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드래곤 박스
***
영지로 돌아오자 보이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해골왕 레오로부터 받은 해골 일꾼들과, 한 무리의 도전자들이 열심히 목재와 석재 등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충렬의 앞으로는 제법 커다란 크기의 목재 건물이 있었는데, 그 옆으로 해골들과 도전자들이 자원들을 나르고 있었다.
“뭐지?”
충렬이 의아해하는 사이 도전자들이 충렬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어? 왔다! 우리를 구출해 준 사람이 왔어!”
“정말이잖아?”
“어서 오십시오!”
충렬을 반기는 도전자들은 일전에 뱀파이어들의 혈액 공급원이었다가 충렬에 의해 구출된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노동을 하고 있다니 조금 의외였다.
어쨌거나 도전자들의 외침을 들었던 것인지, 갑자기 해골 하나가 충렬을 향해 왔다. 그는 충렬의 대리인이 된 박해일이었다.
[드디어 왔나 보군.]
박해일은 충렬을 향해 영지의 상황에 대하여 설명했다.
[뱀파이어의 잔당들은 전부 토벌을 했다. 지금은 영지에 필요한 건물들을 만드는 중이지.]
그러면서 그가 손가락으로 지어진 건물을 가리켰다.
[아직은 여관 하나만을 건설할 수가 있었어. 자원만 지불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건물을 만들어주긴 하지만, 다른 건물들은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더군.]
박해일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렇지만 충렬과 함께 온 이들을 잠시 바라보여 말을 이어갔다. 특히 그는 아르타디아의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새로운 손님이 함께 왔군.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
충렬은 영지의 상황을 보고받고, 그다음 드래곤 박스를 개봉하기로 했다. 여관으로 들어오자 내부는 놀랍도록 깔끔했다.
깔끔한 이유가 있었다. 여관 내부에서 해골 둘이 청소를 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해골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오, 어서 오게.]
[오셨습니까?]
해골 둘이 누군지는 곧 알 수가 있었다. 충렬의 시야로는 그들의 이름이 보였으니 말이다.
‘왕찌엔과 자르딘인가.’
그들은 해골의 모습인데도 침울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따로 있었다.
[후, 도전자의 자격을 상실한 것도 나쁘지는 않구먼. 마음이 홀가분해졌어.]
[하하, 뭔가 압박감 하나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엔 해골의 몸이라 당황했지만… 그래도 각종 능력들과 기억이라도 건진 것이 어디입니까.]
그들의 말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한 주민 보다는 그래도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았으니 말이다. 특히 왕찌엔은 충렬에게 고마워했다.
[좋은 장소의 주민이 되는 것도 운이 따라야 하는 모양일세. 하마터면 이상한 곳에서 무능력하게 태어날 뻔했어. 자네 덕분에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중이라네. 고마우이.]
딱히 해준 것도 없는데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주민이 되면 이전의 능력을 온전히 가져가는 줄 알았는데, 그건 사람마다 다른 듯 했다.
‘그러고 보니 왕찌엔과 자르딘 외에도 5명의 도전자가 해골 주민이 되었을 터인데.’
왕찌엔이나 자르딘과 달리 그 5명은 안타깝게도 능력을 온전히 가져오지 못했다. 시스템이 그렇다고 일전에 알려주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곧 알 수 있었다. 충렬의 생각을 읽은 해일이 대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북쪽 산맥으로 진입하는 입구를 지키고 있다. 거기서 일꾼들이 나무를 베어 오는데,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경비병으로 배치했어. 왕찌엔과 자르딘에게는 잠시 다른 일을 시키느라 여기로 불렀고 말이지.]
그러면서 해일은 여관 내에 마련된 식당 테이블의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영지 상태창이라고 말하면 영지의 상황에 대해 간단히 볼 수 있다. 나도 그렇게 보면서 상황을 확인하고 있지.]
해일의 말에 충렬도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영지 상태창.”
그러자 아주 간략하게 표시된 영지의 상태가 나타났다.
<영지 상태창>
1. 언데드의 땅
대리인: 박해일
네임드 주민: 왕찌엔, 자르딘
고급 주민: 해골 경비병(5)
일반 주민: 해골 일꾼(20)
건설된 건물: 여관
방문 중인 도전자의 수: 10명
고급 주민은 아마 도전자 5명이 죽어서 오게 된 이들이리라.
