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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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깨라고 만들어진 임무라고?’
드래곤 토벌 임무. 사실 드래곤이 스스로 물러나지만 않는다면 미친 듯한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임무였다. 평범한 도전자라면 해내기가 힘들었다.
물론 운만 따라준다면 깨지 못할 것이 없었다. 꼭 자신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누가 버스를 태워준다면 거기에 탑승하기만 해도 되니까.
다만 충렬의 경우가 운이 좋지 못했을 뿐이었다. 여러 가지 경우의 좋지 않은 상황이 겹쳤다. 상태 이상을 막아줄 관련 계열의 도전자만 있었더라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발생했고 충렬은 눈앞의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충렬도 만약 자신을 보호해 주는 언데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저곳에서 뒤엉켜 싸우고 있었을 터였다. 자신이 멀쩡한 것과 상관없이 상대가 미쳐 있다면 싸워야만 했으니까.
드래곤을 공격하기도 전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도전자들. 그 광경은 한편의 지옥도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래서 묘비에서도 당부하던 것인가. 드래곤이 물러나려고 한다면 그냥 보내주라고…….’
단순히 강하기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묘비의 글로는 남길 수 없는 드래곤의 강력함이었다.
‘그래도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솔직히 각자가 드래곤의 피어에 저항하고자 집중만 한다면, 어느 정도 저항을 하고 정신을 추스를 수가 있었을 것이었다.
반드시 상태 이상을 막아줄 도전자가 필요로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몇몇 미꾸라지가 물을 흐려 버리니 상황은 순식간에 최악으로 치달아 버렸다. 당장 눈앞에서 공격이 들어오는데 정신을 집중하여 상태 이상에 저항할 시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럴 거면 애초에 정신이 빈약한 도전자들은 초반에 죽도록 놔두는 것이 나았다.
잠시 뒤, 한창 살육전이 끝나가고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도전자. 그도 제 정신은 아니었다. 이미 그의 두 눈은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헤헤헤! 드래곤을 찬양하라!”
드래곤을 찬양하라고? 드래곤은 그를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이는군.’
어찌되었거나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들고 충렬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그는 충렬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충렬의 앞을 수많은 해골들이 가로막고 있어서다.
특히 자아가 생겨난 데프론은 크게 노했다. 녀석은 충렬에게 검을 들이미는 존재가 있다는 생각에 격분한 것이다.
[이놈! 감히 어느 분께 검을 들이미는 것이냐!]
그러면서 데프론은 다른 해골들이 나서기도 전에 달려오는 도전자를 마주해 나갔다. 다른 해골들은 딱히 나서지 않았다. 데프론이 소환한 해골 보병들 또한 나서서 적을 요격하기보다는 충렬의 주변에서 신변을 보호했다.
때문에 데프론은 홀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게 되었다. 앞으로 나선 데프론은 즉각 자신이 보유한 스킬을 사용했다.
[<듀라한 데프론>이 다크 웨펀을 활성화합니다.]
[데프론의 검에 다크 오러가 발생합니다.]
동시에 데프론의 검에 시꺼먼 오러가 맺혀갔다. 활활 타오르는 검은색의 오러는 깔끔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무척이나 사나운 기세를 내뿜었다.
그렇게 오러가 적용된 것을 확인한 데프론은 어느새 지척거리까지 다가온 도전자를 향해 휘둘렀다. 상대 또한 검을 들고 데프론의 공격을 막아갔다.
하지만 데프론의 공격을 막으려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의 실수였다. 데프론의 다크 오러는 평범한 수법으로 막을 수가 없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데프론의 오러.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막아가는 도전자의 검.
서로가 부딪치자, 그 한 번에 승부가 결정이 났다. 도전자의 검이 단숨에 두 동강이 나버렸던 것이다.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서걱.
그 소리가 끝이었다.
어렵지 않게 상대의 검을 잘라낸 데프론의 오러는, 그대로 상대의 어깨를 위에서 아래로 베어갔다. 쇠로도 막아내지 못했던 것이 데프론의 오러였다. 그런 오러를 고작 인간의 몸뚱이로 막아낼 수는 없었다. 아무리 도전자의 몸이라고 한들, 방어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저항하지 못했다.
결국 상대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팔을 내주어야 했다. 데프론의 오러가 가볍게 그의 어깨를 베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그의 팔이 몸에서부터 절단되어 떨어져 나갔다. 처음부터 붙어 있지 않던 것처럼, 그의 팔은 미끄러지듯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리고 팔이 떨어져나가자 그 절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촤아아아아악!
자신의 팔이 절단된 것을 확인한 그는 미친 듯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악! 내 팔… 내 팔이!”
그러면서 상대는 본능적으로 지혈하기 위해 나머지 손으로 절단 부위를 막아갔다. 그렇지만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피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단 일격에 전투력을 상실한 그는 곧 패닉 상태에 빠져갔다.
“으아악!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하지만 그의 비명도 거기까지였다. 데프론은 감히 자신의 주인에게 검을 들이민 그를 살려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의 목숨으로 그 죄를 묻겠다.]
그렇게 데프론의 검이 도전자의 목을 베려는 찰나. 충렬의 상태를 살피고 있던 레일리가 데프론을 제지했다.
“잠깐만 데프론.”
자신을 멈추어 세우자 데프론이 의문을 가졌다.
[무슨 일이지?]
데프론의 의문에 레일리가 답했다.
“그 사람을 기절시켜서 이쪽으로 데려와. 충렬 씨가 회복하려면 그가 필요해.”
그녀의 대답에 그제야 데프론은 의문을 풀었다. 충렬이 가지고 있던 스킬을 떠올린 것이다. 그 스킬은 바로 라이프 드레인이었다. 그리고 라이프 드레인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살아 있는 저 인간의 몸뚱이가 필요했다. 그래야 빠르게 회복이 가능할 테니까.
