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발록
***
대저택에 발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충렬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단지 대저택을 제외하고 성채 내부에 위치한 장소란 장소는 모조리 들쑤시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에 해골용으로 변했던 아르타디아는 이후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렬의 무리가 사냥하는 속도는 빨랐기 때문이다.
가고일들은 하나같이 높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몬스터였다. 돌덩이 수준의 피부는 막강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상대가 좋지 않았다. 아무리 방어력이 뛰어난다고 한들, 충렬의 언데드들에게는 보기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다.
[<듀라한 데프론>이 다크 웨펀으로 가고일의 수급을 베었습니다.]
[5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혼돈의 천사 마렉>이 가고일을 향해 혼돈의 징벌을 사용합니다.]
[빛과 어둠의 힘이 어우러진 혼돈의 징벌이 하늘에서 떨어져 가고일에게 내리꽂힙니다.]
[징벌을 맞은 가고일이 몸을 부르르 떨며 즉사합니다.]
[5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데프론의 경우에는 다크 웨펀으로 가고일들의 수급을 너무나 간단히 베어 넘겼다. 마렉의 경우도 빛의 속성을 머금은 공격 때문에 수월하게 가고일을 처치했다.
제레미의 경우엔 사냥이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인분은 했다. 녀석은 방패병이라는 직업이 무색하게 공격적이었다. 죽음의 방패를 이용해 방어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방패를 이용해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던 것이다.
지금 보이는 전투도 그랬다.
가고일이 큼지막한 소드를 찍어 내려왔지만, 제레미는 가볍게 옆으로 피해내었다. 재빠른 몸놀림으로 가고일의 소드를 피해낸 녀석은 방패에 체중을 실어 가고일의 몸통을 후려쳤다. 그러자 가고일의 몸통에 죽음의 방패가 거세게 부딪쳤다.
파앙!
그 결과, 가고일이 살짝 밀리게 되었다. 아무리 해골의 몸으로 부딪쳐 온다지만 거세게 부딪쳐오니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고일을 향해 제레미가 자세를 낮추었다. 그러면서 가고일의 하반신을 노리며 매섭게 달려들었다.
펑!
제레미가 방패로 놈의 다리를 치면서 밀어내자 놈의 몸이 기우뚱거렸다.
이미 한 차례 밀려난 가고일은 자세를 정비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제레미의 연격에 당해야만 했다.
그 때문일까? 하반신을 내어준 가고일은 결국 넘어지기 일보직전이 되었고, 제레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제레미가 낮추었던 자세를 그대로 올려가며 가고일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그러자 그나마 넘어지지 않고 버텨내던 가고일의 몸뚱이가, 뒤쪽으로 넘어졌다.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던 가고일이 넘어지자 바닥이 크게 울렸다.
쿠웅!
그런 녀석의 위로 제레미가 올라탔다. 그러더니 죽음의 방패로 쉴 새 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녀석의 면상을 향해서 말이다. 방패로 후려치자 방패가 튕겨가는 느낌은 있었지만 제레미는 멈추지 않았다.
파앙!
탕!
타앙!
팡!
파앙! 팡! 팡! 파방!
끝없이 몰아치는 방패의 타격에 가고일이 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키아악!”
그만 공격하라고 괴성을 질러 보았지만 제레미가 멈출 리는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시스템이 알려왔다.
[가고일의 머리가 곤죽이 되며 사망합니다.]
[500카르마를 습득하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제레미까지. 충렬의 모든 무리가 활발히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가고일이 나타날 때마다 놈들의 씨를 말리는 중이었던 것이다.
***
사냥을 얼마나 했을까? 엄청나게 많은 가고일들을 쓸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충렬은 잠시 사냥을 멈추었다.
이곳에서 사망한 도전자의 수는 수백 단위를 넘어간 것이 분명했다. 성채 내에는 정말로 끝도 없는 가고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덕분에 막대한 카르마를 벌어갈 수가 있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모였지?’
충렬은 상태창을 열어 확인해 보았다.
[보유 카르마: 140,000]
레벨을 12로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모였다. 혹은 스킬 하나의 랭크를 상승시킬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해골 소환의 경우에는 더 많은 카르마가 필요했기에 아직 올릴 수가 없었다.
