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영지를 가지다
***
보스토크 백작과 레일리의 전투는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막상막하의 전투를 벌여가고 있다는 소리였다.
레일리는 해골 마법사들을 조작하며 쉴 새 없이 마법을 난사했고, 보스토크 백작은 그런 레일리를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장기전으로 간다면 보스토크 백작에게 승산은 없었다. 혈액이 없는 해골에게는 스킬이 통하지 않으니 난처하게 된 것은 오히려 보스토크였기 때문이다.
그는 어지간히도 열을 받았는지 악을 쓰며 소리쳤다.
“이 미개한 해골 따위가……!”
그의 악바리에 레일리가 비웃었다. 모양이 빠지는 보스토크의 모습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다.
[나 참, 그래서 어쩌라고요. 쫄리면 목을 그냥 내놓으시던지.]
충렬의 곁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일까? 그녀의 성격도 어느새 거칠어져 있었다.
누가 본다면 이곳의 주인은 레일리이고, 보스토크는 보스 몬스터를 잡기 위해 침입한 모양새였다.
사실 보통의 상황이라면 보스토크 백작이 이렇게까지 당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흡혈을 사용하면서 전투를 이어나간다면 가히 무적과 같은 존재가 뱀파이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흡혈할 대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스토크 백작의 고난과 역경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충렬을 보고서는 충격을 받아버렸다. 허공을 부유하며 다가오는 사신의 모습에 그만 당황해 버린 것이다.
“아니,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살아난 것일까. 그의 얼굴에 온통 그 의문만이 가득 차올랐다. 그런 그에게 충렬이 씨익 웃으며 말해주었다.
[난 원래 안 죽어.]
해골의 모습인 사신의 얼굴로 저렇게 웃으니 범인이 보기에는 무척이나 소름끼쳤다. 물론 일반인이 아니고 뱀파이어인 보스토크였지만 그 또한 충렬의 언행에 닭살이 돋아버렸다.
“제, 제기랄!”
당황한 녀석은 백작의 위용이라고 내뱉었던 말도 잊어먹었는지 즉시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공장에 가서 혈액을 보충하고 오마! 되돌아와서 네 연놈들을 도륙해 주겠다!”
그러면서 녀석은 길을 가로막고 있던 충렬에게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블러드 볼트!”
[보스토크 백작이 블러드 볼트를 사용합니다.]
[블러드 볼트에 적중되면 적중된 곳의 혈액이 굳어버립니다.]
시스템의 설명에 충렬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사람의 상태였다면 저 스킬 하나로도 치명적인 피해를 받았을 터였다. 그렇지만 혈액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언데드가 되니 전혀 겁낼 필요가 없었다.
[싱겁네.]
어차피 해골 사신의 상태이기에 막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충렬은 일부러 방패를 들어가며 놈의 공격을 막아갔다. 죽음의 방패에는 하나의 효과가 있어서다.
그것은 바로 공격한 적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리는 것이었다. 물론 저주가 걸릴 확률은 매우 낮았지만 말이다.
‘전투를 벌이고 있던 해일이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을 보면 아마 그 확률은 매우 극악하겠지.’
혹시라도 성공했더라면 보스토크가 저렇게 서 있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마침 충렬에게 행운이 찾아왔던 것일까?
방패로 블러드 볼트를 막자 물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촤악!
그와 동시에 죽음의 저주가 보스토크에게 발동되었다.
[죽음의 방패가 자신을 공격한 ‘보스토크 백작’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립니다.]
하지만 충렬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비록 혈액을 빨아먹는 존재이긴 하지만 녀석의 종족도 엄연히 언데드였다. 그리고 죽음의 저주는 언데드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보스토크 백작’에게 죽음의 저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서 충렬은 아쉬운 소리를 내었다.
‘쳇, 아깝군.’
만약 통했다면 단번에 녀석을 처치할 수가 있었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직접 막아가야 했다.
충렬은 레일리와 해골 마법사들을 뿌리치고 이쪽을 지나치려는 보스토크 백작의 앞을 막아섰다. 녀석이 혈액 공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충렬을 지나쳐야 했기 때문에 다른 길로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녀석은 자신의 앞을 막아선 충렬에게 몸을 부딪쳐 왔다. 충렬의 손에 쥐어진 무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감히 달려든 것이다.
