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98화 (98/237)

# 98화.

?가고일

***

새롭게 진입한 마계의 지역은 경계 지역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두운 기운이 더욱 농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장소에서 충렬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주변에는 딱히 무언가가 없었다. 다만 전방의 먼 거리에 거대한 성채가 하나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성채가 조금 이상했다. 이곳저곳 파괴되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전방의 부서진 성채에 주시하고 있을 사이, 시스템이 알려왔다.

[이곳은 원래 헬리오스의 인간들이 살아가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발록이라는 마족은 이곳을 침공하여 사람들을 학살하였고.]

[어둠의 기운을 널리 퍼뜨려 오염시킨 후, 주변의 영토를 마계로 가져왔습니다.]

그 말과 함께 시스템이 충렬에게 임무를 주었다.

[당신은 적대적인 목적으로 마계를 방문하였습니다.]

[때문에 그에 걸맞은 임무를 부여하겠습니다.]

[성채에 머물고 있는 발록을 처치하십시오.]

[그리고 이 지역을 정화하십시오.]

[정화에 성공하면 이곳의 땅은 본래 위치하고 있던 장소로 돌아갑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것은 충렬뿐만이 아니었다. 충렬이 소환한 네임드들 또한 들을 수가 있었다. 특히나 본 드래곤이 된 아르타디아. 그녀는 발록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뭐? 발록이라고?”

발록이라는 존재에 겁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적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계로 오자마자 원수 중 하나와 마주하게 되다니. 놈은 나를 이러한 꼴로 만든 주범 중 하나다.”

아르타디아는 알고 있었다. 이전에 해츨링을 납치한 녀석 중에 발록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다른 드래곤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해츨링을 앞장서서 유린한 것도 그 녀석이었다.

마계로 오자마자 녀석이 있는 곳을 방문하게 되다니. 운이 좋았다.

그러나 그녀의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도 동시였다.

아무리 원수 중 하나가 눈앞에 있다고 한들, 상대가 좋지 않아서다.

“내가 원래 힘이 있었다면 녀석 따위는 가볍게 제압할 수가 있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약해진 상태였다. 때문에 걱정이 생기는 것이리라.

그래도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마계로 온 충렬과 그의 언데드들이 있었다. 충렬은 걱정 말라는 듯이 말했다.

“시스템이 괜한 곳에 보내주지는 않았을 겁니다. 상대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되었으니 저희를 이곳으로 보내어주었겠죠.”

충렬의 말을 들은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지금의 전력으로 발록을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그녀도 들었다. 수준에 맞는 마계의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라고. 그러니 녀석을 처치하지 못하지는 않으리라.

“하긴, 그렇겠지.”

어쨌거나 당장의 임무는 별것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성채로 가서 발록을 쓰러뜨리는 것. 그것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럼 가보죠.”

충렬이 먼저 앞장서서 성채를 향해 걸어갔다. 최대한 조용히 접근할 생각이었기에 하운드는 소환하지 않았다.

그런 충렬의 뒤를 데프론과 마렉이 따랐다. 제레미는 달그락거리며 충렬의 앞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이동하는 충렬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아르타디아. 그녀도 이내 움직였다.

***

발록이 점령한 성채. 그 안에 있는 건물들은 모조리 파괴되어 있었다. 완전히 박살이 나버려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거의 모든 건물이 부서진 가운데, 단 두 개의 건물은 부서짐 없이 멀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나는 대장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발록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거대한 대저택이었다.

물론 발록의 덩치로는 고작 인간들이 사용하는 대저택 따위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저택이 무사한 이유는 간단했다. 드넓은 안뜰이 발록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거기서 한창 잠을 청하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마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떤 생명체의 움직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멀쩡한 건물로 보이는 대장간만은 달랐다. 그곳에서는 한창 작업이 진행되는 중이었는지 굴뚝으로부터 연기가 발생했고, 그 주변은 매우 후덥지근했다.