만약 스킬의 랭크를 올린다면, 지금 상승시킬 수 있는 스킬은 라이프 드레인과 시체 폭파. 그 2개였다. 충렬은 레벨보다는 우선 스킬의 랭크부터 올리기로 했다.
‘일단 스킬의 랭크를 올리는 것이 더 좋겠지.’
만약 스킬의 랭크를 9랭크로 만든다면, 해골 소환 때처럼 새로운 기능이 생겨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렇다면 당장에 먼저 선택할 것은 라이프 드레인이었다.
‘이제는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화력은 충분한 상황이다.’
때문에 시체 폭파는 나중에 올리기로 했다. 지금은 나서기보다는 스스로의 생존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다.
‘그러니 먼저 랭크를 상승시켜야 할 스킬은 라이프 드레인이겠지.’
마음을 먹은 충렬이 입을 열었다.
“시스템, 라이프 드레인의 랭크를 올린다.”
충렬의 말에 시스템이 답했다.
[120,000카르마를 소모하였습니다.]
[라이프 드레인의 스킬 랭크가 9랭크로 상승합니다.]
그렇게 라이프 드레인의 랭크를 상승시키자, 예상대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새롭게 추가된 기능은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2가지의 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라이프 드레인의 적용 가능한 대상이 2명으로 늘어납니다.]
[라이프 드레인에 ‘자동화’ 기능이 추가됩니다.]
[자동화: 적으로 인식한 존재가 라이프 드레인의 적용이 가능한 반경 안에 위치하면, 스킬이 자동적으로 대상에게 사용된다.]
이제부터 라이프 드레인을 한번에 2명에게 사용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따로 스킬명을 외칠 필요도 없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거리만 내어줘도, 이제는 알아서 스킬이 적용되었으니 말이다.
‘나쁘지 않은데?’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스킬에 자동화 기능이 추가되었기 때문일까? A랭크가 되면서 생겨났던 재사용 대기 시간이 9랭크가 되면서 다시금 사라졌다.
[라이프 드레인에 적용되어 있던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사라집니다.]
다른 스킬들은 무조건 재사용 대기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라이프 드레인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알고 보면 엄청난 스킬이었던 것인가.’
아마 그럴지도 몰랐다. 이제는 치명적인 일격만 조심하면 맨몸으로 적들에게 둘러싸여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거나 충렬은 바뀐 라이프 드레인의 내용을 살폈다.
[라이프 드레인 - 9랭크: 적으로 인식한 대상의 생명력을 자동적으로 갈취한다. 동시에 최대 둘까지 적용이 가능하다. 단, 대상과의 거리가 6.5m를 초과하면 사용할 수 없다. 거칠게 움직여도 대상과의 거리가 일정하게 유지가 된다면 스킬이 취소되지 않는다(8랭크까지 170,000카르마 필요).]
그렇게 스킬의 랭크를 올리고 살필 때였다. 아르타디아가 충렬에게 말했다.
“발록이 움직였다. 놈의 기운이 어딘가로 이동하는군.”
발록이 움직였다고?
‘대저택에 가만히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그건 아니었나 보다.
마침 시스템도 알려왔다.
[이전에 어떤 도전자에 의해 심각한 피해를 입어본 적이 있던 발록은 방어구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잠자고 있던 발록이 잠에서 깨어나 대장간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잠시 뒤, 발록이 새로운 방어구를 착용합니다.]
‘대장간이라.’
그러고 보니 인근에 대장간이라 표시된 장소가 있었다. 대저택보다는 가까운 거리였다. 물론 이곳에서부터 뛰어서 가도 20분 이상은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그래도 일단은 그곳으로 가야겠지.’
만약 놈이 방어구를 착용한다면 상대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질지도 몰랐다. 여기서 하염없이 가고일들을 사냥할 때가 아니었다.
‘웬만한 장소에 있는 가고일들은 대부분 처치했다.’
우선은 발록이 새로운 방어구를 착용하기 전에 녀석을 마중해 주어야 할 듯했다.
‘그나저나 시간이 간당간당하겠군.’
빠르게 이동하지 않으면 발록보다 늦게 대장간에 도착할 것 같았다. 헬 하운드에 탑승하여 이동해도 되지만 그렇게 하면 모두를 태울 수가 없었다.
