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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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상과 같았던 가고일의 겉면. 그곳에서 생겨난 돌가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고일의 피부가 본래대로 돌아오며 녀석들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석상의 모습에서 벗어난 녀석들은 진한 회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놈들의 덩치는 대략 2미터 정도였다. 그런 녀석들이 무너진 건물의 담벼락의 위에서, 혹은 지붕 위에서의 뛰어내리자 땅이 울렸다.
쿠웅.
쿵.
쿠웅. 쿠웅. 쿠웅. 쿵.
마치 공사장에서 무거운 물체를 연달아 떨어뜨린 것처럼, 가고일들이 내려서자 땅이 흔들렸던 것이다. 가고일은 깨어나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충렬과 언데드들을 위협했다.
“캬아아악!”
“키아악!”
그렇게 주변에 보이는 가고일의 숫자만 해도 대충 20에서 30정도는 되어보였다. 그렇지만 다가오는 수는 그것보다 많았다.
[인근에 있는 40마리의 가고일이 당신을 향해 접근합니다.]
겨우 인근에 위치한 가고일들의 숫자만 알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숫자가 40마리나 된다고?’
만약 스킬의 랭크를 A랭크 이상으로 올리지 못한 도전자라면 여기가 그의 무덤이 될 것이었다. 가고일을 한 마리 잡는다고 해도 지쳐 버릴 테니 말이다. 물론 그 이상이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이 많은 녀석들을 상대하기는 쉽지가 않으리라.
하지만 충렬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크로맨서의 초기 시절엔 힘들게 뛰어다녀야 했다. 함께하는 언데드가 많지 않아서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충렬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신해서 전투를 벌여줄 언데드들은 넘쳐났다.
당장의 상황에서도 다가오는 가고일들을 향해 반응한 것은 아르타디아였다. 그녀는 다른 네임드들이 가고일들을 상대하기도 전에 행동했다. 다시금 원래의 커다란 덩치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르타디아가 ‘다크 엘프’의 모습에서 ‘본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주변으로 일순간 검은빛이 번쩍였고, 그녀는 그 빛에 휩싸인 채로 점점 크기를 불려갔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본 드래곤의 위용을 드러내는 아르타디아. 그녀가 본 드래곤이 되자 커다란 덩치로 보였던 가고일들도 코끼리 앞에 선 바퀴벌레로 보일 뿐이었다.
본 드래곤으로 변한 그녀는 가장 먼저 스킬을 사용했다. 드래곤 피어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때문에 그녀가 사용한 것은 그 외의 공격 마법인 ‘아이스 스파이크’였다.
뼈만 남게 된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말하자 정신으로 음성이 전달되었다.
[아이스 스파이크.]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주변의 땅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쩌적!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적!
그런데 얼어가는 땅의 반경이 상상 이상이었다. 주변에 다가오는 가고일들이 위치한 장소를 모조리 포함할 정도로, 엄청난 지역을 얼음의 밭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자신의 발밑에 위치한 땅이 얼어붙자 가고일들이 놀라했다.
“키엑?”
“키아악?”
하지만 놈들이 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는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잠시 뒤.
얼어버린 땅에서 얼음으로 만들어진 꼬챙이들이 일시에 솟아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솟아오른 꼬챙이들은 주변에서 접근하려던 가고일 40마리를 단번에 꿰뚫었다.
푸슉!
푸욱!
푸슈슉!
푹! 푸욱! 푸슉!
푸욱! 푹! 푹! 푸욱! 푹! 푹! 푹! 푹! 푹! 푹! 푸욱!
일시에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육중한 몸이었던 가고일들의 몸이 전부 떠올랐다. 그만큼 얼음 꼬챙이가 난폭하게 솟아올라서다.
