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빈센트를 따라 대략 20분 정도를 걸어갔다. 길이 조금 복잡했지만 괜찮았다. 이제 보상을 선택할 수 있는 왕릉이 등장했으니까.
‘저게 왕릉인가.’
과연 왕릉은 거대했다. 평범한 무덤의 모양이었다. 하지만 크기는 보통의 주택보다 큰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만한 입구가 존재했다.
입구는 딱히 문으로 막혀 있지 않았다. 다만 입구를 포함하여 그 주변을 해골들이 지키고 있었다.
[가서 원하는 물건을 하나씩 선택해라. 대신 주의하도록.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보상을 선택한 것으로 간주되니까 말이지.]
그의 말에 충렬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고르고 나와라.]
충렬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왕릉으로 향했다. 미리 언질을 받은 것인지 해골들은 딱히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덕분에 충렬과 일행들은 곧바로 왕릉에 입장할 수 있었다.
왕릉에 들어가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해골들의 왕 ‘레오’의 무덤에 입장하였습니다.]
[계약에 따라 보상 아이템은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말하는 것이니만큼 보상은 확실하게 주어지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퀴퀴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무덤 내부는 의외로 깔끔했다. 평소 관리를 잘하는 것인지 먼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한 무덤의 내부 곳곳에는 온갖 보물들로 가득했다.
‘엄청나게 많네.’
가운데는 시체를 안치하기 위한 자리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대충 성인 남성의 가슴팍에 도달할 정도의 높이로 말이다.
그렇게 그것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귀해 보이는 무기부터 시작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갑옷까지.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박해일도 엄청난 양의 보물에 입맛을 다셨다.
“이거, 해골왕이랑 친하게 지내야겠는데?”
마침 제레미도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와, 저건 스킬북 아닙니까?”
그의 말 그대로였다. 한쪽엔 책장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가득했다. 물론 정말로 스킬북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 때문일까? 제레미를 향해 박해일이 일침을 놓았다.
“스킬북이 아닐 수도 있지.”
충렬도 동의했다. 괜히 집었는데 레오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책이면 곤란했다. 그가 이룩한 역사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일단 책은 거른다.’
그렇게 충렬을 포함한 일행들이 꼼꼼히 주변의 아이템을 둘러보았다. 아직 볼 것은 많았다.
‘아이템이 너무 많으니 무엇을 골라야 할지를 모르겠네.’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템의 설명을 읽을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이런 고민도 조금은 줄어들었을 터였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아이템을 고르기 전까지는 어떤 아이템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민해 봐야겠어.’
물론 밖에는 보상의 선택을 기다리는 빈센트가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가 밖에서 기다린다고 해서 섣불리 아이템을 선택할 생각은 없었다. 주어진 기회는 단 한 번이었으니까.
“흐음…….”
고민을 이어가는 사이, 가장 먼저 아이템을 선택한 이는 제레미였다.
“저는 골랐습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방패였다. 커다란 검은색의 방패였는데 방패의 정중앙에는 해골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보기만 하여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방패였다.
“와, 이거 장난 아닌데요? 죽음의 방패라는 건데 엄청나네요! 하하. 완전 땡잡았네.”
그는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는지 충렬과 해일에게 아이템의 능력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죽음의 방패: 적의 공격을 막으면 공격한 적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린다. 저주가 적용될 확률은 매우 낮지만 한번 저주가 걸리면 생명력이 급속도로 줄어들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미 죽은 존재인 언데드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제레미가 보여준 아이템의 능력을 본 충렬과 해일은 감탄했다.
“역시 평범한 아이템은 이곳에 없다는 것인가?”
“대충 고른 것 같은데도 엄청나군.”
덕분에 더더욱 간단히 고를 수가 없게 되었다. 심사숙고하여야만 했다. 제레미는 그냥 대충 고른 것 같았는데도 저 정도의 아이템이었으니 말이다.
충렬은 아무런 힌트조차 주어지지 않은 선택의 순간에서 묘책을 내었다. 그것은 단순한 방법으로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흐음… 역시 그 방법밖에는 없나.’
무덤 내부의 가운데에 만들어진 시체를 안치하는 공간. 레오를 위해 만들어진 그 공간을 중심으로 근처에 있는 아이템들을 살피기로 했다.
‘아무래도 왕의 시체를 안치하려고 만들어진 공간인데, 그 주변에 좋은 아이템들을 놓았겠지.’
솔직히 한쪽에 모여 있는 책들에 대해서도 욕심이 있었다. 정말로 스킬북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만약에 스킬북이라고 해도 나와 재능이 같지 않다면 배우지도 못한다.’
스킬을 배우려면 스킬북에 자신과 관련된 재능이 있어야 했다. 만약 선택했는데 자신과 관련된 재능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물론 해골 왕이니만큼 선택한 스킬북에 죽음과 관련된 재능이 적혀 있을 것 같기는 하다만……. 어설픈 도박은 할 수 없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해일도 아이템을 선택했다.
그도 충렬과는 같은 생각이었는지 스킬북을 고르지는 않았다. 대신 장신구가 모여 있는 곳에서 반지를 골랐다.
그런데 반지를 고른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빌어먹을.”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에게 충렬이 물어보았다.
“잘못 골랐습니까?”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한번 보라고.”
해일이 선택한 아이템은 반지였다. 당연히 평범한 반지는 아니었다.
‘반지 자체는 나쁘지 않아.’