도대체 누가 대장간에서 일을 하고 있던 것일까? 누구인지는 곧 밝혀졌다.

“하, 진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좆같네. 내가 이따위 일이나 하고 있다니.”

대장간에는 한창 욕지거리를 내뱉은 턱수염의 사내가 있었다. 그의 발목엔 족쇄가 채워져 있었고 그것은 사내의 이동 반경을 제한했다.

언뜻 보면 사람처럼 보이는 사내였다. 그런데 그를 사람으로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의 키가 보통 성인 남성의 키에 절반 정도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질 수가 없는 엄청난 근육이 그의 상반신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헐크와 같은 그 근육은 사내가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랬다. 그는 발록에게 납치를 당한 드워프였다.

그리고 대장간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는 그 외에도 몇몇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생김새가 비슷했다. 그 말인 즉, 모두가 똑같은 종족인 드워프라는 소리였다.

서로가 같은 곳에서 납치를 당해 왔는지, 3명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서로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해나갔다.

“그나저나 족장님. 어제 도르킨이 어머니의 품으로 갔습니다.”

한 사내의 말에 한창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던 족장이 목청을 높였다. 생김새는 영락없는 노장이었지만 그의 말투에는 거침이 없었다.

“뭐? 도르킨이? 젠장할. 어쩐지 요즘 비실비실 거리더니. 농땡이 피우는 줄 알았잖아.”

족장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쪽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이가 떠났다는 반증이었다. 어쨌거나 족장의 고함에 부족원이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말했다.

“근데 작업을 다 마쳐도 어차피 저희는 죽을 운명이 아닙니까?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해도 되냐 이 말입니다.”

그의 말에 족장이 화를 내었다.

“야, 이 돌대가리야.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 이대로 그냥 죽을 생각이냐? 그 개새끼를 위한 갑옷을 성심 성의껏 만들란 말이야. 그래야 녀석이 환장하면서 쳐 입을 것이 아니냐.”

방금까지만 해도 일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려놓고, 다른 부족원이 그렇게 말하자 짜증을 내는 그였다. 그의 입은 그냥 투덜거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분명했다.

드워프들의 대화를 들어 보면 발록을 위한 갑옷을 만드는 것 같았다. 마침 대장간의 주변에도 거대한 갑옷의 각종 부위들이 아직 미완성인 채로 거치대에 진열되어 있었다. 물론 미완성이긴 해도 조금만 더 작업하면 완성이 될 터였다. 몇 가지만 더 만든 후에 이어 붙이기만 하면 완성이었으니 말이다.

분명 발록에 의해 납치가 되었고, 녀석을 위한 갑옷을 만드는 중이었다. 그리고 상황을 유추해 보면 갑옷을 다 만들어도 죽을 운명이 확실했다. 심지어 중간에 부족원들도 상당수 죽은 것 같았다.

그런데 족장은 왜 열심히 만들라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내 알 수 있었다.

“흐흐. 이대로 그냥 죽기는 억울하지. 녀석을 위한 전용 갑옷이라. 크.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갑옷이냐?”

그러면서 그는 품속에서 하나의 돌을 꺼내었다. 그가 꺼낸 돌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진 돌이었다.

“크큭. 그 완성된 갑옷에 이 룬만 박으면 우리의 역할은 끝이라 이 말씀이야. 마기에 반응하는 이 폭파의 룬을 박으면 녀석은 곧바로 걸레짝이 되어버릴 테니까.”

그랬다. 이들은 발록에게 온전한 갑옷을 만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족장의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부족원이 대답했다.

“아, 어차피 죽을 건데 그냥 대충대충 만들지. 귀찮게시리.”

부족원의 투정에 족장은 목청을 높였다.

“이놈아! 잘 만들어야 그만큼 마기의 전도율이 뛰어날 것 아니냐! 그래야 제대로 터뜨리지!”

둘의 대화를 듣던 나머지 드워프 하나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에휴, 그만 물어봐. 족장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뭐 별수 있나. 노인네가 마지막으로 하자는데 저승길 선물 하나를 장만해 주는 셈 치자고.”