‘그래도 보기가 간략하니 나쁘지는 않군.’
더욱 자세히 보고 싶다면 볼 수도 있는 것 같았지만 일단은 여기까지 보기로 했다.
충렬은 우선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밖에 있는 도전자들은 왜 아직까지 여기에 있는 겁니까?”
뱀파이어에게 사육당한 도전자들을 구출한 숫자는 분명 50명이었다. 그런데 아직 10명이 여기서 일을 돕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해일이 알려주었다.
[살려주어서 고맙다고 조금 더 도와주고 간다더군. 나머지 사람들은 여관이 지어질 때까지 돕고 떠났다. 덕분에 여관이라도 빠르게 지을 수가 있었지.]
도와준다는데 그냥 가라고 할 이유는 없었다. 어쨌거나 해일이 말하고 싶어 하는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여관을 가장 먼저 지은 이유가 있어. 쉽게 지을 수 있기도 하지만 일단 여관에 대한 정보를 봐.]
충렬은 해일의 말대로 영지 상태창에서 여관에 대해 살폈다. 그러자 시스템이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여관: 음식을 주문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추가적으로 당신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따로 소환 가능한 네임드 언데드를 영지의 영웅으로 등록하여 머물도록 할 수 있다. 등록된 영웅은 영지에서 대리인을 도와 추가적인 업무를 하며 영지를 발전시킨다. 하는 일에 따라서 영웅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 한다. 만약 영웅이 죽으면 당신이 영지에 되돌아올 때 다시 부활한다. (최대 등록 가능한 수: 2)]
시스템에 대한 내용을 읽은 충렬은 딱 감을 잡았다. 기존의 여관에 대한 기능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도전자들과는 달리 충렬은 새로운 기능 또한 이용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네임드 언데드를 영웅으로 등록하는 것이었다.
‘이건 완전 나를 위해 있는 기능이잖아?’
솔직히 대리인이 알아서 영지를 운영하지만, 충렬은 거기에 추가하여 소환수들을 여관에 맡아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영지의 더욱 빠른 성장을 위해서 말이다. 더군다나 맡아놓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숙련도가 대폭 상승한다라.’
아무래도 사냥을 할 때마다 항상 모두를 꺼내놓고 사냥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모두를 꺼내어 사냥한다고 해도 그만큼 숙련도는 서로 각자 나누어 올라갔다. 그러나 여관에 맡긴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앞으로 네임드들의 숙련도를 빠르게 상승시킬 수 있었다.
‘한마디로 영지에서 따로 숙련도를 쉽게 상승시켜 준다는 소리군.’
물론 거기에 더하여 영지의 빠른 성장을 도모할 수 있기까지 했다.
하는 일마다 상승되는 숙련도가 다르다고 했지만 상관은 없었다. 영지에 머물게 되는 해골은 알아서 숙련도가 오를 테고, 임무에 나선 자신과 함께하는 네임드는 따로 더 많은 숙련도를 독식할 수 있을 테니까.
‘어쨌거나 맡기면 이득이다.’
영지에 첫 번째로 생긴 건물인데도 이처럼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아쉬운 점은 2명밖에 맡기질 못한다는 것이었다. 여관에 맡기기 위해 영웅으로 등록한다면 누구를 등록해야 할까? 충렬은 우선 해일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로 했다.
“혹시 영지에 당장 필요한 일이 있습니까?”
충렬의 물음에 해일은 즉각 대답했다.
[영지를 발전시키려면 북쪽 산맥을 반드시 개척해야만 해. 근처에서 자원을 공급할 곳은 그곳밖에 없어. 그러나 산맥으로 쉽게 진입하지는 못하는 형편이지. 거기에 어떤 놈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해일의 말은 정확했다. 동쪽, 서쪽, 남쪽은 모두 호수로 둘러싸여 있으니 자원을 가져올 곳은 북쪽 산맥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당장 필요한 일을 알려주었다.
[북쪽 산맥. 그곳을 정찰할 인원을 따로 빼주었으면 한다. 전투력이 뛰어난 이로.]
