.]

[발록에게 ‘암흑 투기’가 구현됩니다.]

[발록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막대한 어둠의 기운이 주변을 잠식합니다.]

동시에 놈을 중심으로 어둠의 빛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파앗!

그러면서 발록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놈의 겉으로 어두운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언뜻 보면 그 기운이 다크 오러와 비슷했다. 그렇지만 다크 오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무척이나 패도적이고 광포함을 내뿜는 그 기운은 다크 오러보다 더욱 수준이 높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놈의 온몸을 감싸는 것에서 벗어나 주변을 모조리 어둠으로 뒤덮었다.

“크크큭. 이것이 있는 이상 나는 무적이다.”

그러나 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충렬이 만들어낸 메테오가 발록에게 떨어지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쾅!

콰앙!

쾅쾅!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충렬은 메테오가 녀석에게 적중되는 순간 이미 놈과의 거리를 멀찍이 벌렸다. 동시에 녀석이 당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메테오는 그 어떤 존재라고 하더라도 압살해 버릴 만큼 엄청난 위용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잠시 뒤, 메테오의 공격이 끝나자 확인할 수 있었다. 발록의 모습이 무척이나 멀쩡하다는 것을. 암흑 투기로 만들어진 검은 장막이 녀석의 몸을 완전히 보호하고 있었다.

녀석은 충렬의 공격 따위는 심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크큭. 오랜만에 나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가 있다니. 이거 너무 기분이 좋아지는군.”

역시나 아직 단순하게 공격하는 방법으로는 발록을 제압할 수가 없었다.

‘놈을 완전히 제압하려면 정신계에서 나의 수준을 더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녀석은 충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이제 슬슬 끝내볼까?”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녀석의 몸이 사라졌다.

번쩍!

사라진 녀석의 몸이 나타난 곳은 충렬의 앞이었다.

“그럼, 이만 죽으라고.”

동시에 녀석이 양손을 꽉 쥐며 내리쳤다. 강력한 암흑 투기가 주입되어 있는 녀석의 양손이, 당장에라도 충렬을 압사해 버릴 정도로 짓쳐들었다.

그러나 충렬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심드렁하게 반응하며 말할 뿐이었다. 그 어떤 공격이라도 방어해 낼 기술이 자신에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에너지 실드.”

그러자 발록의 몸을 감싸던 암흑 투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에너지 실드가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암흑 투기를 무효화시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충렬을 향해 내려치던 발록의 양손이,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튕겨 나갔다.

티잉!

동시에 발록의 몸이 뒤로 기울어지며 녀석이 벌러덩 넘어졌다. 너무 강하게 내려치다가 공격 자체가 실패하며 튕겨나자 반동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게 회심의 일격을 날리려다 실패한 발록은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쿠웅!

그러나 녀석은 자신이 뒤로 넘어졌다는 사실보다 충렬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었다는 사실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충렬이 완벽한 방어를 해낼 줄은 몰라서다.

“어, 어째서 나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만 녀석이 믿거나 말거나 충렬은 씨익 웃었다.

“겨우 그 정도로 내 몸을 차지하려고 했나?”

물론 충렬도 발록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하는 처지였다. 그 말인 즉, 아르타디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발록과도 무의미한 공방전을 반복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충렬은 생각을 달리 먹었다.

‘의미 없는 공방전이 되지 않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녀석이 지칠 때까지 한번 놀아주어야겠군.’

다음 임무 지역으로 가야 했기에 무한정 놀아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누구 하나가 이기기가 힘들다면, 충렬은 발록의 정신이 무너질 때까지 틈마다 공방전을 주고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는 끈질기고 반복 노가다에 익숙한, 거머리 같은 충렬이었기에 가능한 소리였지. 거기에 당해야 하는 발록에게는 지옥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본래라면 이러한 짓을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이는 발록이었다. 정신계에서 제법 버티는 존재를 지치게 만들어 나가떨어지게 하려면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잔혹한 짓을 반대로 해버리는 충렬 때문에, 발록에게는 끝나지 않을 악몽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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