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다크나이트
헬 하운드를 소환하기만 해도 타락한 성기사들을 구별해 낼 수가 있다니.
‘일단은 그렇게 믿고 계획을 시작해야 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새로운 대처 방법을 생각해 내면 되었다. 고민해야 할 것은 배반자들을 색출해낸 후의 일이었다.
계산이 빠른 박해일이 가장 먼저 답을 내놓았다. 그는 현재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배반자가 나타났을 경우, 쉽게 제압할 수 있도록 미리 선수를 쳐놓아야겠군.]
그러자 지금껏 묵묵하게 있던 데프론이 듬직하게 말했다. 근처에 자아를 가진 이들이 많아서 그럴까? 누구한테 배운 것인지 데프론의 언어 수준은 날이 갈수록 충렬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했다.
[그 적들은 제가 모조리 처리하겠습니다. 저의 주군이시여.]
데프론이 그렇게 말하거나 말거나 레일리도 해일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일단 성기사들의 수가 많으니 분산시키는 것이 우선이겠어요.”
이들에게 자아가 없었다면 충렬은 꽤나 힘들었을 터였다. 혼자 고민을 하고 결정을 내렸어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함께하는 이들에게 자아가 있었던 덕분에 일은 순조롭게 흘러갈 수가 있었다.
그렇게 일행들이 여관으로 향하는 동안, 계획은 점차 완성되어 갔다.
아르타디아는 함께하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도와줄 뿐. 일행들이 스스로 일을 해나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별다른 참견을 하지 않았다. 고룡인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함께하는 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모든 부분을 알려주기보다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말이다.
***
여관의 식당으로 들어온 이는 충렬과 데프론, 그리고 레일리였다. 나머지는 모두 밖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배치시켰다.
‘배반자들이 눈치채기 전에 신속히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계획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여관의 식당에서 기다리며 성기사를 하나씩 들이는 것이었다.
윌리엄에게도 대충 상황을 전달했다. 이제 그가 성기사들을 차례대로 안쪽으로 들일 예정이었다. 그는 헬 하운드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평범한 사제는 아니었는지, 타락한 존재들이 지옥의 유황 앞에서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를 대충 알고 있는 듯 했다.
물론 하운드의 본체를 온전히 꺼낸다면 밖에서도 낌새를 눈치챌 수가 있었다. 그 때문에 충렬은 하운드를 문양에서 꺼내기 전, 녀석에게 말했다.
“하운드, 작은 강아지의 모습으로 나와.”
그나마 유황의 향을 최소한으로 나게 하기 위해서다. 하운드는 자신의 크기를 줄일 수 있었으니 사용한 약간의 편법이었다.
어쨌거나 충렬의 주문에 하운드가 화답했다. 작은 강아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헬 하운드. 녀석은 영민했다. 평소처럼 짖으며 애교를 부리지 않고 충렬의 다리에 얼굴을 비빌 뿐이었다.
하운드가 나오자 충렬은 신호를 주었다. 영지 내에서라면 박해일과는 떨어져 있어도 소통이 가능했다. 그는 충렬의 영지의 대리인이었으니까.
‘여기는 대충 준비가 끝났습니다. 시작하죠.’
[알겠다. 한 명씩 안으로 들이도록 하지.]
***
충렬에게 상황을 전달받은 박해일이 마렉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렉은 사제 윌리엄에게 다가가 음성을 전달했다.
안쪽에서는 준비가 끝났으니, 계획했던 것을 시작하자는 소리였다. 아르타디아는 왕찌엔, 자르딘, 그리고 해골 경비병 다섯과 함께 언제라도 반응할 수 있게 상황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물론 아직 자아가 없던 샤오링과 제레미는 아르타디아의 지시를 기다릴 뿐이었다.
어찌 되었거나 이제 배반자를 색출해 낼 시간이었다.
사제 윌리엄. 그가 성기사들에게 말했다.
“자, 형제님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고 쉴 곳을 마련해 주신답니다. 오늘은 잠시 쉬고, 내일부터 방안을 모색해 보도록 합시다.”
그러면서 그가 성기사 하나에게 들어가라며 안내해 주었다.
“안이 좁으니 한 분씩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여관의 내부는 좁지 않았다. 그저 충렬과 그 무리들이 모종의 일을 벌이기 위해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첫 번째로 지목된 성기사는 별다른 의구심을 가지지 않고 윌리엄에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윌리엄 사제님.”
윌리엄은 성기사를 여관의 입구까지만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들어가라는 시늉을 취했다. 그러자 성기사는 순순히 여관의 문을 열어 혼자 들어갔다.
***
박해일에게 상황을 전달하자 얼마 후, 처음으로 성기사가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해했다.
“안이 좁지는 않는데?”
그런 그에게 충렬이 말했다.
“이쪽에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그는 충렬이 가리킨 자리로 이동하면서 헬 하운드의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고 말할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척박한 땅에 귀여운 강아지가 살고 있다니. 사제님 말씀대로 언데드라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니었군요.”
그의 말에 충렬은 끄덕였다.
‘헬 하운드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군.’
하기야, 배반자가 아니라면 강아지로 변한 하운드의 정체를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일단 한 명은 통과인가.’