물론 그의 말에 노인네가 된 족장은 길길이 날뛰었다.

“뭐라고? 이… 이 녀석들이! 설마 나에게 감히 대드는 날이 올 줄이야!”

그들의 모습엔 딱히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오래 알고지낸 사이라는 것이리라. 어쨌거나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그들이었지만, 곧 다가오는 죽음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들었을 뿐. 그들은 모두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자신들의 죽음을 화려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말이다.

***

드워프들이 한창 발록의 갑옷을 다 만들어갈 즈음, 충렬과 네임드들은 성채의 입구에 막 도착한 상황이었다.

을씨년스러운 성채의 분위기가 그런 충렬을 맞이해 주었다.

별다른 거리낌 없이 성채의 입구로 발을 옮긴 충렬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곳은 다른 마족들 없이 발록 하나만 있는 것인가?”

충렬의 궁금증에 아르타디아가 의미모를 말을 내뱉었다.

“다른 마족들은 없다. 하지만 느낌이 이상하군.”

그렇다면 마족들 외에 누군가 있다는 소리일까?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직 답을 내놓지 않았다.

만약 상대할 존재가 없다면 곧장 발록을 처치하는 것 같았다. 중간에 아무런 적들을 마주하지 않고 말이다. 성채의 안으로 들어서도 보이는 것은 딱히 별것 없었다. 파괴된 건물들과 이상한 석상들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마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보았다.

[이봐들. 그런데 저 석상 말이야. 기분이 좀 나쁘지 않아?]

마렉의 말에 충렬도 고개를 끄덕였다. 곳곳에는 돌로 만들어진 괴물의 석상이 즐비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검을 쥐고 있는 괴물들의 석상들. 그 석상들에게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아르타디아가 말했다.

“녀석들은 가고일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정말로 이상하단 말이야. 이렇게 많은 가고일들이 모여 있는 경우는 없을 텐데.”

그랬다. 그녀가 아까 의미 모를 말을 내뱉은 이유는 현재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알 수 있었다. 가고일들의 주변으로 묘비가 가득했으니까. 이곳으로 온 도전자는 충렬뿐만이 아닌 듯했다.

-헉. 애들아 여기서 죽지마라. 진심이다.

-여기서 죽으면 가고일 된다. 아, 이제 곧 기억 사라짐.

-ㅅㅂ. 어떻게 이런 곳에서 주민이 되는 경우가 있지?

-가고일 주민이라니. 나는 지금까지 죽으면 인간으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줄 알았냐? 나도 이때까지 그렇게 알았다.

-망했다. 묘비글 제대로 보고 도망칠걸. 안일하게 생각했다.

묘비의 글은 충렬에게만 보이는 듯했다. 도전자가 아닌 아르타디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의문을 풀은 충렬과는 반대로, 그녀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의문을 풀어줄 시간은 없었다.

성채의 입구를 지나치자마자 시스템이 알려왔기 때문이다.

[허용되지 않은 존재들의 입장에 가고일들이 깨어납니다.]

그 말을 끝으로 굳어 있던 석상들에 하나둘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그런데 금이 생기는 석상들은 적지 않았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석상들에 금이 생겨났다.

쩌저저저저저적.

매섭게 생긴 외모와 박쥐와 같은 날개를 가진 가고일들. 수많은 녀석들이 깨어나려는 그때. 아르타디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딱히 가고일들에 대해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표정에는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발록을 상대하러 가야 하건만, 굳이 방해를 하는군.”

물론 그녀는 표정과는 반대로 싸울 준비를 이미 끝마쳤다. 그녀를 따라 데프론과 제레미, 그리고 마렉까지. 모두가 가고일들의 공세에 대비했다.

그렇게 성채로 들어온 충렬과 네임드들은 발록을 상대하기 전, 발록이 부리는 가고일들과 먼저 전투를 벌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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