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사제 윌리엄
***
박해일이 전해 오는 이야기는 간단했다.
[북쪽 산맥에서 정체불명의 무리들을 포착했다. 발견한 무리들은 아주 느리지만 이곳을 향해 꾸준히 오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해일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별것 없었다.
[자르딘과 왕찌엔은 해골 경비병들과 일꾼들을 통솔해 복귀하고 있다. 레일리는 샤오링을 데리고 정황이 어떠하게 흘러가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지.]
해일의 말에 충렬이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정체불명의 무리들이라니. 도대체 누굽니까?”
해일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그 또한 추측할 수가 없어서다.
[잘 모르겠군. 목격하자마자 자리를 벗어났으니까. 하나같이 꺼림칙한 기운과 함께 중무장한 이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꺼림칙한 기운과 함께 중무장한 이들이라…….’
그러나 해일이 알려오는 정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중무장한 그들은 언데드가 아니었다. 사람이었어.]
그렇다면 도전자인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또 아닌 듯했다.
[혹시 도전자일까 추측도 해보았지만, 절대 도전자들은 아니었다. 도전자들이 그렇게 옷을 통일하며 나타날 수는 없겠지.]
해일이 저렇게 말하는 것이라면 틀리지 않을 소리이리라. 하긴, 도전자들이 통일된 복장으로 무리를 이루며 행동하기가 쉽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도전자가 아니라면 지금 떠올릴 수 있는 답은 하나였다.
‘이 세계에서 본래 살아가던 사람들이라도 되는 건가?’
아마도 그럴 확률이 컸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누구인지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일단은 딱히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선은 다른 이들과 함께 레일리가 복귀했을 때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좋으리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해놓아야겠군.’
***
한편 그 시각, 레일리는 샤오링과 함께 북쪽 산맥 깊숙한 어딘가에서 잠복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녀의 앞으로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전원 사람으로 구성된 그 무리의 숫자는 수십 이상이었다. 당장 눈앞의 인원만 보더라도, 하나의 소대 정도는 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의 복장은 모두가 하나같이 통일이 되어 있었다. 두터운 철제 갑옷에 평범한 장검. 그것들로 통일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풍기는 기운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특히나 언데드에게 있어서는 반갑지 않을 정도로 무척이나 꺼림칙했다. 레일리는 멀리서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들의 기운에서는 빛과 관련된 속성이 느껴진다는 것을.
이곳 언데드의 땅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어쨌거나 레일리가 저들을 파악하려고 할 사이, 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복장이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흰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이였는데, 그의 등장에 모두 고개를 숙여 목례함으로 그를 맞이했다.
이어지는 그들의 대화를 들어 보니 저들의 정체를 쉽게 알 수가 있었다.
“윌리엄 사제님. 방향을 어디로 잡으면 됩니까? 저희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형제여.”
로브를 입은 사람은 사제였다. 그는 알겠다고 말한 다음,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잠시 뒤, 눈을 뜬 그는 충렬의 영지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목적지가 그리 멀지 않습니다. 방향이 틀리지 않았으니 이대로 쭉 가면 됩니다.”
레일리는 저들의 모습을 보더니 결론을 내렸다. 이쪽의 잠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상황이었다. 때문에 저들의 대화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사제와 성기사들인 것인가.’
상황을 추측해 본다면 그것이 정답이리라. 거기에 더하여 저들이 어째서 이곳으로 온 것인지 또한 곧 알 수가 있었다. 성기사 하나가 표정에 의문이 가득한 채로 사제에게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윌리엄 사제님. 정말 성물이 이러한 곳에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꺼림칙한 장소에서 성물이 작동을 했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예. 분명합니다. 근처에는 성물이 사용된 흔적이 있습니다. 성스러운 이들에게만 작용한다는 그 성물이 말입니다. 그리 멀리 위치하지는 않았으니, 가서 확인해 보면 될 듯합니다.”
그랬다. 저들이 이곳으로 오는 이유는 성물 때문이었다. 도대체 저들이 말하는 성물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레일리에게 의문을 풀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자리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누구냐!”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는 성기사 하나가 주변을 경계하다가 언데드의 기운을 느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레일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직 완전히 발각당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인 레일리는 옆에 동행한 샤오링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그러면서 자세를 낮추며 이동하는 레일리. 그녀의 뒤를 샤오링이 조용히 따라갔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을 때, 레일리는 영지의 여관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레일리와 샤오링을 마지막으로 여관에는 모두가 도착해 있었다.
덕분에 여관의 식당은 잠시 회의실로 변했다. 충렬을 시작으로 데프론, 아르타디아, 마렉. 그리고 박해일과 왕찌엔, 자르딘까지. 자아가 존재하는 이들은 모두 모였던 것이다.
레일리는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보았던 것과 들었던 것들을 모조리 전달했다. 누락한 정보는 없었다.
한창 그녀의 설명이 이어지고 잠시 뒤, 그녀에게서 정보를 전달받은 충렬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성물의 흔적을 쫓아왔다라…….”
