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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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옷의 폭파에 휩쓸린 발록은 멀쩡하지 못했다.
추락하여 땅과 충돌한 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자 드러나는 녀석의 전신은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갈가리 찢긴 상처로부터는 피가 쉴 새 없이 흘러 나왔으며, 놈의 날개에 있던 피막은 완전히 찢어져 너덜거렸다. 상대를 얕잡아 보면서 온갖 거드름은 혼자서 다 피우더니, 정작 스스로는 막대한 피해를 입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발록은 정신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다. 날개가 찢어져 추락을 했을 뿐. 녀석은 다시 일어섰다.
동시에 이를 바드득 갈며 분노하는 발록. 특히 녀석의 시선은 드워프들에게 가 있었다.
“네놈들이 감히……!”
그러나 발록은 드워프들에게 신경을 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느새 충렬과 그 무리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생각에 발록이 움직였다. 일단은 충렬 등과의 거리가 조금 되었기에 재차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미 불량품이던 갑옷은 터져 버렸다. 그래서 발록은 이번에야 말로 자신의 스킬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파괴 광……!”
그러나 발록은 스킬을 또다시 사용하지 못했다. 왜냐고? 발록이 스킬을 사용하려는 그때, 마렉의 스킬이 발록에게 먼저 사용되어서다.
[이거나 한번 잡솨봐. 혼돈의 징벌!]
마렉이 스킬을 사용하자 일순간 발록의 위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번쩍인 것은 무척이나 탁한 회색이었는데, 그것은 순식간에 발록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콰과과광!
혼돈의 징벌의 색이 회색인 이유는 간단했다. 빛과 어둠이 섞이다 보니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빛의 속성이 포함되어 있던 마렉의 징벌은, 발록에게 평범하지 않은 피해를 주었다. 녀석은 징벌을 맞자마자 잠시 경직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는 덤이었다.
“크아악!”
더군다나 징벌의 효과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뜻밖의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혼돈의 징벌에 속해 있던 빛의 속성이, 발록이 가지고 있던 마력을 불태웁니다.]
[마력이 불타면서 10초간 발록이 스킬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의외의 효과였다. 혼돈의 징벌이 발록의 마력을 불태우다니. 덕분에 녀석은 10초 동안 파괴 광선을 사용하지 못했다.
‘지금 최대한 접근을 해야 한다!’
지근거리까지 도착하면 녀석도 앞으로는 파괴 광선을 사용하기가 쉽지는 않을 터였다. 녀석의 덩치에 비하여 이쪽은 월등히 작았으니 말이다.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맞추기가 쉽지는 않으리라.
‘더군다나 내가 알기로는 녀석에게 파괴 광선 외의 공격 스킬은 없다. 정신 지배에 대해서만 주의를 하면 되겠지.’
물론 발록의 거대한 몸 자체가 엄청난 흉기였다.
‘하지만 파괴 광선이라는 스킬에 당하는 것보다 몸싸움으로 가는 것이 훨씬 나을 터.’
당연한 소리였다. 때문에 충렬도 달려가며 마렉에게 외쳤다. 이제 근접으로 붙으면 따로 명령을 내리기 힘들 정도로 바빠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마렉! 최대한 데프론을 보조해 주십시오!”
충렬의 부탁에 마렉이 답했다.
[알겠어. 자, 데프론. 가서 한번 날뛰어 보라고. 혼돈의 축복!]
마렉이 스킬을 사용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마렉이 데프론에게 혼돈의 축복을 사용하였습니다.]
[데프론이 장착한 무기 ‘중독된 튼튼한 장검’의 속성이 ‘혼돈’ 속성으로 바뀝니다.]
마렉의 버프를 받으며 데프론이 선두를 달렸다. 파괴 광선에 당하지 않기 위해 아르타디아 또한 일부러 다크 엘프의 모습으로 데프론의 옆에서 함께했다. 그 뒤를 충렬과 제레미가, 마렉은 날개를 이용해 날아가며 발록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혼돈의 징벌에 의하여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발록이 크게 분노했다.
“이 벌레만도 못한 것들이 귀찮게 하는구나!”
겨우 10초였다. 10초 후에는 녀석의 마력이 다시 돌아올 터였다. 그러나 열이 받을 대로 받은 녀석은 스킬을 사용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의 몸으로 직접 충렬의 무리를 으깨 버려야 분이 풀린다는 듯,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발록도 마찬가지로 달려오자 땅이 진동했다. 도대체 얼마나 크게 진동한 것인지 순간 달려가다가 발을 헛디딜 정도였다.
