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모든 인원을 어디로 향할지 나누는 시간은 3분도 채 소요되지 않았다.
현재 위치는 최남단과 드래곤 레어의 중간쯤에 위치한 지점이었다. 충렬이 목적지로 삼은 장소는 제일 먼 곳인 북쪽의 끝이었는데, 빠르게 이동해야 하기에 탈것이 있는 이들만 함께하기로 했다. 물론 탈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충렬 외에 두 명뿐이었지만 말이다.
“내 이름은 왕찌엔이네.”
“자르딘입니다.”
왕찌엔은 흰색 수염이 날리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체격은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 건장했다.
자르딘은 3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평범한 동유럽 사람이었고 말이다.
신기하게도 모양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창을 주 무기로 사용했다. 심지어 탈것은 아예 똑같았다. 둘 다 말을 탈것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 둘에게 충렬도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이충렬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레일리에요. 잘 부탁드려요.]
해골의 인사에 왕찌엔과 자르딘이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인사에 답했다.
“반갑소다.”
“안녕하십니까.”
서로의 통성명을 끝내고서 충렬과 레일리, 그리고 왕찌엔과 자르딘은 출발을 준비했다.
나머지 도전자들도 각자의 목적지로 출발하기 전, 서로가 잘되기를 빌어주었다.
“그럼, 모두 행운을 빕니다.”
“조심히 가라고.”
“나중에 봅시다.”
그렇게 충렬과 일행은 곧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럼 저희도 이만 가기로 하죠.”
북쪽으로 향하는 인원은 적었지만 상관은 없었다. 인원이 적은 만큼 신속하게 이동해서 마족들을 처치할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왕찌엔과 자르딘이 근접 딜러이니, 내 쪽에서 원거리를 담당할 수밖에 없겠군.’
다른 방향으로 가는 도전자들은 포지션이 확실히 정해졌지만, 이쪽은 유동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
목적지로 한창 달리고 있는 충렬과 일행들. 목적지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드래곤의 레어가 있었지만, 그곳은 돌아서 지나가면 되었다.
문제는 이동하는 도중에 나타나는 몬스터들. 녀석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직까지는 마주치지 않았지만 주변에 보이는 묘비들이 알려주었다. 몬스터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동하는 도중에 충렬은 제레미와 샤오링을 추가적으로 소환했다. 제레미를 소환시킨 이유는 단순했다. 제레미는 해골마를 꺼내어 탈것으로 사용할 수가 있어서다.
때문에 샤오링은 헬 하운드에 함께 태웠고, 레일리는 제레미와 함께 이동하도록 했다. 물론 제레미에게는 레일리를 따르도록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그래야 레일리가 상황을 판단하고 해골마를 몰아갈 수가 있을 테니까.’
비록 제레미의 스킬로 소환한 것이라고는 하나, 독자적인 판단이 가능한 레일리에게 주도권을 넘기는 것이 더욱 나았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이동하는 도중, 드디어 첫 몬스터와 마주하게 되었다. 드래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몬스터들 또한 오염되어 있었다. 어둠이라는 것에 말이다.
<어둠에 잠식당한 고블린>
현재 충렬과 일행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어둠에 잠식당한 고블린 다섯 마리였다. 일반적인 고블린은 예전에 상대해 보았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다.
‘매우 약한 녀석들이었지.’
하지만 지금 마주친 고블린은 드래곤의 레어에서 서식하는 고블린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어둠에 잠식까지 당한 녀석들이었다.
‘전에 상대하던 녀석들과는 분명 수준이 다를 터.’
겨우 5마리뿐이었지만 쉽사리 지나칠 수는 없었다. 놈들을 여기서 제거하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것은 충렬과 일행들이었으니까.
그러한 점에 대해서는 주변에 간간히 보이는 묘비들이 알려주었다.
-여기서 몬스터 마주치면 끝까지 따라옴.
-어둠에 잠식당한 몬스터들의 공격에 당하지 마라.
-상처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어둠의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들어서 내 몸을 장악하려고 한다.
-본인의 정신력이 높을수록 오래 저항할 수 있음.
어둠에 잠식당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결과는 매우 단순했다.
-완전히 잠식당한 아군은 곧바로 적으로 돌변합니다.
-앗! 내 왼손에 흑염룡의 기운이 스며들었다!
-야, 이 씨발 새끼야. 왜 그걸 받아들여서 팀킬을 하냐?
