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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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족들이 전부다 죽어서일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드래곤의 레어로 향하는 도중에 마주치는 몬스터는 없었다. 분명 처음에 북쪽으로 돌아서 올라가던 길과는 다른 길로 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다른 길로 가기 때문에 몬스터가 나타나야 할 텐데.’
그런데 아무런 몬스터조차 만나지 못했다.
‘덕분에 편하긴 하다만…….’
너무나 이상했다. 하지만 그러려니 했다. 드래곤을 마주치기 전에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드래곤의 레어로 향하는 충렬과 일행들이었다.
왕찌엔의 손에는 새로운 창이 들려 있었다. 바라투스를 상대하던 중간에 왕찌엔이 무기를 잃게 되었지만, 그의 무기는 자르딘이 따로 챙겨주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얼마나 이동했을까? 충렬과 일행들은 드래곤의 레어에 거의 다 도착해 갔다. 저 멀리 드래곤의 레어로 진입하기 전, 비어 있는 공터가 보였다. 다른 방향으로 간 도전자들이 온다면 저쪽에서 모이게 되리라.
하지만 아직 다른 사람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희가 가장 먼저 도착한 것 같네요.”
당연한 소리였다. 제일 처음 마족을 처치했고 탈것까지 있었으니 가장 먼저 도착할 수밖에.
공터에 도착하기까지는 금방이었다. 공터에 도착한 충렬과 일행들은 다른 도전자들을 기다리며 상태를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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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20여 분 정도를 기다렸을 때였다. 다른 방향에서 마족들을 처치한 도전자들이 각각 합류하기 시작했다.
자르딘은 양 방향에서 동시에 다가오는 도전자들의 무리를 보고서 입을 열었다.
“동쪽과 서쪽으로 향했던 사람들이 오네요.”
그 말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의 브레스에 당한 것은 남쪽 사람들인가.”
아마도 그것은 정답이리라.
동쪽과 서쪽보다 빠르게 마족들을 처치한 이들이 남쪽으로 향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으로 올 기미조차 보이지를 않았다.
‘분명 드래곤의 브레스에 당했기에 그런 것일 터.’
그들에게 애도를 표할 사이, 레일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충렬 씨, 그나저나 이쪽으로 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무척이나 적은 것 같은데요?”
그랬다. 동쪽에서 오는 이들의 숫자는 정확히 3명. 서쪽에서 오는 이는 겨우 2명이었다.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인원들이 사망한 것이다.
더군다나 생존하여 이쪽으로 오고 있는 도전자들의 상태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너덜거리는 장비들과 멀리서도 보이는 엄청난 상처들이, 그들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엄청나게 심각해 보이는군.’
당장에 절뚝거리며 걸어오는 이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데리고 전투를 이어나갈 수는 없었다.
‘만약 드래곤이 물러나지 않고 여전히 어둠에 물들어 있다면…….’
다른 도전자들의 도움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그 정도로 합류해 오는 도전자들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그러한 점을 왕찌엔도 알았는지 조금 머쓱해했다.
“하긴, 우리도 자네가 아니었다면 고전할 뻔했는데, 저들이야 오죽했겠는가.”
탈것조차 없는 평범한 도전자들이 마족들을 처치한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그렇게 생각할 사이, 다른 방향에서 오는 도전자들 또한 곧 공터로 도착해 왔다.
***
새롭게 합류한 동쪽과 서쪽의 도전자들. 다행히도 그들 중 하나는 치유 스킬이 있었다. 스킬의 쿨타임이 너무 길어 사용하지 못했을 뿐. 그는 일행들이 모두 공터에 도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스킬을 사용했다.
덕분에 좋지 않았던 도전자들의 상태가 급속도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모인 도전자들은 최상의 상태로 몸을 회복시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후… 떨리네요. 드래곤을 마주하러 가야 한다니.”
“이렇게 사람들의 숫자가 확 줄어버릴 줄이야.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도 못했다고.”
“그래도 흩어져서 마족들을 처리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맞아. 만약 흩어지지 않았다면 드래곤의 브레스를 더욱 많이 감당해 내어야 했겠지.”