하기야,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녀석에게 빠른 두뇌 회전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혈액을 점점 갈망하는 상태가 되다 보니 보스토크 백작의 움직임은 점점 짐승처럼 단순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매서운 움직임이기는 했지만, 단순한 공격에 당할 충렬이 아니었다. 그렇게 무식하게 달려드는 보스토크를 향해 충렬이 말했다.
[그럼, 잘 가라.]
그 말을 끝으로 충렬은 접근한 녀석에게 데스 사이드를 휘둘렀다. 보스토크가 들이쳐 오는 낫을 막기 위해 손으로 잡으려 했다. 그렇지만 데스 사이드는 막을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데스 사이드가 녀석에게 닿는 순간, 사신의 낫은 녀석의 몸을 그냥 통과해 버렸다. 그리고 보스토크 백작의 몸에 붙어 있던 그의 영혼을 몸에서 분리시켰다.
보스토크의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면, 그래도 일격에 당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많이 약화된 녀석은 그 일격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데스 사이드가 ‘보스토크 백작’의 영혼을 빼앗았습니다.]
그렇게 거침없이 등장한 녀석의 결말은 너무나도 허무했다. 강력한 뱀파이어 백작이었지만 녀석의 생은 여기까지였다. 혈액이 존재하지 않는 강자를 만난 보스토크. 그는 그저 운이 없는 스스로를 탓해야할 뿐이었다.
반대로 그가 쓰러지자 충렬에게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
녀석을 쓰러뜨리자 우선은 1만에 달하는 카르마가 주어졌다.
[보스토크 백작을 처치하였습니다.]
[10,0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새로운 영지가 지체 없이 지급되었다.
[이곳을 다스리던 우두머리를 처치하였습니다.]
[그가 건설한 모든 건물들이 강제로 철거됩니다.]
[해골들의 왕 ‘레오’의 약속대로 이곳의 영토 중 일부가 당신의 영지로 인정됩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받아야할 보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추가되었다.
[영지를 받아야 할 다른 도전자들이 사망하였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영지 또한 당신에게 귀속됩니다.]
[다만, 아직 적의 잔당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을 마저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동시에 영지와 관련된 아이템이 주어졌다.
[당신에게 ‘영지 문서’가 주어집니다.]
[영지 문서: 언데드의 영토에 영지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문서다. 위쪽으로는 거대한 산맥이 자리를 잡고 있는 장소이며, 아래쪽과 양옆은 망령들이 서식하는 호수로 둘러싸인 위치이다. 영지는 문서와 함께 남에게 양도할 수 있다.]
[당신에게 ‘영지 귀환석’이 주어집니다.]
[영지 귀환석: 영지로 귀환할 수 있는 귀환석이다. 임무를 끝낸다면 자동으로 영지로 복귀할 수가 있지만, 임무 도중 귀환석을 사용해서 강제로 복귀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사용할 때마다 일정 카르마가 소비된다.]
시스템의 음성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영지의 영주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영주가 된 업적으로 인해 모든 상태 이상이 치유됩니다.]
[그리고 레벨이 하나 상승됩니다.]
영지를 차지하게 되면서 충렬의 모든 상태가 회복되었고 레벨이 상승되었던 것이다.
[언데드 상태에서 인간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레벨이 9에서 10으로 상승되었습니다.]
[현재 레벨: 10(특수 임무를 수행해야 다음 레벨로 상승 가능).]
레벨이 10이 되니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흠. 레벨이 10일 때는 카르마로 올릴 수가 없는 것인가.’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 영지에 대한 설명이 끝나지 않아서다.
[영지를 발전시키면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영지는 당장에 발전시킬 수가 없습니다.]
[우선은 영지에서 살아갈 주민부터 구하십시오.]
주민은 어떻게 구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단순했다.
[영지에 살아갈 주민은 각종 방법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인 즉, 주민을 구하는 방법은 많으니 능력껏 알아서 잘 구해보라는 소리와 같았다.
‘…….’
어쨌거나 영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주민이 필요했다. 그러나 충렬은 일단 거기에 대해서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박해일부터 살려야겠어.”