더군다나 가고일 한 녀석마다 꼬챙이 하나가 아니었다. 가고일 하나에 꼬챙이가 최소 3개에서 4개 이상은 되었다. 그 때문일까? 몸통과 팔다리가 꿰뚫린 녀석들은 모든 움직임이 봉쇄되었다. 녀석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그만큼 그녀의 아이스 스파이크는 무차별적으로 솟아올랐다. 심지어 가고일이 없는, 빈 땅에서도 솟아오르고 있었다. 만약 녀석들이 자신을 꿰뚫은 꼬챙이에서 벗어난다고 한들, 다른 곳에 발을 디딜 틈은 없었다.
‘엄청나군.’
레일리가 미친 듯한 화력으로 목표 지역을 초토화시킨다면, 아르타디아의 얼음 마법은 마치 시간을 정지시킨 것 같았다. 정말로 시간을 정지시킨다는 것은 아니었다. 움직이는 것들이 온통 꼬챙이에 꿰뚫리니 시간이 멈춘 것 같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마법을 조절한 것인지, 충렬을 포함한 아군에게는 얼음 꼬챙이가 올라오지 않았다. 만약 적아 구분이 없었다면 조금은 골치가 아팠으리라.
‘어쨌거나 끝이다.’
그랬다. 상황은 시작하자마자 종료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르타디아의 스킬 한 번에 40마리의 가고일이 모두 꿰뚫렸고, 그중에서 일부는 즉사했다.
[10마리의 가고일들이 처치되었습니다.]
[총 5,0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즉사한 가고일들만 무려 10마리였다. 죽지 않은 녀석이 30마리였지만 녀석들의 생사도 간당간당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르타디아가 꼬리를 휘둘렀다. 그녀가 꼬리를 휘두르자 묵직한 바람이 일어났다.
후우우우우우웅!
동시에 그녀의 꼬리가 가고일들을 전원 후려쳤다. 꼬챙이에 꿰뚫려 움직이지 못하는 놈들이었다. 때문에 녀석들은 피하지도 못하고 당해야만 했다.
살아남은 가고일을 포함해 죽은 녀석의 시체까지, 모든 가고일들이 그녀의 꼬리에 휩쓸렸다.
퍼벅!
퍽!
퍼버벅!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벅!
그리고 잠시 뒤, 시스템이 알려왔다.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가고일 20마리가 즉사합니다.]
[총 10,000 카르마를 습득하였습니다.]
[영혼 수확자의 반지의 중첩이 3증가합니다.]
꼬리를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20마리가 죽다니. 과연 체급에서부터 차이가 나니 가고일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비록 10마리의 가고일이 아직 죽지 않았지만, 녀석들의 상태도 빈사 직전의 상태였다. 얼음에 꿰뚫렸고 거기에 더하여 묵직한 드래곤의 꼬리에 얻어맞았으니 상태가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30마리라는 가고일을 처치한 아르타디아. 그녀는 다시 폴리모프를 사용해 다크엘프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구경하고 있던 이들을 향해 말했다.
“나머지 10마리는 부탁하지.”
그녀의 말에 마렉이 과장된 몸짓으로 대답했다.
[휴우. 이거 앞으로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야겠는데? 정말 무서운 누님이었구만.]
그나마 좋게 표현해서 누님이라고 말할 뿐. 차마 다른 표현으로 말하지는 못하는 마렉이었다.
***
빈사 직전의 상태에 이른 10마리의 가고일. 녀석들을 처치하는 것은 너무 쉬웠다. 물론 빈사 상태라고 하더라도 녀석들의 피부는 돌처럼 무척이나 단단했다. 그렇지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이다 보니 레벨이 낮은 도전자가 와서 공격해도 죽일 정도였다.
이곳에서 전투력이 제일 약한 제레미가 방패로 때리기만 해도 가고일은 사망했다.
아무리 피부가 돌처럼 단단하다고 한들 소용은 없었다. 바위와 같은 아르타디아의 일격에 가고일들은 으깨진 돌조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단시간에 2만 카르마나 벌게 되었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잠깐 사이에 이런 엄청난 카르마를 벌게 되다니.