‘전투력이 뛰어난 이라…….’
박해일이 저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그 혼자서 해내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 서서이리라. 어차피 충렬의 네임드 언데드들은 하나같이 웬만한 도전자들보다는 강했다.
충렬은 당장에 누굴 맡길지 생각을 정했다.
‘일단 샤오링은 무조건 맡겨야겠지.’
샤오링은 무조건이었다. 새로운 스킬인 ‘운기조식’. 그것을 계속해서 사용하려면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보다 영지에 머물게 하는 게 더욱 나을 것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샤오링은 자아가 없었다.
‘때문에 자아가 발현된 이도 함께 머물게 하는 것이 좋을 터.’
그렇다면 레일리, 데프론, 아르타디아. 셋 중에 하나였다.
그 셋도 하나같이 막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셋 중에 누구를 남겨야 할까?
‘레일리를 남긴다.’
아무래도 그녀의 눈치가 제법 빨랐다. 만약 북쪽 산맥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면 알아서 대처를 잘 하리라.
아르타디아의 경우에는 우선은 데리고 가야할 것 같았다. 그녀의 전투력도 직접 확인해 보아야 하니까. 충렬은 자신의 옆에서 여관 내부를 구경하는 레일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레일리, 샤오링과 함께 영지에 머물러주세요.”
레일리는 딱히 불만이 없어보였다.
“네. 알겠어요.”
그녀의 대답에 충렬이 말했다.
“샤오링 좀 잘 돌봐주시고요. 시간이 날 때마다 운기조식을 시켜주세요.”
아무래도 샤오링은 아직 자아가 없다 보니 돌봐줄 이가 필요했다. 레일리도 흔쾌히 충렬의 부탁에 승낙했다.
“그렇게 할게요.”
딱히 시스템에게 무어라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충렬의 의사가 내비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여관에 <리치 레일리>와 <죽음을 거부한 샤오링>을 영웅으로 등록하였습니다.]
[이후 임무 지역에서는 이 둘을 소환하지 못합니다.]
[샤오링에 대한 명령 권한을 레일리에게 임시적으로 부여합니다.]
동시에 영지 상태창에 새로운 글이 추가되었다.
[현재 여관에 등록된 영웅: 레일리, 샤오링]
충렬이 레일리와 샤오링을 영웅으로 등록하자 박해일이 말했다.
[그 외에는 딱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아직은 별로 거창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럼, 나는 다른 일을 하러 가지. 다음 임무 지역으로 가기 전까지 알아서 쉬든가 해. 그래도 쉴 만한 건물을 제일 빠르게 지을 수 있는 것이 여관이더군.]
해일의 말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관에는 영웅으로 등록하는 기능 외에, 기존에 존재했던 기능 또한 있었으니 충분히 휴식이 가능했다. 바로 숙면과 음식의 주문이었다.
박해일은 일부러 사람의 상태인 자신을 고려해 여관을 지은 것이 분명했다. 그는 까칠하게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충렬을 위해 쉴 수 있는 공간을 가장 먼저 만들어준 것이다.
‘뭐, 일단은 잠깐 쉬어볼까.’
그러지 않아도 마족들과 아르타디아를 상대하느라 약간 피곤한 상태였다. 우선은 잠깐 허기를 채우고 쉬기로 했다.
***
여관방에서 잠을 청한 충렬이 눈을 떴다. 다음 임무 지역으로는 언제 가게 되는 것일까? 그에 대한 걱정은 필요가 없었다. 영지가 생긴 만큼, 이제 임무 지역을 언제 갈지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무기한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으로 향할 임무 지역을 선택하십시오.]
[1. 마계]
[2. 무작위]
[선택하지 않으면 13시간 42분 뒤, 강제적으로 이동됩니다.]
마계가 목록에 나타난 이유는 아르타디아 때문인 것 같았다. 어찌되었거나 푹 쉬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충분했다. 충렬은 우선 다음 임무지역으로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일단 드래곤 박스부터 개봉을 해보아야겠지.”
그랬다. 아직 드래곤 사냥에 성공한 보상 상자를 개봉하지 않았다. 충렬은 정령의 주머니에 넣어놓았던 드래곤 박스를 꺼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