-아 컨셉충 때문에 전멸했네. 잘 가고 있었는데 ㅡㅡ
묘비에 적힌 글들을 보며 내린 결론은 단 하나였다.
‘제일 좋은 것은 그냥 공격에 당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곧 깨달을 수가 있었다.
마주치자마자 달려드는 다섯 마리의 고블린. 녀석들이 짓쳐오는 속도는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말이다.
한 손에 시퍼런 단검을 들고 있는 고블린 다섯이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달려오는 녀석들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약을 한 것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웃고 있었다.
“키키키킥.”
“크케케케.”
“키키킥.”
그런 녀석들을 향해 일행들이 움직였다. 충렬은 왕찌엔과 자르딘에게 외쳤다.
“한 마리씩만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함세!”
“알겠습니다!”
동시에 충렬은 샤오링과 레일리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샤오링! 저 녀석은 네가 맡아라. 레일리, 고블린 한 마리를 부탁합니다. 제레미는 잠시 빌리겠습니다.”
그렇게 충렬은 마지막 남은 고블린을 직접 상대하기로 했다.
“해골 소환. 데프론.”
동시에 하운드는 문양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하운드, 문양으로 돌아가.”
혹여나 어둠의 기운에 잠식당한다면 골치 아파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
각자가 고블린을 하나씩 상대하는 사이, 충렬에게도 하나의 고블린이 마주해 왔다. 충렬을 마주친 고블린은 손에 쥔 단검을 스윽 핥더니 기분 나쁜 음성을 내었다.
“키키키키키키.”
그런 고블린을 보면서 충렬이 입을 열었다.
“잘 담가라.”
물론 고블린에게 건넨 말은 아니었다. 소환한 제레미, 그리고 데프론을 포함한 해골 보병들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명령을 받은 해골들은 곧 흉흉한 안광을 번뜩이며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총 열 마리에 달하는 해골들이 포위하기 시작함에도 고블린은 한껏 여유를 부렸다. 네까짓 것들은 단검 하나로 모조리 박살 낼 수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잠시 뒤, 해골들은 포위에 성공하자 즉각 달려들었다. 가운데 머물러 있는 고블린 하나를 향해서 일시에 들이친 것이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얼마나 빠르게 움직인 것인지, 해골들의 관절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도달할 수가 있었다. 아직까지 가만히 있는 고블린에게 말이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고블린에게 도착한 해골들은 본 소드를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그런데 해골들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그때였다. 그제야 고블린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파밧!
고블린은 작은 몸뚱이라는 점을 이용해 발을 놀리며 해골들의 공격을 피해내었다. 녀석의 움직임은 너무나 빨랐다. 그랬던 탓일까? 해골 보병들의 본 소드는 고블린을 스치지도 못하고 지면을 강타하거나 쑤셔댈 뿐이었다.
탁!
타닥!
푹!
공격에 실패하자, 주도권은 고블린에게 넘어갔다. 때문에 해골 보병들 중 하나에게로 고블린이 올라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키키키킥.”
놈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면서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러더니 높이 들어 올렸다. 단번에 해골 보병의 두개골을 박살 낼 심산이리라.
그러나 놈이 보병에게 달라붙자 반색한 것은 충렬이었다.
“알아서 죽으러 들어오다니.”
그랬다. 충렬에게는 시체 폭파가 있었다.
곧 몸이 터져야 하는 해골 보병들이 불쌍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충렬은 그저 죽을 자리를 향해 찾아온 고블린을 향해 씨익 웃으며 스킬을 사용할 뿐이었다.
“시체 폭파.”
일행들은 각자 떨어져서 고블린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니 스킬을 사용한다고 해도 별다른 피해가 다른 이들에게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펑!
퍼벙!
퍼버버버벙!
그렇게 고블린의 주변에 수두룩했던 보병들이 삽시간에 터져나갔다. 해골 보병들의 뼈가 강렬한 굉음과 함께 폭파한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고블린은 그 일격을 버티지 못했다. 아무리 어둠의 힘에 잠식당했다고는 해도 그뿐이었다. 사지가 갈가리 찢겨 버리니 놈의 생명은 거기서 끝이었다.
[어둠에 잠식당한 고블린이 처치되었습니다.]
[6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하지만 편안하게 놈을 처치한 사람은 충렬뿐. 샤오링과 레일리도 선방은 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다른 이들이었다.
왕찌엔과 자르딘의 경우는 매우 힘겨워 보였다. 특히 자르딘은 이어지는 고블린의 맹공에 당장에라도 당할 것 같이 위태로웠다.