[그렇군.]
동시에 도전자의 목을 베려던 데프론은 오러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검면으로 도전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듀라한의 강력한 힘은 어렵지 않게 상대를 기절시킬 수가 있었다.
빠악!
머리에 충격을 받자 상대는 곧바로 의식을 상실했다. 의식을 상실한 그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졌다.
털썩.
데프론은 그런 그를 한 손으로 들었다. 그러더니 충렬을 향해 돌아왔다.
그렇게 충렬 외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도전자. 그는 충렬의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한 희생양으로 쓰여야 했다.
***
충렬은 데프론이 살아 있는 도전자를 데리고 오자 지체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방금까지 함께했던 도전자였지만 양심의 가책은 느껴지지 않았다. 적으로 돌변한 이상, 이용할 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상대를 위해 희생할 생각 따윈 애초에 없었다.
어쨌거나 의식을 잃은 도전자는 충렬의 스킬에 의해 곧 말라비틀어져야 했다. 의식이 없어서 인지 라이프 드레인은 상대의 생명력을 빠르게 흡수했다. 그와 동시에 충렬은 좋지 않던 상태를 모조리 회복할 수가 있었다.
[라이프 드레인으로 도전자 ‘포르틴’의 생명력을 모조리 흡수하였습니다.]
[터진 고막이 재생되면서 청력이 돌아옵니다.]
물론 라이프 드레인으로 회복되는 것은 입은 피해와 관련된 종류뿐이었다. 정신적인 상태 이상은 회복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전혀 도움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몸에 활력이 솟아납니다.]
[회복된 건강으로 인하여 정신이 맑아집니다.]
결국 충렬은 어렵지 않게 드래곤 피어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극복할 수가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 미친 짓을 벌였던 사람만 없었다면, 대부분의 도전자들이 충렬처럼 상태 이상을 극복했을 터였다. 충렬이야 라이프 드레인으로 빠르게 회복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시간만 충분하게 주어진다면 정신적인 상태 이상을 극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심신을 안정시켜 공포를 극복하였습니다.]
[상태 이상 ‘공포’가 해제됩니다.]
[공포 상태가 해제되며 정신 붕괴의 상태에 저항합니다.]
[상태 이상 ‘정신 붕괴’가 해제됩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부리는 것을 좋아하지, 누군가의 밑에 있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확고한 자신의 의지가 상태 이상 ‘굴복’을 극복합니다.]
그렇게 상태 이상 굴복까지, 충렬은 드래곤 피어로 발생한 상태 이상들을 모조리 해제할 수가 있었다.
물론 이것도 그나마 드래곤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이었지만 말이다. 실제 제대로 된 드래곤을 만난다면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어쨌거나 상태 이상에서 벗어난 충렬은 가볍게 목을 풀었다.
‘지독한 상태 이상이었어.’
그런데 상태 이상에서 벗어날 무렵, 시스템이 뜻밖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당신의 근처에서 다수의 도전자들이 사망하였습니다.]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당신에게 주민을 데려갈 우선권을 드립니다.]
[그들을 주민으로 수용하시겠습니까?]
‘도전자들을 주민으로 데려갈 수 있다고?’
설마 이러한 기능이 있을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충렬이 놀라거나 말거나 시스템이 말을 이어갔다.
[다만, 생전의 실력을 그대로 이전할 수 있는 도전자들을 ‘왕찌엔’과 ‘자르딘’뿐입니다.]
[그 외의 도전자들을 특정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기에 생전의 기억이 초기화되어 평범한 주민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지금까지 이룩한 수준에 따라, 일반 주민보다는 뛰어난 직종을 가진 주민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시스템이 재차 물어왔다.
[자, 그럼. 그들의 영혼이 떠나가기 전에 결정해 주십시오.]
[이곳에서 죽은 도전자들을 주민으로 데려가시겠습니까?]
[따로 선별해서 데려갈 수 있습니다.]
시스템의 물음에 충렬이 생각했다.
‘이왕 데려갈 거라면 전부 다 데려가야지.’
그러지 않아도 영지는 황량했다. 넓은 영지에 비해 주민은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도전자들끼리 서로 죽이려고 할 때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다만 그 일이 이런 식으로 풀려 나갈지는 몰랐다.
마음을 정한 충렬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모두를 주민으로 수용한다.”
그러자 시스템이 충렬에게 알려왔다.
[도전자 ‘왕찌엔’이 당신의 영지에 새로운 주민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도전자 ‘자르딘’이 당신의 주민으로 배속됩니다.]
[그 외 5명의 도전자들이 당신의 영지에서 해골 주민으로 태어납니다.]
[이후 영지로 복귀하면 주민으로 태어난 그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뜻밖의 수확이었다. 그러나 충렬의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영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왜냐고?
아직 드래곤이 남아 있어서다. 뜻밖의 일을 겪고 있던 사이, 드래곤은 육중한 몸을 일으켜 충렬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때문에 충렬은 곧 기쁨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새로운 주민이 된 이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어야 했지만, 그것은 나중에 영지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었다.
“일단 네 녀석부터 상대해 볼까.”
충렬의 혼잣말에 해골들의 시선이 일시에 드래곤을 향했다. 그러면서 충렬의 앞으로 나섰다. 레일리와 데프론, 그 외의 해골들은 달려오는 드래곤을 마주하며 조금의 겁도 먹지 않았다. 과연 공포 따위를 모르는 죽음의 병사들인 언데드다웠다.
충렬을 깔아뭉개기 위해 달려드는 드래곤, 그리고 그런 드래곤을 처치하기 위해 맞서는 언데드들.
그렇게 드래곤을 사냥하기 위한 레이드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