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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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일이 보스토크 백작과 전투를 시작한 그 시각. 충렬은 헬 하운드를 타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흐음… 아무런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감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오늘은 그 감이 충렬에게 알려주었다. 무언가 느낌이 좋지 않다는 것을.
괜히 마음 한편에 올라오는 불안감 때문에 충렬은 하운드를 향해 말했다.
“조금만 더 빨리 가자.”
그러한 충렬의 말에 하운드가 반응했다. 녀석은 큰 소리로 화답하며 더욱 속도를 내었다.
“컹컹!”
***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모든 해골들은 역소환을 한 상태였다. 레일리는 어차피 역소환이 되지 않으니 함께 하운드의 등에 타는 중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충렬과 레일리, 헬 하운드는 마침내 도착할 수가 있었다. 제레미가 있어야 할 장소로.
마침 적절한 시기에 도착한 것일까? 저 앞에 보이는 별장의 정문, 그곳 너머에서 전투 소리가 들려왔다.
“스파이럴 애로우!”
피융!
콰드드드드득!
푸슉!
푹!
그 소리는 박해일이 스킬을 사용하는 외침과, 화살들이 쏘아지고 박히는 소리였다.
‘벌써 도착했나?’
지체할 시간이 없었던 충렬은 곧바로 별장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
별장의 정문을 지나면 등장하는 넓은 정원. 역시나 그곳에는 한창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한차례의 격전이 진행되었던 것인지, 보스토크 백작과 박해일은 사생결단을 내기 위하여 격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충렬이 합류하자 보스토크 백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쥐새끼들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많이 발생하는 것이지?”
반면 충렬의 등장에 박해일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충렬……!”
하지만 해일에게 기쁨을 표현할 틈은 없었다. 보스토크 백작의 공격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놀아주기가 귀찮군.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내 품위만 손상될 뿐이야. 그냥 여기서 전부 다 죽어라.”
그렇게 보스토크 백작이 스킬을 사용했다.
“블러드 필드.”
그러자 놈의 몸에서 다량의 혈액이 분출되어 나왔다. 단순히 다량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혈액의 파도. 즉, 선혈의 파도가 주변을 휘몰아친 것이다.
심상치 않은 기세에 충렬이 긴장했다. 저기에 닿으면 큰일이 날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충렬은 하운드를 역소환시키며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하운드 문양으로 되돌아가!”
그렇게 하운드를 역소환하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자리를 벗어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보스토크 백작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혈액의 파도가, 별장 전체를 휩쓸어 버리기 까지는 정말로 찰나였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시스템은 좋지 못한 소식을 알려왔다.
[보스토크 백작이 궁극기 ‘블러드 필드’를 사용하였습니다.]
보스토크 백작이 사용한 블러드 필드. 그것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악몽이 시작됨을 알리는 스킬이었다.
[보스토크 백작의 블러드 필드가 별장 내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을 집어삼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변을 휘몰아치던 혈액이 충렬과 해일을 집어삼켰다.
***
블러드 필드는 자신보다 나약한 존재들을 단숨에 처형시키는 보스토크 백작의 궁극기였다. 물론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만 적용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귀찮게 하는 조무래기들을 단숨에 처치하기에는 제격이었다.
보스토크 백작은 자신의 선혈이 박해일과 이충렬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보고서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했다.
“역시 깔끔하군.”
저 앞에 해골 하나가 멀쩡히 서 있기는 했다. 해골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서 블러드 필드에는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은 없었다. 해골 따위야 자신의 무력으로 어떻게든지 처리할 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보스토크는 곧 긴장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블러드 필드에 당하지 않은 해골은 일반적인 해골이 아니었다. 무려 리치였다.
뱀파이어의 스킬이 통하지 않는다는 언데드일지라도 해골이라면 가볍게 처치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리치라는 존재는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 평범한 무력으로는 절대로 상대할 수가 없는 존재가 리치였다.
레일리가 리치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보스토크. 그는 여유를 부리다가 그만 그녀에게 첫 공격을 양보하게 되고 말았다.
[스피어스 오브 헬.]
보스토크가 궁극기를 사용했던 것처럼, 레일리도 보유하고 있던 가장 강력한 마법을 놈에게 사용했다. 그것은 바로 스피어스 오브 헬이었다.