쿠웅! 쿠웅! 쿠웅!
하지만 녀석이 마주 달려와 준다면 고마웠다. 몸싸움으로 가게 되는 순간부터는 이쪽의 승산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충렬의 무리들과 상처를 입은 발록이 충돌하기 전, 먼저 스킬을 사용한 존재는 데프론이었다.
[<듀라한 데프론>이 해골 보병을 소환합니다.]
[해골 보병 10마리가 발록을 공격하기 위해 일어섭니다.]
그렇게 일시에 등장하는 해골 보병 10마리. 녀석들이 데프론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데프론이 사용한 스킬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듀라한 데프론>이 다크 웨펀을 활성화시킵니다.]
[데프론에게 혼돈의 축복이 적용 중입니다.]
[다크 웨펀이 혼돈의 영향을 받아 강화됩니다.]
그 소리를 끝으로 데프론의 다크 오러가 한층 더 길게 늘어났다. 거기에 더하여 완전히 솟아난 오러의 근처로는 탁한 회색의 기운이 함께 어우러졌다.
데프론은 강화된 다크 웨펀으로 발록에게 짓쳐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거인을 두고 달려드는 전사와 같은 모습이었다.
발록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데프론을 마주해 주며 비웃었다.
“흥, 겨우 언데드 따위가.”
어지간히도 전투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일까? 녀석은 곧이어 들이쳐 오는 데프론의 다크 웨펀에도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다리를 뻗어갔다. 겨우 무릎까지 오는 수준의 데프론을 차버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데프론이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무언가를 해보지도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데프론은 전혀 겁을 내지 않았다. 당장에 거대한 발록의 다리가 덮쳐왔지만, 데프론은 손에서 검을 놓지 않으며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발록의 정강이가 데프론을 적중하기 직전, 데프론이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발록의 다리가 그대로 베였던 것이다.
서걱.
그 소리와 함께 녀석의 한쪽 다리가 순식간에 잘려갔다. 물론 무릎 밑을 잘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녀석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수가 있었다. 신체의 한 부분이 잘려 나가자 발록이 비명을 질렀다.
“크, 크아아악! 이게 무슨……!”
솔직히 겁도 없이 데프론을 차려고 하기에 무언가 있는 줄로 알았다. 그렇지만 녀석은 딱히 무언가가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게 뭐냐는 발록의 물음에, 데프론이 답해주었다. 놈의 나머지 한쪽 다리를 베어주는 것으로 말이다.
데프론은 아직 베이지 않은 발록의 나머지 다리로 가더니, 또다시 검을 그었다. 그러자 나머지 다리도 마찬가지로 너무나 쉽게 잘려갔다.
서걱.
발록에게 저항한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미 녀석의 머리는 엄청난 고통으로 인하여 새하얗게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잘리기만 했다면 녀석도 이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었다. 그러나 혼돈의 축복이 발록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주었다.
어쨌거나 몸을 지탱할 두 다리가 무력화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발록은 무언가를 해보지도 못하고 쓰러져야했다. 놈의 몸이 쓰러지자 바닥이 크게 울렸다.
쿠우우웅!
너무나 의외의 전개에 충렬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달려가던 동작도 어느새 멈추어진 후였다.
‘설마 이렇게 간단히 무너진다고?’
뭐, 이렇게 당해준다면 충렬의 입장에서야 나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물론 이는 충렬에게 운이 따라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발록의 날개가 멀쩡했다면 녀석을 이렇게까지 만들기는 불가능에 가까웠을 터였다. 때마침 적절한 드워프들의 작품 덕분에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지, 원래라면 발록에게 검을 쑤시기 위해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을 것이었다.
어찌되었든지 결과는 흡족할 만했다. 결과만 좋다면 과정 따위야 아무래도 괜찮았다.
그렇게 데프론은 쓰러진 발록을 향해 놈의 수급을 단번에 베어버리려 이동했다.
해골 보병들은 소환이 되었지만 딱히 할 것도 없었다. 데프론이 탱크처럼 무지막지하게 앞으로 나아가니 딱히 해야 할 일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발록은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서는 발록이었다. 잘려진 다리로 인해 완전히 일어설 수는 없었다. 때문에 녀석은 대충 상체만 일으켰다.
