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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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여관으로 들어오지 않은 성기사 20명. 그들 중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서로가 눈짓을 주고받고 있었다. 동료들이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그 신호의 의미를 모르던 성기사가 물어보았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지만 그는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 아군이었던 이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낌새를 보이던 성기사들. 그들이 일시에 검을 뽑기 시작했다.
스르릉.
영문을 모르는 몇몇의 성기사들만이 검을 뽑지 않았다. 동시에 심각한 표정으로 일행들을 말리기 시작했다.
“이봐 갑자기 왜 이러는…….”
하지만 말리기란 불가능했다. 다가가서 말리려던 순간, ‘진짜’ 성기사들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검을 뽑은 성기사들. 그들의 갑옷이 어둠에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타락하지 않은 성기사들은 동료의 변하는 모습에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그랬다. 검을 뽑은 이들은 타락하여 다크나이트라는 존재가 된 이들이었다. 어둠의 기사로 돌변한 성기사의 수는 정확히 열여섯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다른 다크나이트에 비하여 매우 소름끼치는 기운을 내뿜는 이였다.
평범하게 타락한 이들과는 달리, 그는 겉모습마저 평범하지 않았다. 전신을 뒤덮은 어둠의 갑옷은 범접할 수 없는 기세를 내뿜었다.
언뜻 보면 데프론의 갑옷과 유사해 보였지만, 그 성질은 달랐다. 데프론의 갑옷이 순수한 어둠의 힘을 내뿜었다면, 그의 갑옷은 온갖 절망과 파멸의 힘을 머금은 듯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충렬이 여관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다크나이트들은 그를 중심으로 모두 자신의 모습들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스템의 음성으로 인하여 상대의 정체를 알 수가 있었다.
[인프라블랙과 열다섯의 다크나이트가 본연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들을 모두 제압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성녀와 드워프들이 구금되어 있는 ‘섬’으로 이동할 수가 있습니다.]
***
다크나이트 열다섯과 그들의 우두머리인 인프라블랙. 인프라블랙이라고 불리는 그자는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강자로 보였다.
그렇지만 그의 모습에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니었다. 인프라블랙이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크나이트로 변한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곳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멸하라. 그리고 선지자는 반드시 처치해야 한다.”
근처에 있는 4명의 성기사들이 첫 희생양이었다. 그런 인프라블랙의 명령을 들은 충렬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성물을 사용한 자를 찾는 원정에 일부러 참여를 한 것이었군.’
선지자라고 불리는 이를 처치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정도라면 신성국 내에 뻗친 배반자들의 마수가 어느 정도인지 쉬이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그저 놈들이 모든 세력을 장악한 듯 보였다. 아르타디아의 표정을 보니 그녀도 제법 놀란 눈치였다.
“신성국이라는 이름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렸군.”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다. 다크나이트들의 첫 공격 대상이 된 성기사 4명. 그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져서다. 적들에게 둘러싸인 성기사들은 일시에 찔러오는 다크나이트들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던 것이다.
“제, 제길!”
뒤늦게 성기사들이 검을 뽑아보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다. 적들의 검에 이미 수차례나 찔린 후였으니 말이다.
푸욱.
푹.
푸욱. 푹.
푹. 푹. 푹.
장내를 울리는 섬뜩한 소리. 그 소리가 모두의 귓가에 들려왔다. 하지만 성기사들이 죽는 모습을 이대로 두고 볼 리가 없는 충렬의 무리들이었다. 특히나 사제 윌리엄은 배반자들이 단체로 본색을 드러내자 포위된 성기사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새, 새크리파이스 에어리어!”
윌리엄이 큰 목소리로 외치자 그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푸화학!
동시에 그는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털썩.
도대체 무슨 스킬이기에 저 정도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어지는 시스템의 음성을 들어보면 과연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다.
[윌리엄이 자신의 생명력을 일정량 소모하여, 치명적인 일격을 받은 성기사 4명의 시간을 일시적으로 멈춥니다.]
[성기사 4명은 3분 동안 공격을 할 수도, 공격을 받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덕분에 이승을 하직할 뻔했던 성기사 넷은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물론 3분이 지나면 그들의 시간이 다시 흐를 터였다. 그들의 몸을 감싼 막이 풀리는 순간 다시금 위험한 상황에 처하겠지만, 그 전에 상황을 끝내면 되리라.
어찌되었거나 충렬은 마렉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렉, 윌리엄을 부탁합니다.”
이제는 혼돈의 존재가 되면서 언데드가 아니라도 치유할 수 있게 된 마렉이었다. 그렇기에 마렉에게 윌리엄을 맡겼다. 한눈에 보아도 윌리엄은 무리가 가는 스킬을 사용했기에 마렉의 도움이 필요해 보였다.
어쨌거나 앞으로 나서는 충렬의 뒤를 따라 여관에서 배반자가 아님이 밝혀진 성기사 셋이 따라 나왔다. 그들은 윌리엄 사제와 아군 성기사들이 다친 상황에 크게 분노하며 이를 갈았다.
“오. 신이시여…….”
“파렴치한 배반자들이 어찌도 이렇게 많이……!”
하지만 그들이 분노하며 움직이기도 전에 가장 먼저 행동한 것은 아르타디아였다. 그녀는 다크나이트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꿇어라! 이 장소에서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지 말지어다!”
청천벽력과 같은 그녀의 외침이 주변의 공기마저 진동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다크나이트들이 비명을 지르며 손에서 검을 놓쳤다. 신기하게도 놈들은 귀를 막으며 괴로워했다.