도전자들은 각자 이야기를 이어가며 서로의 전력을 다시금 점검해 갔다. 혹시라도 드래곤과 싸우게 된다면 어떻게 포지션을 취해야 할지를 미리 준비해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저희밖에 남질 않았지만 일단 다시 각자가 가진 직업을 살펴보죠. 대충이라도 역할 분담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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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일행들의 전력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전투력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각자의 포지션이었다.
‘한 명 빼고 모두가 근접 딜러라니.’
치료 스킬이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근접 딜러였다. 자르딘과 왕찌엔, 그 외의 4명까지. 총 6명이 근접 딜러인 셈이다. 물론 이는 충렬을 제외한 수였다.
‘어쩔 수 없나.’
정말로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라도 향할 수밖에. 서로의 직업과 스킬을 확인한 사람들은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로 했다.
“자, 그럼 다들 충분히 쉬었습니까?”
“예. 출발하죠.”
이동을 시작한 도전자들은 걱정을 표했다.
“제발 드래곤이 그냥 떠나주었으면 좋겠네요.”
“으, 마족들도 너무 힘들었는데 드래곤은…….”
“상상조차 되질 않습니다.”
도전자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충렬은 이동하면서 소한한 언데드들의 상태를 살폈다. 드래곤의 레어로 진입하기 전, 모든 해골들은 소환한 상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래곤의 레어로 이동하는 도전자들의 숫자보다 충렬이 소환한 해골들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어쨌거나 저 멀리 높은 언덕에는 드래곤의 레어로 보이는 동굴이 있었다. 드래곤의 크기를 고려했기 때문일까? 동굴의 입구만 해도 웬만한 빌라 몇 개는 합친 수준이었다.
그렇게 충렬과 일행들이 언덕을 올라가는 사이, 주변의 묘비들을 볼 수가 있었다. 여기에도 곳곳엔 묘비들이 즐비했다.
묘비들에는 많은 글이 쓰여 있었다. 그렇지만 아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대충 보며 지나쳤다.
-드래곤의 레어로 진입하면 알 수 있다. 그게 뭐냐면…….
-녀석이 스스로 물러날지, 아니면 미쳐 있어서 싸워야 할지를.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얘들아. 힘내라.
-그럼 힘내고, 잠시 뒤 같은 주민이 되어서 만나자.
-조금 이따 보자!
-역시 묘비글 인성 보소. 주민이 되어서 만나자고?
-ㅋㅋㅋㅋ웬일로 걱정해 주는 글이 있나 했네.
묘비에 적힌 글을 보며 지나치는 도전자들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막상 레어에 도착하니 긴장이 되었던 탓이다. 그렇게 모두는 침묵 속에 드래곤의 레어로 향했다.
***
엄청난 크기의 입구를 가진 드래곤의 레어였다. 그런데 단순히 동굴이라고 생각했던 그 내부는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드넓었다. 평범하게 동굴과 같은 식으로 길게 이어지겠거니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입구를 지나자 보이는 것은 월드컵 경기장의 몇 배나 되는 거대한 공동이었다.
그 공동의 중앙에, 온몸이 검은 색으로 도배된 드래곤이 있었다. 녀석은 그 큰 몸뚱이를 웅크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휴식은 도전자들이 레어로 들어오면서 끝나 버렸다.
[마기에 의하여 자아를 상실한 드래곤 ‘아르타디아’가 도전자들의 침입을 인식하였습니다.]
[아르타디아가 당신들을 요격하기 위해 일어섭니다.]
[다만, 더 이상 어둠의 힘을 공급받지 못하기에, 아르타디아는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시스템이 알려오는 소리에 도전자들의 인상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아르타디아. 그 드래곤과 전투를 벌여야 해서다.
“제기랄.”
“싸워야 하는 수밖에 없나?”
“이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르타디아가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는 해도 드래곤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잠시 뒤, 드래곤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시스템이 알려왔다.
[아르타디아가 침입자들을 향해 2초 뒤, 괴성을 지릅니다.]
시스템의 말에 도전자들이 당황했다.
“괴성?”
“뭐야, 시스템이 그것은 왜 알려주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순히 괴성을 지르는데 시스템이 왜 알려주는 것일까? 도전자들이 의아해하는 사이, 충렬은 재빨리 하운드를 문양으로 되돌렸다.