녀석이 상체를 일으킨 이유는 단순했다.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발록이 사용하려는 스킬은 파괴 광선이 아니었다.
“크윽… 내가 설마 이 정도까지 당하게 되다니…….”
녀석이 사용하려는 스킬은 바로 정신 지배였다.
“정신 지배!”
발록이 외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발록이 데프론에게 정신 지배를 사용합니다.]
설마 데프론이 정신 지배에 당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매우 위험했다. 적으로 돌변하게 된다면 상황이 매우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데프론이 정신 지배에 당하는 일은 없었다.
[데프론이 소유한 패시브 스킬 ‘절대적 충성’으로 인하여 발록의 ‘정신 지배’에 저항합니다.]
[충렬을 향한 한결같은 데프론의 마음에 발록의 지배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데프론이 정신 지배에 당하지 않자 발록이 당황했다.
“이… 이런……!”
발록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데프론은 흉흉한 안광을 번뜩이며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내가 모시는 분께 평생을 바치기로 한 몸이다. 어디서 그런 간악한 술수 따위를 부리느냐!]
덩치는 작았지만 데프론이 발록의 기세를 압도했다. 이제는 포식자에서 사냥감으로 전락한 발록이 당황하며 다른 존재를 바라보았다. 놈은 데프론의 검이 자신의 몸을 베려 하기 전에, 이번에는 아르타디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 정신 지배!”
그러나 드래곤의 정신을 가진 아르타디아가 당할 리는 없었다.
[아르타디아의 강한 정신력이 발록의 정신 지배에 저항합니다.]
평상시였다면 발록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아르타디아가 정신 지배에 쉬이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녀석의 마음은 조급했다. 그러한 탓에 닥치는 대로 정신 지배를 걸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대상을 잘못 선택했던 덕분에, 그 사이 놈은 데프론의 검에 재차 당해야 했다. 발록의 상체로 점프한 데프론이, 녀석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수급까지 베기에는 너무 높았기에 심장을 찌르는 것이 최선이었다.
푸욱!
역시나, 다크 오러는 어렵지 않게 발록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발록의 목숨은 질겼다. 놈은 심장이 꿰뚫렸음에도 죽지 않았던 것이다.
“쿨럭!”
피를 한 움큼 토해내며 오히려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는 발록이었다. 녀석의 시야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렉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은 끈질기게 정신 지배 스킬을 계속해서 사용해 나갔다. 마치 스킬만 성공시킨다면 부상 따위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보였다. 그렇게 이번 대상은 마렉이었다.
“정신… 지배……!”
그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마렉은 혼돈의 존재입니다. 혼돈의 힘에 속한 빛의 힘이, 발록의 스킬로부터 발생하는 간섭을 불태웁니다.]
[마렉이 발록의 정신 지배에 저항하였습니다.]
하나같이 정신 지배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 발록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러나 표정이 어두워질 때가 아니었다. 녀석의 스킬이 또다시 실패하는 동안, 데프론이 발록의 어깨로 올라탔기 때문이다. 이제 1초만 주어진다면 발록의 수급이 베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순간 발록의 눈에 두 존재가 보였다. 바로 충렬과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제레미였다. 지금까지 정신 지배의 실패를 맛보았던 발록은 언데드에게 스킬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은 인간인 충렬에게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힘을 짜낸 발록이 충렬을 바라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크으윽… 정신 지배!”
그러나 그것은 발록의 최대 실수였다. 발록의 정신 지배는 영혼의 상태로 대상의 정신에 들어가 상대의 몸을 장악하는 수법이었다. 하지만 다른 도전자들과는 달리 충렬에게는 하나의 패시브 스킬이 있었다. 그리고 그 패시브 스킬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만들었다.
[패시브 스킬, 견고한 정신이 작동합니다.]
[당신의 정신을 차지하려는 발록의 영혼을, 당신의 정신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영혼이 빠져나간 발록의 몸뚱이가 완전히 무너졌다. 데프론이 놈의 목을 베어버리기도 전이었다.
쿠웅!
결국 녀석의 몸이 쓰러지자 시스템이 충렬에게 알려왔다.
[당신은 앞으로 원할 때, 당신의 정신에서 발록과 전투를 할 수가 있습니다.]
[당신의 정신으로 들어온 발록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발록의 힘을 흡수하고, 정신계 개척도를 월등히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당신의 육체는 발록에게 장악당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