그녀가 스킬을 외치자 레일리의 옆으로 시뻘겋게 이글거리는 포탈과 같은 문이 만들어졌다. 혈액과 같은 그런 빨간색이 아니었다. 지옥의 용암과 같은 그러한 색을 가진 거대한 포탈이 생성된 것이었다.
터널의 입구 정도가 되는 크기의 포탈. 그 포탈이 잠시 진동을 하더니.
우우우우우우웅.
곧이어 수많은 불의 창을 쏟아내었다. 단순한 불의 창이 아닌, 지옥의 기운을 머금은 창을 말이다.
그렇게 포탈을 통해 튀어나오는 지옥의 창이 보스토크 백작을 향해 무수히 많이 쏟아졌다.
삽시간에 짓쳐오는 수많은 불의 창들에 백작이 당황했다.
“이게 무슨……!”
그러나 여유롭게 상황을 관망하던 녀석이었기에 곧바로 대처하지 못했다. 덕분에 별장의 건물을 포함한 보스토크 백작을 엄청난 숫자의 지옥 창들이 집어삼켰다.
콰광!
콰과광!
콰광! 쾅!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쏟아지는 지옥의 창들의 숫자는 엄청났다. 끊임이 없었다. 그로 인해 백작을 포함한 주변 일대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다.
결국 지옥에서 넘어온 창들의 폭격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잠시 뒤, 폭격이 멈추어지자 그 결과를 볼 수가 있었다. 멋들어지게 지어졌던 별장 건물은 눈 깜작할 사이에 잿더미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주변을 잠식했던 선혈을 단번에 증발시키고 화마로 휩쓸어 버린 레일리의 스피어스 오브 헬. 그로 인해 발생된 자욱한 불길과 연기들은 보스토크 백작이 살아 나올 수 없음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역시나. 놈은 평범한 뱀파이어가 아니었다.
한차례의 마법을 퍼부은 레일리는 저 멀리 보이는 백작의 모습에 아쉬움을 달랬다.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인가.]
지독하게 타오르는 지옥의 불길 속에서 놈은 여전히 살아 있음을 과시했다.
“크윽… 피의 웅덩이.”
그 말과 함께 놈의 주변으로 다시금 혈액이 퍼져 나갔다. 그러면서 주변을 잠식한 화마를 꺼뜨려갔다.
치이이이이익!
놈의 혈액이 불길에 타들어가며 증발하기 일쑤였지만, 놈은 주변에 위치한 불길을 곧 완전히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보스토크 백작.
그래도 레일리의 공격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그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목숨이 붙어 있기는 했지만 얼마나 처참하게 당했는지 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온통 그슬린 몸뚱이와 창백한 안색이 그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레일리의 공격에 희열을 느끼는 듯했다.
“따분한 일상 속에서 드디어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나는군.”
주변에 흡수할 혈액이 없어 회복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오랜만에 느껴지는 희열감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자, 그럼 2차전을 시작하자고.”
그의 말에 레일리가 대답했다.
[괜히 멀쩡한 척을 하는 것 아냐? 허세만 가득한 사내는 질색인데.]
그렇게 레일리에게 첫 일격을 내어준 보스토크. 그와 레일리의 2차전이 시작되었다.
***
한편 블러드 필드에 당한 충렬은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우로갈의 펜던트를 사용할 틈도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블러드 필드에 당하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역시나, 시스템은 충렬의 사망을 알려왔다. 정말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당해 버린 것이다.
[당신은 사망하였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사망한 것은 아니었다. 언데드로 부활을 할 기회가 남아 있었다. 어이없게도 도착하자마자 당해 버렸지만 아직 기회는 여전히 주어졌다.
‘제기랄. 이렇게 허무하게 당해 버리다니.’
충렬은 부활을 하면 우로갈의 펜던트를 적절히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언데드 상태에서 또다시 죽으면 그때는 진짜로 끝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은 사용할 아이템들이 많았다. 영혼 수확자의 반지도 있었고 천사의 깃털도 있었다.
‘정 안되면 아리엘의 깃털을 사용한다.’