만약 소수로 가서 발록의 앞에서 재차 소환 스킬을 사용한다고 해도, 재사용 대기 시간 때문에 모두를 소환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동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고? 아르타디아.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타디아가 본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다시금 본 드래곤으로 변한 아르타디아. 그녀가 충렬을 포함한 모든 언데드들에게 말했다. 본 드래곤이 된 그녀의 음성이 모두의 정신에 울렸다.
[빨리 타라. 놈을 상대하기가 까다로워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
충렬과 무리들이 해골용으로 변한 아르타디아를 타고 빠르게 날아갈 무렵이었다. 아쉽게도 발록은 이미 대장간에 도착해 새로 장만한 방어구를 착용한 후였다.
대략 7미터에서 8미터 정도는 되는 덩치를 가진 녀석은 온몸이 검은색인 짐승의 모습이었다. 한 마리의 거대한 짐승을 연상시키는 녀석의 이마에는 황소들이 가질 만한 큰 뿔이 한 쌍 돋아나 있었다.
그렇게 생긴 녀석은 드워프들이 만든 갑옷이 마음에 든다는 듯, 크게 미소를 지었다.
“크크큭. 역시 드워프의 솜씨인가? 아주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녀석의 앞에 놓인 드워프들의 표정은 정작 어두웠다.
“아직 다 만들지 못했는데…….”
그랬다. 저 갑옷은 미완성품이었다. 그런데 하필 발록이 어디로 갈 일이 있었는지, 미리 착용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만족하고말고. 손님들이 찾아와서 말이야. 깔끔하게 입고 마중을 해주어야지. 흐흐.”
발록은 드워프들과 약속한 것이 있었다. 갑옷을 다 만들면 그들을 풀어주기로. 물론 살려서 보내준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것을 드워프들도 알고 있었다. 갑옷을 제대로 만들어도 놈의 손아귀에서 멀쩡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껏 계획하지 않았던가. 죽을 때 죽더라도 놈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그 계획이 반 정도는 실패했다.
특히 드워프 족장은 속으로 분노를 삭여야 했다.
‘제기랄.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그랬다면 몰래 숨기고 있던 폭파의 룬을 발록의 방어구에 제대로 적용할 수가 있었을 터였다. 그렇지만 갑자기 녀석이 갑옷을 내어놓으라고 나타나는 바람에 룬을 제대로 적용할 수가 없었다.
코앞에서 발록의 이목을 피해 룬을 적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대충이라도 적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어쨌거나 발록은 착용한 방어구에 만족하여 대장간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녀석은 대장간에서 떠나기 전, 드워프들의 족쇄를 풀어주었다.
“아 참, 약속은 지켜야지. 내가 또 약속은 정말 잘 지킨다니까?”
그러면서 드워프들의 족쇄를 풀어주는 발록이었다. 놈의 손짓 한 번에 드워프들의 이동을 제한했던 족쇄가 단번에 풀렸다.
철커덕.
철컥.
하지만 놈이 족쇄를 풀어주는 이유는 간단했다.
족쇄를 풀어도 너희는 갈 곳이 없다. 만약 도망친다고 해도 잡을 자신이 있다. 라는 과시였다.
당연히 이를 알고 있던 드워프는 이를 바드득 갈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더러워도 말이다.
‘젠장.’
그렇게 드워프들의 족쇄를 풀어준 발록이,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등 뒤에 박쥐와 같은 거대한 날개를 펴더니 하늘을 날기 시작한 것이다. 놈이 이동하기 시작하자 드워프 족장도 살아남은 부족원 둘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은 빨리 놈의 뒤를 쫓아가자.”
그러자 부족원 하나가 답했다.
“설마 손님이라는 작자들을 도울 생각이유?”
“당연한 것을 왜 물어? 발록이 마중 나간 정도라면 이번에도 제법 강한 인간이 방문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곳에서 탈출하려면 인간을 돕는 방법 밖에 없어.”
그러면서 즉시 따라갈 준비를 하는 드워프 족장이었다. 그는 방금까지 작업하던 대장장이 망치를 손에 들고 부족원 둘에게 말했다.
“뭐 하고 있냐. 빨리 연장 챙기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