아마도 그는 배반자가 아닐 터였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충렬은 해일에게 음성을 전달했다.
‘다음.’
그러자 해일이 답해왔다.
[알겠다.]
그렇게 잠시 뒤, 이어서 두 번째의 성기사가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킁킁. 흠… 이게 무슨 냄새지?”
그의 반응에 레일리가 움직일 준비를 했다. 냄새를 맡는 행동에 혹시나 싶어서다. 그러나 레일리는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성기사가 반응한 이유는 헬 하운드 때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맥주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 같지? 언데드도 맥주를 마시나?”
그랬다. 드워프들이 워낙 맥주를 마셔대었던 탓에 곳곳에 배긴 맥주의 냄새를 맡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혼잣말을 이어갔다.
“후… 이런 상황에서 맥주에 정신이 팔리다니. 수행이 부족해진 것인가.”
그러자 레일리는 움직이려던 자세를 다시 되돌렸다. 어쨌거나 그의 반응을 살펴본 충렬도 그를 처음 온 성기사의 옆으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셔서 앉아계시면 됩니다.”
동시에 충렬은 속으로 생각했다.
‘흐음. 하운드의 모습이 작아서 반응이 없는 것인가.’
충렬이 의문을 가질 때였다. 안쪽에서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자 해일이 말했다.
[그럼, 세 번째 성기사가 들어간다.]
그렇게 이어서 세 번째 성기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충렬은 알 수가 있었다. 앞의 두 명은 정말로 배반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세 번째 성기사는 여관의 식당칸에 들어오자마자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였다. 지옥의 기운을 느껴 버린 것이다.
“크악! 이 뜨거운 냄새는 무엇……!”
그러면서 그의 갑옷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의 안에 있던 타락한 기운이 지옥의 유황 냄새에 자동반사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데프론의 순수한 어둠의 색과는 달랐다. 척 보기만 해도 불길해 보이는 시꺼먼 색이, 그를 뒤덮었다.
[악한 자들이 두려워하는 지옥의 냄새가 타락한 성기사의 신경을 자극하였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반발한 타락한 성기사.]
[그의 거짓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가 모습을 변하는 과정은 순식간이었다. 실수로 뜨거운 물을 만졌을 때 자신도 모르게 손을 뒤로 빼는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성기사가 다크나이트로 변하였습니다.]
그에게 변화가 나타나자 앞서 들어온 성기사 둘이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둘은 다크나이트가 등장하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이다.
“아니, 진저. 네가 어떻게?”
“제길, 이게 무슨 일이야. 진저가 타락했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즉각 반응한 것은 레일리였다. 데프론이 움직이기도 전에 그녀는 스킬을 사용했다.
“블링크.”
그러자 순식간에 그녀의 몸이 다크나이트로 변한 이의 지척 거리로 이동했다.
짧은 거리였지만 그녀는 찰나의 시간마저 줄이기 위해 일부러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그렇게 다크나이트의 근처로 도착한 레일리가 이어서 그를 제압했다.
“흡혈.”
그녀가 흡혈 스킬을 사용하자 다크나이트가 된 성기사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는 소리를 질러 밖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곧 레일리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의 목을 파고들었다.
푸욱.
그 과정을 성기사 둘은 바라보기만 할 뿐,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도 다크나이트는 척살해야 할 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전까지는 동료였을지라도 다크나이트가 되었다면 신의 이름으로 그들을 징벌해야 했다. 물론 충격을 받아 즉시 행동하지 못한 그들 대신, 레일리가 나서주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잠시 뒤, 배반자였던 성기사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다크나이트 하나를 쓰러뜨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다크나이트를 처형시켰습니다.]
[5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
다크나이트가 등장하자 성기사 둘도 드디어 상황을 파악했다. 이곳으로 원정을 온 동료들 중에 배반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도 단순한 배반자가 아니었다. 저렇게 타락할 정도의 변절자가 함께 올 정도라니. 둘은 설마 교단의 상황이 이만큼 심각할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이 정도였다니. 이래서 성녀님께 변고가…….”
“제길. 그 동안 타락한 녀석과 함께했다니. 부끄러운 상황이잖아.”
그래도 그들은 곧 마음을 가다듬고 충렬이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성녀를 구해야 한다는 그들의 열렬한 사명이 불타오르는 순간이었다.
“그 시체는 제가 치우고 오겠습니다.”
성기사 둘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충렬의 일을 돕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잠시 뒤, 네 번째 성기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바깥에서도 딱히 별다른 낌새는 느끼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 문제란 바로 배반자의 숫자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처음과 두 번째로 들어온 성기사 이외에, 배반자가 아닌 이는 한 명밖에 없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변절자들이었다.
‘이거 심각한데.’
물론 절반까지만 살핀 정도였다. 아직 20명 정도를 더 살펴야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배반자의 숫자가 많다니. 자칫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위험했을지도 몰랐다.
‘20명 중에 제대로 된 성기사는 고작 3명이라…….’
나머지 20명 중에서 배반자가 적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상황을 통제하던 박해일이 급하게 충렬을 불렀다.
[이런. 충렬. 어서 빨리 밖으로 나와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