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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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하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인 성기사 셋. 그들은 마렉이 돌보던 윌리엄 사제와 생사의 문턱에 서 있는 성기사 넷을 따로 거두었다.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성기사들은 사제 계열이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성기사였기 때문에 최소한의 회복 스킬은 가지고 있었다.
성기사들이 다친 이들을 치료하는 사이, 나머지는 전부 데프론과 인프라블랙의 전투를 관전하는 중이었다.
정작 많은 구경꾼들 앞에 놓인 상황이었지만, 상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전투가 시작되려 하니 녀석도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숨에 네 놈의 목을 베고 나머지들도 처리해 주마.”
어지간히도 자신이 있었는지 인프라블랙은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하기야, 원거리 스킬의 폭격에서도 살아남은 녀석이었다. 쉽게 당할 만한 녀석은 아니리라.
그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데프론을 향해 검지를 올리더니 까딱거리며 도발했다. 덤비라는 손짓을 취한 것이다.
오만한 그의 손짓이었지만 데프론은 고작 그런 도발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모든 것은 이제 검과 검의 대화로 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데프론에게 있어서 하찮은 도발 따위는 무의미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가도록 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데프론이 검을 똑바로 세웠다. 그러면서 놈을 향해 서서히 전진했다. 데프론은 무턱대고 달려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궁지에 몰린 먹잇감에 섣부르게 덤비지 않고, 천천히 상대를 압박하는 모양새였다.
하기야, 급하게 다가갈 필요는 없었다. 아쉬운 것은 데프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데프론의 검에는 다크 오러가 혼돈의 힘과 어우러져 화려한 자태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데프론의 오러 때문일까?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했지만, 실제로 데프론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상대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그만큼 엄청난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데프론의 다크오러에 가 있었다. 혼돈의 힘이 적용된 데프론의 오러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이리라.
하지만 녀석은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스스로를 세뇌했다.
“저런 잔재주 따위. 나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지금부터는 잡념을 하지 않겠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며 다가오는 데프론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렇게 둘의 대치가 한창일 때, 마침내 데프론이 인프라블랙과의 거리를 지척까지 좁혀내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둘의 검이 서로의 몸에 닿을 수 있는 거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데프론이 한 걸음을 내딛기 직전, 선공을 취한 것은 인프라블랙이었다. 녀석은 어지간히도 급했는지 그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데프론이 도착하자마자 행동한 것이다. 역시 겉으로 보였던 처음의 침착한 모습은 가짜로 보인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아르타디아가 피식 웃었다.
“이건 뭐, 보나 마나군.”
조급해하는 이와 조급해하지 않는 이의 대결이었다. 물론 인프라블랙의 실력이 더욱 뛰어나다면 당하는 것은 데프론이 될 터였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격돌의 양상이, 이 승부의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게 해주었다.
“죽어라!”
고함을 지르며 검을 내지르는 인프라블랙. 그의 검에서 검은 오러가 타오르며 당장에라도 데프론을 갈라 버릴 듯 짓쳐갔다. 하지만 데프론은 놈의 기세에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놈이 내지른 검을 마주해 주었다.
그렇게 부딪치는 둘의 검. 오러와 오러가 부딪치자 딱히 누군가의 검이 잘려 나가는 일은 없었다. 본래 오러를 검에 씌우면 그 어떤 물체라도 가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같은 오러끼리 만나니 딱히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카앙!
맑게 울리는 첫 격돌의 소리. 그러나 격돌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음이 급했던 인프라블랙은 야차와 같이 쉴 새 없이 데프론을 몰아쳐 갔기 때문이다.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놈의 움직임이 멈추어지는 일은 없었다.
데프론은 계속해서 내려치고 베어오는 놈의 검을 일일이 막아갔다.
카앙!
캉!
카앙!
언뜻 보면 미친 듯한 공세에 데프론이 밀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 데프론은 천천히 뒷걸음질하며 상대의 공격을 막아가고 있어서다.
그러나 이곳에서 관전을 하고 있는 이들 중. 그 누구도 데프론이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공격을 퍼부을 때마다 불리해지는 것은 인프라블랙이었으니 말이다.
왜 그러냐고? 같은 다크 오러끼리 부딪쳤지만, 좋지 않은 변화가 나타난 것은 인프라블랙의 오러였기 때문이다.
데프론의 오러에는 혼돈의 힘이 추가적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그래서 두 검이 격돌할 때마다 인프라블랙의 오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층 강화된 데프론의 오러를 인프라블랙의 오러가 감당해 내지 못한 것이다.
쩌적.
쩌저적.
물론 오러는 계속적으로 공급이 되었다. 그렇기에 손상이 생긴 오러는 금방 다시 복구가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만으로도 오러의 질에 있어서는 확실히 데프론의 우위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를 겪었던 경험이 없어서일까? 놈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어, 어째서…”
하지만 놈이 의문을 가질 시간은 없었다. 잠깐 당황하는 사이, 공수가 변경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인프라블랙이 잠깐 멈춘 순간, 데프론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저항은 거기까지인가? 그렇다면 이제 너의 죄를 물을 시간이다.]
그 말을 끝으로 데프론이 자세를 바꾸었다. 방어적인 자세에서 공격적인 자세로 변경한 것이다.
