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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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부분의 로브를 뒤로 젖히자 멀끔하게 생긴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대략 30대 정도로 보이는 푸른 머리의 그는, 자신을 신성국의 사제라고 소개한 윌리엄이었다. 윌리엄은 자신이 속한 나라의 상황에 대해서 먼저 알려왔다.
“사실 저희 신성국은 세월을 지나오며 국운이 많이 기울어졌습니다. 직접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이는 저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말을 이어가는 윌리엄. 그의 목소리는 약간 침울해졌다.
“신을 믿으려고 하는 자가 점점 없어지니, 자연히 쇠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지요.”
하긴, 신성국 자체가 종교로 이루어진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믿음이 없어진다면 쇠퇴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 어떤 종교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성녀님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대대로 이어져오는 성녀님들의 존재로 인해, 신성국이라는 이름으로 그나마 유지를 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의 설명에 충렬은 문득 궁금해졌다. 그냥 사제와는 다른 존재인 것일까?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의 성녀일까. 충렬의 얼굴에 궁금하다는 표정이 드러나자 다크엘프로 변한 아르타디아가 설명해 주었다.
“숭배하는 신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인간 여성을 성녀라고 한다.”
“아, 그렇군요.”
그나저나 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니.
‘하긴, 헬리오스에는 따로 신이 있겠지.’
그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랐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충렬을 포함한 대부분의 이들이 성녀라는 존재를 이해했을 때, 동시에 윌리엄은 곧바로 용무와 관계된 말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이번에 성녀님께서 누군가에게 납치가 되셨습니다.”
윌리엄의 말에 아르타디아가 물어보았다. 그녀는 윌리엄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신성국이 성녀의 납치를 그렇게 쉬이 두고 보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는 알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신성국이 대충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이다. 아무리 쇠퇴를 하였다고 한들 그 성격이 쉬이 변하지는 않으리라.
아르타디아의 핵심을 짚는 말에 윌리엄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신성국 내에 불온한 자들이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신의 목소리를 듣는 성녀를 배척하고, 물욕에 빠져든 이들이 있지요. 아마 그들이 수를 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렉을 바라보았다. 예상대로 그는 마렉에게 용무가 있었다. 윌리엄이 요청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는 고개마저 숙이며 간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성물을 사용할 수가 있다는 것은, 신의 의지를 가지신 분이라고 예전부터 저희 교리에 나와 있었습니다. 때문에 성녀님을 찾기 위해서는 성물의 선택을 받은 선지자님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선지자님.”
그는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마렉이 성물의 선택을 받았다느니, 선지자라느니, 그런 것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오랜 세월, 천상의 로브가 사라져 있었기에 알려지지 못한 사실일지도 모르지.’
빛 또는 신성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착용할 수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조작된 정보일 터였다. 천상의 로브를 사용한 적이 있는 이들의 위상을 위하여 그렇게 교리가 만들어 졌을지도 몰랐다.
‘믿음이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군.’
아무려면 어떤가. 그는 마렉에게 단단히 빠져 있었다. 특히나 마렉의 날개를 바라보며 말하는 그의 두 눈에는 강렬한 믿음이 서려 있었다.
“성물이 사용된 흔적을 보건데 아마 언데드의 상태일 때 선택을 받은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진정한 성인의 삶을 살아오셨기에 언데드임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신의 의지를 이어가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열정적인 언변에 마렉은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 또한 어이가 없어서다. 도리어 마렉은 어떻게 하냐고 충렬을 바라보았다. 충렬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려 했다.
그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손해를 입을 것이 뻔히 보이는데, 과연 누가 그런 일에 동참을 하겠는가? 동참한다는 자체가 멍청한 짓임에 틀림이 없었다.
‘저들을 위해 일할 필요는 없지. 굳이 이쪽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야.’
더군다나 신성국 내에서 발생한 내분의 크기는 작지 않은 것 같았다. 성녀라는 존재는 결코 가벼운 존재가 아닐 터였다. 그런데도 그런 성녀를 어떻게 했을 정도라면, 답이 없었다.
‘소수의 인원으로 성녀를 구해내기에는 무척이나 힘겨울 터.’
윌리엄은 신성국 내의 알력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한껏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존재를 찾아왔겠지만,
‘아쉽게도 도움은 줄 수가 없다.’
마렉을 찬양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딱 잘라 거절해야 했다.
‘질질 시간을 끌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충렬은 그 생각을 변경해야 했다. 마렉을 바라보며 말하는 윌리엄의 설명에는 성녀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성녀님께서 사라지신지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분명 어딘가에 드워프들과 함께 구금되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으실…….”
충렬은 그의 설명에 눈이 번뜩였다.
‘뭐? 드워프?’
그 때문일까? 윌리엄의 설명을 중간에 끊었다.
“드워프라고 했습니까?”
성녀가 도대체 왜 드워프들과 함께 구금이 되어 있다는 것인가? 그 이유는 단순했다.
“예. 최근에 발록이라는 존재가 강림한 적이 있었습니다.”
발록이라는 말에 순간 충렬이 뜨끔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자신의 정신계에 발록의 영혼이 존재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짐짓 모르는 척을 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갔다.