아무리 레벨이 10이나 되는 도전자라고 할지라도, 고블린의 움직임은 반응하기가 힘들 정도로 더욱 빨랐다. 무차별적으로 휘몰아치는 단검을 막는 것이 겨우 가능할 뿐이었다.
카앙!
캉!
카가각!
카앙!
자르딘은 고블린의 공세에 연신 뒷걸음질을 쳤다.
‘돕지 않으면 당한다.’
해골 보병들은 방금 시체 폭파로 사용했기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남아 있는 해골은 제레미밖에 없었다. 또다시 해골을 소환하기에는 아직 쿨타임인 상황이었다.
때문에 충렬은 제레미에게 즉시 역할을 분담했다.
“자르딘에게 붙은 고블린을 대신 막아!”
그러면서 충렬도 즉시 자르딘을 공격하고 있는 고블린을 향해 이동했다.
‘자르딘이 상대하는 고블린부터 빠르게 처치하고 왕찌엔을 돕는다.’
그나마 왕찌엔이 버티고는 있어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게 충렬은 자르딘을 돕기 위해 움직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묘비에서 분명 드래곤 외에는 마족들을 포함해서 상대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더니… 이 정도라면 다른 이들에게는 조급 버겁겠군.’
물론 드래곤 외에는 상대하기가 쉽다고 글을 쓴 사람은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시작되는 드래곤의 브레스에서 살아남은 이들이었으니, 그것은 사실 당연한 소리였다.
어쨌거나 자르딘을 향해 먼저 도착한 제레미. 녀석은 그 즉시 방패를 전방에 고정시키며 그를 공격하는 고블린을 향해 돌진했다.
***
고블린은 제레미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비웃었다.
“키키킥.”
하지만 녀석의 비웃음은 이어질 수가 없었다. 제레미는 평범한 방패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충렬이 단번에 고블린 하나를 처치해서 제레미의 전투력을 측정할 수가 없었을 뿐. 제레미의 전투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윽고 자르딘을 상대하던 고블린이 시선을 제레미에게 고정시키며 마주해 왔다. 고블린은 더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이 움직였다.
파밧!
고블린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레미는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방패를 곧바로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공중에서 고블린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동시에 녀석이 내지르던 단검이 방패와 부딪쳤다.
카앙!
물론 고블린의 공격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고블린은 착지를 하는 순간까지도 수없이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휘두른다고 해도 방패를 뚫고 들어올 수는 없었다.
카앙!
캉!
카아앙!
그런 고블린을 향해 제레미가 방패를 휘둘렀다. 그러자 방패에 얻어맞은 고블린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저 멀리 날아갔다.
퍼엉!
몸이 가벼웠기에 고블린은 잘 날아갔다. 하지만 녀석은 곧 날아가던 도중에 위치한 나무기둥을 발판으로 삼더니, 다시금 제레미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그 모습에 충렬이 어이가 없었다.
‘미친, 저게 고블린이라고?’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고블린을 마주한 제레미가 방패의 손잡이를 굳게 파지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음의 방패와 고블린이 충돌했다. 그러자 주변에 먼지바람이 일어나며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콰앙!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들이치는 고블린. 그리고 녀석을 막아낸 제레미.
잠시 뒤, 먼지가 걷히며 볼 수 있었다. 둘 다 멀쩡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멀쩡해 보이기만 할 뿐. 그 충돌에서의 승자는 제레미였다. 제레미가 들고 있던 죽음의 방패. 그것이 고블린에게 사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제레미가 착용한 죽음의 방패가 ‘어둠에 잠식당한 고블린’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립니다.]
죽음의 저주가 부여되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고블린의 몸이 순식간에 시들해지더니. 이내 바닥으로 쓰러졌다.
털썩.
그 과정은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분명 멀쩡히 움직이려던 녀석이었지만, 죽음의 저주가 걸리자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져버린 것이다.
‘저게 죽음의 저주의 효과인가.’
저렇게 엄청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결국 충렬이 합류할 틈도 없이 고블린은 처리가 되었다.
[어둠에 잠식당한 고블린이 처치되었습니다.]
[6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그렇게 녀석을 처치하자 자르딘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만만하게 보았다가 당할 뻔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 그에게 충렬이 말했다.
“그러게요. 생각 외로 몬스터들이 이렇게 강하다니… 일단 어르신부터 돕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