데프론의 공격은 별것 없었다. 인프라블랙처럼 화려하게 상대를 몰아치지 않았다. 그저 간단하면서도 단순하게 상대를 내리쳤다. 위에서 아래로. 그것이 전부였다. 물론 데프론의 공격은 인프라블랙에 비하면 약간 느릿했다. 하지만 반대로 묵직한 느낌이 있는 일격이었다. 가벼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소리다.
어쨌거나 상대는 데프론이 공격해 오자 습관적으로 검을 마주하여 막아가려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데프론의 오러에 의하여 자신의 오러가 금이 갔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평범한 오러로는 혼돈의 힘이 들어간 오러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랬다. 데프론의 오러가 상대의 오러와 부딪치자마자, 지금까지는 금만 갔던 인프라블랙의 오러가 단번에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져 버렸다.
마치 유리조각이 깨어지듯. 인프라블랙의 오러가 단번에 박살 나며.
와장창!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검이 쉽게 잘려 나갔다.
서걱!
당연히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데프론의 검은 그 어떤 방해를 받지도 않고 상대의 육체를 갈라갔다.
“아… 안 돼……!”
인프라블랙이 뒤늦게 피하려 해보았지만, 아쉽게도 온전히 피해내지는 못했다. 애초에 검을 맞부딪치지 않고 미리 피했어야 했다. 제대로 피하지 못한 인프라블랙. 결국 그는 자신의 왼쪽 어깨를 내주어야 했다.
서걱.
동시에 잘린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왔다.
촤아악!
물론 그의 한쪽 팔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덤이었다.
툭.
데프론이 가한 한 번의 일격에 전투력을 상실하게 된 인프라블랙. 그의 모습은 매우 처참했다. 그런 그를 향해 데프론이 사형선고를 내렸다.
[다음 생에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도록.]
사형선고와 함께 가로로 검을 긋는 데프론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매우 깔끔한 동작이 전투력을 상실한 상대의 수급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데프론의 검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가느다란 실선이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상대의 머리가 목에서부터 분리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머리를 잃은 그의 몸뚱이도 마찬가지로 바닥으로 무너졌다.
털썩.
그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다크나이트들의 우두머리, 인프라블랙을 처치하였습니다.]
[7,5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막강한 원거리 스킬들의 화력에 살아남은 녀석이었기에 그래도 한가락 하는 줄로만 알았다. 물론 데프론이 없었다면 정말로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오러라는 것은 단순한 스킬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프라블랙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그리고 그 잘못된 만남으로 인하여 녀석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
다크다이트들이 죽으며 남긴 그들의 전리품. 그것들은 박해일이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지 않아도 금속류 자원은 구하기가 불가능한데. 이것들이라도 활용을 해야겠군.]
그렇게 장내는 그가 알아서 정리했다. 그 외에도 부상자들의 수습과 각종 처리를 도맡아 했던 것이다.
박해일이 그러는 동안, 충렬은 잠시 다른 것을 살피는 중이었다. 다음 임무 지역으로 향하기 전에 끝내야 할 일이 생겨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데프론의 성장이었다. 그동안 데프론의 숙련도는 90%의 후반대에 육박해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전투로 인해 모든 숙련도가 채워졌던 것이다. 간단하게 종료된 전투이기는 했지만 숙련도가 최대에 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데프론의 숙련도가 최대에 도달했습니다.]
[데프론이 듀라한과 관련된 옵션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데프론의 선택에 있어서 충렬은 딱히 관여하지 않았다. 충렬에게도 데프론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보였지만 이상한 것만 아니라면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데프론이 고른 옵션은 다음과 같았다.
[데프론이 액티브 스킬 ‘마기공’을 배웁니다.]
[마기공: 검을 휘둘러 어둠의 기운을 머금은 날카로운 오러를 날린다. 오러를 주입한 양에 따라 크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최소한의 크기도 막대한 오러를 소모하기에, 보유한 오러의 양이 적다면 사용하기를 추천하지 않는다.]
데프론이 배운 스킬은 원거리 공격 스킬이었다. 설명을 들어보면 무시무시한 스킬임에 틀림이 없었다.
특히 오러가 적용된 무기는 웬만한 것들은 대부분 자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날려서 공격한다면…….’
무시무시한 공격 수단이 되리라.
그렇지만 단점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막대한 오러를 소모한다는 것이었다.
‘상대의 허를 찌를 때 사용할 만한 스킬이군.’
물론 나쁘지 않았다. 근거리에서만 싸워야 했던 데프론에게 강력한 원거리 공격 수단이 생긴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그래도 재사용 대기 시간은 없는 것인가.’
아마 스킬의 쿨타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쉽게 사용하기가 힘든 스킬이라는 소리일 터였다. 오러의 소모가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찌되었거나 그렇게 데프론의 상태를 잠시 살피고 있을 때였다.
[성녀와 드워프들이 구금된 ‘섬’으로 가는 포탈이 생성되었습니다.]
[사제 윌리엄, 그리고 성기사들과 함께 성녀를 찾기 위해 이동하십시오.]
그 말과 동시에 근처로 거대한 검은색의 포탈이 하나 생성되었다.
[포탈은 20시간 동안 유지됩니다.]
[시간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포탈은 사라지며 임무는 실패하게 됩니다.]
임무의 실패란 드워프들을 얻지 못한다는 소리와 같았다.
‘그럴 수는 없지.’
그러나 충렬은 당장에 출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포탈이 생성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다. 일단 사제 윌리엄이 깨어나야 했고, 영지에서 충분한 정비도 끝마쳐야 했다.
그래도 20시간이 주어졌으니 급하게 서두르지는 않아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