“크악!”
“크아악!”
“크윽!”
그 이유는 별것 없었다. 아르타디아의 외침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르타디아가 ‘드래곤 피어’를 사용합니다.]
[수준이 낮은 열다섯의 다크나이트들이 괴로워하며 저항하지 못합니다.]
과연, 아무리 본 드래곤이 되었다고 하나 그녀의 강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적들 중에 드래곤 피어에 당하지 않은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평범한 다크나이트의 수준을 벗어난 인프라블랙이었다. 그는 부하들이 드래곤 피어에 당하자 마찬가지로 외쳤다.
“어딜 감히 거룩한 일에 방해를 하는 것이냐! 광기 부여!”
타락한 주제에 거룩한 일이라고?
‘웃기지도 않는군.’
그러나 그가 사용한 광기 부여만큼은 웃긴 수준이 아니었다.
그 말을 끝으로 주변에 나타나는 어둠의 기류가, 다크나이트들의 머릿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그것의 효과는 무척이나 대단했다.
[인프라블랙이 다크나이트들에게 광기를 부여합니다.]
[다크나이트들이 이성을 상실하고 광인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성을 상실한 다크나이트들이 드래곤 피어에 저항하며 타락한 힘을 모조리 이끌어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다크나이트들의 기세가 한순간 광포하게 변했다. 하지만 놈들이 강화되는 장면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르타디아가 드래곤 피어로 벌어준 그 짧은 시간. 놈들에게 각종 스킬들이 퍼부어졌다.
박해일의 화살, 레일리의 마법. 거기에 더하여 아르타디아가 아직 사용하지 않은 광범위 얼음 마법까지. 미친 듯한 원거리 화력이 일시에 짓쳐드니 다크나이트들은 어떻게 방어할 수가 없었다. 기껏 상태 이상에서 벗어났더니 쓸모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드래곤 피어에 저항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놈들은 곧바로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당해야만 했다. 아니, 괴멸해야 했다.
근거리 딜러의 위치를 맡은 데프론, 샤오링, 자르딘과 왕찌엔. 그리고 기타의 존재들이 나서기도 전에 다크나이트들은 싹 쓸려 버렸다.
[다크나이트 둘이 박해일의 스파이럴 애로우에 관통당해 처치됩니다.]
[1,0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아르타디아의 아이스 스파이크가 다크나이트들을 일시에 제압합니다.]
[도중에 치명적인 일격을 받은 다크나이트 셋이 즉각 사망하였습니다.]
[1,5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레일리의 스피어스 오브 헬이 제압된 다크나이트 열을 단번에 불태웠습니다.]
[5,500카르마를 습득하였습니다.]
열다섯의 다크나이트들은 그렇게 순식간에 증발했다.
그 모습에 충렬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나서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되는 것 같아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이렇게 할 것을 그랬나.’
한 명씩 여관으로 들이지 않고 처음부터 적들의 모습을 전부 드러내게 했다면 시간을 아낄 수가 있었으리라.
‘아니야, 그래도 안전하게 수를 줄이는 것이 좋지.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하기야. 그것이 현명한 판단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아직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었다. 다크나이트들이 전부 쓸려 나갔지만 아직 남아있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화력 속에서도 살아남은 존재는 바로 인프라블랙이었다. 녀석은 이 처참한 광경에 말문이 막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
어떻게 된 일이긴. 상대를 잘못만난 것뿐이지.
그렇지만 다크나이트들과는 달리, 인프라블랙은 과연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놈들! 모조리 여기서 죽여주마!”
그러면서 녀석은 직접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녀석은 앞으로 나오며 스킬을 사용했다. 그런데 녀석이 사용한 스킬은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인프라블랙이 ‘다크 웨펀’을 사용합니다.]
[그의 무기에 다크 오러가 활성화됩니다.]
그랬다. 녀석이 사용한 스킬은 데프론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과 똑같았다.
물론 녀석이 다크 웨펀을 사용하거나 말거나 충렬의 무리들은 녀석을 처치하기 위해 공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데프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 녀석은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그러자 일행들도 인프라블랙을 공격하려던 행동을 멈추었다. 충렬도 딱히 데프론을 말리지는 않았다. 직접 상대하고 싶어 하니 그러도록 놔둔 것이다.
[감히 주군의 앞에서 무기를 꺼내들은 죄. 그 죄를 나의 검으로 직접 묻겠다.]
그 말을 끝으로 데프론 또한 다크 웨펀을 활성화시켰다.
지이이잉.
데프론의 말에 인프라블랙이 대답해 주었다.
“네놈을 포함해서 이곳에 있는 모든 놈들의 수급을 베어주마.”
그렇게 듀라한 데프론의 다크 오러. 그리고 인프라블랙의 다크 오러의 충돌이 시작되려는 찰나. 누군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봐. 데프론 힘내라고.]
그는 마렉이었다. 마렉은 그 말을 끝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혼돈의 축복.]
동시에 데프론의 다크 오러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혼돈의 힘까지 스며들며 한층 더 강해진 것이다.
그러자 데프론이 잠시 당황했다. 순수하게 누구의 검이 뛰어난지 겨루어보려고 했는데, 갑작스런 버프를 받으니 자신이 비겁해 보였기 때문이다.
[…….]
그러거나 말거나 데프론의 심정을 몰랐던 마렉은 해맑게 그를 응원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