“그 발록은 어느 철광산에서 살아가던 드워프들의 마을을 침략하였고 파괴했습니다.”
윌리엄의 말에 충렬은 놀라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바로 이곳으로 도착하기 전, 드워프 족장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설마… 이번에 구출한 드워프들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그 추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발록과 드워프. 그리고 최근에 발생한 일. 그 셋을 합치면 정확한 정보였다.
그래도 충렬은 우선 그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발록은 곧바로 물러났고, 이후 성녀님께서는 그곳을 직접 방문하여 다친 드워프들을 돌보다가 그만……. ”
그 뒷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되었다.
‘돌보던 드워프들과 함께 납치되어 모습을 감추었다는 것이겠지.’
결론은 발록이 벌인 사건을 수습하러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어찌되었거나 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충렬은 결정을 내렸다.
‘이거 도와주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만 드워프들을 찾는 것이 수월할 터였다. 하지만 어딘가로 사라진 성녀와 함께 있을 드워프들을 무슨 수로 찾는다는 것일까. 그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선지자님. 당신께서는 분명 성녀님이 어디에 계시던지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무려 신의 의지를 가지신 분이시니.”
물론 신의 의지 같은 것은 없었다. 그의 믿음에 부합하지 못해서 미안했지만, 아쉽게도 성녀의 위치와 관련해서는 시스템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시스템은 충렬의 마음과 관계없는, 강제 임무임을 알려왔다.
[새로운 임무 ‘성녀와 드워프들’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신은 이 임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임무 내용: 정체를 알 수 없는 섬에 구금된 성녀와 드워프들의 구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군.’
뭐, 어차피 하려고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시스템은 조금 충격적인 소식을 이어서 알려왔다.
[주어진 임무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성녀와 드워프들에게 향하기 전, 성기사들의 틈에 섞인 배반자들을 색출하여 박멸하십시오.]
[그래야 ‘섬’으로 이동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배반자라니, 일단 성기사들을 지칭하는 것을 보면 윌리엄이 배반자는 아님이 확실했다. 오히려 그와 함께 온 성기사들. 그들의 틈에 배반자가 있다는 것이리라.
‘놈들을 찾으라고?’
도대체 어떻게 찾으라는 소리일까.
‘물론 알아서 찾으라는 소리겠지.’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임무를 시작한 이상, 설렁설렁할 생각은 없었다. 임무가 주어졌다면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해야 했다.
“윌리엄, 도움은 드리겠습니다. 다만 지금부터 저희를 믿고 협조해 주십시오. 아니, 그냥 마렉을 믿고 그를 따르십시오.”
충렬의 지적에 마렉이 당황해했다.
[나는 또 왜 팔아넘기…….]
하지만 마렉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사제 윌리엄이 감동했다는 눈빛으로 충렬에게 대답했다. 그는 충렬의 두 손을 꽉 쥐며 말을 이어갔다.
“과연, 선지자님과 함께하는 분이 정의롭지 않을 리가 없지요. 성녀님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어떤 협조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시나 배반자들을 찾는 것이었다. 윌리엄에게도 단단히 일러두었다. 배반자를 먼저 색출할 것이라고.
그는 설마 이곳까지 따라온 이들 중에서 불온한 자들이 있을까도 싶었지만, 마렉이 배반자들을 색출하자고 말하니 곧바로 수긍하며 별다른 반문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말한 바대로 정말 마렉의 말이라면 철석같이 믿어버렸다.
하지만 배반자를 색출하는 작업을 이곳에서 할 수는 없었다.
‘작업은 돌아가서 시작한다.’
우선은 윌리엄을 돌려보내 성기사들과 함께 천천히 따라오라고 했다. 어떻게 배반자들을 색출해야 할지는 가면서 생각해야 했지만,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윌리엄을 보내고, 일행들과 함께 여관으로 돌아가던 아르타디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의외로 배반자를 찾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성기사에서 배반자라고 함은 타락한 자를 일컫는 말일 터. 색출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가 않다.”
아르타디아의 말에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레일리가 입을 열었다.
“무슨 방법이 있는 건가요?”
이곳에는 데프론과 아르타디아를 제외하고서 모두가 지구에서 온 존재였다. 그러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데프론도 평범한 인간에서 언데드가 된 것이니, 제대로 된 정보를 얻으려면 아르타디아의 입을 거쳐야만 알 수가 있었다.
어쨌든 아르타디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들이 딱히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 단지 귀여운 멍멍이가 필요할 뿐이야.”
그러면서 충렬의 두 눈을 직시하는 아르타디아였다. 순간 이해하지 못한 박해일이 반문했다.
[귀여운 멍멍이?]
그러나 곧 금방 이해했다.
[아, 헬 하운드를 말하는 것이로군.]
도대체 헬 하운드는 왜 필요한 것일까. 배반자를 색출하는 작업에 말이다. 아르타디아가 간단히 설명했다.
“지옥의 느낌을 전해오는 유황의 냄새를 맡는다면, 신성의 탈을 쓴 놈들에게 자연히 반응이 올 터. 현재 우리들의 상황에서는 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제일 수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