그를 네임드 해골로 만들 생각이었다. 이대로 보내기에는 아까웠다. 만약 그가 합류하게 된다면 레일리 외에도 원거리 딜러를 하나 얻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충렬은 곧장 박해일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네임드 해골로 만드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런데 웬걸. 박해일은 해골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박해일이 당신의 스킬을 거부합니다.]
친분이 있든지 없든지 그는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그냥 주민으로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인가.’
아마도 그러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도전자 박해일이 사망하면서 그의 영혼이 이곳의 주민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축하드립니다. 첫 주민을 얻으셨습니다.]
[당신에게 해골 주민이 주어집니다.]
사망하게 된다면 도전자의 자격을 상실하고 어딘가의 주민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설마 이런 방식으로 주민이 될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사망하게 되어서 어딘가의 주민이 된다고 해도 좋은 것만은 아니군.’
만약 좋지 않은 장소에서 주민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오히려 더욱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될 터였으니까.
어쨌거나 새롭게 해골로 태어난 박해일. 그가 몸을 일으키자마자 어이가 없다는 말투를 내뱉었다.
[이건 뭐야. 설마 이런 방식으로 주민이 되는 거였나?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쉬어보려고 했더니. 젠장할!]
그랬다. 시스템은 어딘가의 주민으로 배속시켜 준다고 했지, 사람으로, 혹은 편안한 장소의 주민으로 배속시켜 준다고는 한 적이 없었다.
그의 당황한 언행에 충렬이 멋쩍은 듯 인사했다. 사실 충렬도 도전자의 사망에 이러한 비밀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다시 보게 되네요.”
충렬의 인사에 처음으로 영지의 주민이 된 박해일이 머리뼈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쩝…….]
***
박해일과는 반대로 제레미는 충렬의 스킬을 받아들였다.
[제레미가 당신의 스킬을 받아들입니다.]
[부활한 견습 실더 ‘제레미’가 당신의 부름에 일어섭니다.]
대신 주민이 된 박해일과는 다르게, 제레미는 당장에 자아가 없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새로운 병종을 탄생시켰습니다.]
[추가된 병종: 방패병]
[제레미는 살아생전 해골마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부활한 제레미에게 스킬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제레미에게 주어진 것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기존의 방패를 버리고 죽음의 방패를 착용했다. 그 외에 챙길 만한 아이템은 딱히 없었다.
<해골 상태창>
이름: 제레미
숙련: F등급 - 0%
직업: 방패병
스킬: [해골마 소환: 해골마를 소환할 수 있다.]
장비: [죽음의 방패: 적의 공격을 막으면 공격한 적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린다. 저주가 적용될 확률은 매우 낮지만 한번 저주가 걸리면 생명력이 급속도로 줄어들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미 죽은 존재인 언데드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본래 죽음의 방패는 해일의 것이었지만, 주민이 되면서 그는 필요 없어했다.
[익숙하지 않은 방패를 쓰다 보니까 불편하더군. 어차피 주민이 된 마당에 아이템들은 필요가 없겠지.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아니니까. 혹시 모르니 기존 아이템만 챙기겠다.]
때문에 죽음의 방패는 제레미가 사용하도록 했다.
그래도 신기한 점은 있었다.
[주민이 되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능력들은 사라지지 않았어. 여전히 상태창이 보이는군.]
주민이 되면서 도전자의 목표인 신좌로의 도전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능력은 그대로라는 것인가?’
나중에 혹여, 사망하게 되더라도 한껏 성장한 뒤 사망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물론 충렬은 죽을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자신의 상황을 인지한 박해일이 외쳤다.
[검치호!]
그러자 신기하게도 검치호마저 죽지 않고 그대로 소환되었다. 물론 해일이 죽기 직전 검치호를 역소환해서 생존시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환된 검치호는 다시 살아난 주인이 반갑다는 듯이 박해일을 혓바닥으로 핥았다. 덩치 큰 호랑이가 맛있는 뼈다귀를 먹으려는 모양처럼 보였지만, 결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새롭게 알게 된 상황들을 인식할 즈음, 충렬도 슬슬 이곳의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지에 대해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아직은 처리해야 할 잔당들이 있었다.
‘공장에서 구출한 50명의 도전자들이 주변을 한창 청소하고 있겠지. 그들을 도와서 남아 있는 잔당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