물론 아리엘의 깃털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로 최후의 수단이었다. 사용하는 순간, 그때부터는 천사들로 인해 자신도 사망할 수가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시스템의 음성이 이어졌다.
[당신의 레벨은 9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것일까? 레벨이 올랐음에도 이번에는 달랐다. 저번에는 변할 수 있는 언데드의 수가 많았지만, 이번에 변할 수 있는 언데드의 수는 고작 2종류뿐이었던 것이다.
[현재 언데드화가 가능한 종류는 2가지입니다.]
[다음 목록 중 하나의 언데드로 부활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변할 수 있는 종류는 줄었지만, 이전에 비한다면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강한 존재로 탄생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용아병 (75%), 하급 리퍼 (25%)]
그렇게 주어진 목록은 용아병과 하급 리퍼였다. 총 2개의 목록에서 어떤 존재로 변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애초에 무작위로 이루어졌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정된 언데드는 다음과 같았다.
[하급 리퍼, 영혼을 수확하는 자가 선택 되었습니다.]
아주 짧은 그 설명을 끝으로 충렬의 몸이 변화했다.
[신체를 재구성합니다.]
동시에 충렬의 몸에서 살점들이 떨어져 나가며 모든 뼈들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득!
우드드득!
하급 리퍼가 되는 과정은 이전의 과정보다 더욱 단순했다. 단순히 뼈를 제외한 모든 유기물들을 벗어내는 과정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잠시 뒤, 결국 뼈만 남게 된 충렬에게 검은 로브가 덮어졌다. 골반 이하의 뼈들 또한 모조리 없어졌다. 그러한 상태의 허공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새롭게 태어났다.
얼굴을 반쯤 가린 검은 로브가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급 리퍼로 변한 당신에게 임시적으로 데스 사이드가 주어집니다.]
그 말과 동시에 충렬의 한쪽 손에는 검은색의 긴 수확용 낫이 들렸다. 그리고 데스 사이드라고 불린 아이템은 사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데스 사이드: 영혼을 수확하는 죽음의 사신들이 사용하는 무기이다. 물리적인 방어를 모두 무시하고 대상을 공격할 수 있다. 데스 사이드에 당한 대상은 영혼을 빼앗긴다. 대상의 영혼에 무게감이 없을수록 영혼을 쉽게 빼앗을 수 있다.]
의미심장한 아이템의 설명이었지만 얼마나 살벌한 뜻을 가지고 있는지는 충분히 인지할 수가 있었다.
‘하급 리퍼가 이 정도라니.’
나중에 지금보다 레벨이 높아져서 죽으면 얼마나 더 강력한 언데드로 변하게 되는 것일까?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상태라면 차라리 본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고 이대로 다녀도 될 정도였다.
어쨌거나 그렇게 충렬의 변화는 끝이 났다.
[신체의 재구성을 완료하였습니다.]
[현재 당신의 레벨에서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 인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급 리퍼로 변한 충렬의 시야가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평범한 인간의 시야를 가졌었다면, 지금부터는 사신의 시야로 변한 것이다.
어쨌거나 저 멀리서 보스토크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레일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본래 충렬이 언데드가 되면서 소환되어 있던 언데드들은 모두 역소환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레일리는 어떻게 여전히 소환이 되어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단순했다. 왜냐하면 라이프 베슬로 인하여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소환되게끔 되어 있어서다.
‘빠르게 합류해서 도와야겠어. 리퍼의 몸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충렬은 레일리에게 합류하기 전, 잠시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한쪽에 쓰러져 있는 박해일의 시체를 목격할 수 있었다. 제레미의 시체도 당연히 보였고 말이다.
‘나 말고는 모조리 전멸해 버렸군.’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당해 버리다니. 충렬은 고개를 저으며 박해일의 시체로 향했다. 사신의 몸이 되면서 목소리는 직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방패를 잠깐 좀 빌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박해일의 시체 옆에 놓인 방패를 집어 들었다. 아직 시체에서 떠나지 않은 그의 영혼이 보였지만 일단은 전투를 먼저 끝내야 했다.
왼손으로는 죽음의 방패를, 오른손으로는 데스 사이드를 손에 쥔 충렬이 레일리에게 합류하기 위해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