그 반지는 무려 탈것을 소환하는 반지였으니 말이다.
[해골마가 봉인된 반지: 사용하면 뼈만 남아 있는 말을 소환한다. 해골마를 소환하면 반지는 사라지고 반지를 사용한 이에게 해골마가 귀속된다.]
탈것을 소환하는 반지라니. 만약 탈것이 없었다면 엄청난 아이템이었다.
물론 그 때문에 박해일이 왜 한숨을 쉬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이미 탈것이 있는데 또 나오다니.”
그러나 탈것이라는 말에 제레미의 두 눈이 반짝였다.
“탈것이요?”
이미 충렬과 해일의 탈것에 탑승해 본 제레미는 탈것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 솔직히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별로군.”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교환하면 되었다. 그래서일까? 제레미가 혹시나 싶어 해일에게 물어보았다.
“저…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에게 팔지 않으시겠습니까?”
제레미의 말에 해일이 그의 방패를 잠시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카르마를 받고 팔 생각은 없어. 하지만 죽음의 방패와는 바꿀 생각은 있다.”
해일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죽음의 방패가 가진 성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비록 저주가 걸릴 확률은 낮을지언정 죽음의 방패가 가진 능력은 엄청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어차피 적의 공격을 한 번만 막을 것도 아닐 것이고, 전투가 시작된다면 수십 차례나 막을 터인데 그중에 한 번은 죽음의 저주에 걸리겠지 싶었다.
어쨌거나 해일의 대답에 제레미가 조금 고심했다. 탈것도 유용하긴 했지만 죽음의 방패는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탈것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제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방패를 건네었다.
“조금 아쉽지만… 여기요. 가져가세요.”
그가 방패를 주자 해일도 곧바로 반지를 건네주었다.
“교환해 주어서 고맙군.”
그렇게 그들이 물물교환을 하는 사이, 충렬의 눈이 순간 번쩍였다.
‘저건 뭐지?’
주변에 놓인 아이템들을 살필 생각만 했지, 정작 레오를 위한 안치소 안에 놓인 물품을 살필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 지나가면서 그 안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볼 수가 있었다.
안에는 아이템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흐음. 평범해 보이는 그릇인데.’
보기에는 더 없이 평범한 그릇이었다. 하지만 느낌이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정확히는 네크로맨서로서의 본능이, 저 그릇을 선택하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충렬은 고개를 저었다. 괜히 시체를 안치하는 장소 안에 그릇이 놓여 있다 보니 혹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릇 같은 아이템이 쓰일 곳이 어디에 있다고.’
때문에 충렬은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외형적으로 저런 평범한 그릇은 일단 탈락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충렬이 등을 돌리려는 그때,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라이프 베슬이 네크로맨서의 기운에 반응합니다.]
아이템에 대해서는 고르기 전까지 알 수가 없는 장소였다. 그런데 아이템 자체가 스스로를 드러내다니. 뜻밖의 일이었다.
‘라이프 베슬?’
그러고 보니 그릇이 미약하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듯 말이다.
‘젠장.’
이렇게까지 상황이 흘러간다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직업에 반응하는 아이템. 그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만 같았다.
고민은 길었다. 그렇지만 선택은 금방이었다. 충렬은 라이프 베슬이라는 그릇을 손으로 집었다.
‘제발, 쓸데없는 것만 걸리지 말아라.’
충렬은 빌고 빌었다. 그리고 곧 라이프 베슬이라는 아이템은 평범한 그릇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보상으로 ‘라이프 베슬’을 선택하였습니다.]
[라이프 베슬: 이름이 있는 해골 마법사 하나를 선택하여 상급 언데드인 리치로 만들 수 있다. 리치가 되면 잠들었던 자아가 다시 깨어나며 능동적인 언데드가 된다. 더불어 해골 마법사는 사용할 수 없는 강력한 마법들을 구사할 수가 있다. 단, 주의하자. 라이프 베슬이 깨어지면 리치는 소멸하게 된다.]
해골 마법사를 넘어서 상급 언데드인 리치로 만드는 ‘라이프 베슬’.
‘리치로 만든다고?’
설마 이 그릇에 그런 기능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역시 외관만으로 아이템을 판단하면 안 되었다.
어찌되었거나 충렬까지 아이템을 고르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보상이 모두 지급되었습니다.]
[‘레오’의 무덤에서 밖으로 이동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충렬과 일행들은 자동으로 무덤 밖으로 내보내졌다.
***
밖으로 나오니 빈센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보상을 받는 과정은 모두가 끝났나? 이동을 해도 되겠지?]
그의 물음에 충렬이 말했다.
“잠시만요.”
라이프 베슬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라이프 베슬을 얻은 순간, 충렬은 어떤 해골에게 사용해야 할지를 정했다.
“해골 소환. 레일리.”
[<마법 조장 레일리>가 소환됩니다.]
충렬은 레일리가 등장하자마자 아이템을 사용했다.
“레일리에게 라이프 베슬을 적용한다.”
그러자 라이프 베슬로부터 새빨간 기운이 레일리에게 쏘아졌다. 새빨간 기운은 레일리의 전신을 점점 뒤덮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뒤, 빨간 기운이 모조리 레일리에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더욱 살벌하게 바뀐 레일리의 모습을 말이다.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마법 조장 레일리>에게 라이프 베슬의 적용을 완료하였습니다.]
[<마법 조장 레일리>의 호칭이 <리치 레일리>로 변경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