“하운드 돌아가!”
그 이유는 단순했다.
‘시스템이 괜히 저런 말을 할 리가 없다.’
그리고 역시나, 충렬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2초 뒤, 아르타디아는 고막을 찢어버릴 정도의 괴성을 질렀기 때문이다. 커다랗게 입을 벌린 녀석의 입안에서 발생된 괴성은, 모든 도전자들의 정신을 붕괴시켰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드래곤의 레어에 진입한 모든 존재들이 ‘드래곤 피어’에 당합니다.]
드래곤 피어는 마법이 아니었다. 종족 특성이 들어간 괴성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효과만큼은 단순하지가 않았다. 드래곤 피어에 당했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충렬의 고막이 터졌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엄청난 시스템의 음성이 이어졌다.
[드래곤 피어에 당하였습니다.]
[당신의 고막이 터집니다.]
[청력을 상실합니다.]
고막이 터진 것은 애교였다.
[상태 이상 ‘공포’에 걸렸습니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집니다.]
공포. 여기까지도 솔직히 괜찮았다.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도 억지로 움직이면 되니까. 그렇지만 이후부터가 진짜 문제였다.
[상태 이상 ‘정신 붕괴’가 적용됩니다.]
[전투가 이어질수록 당신의 자아가 점점 미쳐갑니다.]
[당신이 자살할 확률이 계속해서 증가합니다.]
정신 붕괴라는 상태 이상. 그것도 자살할 확률이 증가하다니. 정신 붕괴는 너무나 심각한 상태 이상이었다. 물론 아직 상태 이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지는 또 다른 것이 있었다.
[상태 이상 ‘굴복’이 적용됩니다.]
[정신을 굳게 다잡지 않으면 한순간에 드래곤의 하수인이 되어버립니다.]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드래곤의 하수인이 되어 아군을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상태 이상 굴복까지, 괴성 하나에 발생한 상태 이상 치고는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상태 이상의 부여는 거기까지였다.
[드래곤의 상태가 좋지 못하기에 더 이상 부여되는 상태 이상은 없습니다.]
시스템의 음성이 끝나자 충렬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 드래곤의 상태가 좋지 못함에도 이 정도라고?’
그러나 욕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드래곤 피어에 당하자마자 충렬은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마치 수중에서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청력을 상실한 것이 정말인지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분명 소란이 일어난 것 같기는 한데,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젠장할. 이거 상태가 심각해졌는데.’
시야마저 온전하지는 못했다. 함께 진입했던 도전자들. 그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물론 실제로는 보였지만, 온갖 상태 이상으로 인해 흐릿해졌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토를 할 것 같이 무언가가 쏠려왔다. 가슴이 답답해지며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완전 짜증이 나는 상태이상 이잖아.’
하지만 충렬의 상태는 양호한 수준이었다. 다른 도전자들은 벌써부터 미쳐가고 있었다.
각자의 고막이 터져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도전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미친 짓을 벌였다.
“우린 여기서 죽을 거야!”
“씨발! 내가 왜 여기에 온 거지?”
“어딜 감히 드래곤을 사냥하겠다고 모여든 거야! 더러운 놈들! 내 손에 죽어!”
그랬다. 정신력이 약했던 이들은 벌써부터 드래곤의 하수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때문일까? 드래곤과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도전자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기 시작했다. 멀쩡한 상태의 도전자들도 있었지만, 미쳐버린 몇몇으로 인하여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언데드였기에 상태 이상에 수월하게 저항한 레일리와 데프론은, 위험이 닥치기 전에 충렬을 그 즉시 대피시켰다. 덕분에 충렬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도전자들의 근처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시스템이 알려왔다.
[도전자 ‘마밤카’가 아군의 칼에 난자당하며 사망합니다.]
[도전자 ‘자르딘’이 ‘웨이너’의 도끼에 머리가 박살 나며 사망하였습니다.]
[도전자 ‘웨이너’가 ‘왕찌엔’의 창에 심장이 꿰뚫려 사망합니다.]
[도전자 ‘왕찌엔’이 ‘하야시’의 일본도에 수급이 베어져 사망하였습니다.]
[도전자 ‘하야시’가 할복하여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습니다.]
[도전자 ‘헤라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