자신의 영지에서 성물과 관련된 것이 사용된 적이 있었던가? 순간 의아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의아함에 인상을 찌푸릴 때, 아르타디아가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이로군.”
그런 것이라니. 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들은 천상의 로브를 찾기 위하여 온 것이 분명하다.”
천상의 로브라고? 하기야 신성과 관련된 아이템이라면 여기에선 그것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천상의 로브를 사용한 흔적을 따라 이곳에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아르타디아. 천상의 로브는 당신이 제법 예전에 보관했던 아이템이 아닙니까?”
충렬이 알기로는 아르타디아의 레어가 멀쩡했을 때는 아주 예전이었다. 드래곤 박스로 그때의 아이템을 얻은 것이었기에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다.
“그렇지. 적어도 천년 이상도 전의 이야기이지.”
너무나 오래된 기간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아이템을 찾아오려고 할 줄은 몰랐다. 설마 천년 이상이 지났는데 찾으러 오려고 하다니. 물론 그 동안은 로브가 사용되지 않았기에 찾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마렉이 사용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아이템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충렬과 아르타디아가 대화를 이어갈 무렵, 둘의 대화를 듣던 마렉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야. 그럼 내가 입은 로브를 돌려줘야 한다는 소리야?]
마렉의 말에 아르타디아가 피식 웃었다.
“소멸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벗지 못하는 아이템일 텐데? 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인가?”
그 말은 돌려주고 싶다면 소멸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어찌되었든지 그 말을 끝으로 아르타디아는 손을 풀기 시작했다. 말만 한다면 당장에라도 그렇게 해주겠다는 듯이 말이다.
당연히 그것은 아르타디아의 장난이었다. 하지만 마렉은 깜짝 놀라며 반응했다. 그녀의 농담에 마렉이 손을 내저으며 진저리를 쳤던 것이다.
[서, 설마. 난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둘의 모습에 무거웠던 분위기가 살짝 풀릴 수 있었다.
어쨌거나 그들이 성물의 흔적을 찾아 왔다면 천상의 로브가 확실했다. 그 외에 충렬에게는 신성 속성과 관련된 아이템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 하나 있기는 하지. 아리엘의 깃털이 있으니까.’
그러나 아리엘의 깃털은 사용한 적도 없었고 성물도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얼마 있지 않으면 신성 사제와 성기사들이 당도하게 될 터였다.
‘어떻게 하긴. 답은 정해져 있다.’
만약 그들이 천상의 로브를 찾기 위해서 방문한 것이라면, 이쪽은 빼앗기지 않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로브의 주인은 진즉에 바뀌었다. 마음을 정한 충렬이 입을 열었다.
“우선은 밖으로 나가 저들을 맞이하는 게 좋겠습니다. 만약 싸우게 된다면 여관에 피해가 발생할 테니. 산맥의 입구 근처에서 저들을 맞이하죠.”
여관에서 지금 나선다면, 저들도 그때쯤에는 산맥의 입구에 도착할 터였다. 충렬의 의견에 다른 이들도 모두 동의했다. 특히 왕찌엔은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함세. 최대한 영지에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겠구먼.]
***
긴장을 유지하며 대비하는 충렬의 무리들과는 달리, 파견된 사제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윌리엄 사제. 그는 성물을 찾기 위해 파견된 담당 사제였다. 찾아야 하는 성물은 오래전, 신성 제국에서 사라진 성물이었다. 윌리엄은 그 성물을 이번에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그렇지만 회수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찾는다고 말을 했지만 실상 그 의미는 달랐다. 발견해야 한다는 뜻에 가까운 의미였다.
‘분명 성물은 이미 주인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성물은 빼앗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긋나는 행위였다. 교리에는 성물의 선택을 받은 이가 그 무슨 행동을 하든지 상관을 하지 말고, 그 뜻을 존중하라고 쓰여 있었다. 어째서 언데드들이 득실거리는 장소에서 성물이 작동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윌리엄은 최대한 의구심을 접은 채로 자신이 해야 할 일만을 상기했다.
‘신께서 하시는 일을 어찌 감히 내가 이해하려 드는가. 그저 순응하여 내가 해야 할 일만을 수행하자.’
그렇게 윌리엄이 성물을 찾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확히는 성물의 선택을 받은 그 주인을 찾으려는 이유였다. 예전에는 신성 제국이라는 위용을 떨쳤지만, 지금은 평범한 왕국 수준도 아니게 될 정도로 국운이 기운 상황이었다. 신성 제국이라는 말도 교리에서나 전해져오는 것일 뿐. 실상은 망국의 수준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성물의 주인이 과연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냐는 것이었다. 윌리엄은 도움 요청을 위해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일 뿐. 만약 그가 거절한다면 빈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혹여 일이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 또한 신의 뜻이리라.
하지만 윌리엄은 간절했다.
‘제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재 도움을 요청할 존재는 성물의 주인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교리에 기록된 성물의 정보를 보자면 성물은 절대 악한 이에게 작용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었다. 언데드의 땅에서 사용된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윌리엄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렇게 마음속 한편에 불안감을 간직한 채로, 그는 성기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함께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