‘역시 그녀를 본 드래곤으로 만들기를 잘했다.’
물론 그녀가 가진 스킬의 쿨타임은 무지막지했다. 때문에 다시 사용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처음에 등장한 가고일들을 빠르게 처치한 덕분에, 여유롭게 주변에 자리한 묘비들을 살펴볼 수가 있었다.
‘지금 필요한 정보는 발록의 위치야.’
성채의 입구에서 잠깐의 소란이 있었지만, 녀석이 나타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소리겠지.’
그리고 그 추측은 정확했다. 잠시 뒤, 발록의 근처까지 향한 도전자의 묘비가 보였다.
-발록은 대저택에 위치한다. 미니맵 참고.
그런데 충렬과 달리 다른 도전자들은 파티 규모로 이곳에 파견된 것 같았다.
-균형 잡힌 파티 6인, 1분 만에 전멸. 실화냐?
-저희는 8인으로 왔는데 전멸했습니다. 이거 못 잡음.
-가고일은 어찌어찌 처치했는데 발록은 미친 듯이 강하다.
-파괴 광선에 죽은 사람? 1.
-2
-3
-…….
-32
-많이도 죽었네.
-당연하지. 일반적인 방어 스킬로는 막지도 못하는데.
묘비에는 대부분 발록의 공격 스킬인 파괴 광선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대충 다른 묘비들도 살펴보니, 놈의 두 눈에서는 레이저 같은 것이 나와서 상대를 태워 버리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쪽 묘비에는 의미심장한 도전자들의 글이 적혀 있었다.
-정예로 구성된 3인 파티입니다. 발록 처치 직전까지 갔습니다.
-초반부터 막대한 대미지를 누적시켜 놈을 혼수상태로 몰고 갔는데.
-문제는 놈이 죽으려고 하면 정신 지배 스킬을 사용해서 골치가…….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3인이 작성한 글은 글자 수의 제한으로 인해 더 이상 쓰여 있지 못했다.
어쨌거나 묘비들의 정보를 종합해 본 결과 주의해야 할 것은 파괴 광선과 정신 지배. 그 둘이었다. 그런데 정신 지배에 대한 정보는 더 이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정보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다. 충렬은 혹시나 싶어 옆에 있던 아르타디아에게 물어보았다.
“아르타디아. 혹시, 발록에 대해 아는 것이 있습니까?”
충렬의 물음에 그녀가 답했다.
“아는 것이라…….”
그렇게 말을 이어가는 그녀였다.
***
아르타디아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묘비에 나온 내용과 별다른 것은 없었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 점은 바로 그녀가 정신 지배에 대해서 심드렁한 반응을 내보인다는 것이었다.
“일전에 정신계를 체험해 보았겠지? 그런 식으로 녀석은 남의 정신에 들어가서 그곳을 장악하려 한다.”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정신과 관련된 상태 이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태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서 설명하기가 힘들다만… 놈이 만약 너의 정신계로 방문하게 된다면 그냥 놈을 밟아주면 된다. 너에게서부터 발생한 정신의 주인은 엄연히 너 자신이니까.”
애매한 답변이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그렇게까지 말을 한다면 정말로 별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것도 그녀의 입장에서겠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거나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충렬은 미니맵을 확인했다.
‘대저택에 발록이 있다고 했지.’
이제 대충 놈에 대한 이해를 끝냈으니 이대로 출발하면 될 듯싶었다.
그러나 충렬은 지금 당장 대저택으로 향하지 않을 것이었다.
‘분명 잠깐의 소란이 일어났음에도 발록은 나설 기미도 보이지를 않는다.’
그런데 굳이 녀석을 곧바로 만나러 갈 필요가 있을까? 충렬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일단 가고일부터 모조리 쓸어버리고 간다.’
그랬다. 아직 주인이 정해져 있지 않은 카르마들을 모조리 주워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