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정중앙의 거점에서 12시 방향에 위치한 신성한 전당의 성채. 거기까지 이동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성채가 모습을 드러내자 박해일이 활시위에 화살을 미리 준비했다.
“드디어 도착했군.”
“예, 그럼 슬슬 들어갈 준비를 하죠.”
박해일의 말에 대답한 충렬은 제레미에게 부탁했다. 그가 조금은 걱정하는 것 같아 보여서 일부러 말을 건넨 것이었다.
“이왕이면 저희 둘을 지켜주는 방식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굳이 적들을 무리해서 상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제레미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세 명이서 성채로 침입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떨리는 것이리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적의 병력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몰랐다. 그렇기에 우선은 상황을 살피면서 싸워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시스템이 하나의 소식을 들려주었다.
[메두사의 대리인이 처치되었습니다.]
[분쟁 지역에서 메두사의 진영이 탈락합니다.]
메두사의 대리인이 벌써 처치되었다고?
‘이런… 빨리 진입해야겠어.’
마침 해골들의 왕 레오도 충렬에게 현재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적들의 공세를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버티는 것이 고작이니 어서 빨리 움직여 주기를 부탁하마.]
‘많이 급한가 본데.’
충렬은 성채에 진입하기 전, 샤오링을 먼저 소환했다.
“해골 소환, 샤오링.”
일단은 가장 강력한 해골을 먼저 소환해 놓고 진입하는 것이 나을 터였다.
‘다른 해골들은 성채 내로 들어간 뒤, 상황을 보면서 소환한다.’
물론 모든 해골들을 소환하여 진입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들어가서 적을 상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쪽에서 대기를 하는 만큼, 적의 성채에서도 병력이 계속 생산이 될 터였으니까.
‘더군다나 해골왕의 상황이 매우 급박하다.’
그러니 더욱 급히 움직여야 했다.
‘적은 처음에 모든 물량을 진격시켰겠지. 그렇다면 성채 내에는 병력들이 없을 확률이 크다.’
그 말인 즉,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회가 지금이 적기라는 소리였다.
“갑시다.”
그렇게 충렬을 시작으로 일행들이 천사의 성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
어두침침한 해골왕의 성채와는 다르게, 신성한 전당의 성채는 은은한 여명이 감돌았다.
그런데 너무 무방비하게 있는 것은 아닐까? 성채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설마 적이 이곳까지 들이닥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열어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문이 열려 있었던 덕분에 충렬과 해일, 제레미는 당당하게 정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볼 수가 있었다.
‘예상대로군. 성채 내부는 텅텅 비어 있다.’
성채 내에는 이렇다고 말할 방어 인원이 보이지 않았다. 있기는 있었지만 충렬 일행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저게 천사 측의 병력인가.’
성채 내에 머물고 있는 적들의 병력은 고작 인간 창병 10명. 그리고 천사 둘과 아리엘이 끝이었다. 나머지는 없었다. 모조리 진격시켰기 때문이리라.
저 높은 언덕의 단상에는 아리엘이 천사 둘의 호위를 받으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충렬을 포함한 일행들이 들어오자 조금은 놀랐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설마, 죽을 장소에 스스로 발걸음을 옮기다니.”
그러더니 성을 내며 말을 이어갔다.
“중립 지대에서 받은 치욕은…….”
물론 아리엘의 말은 이어질 수 없었다. 박해일의 화살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피융!
화살이 날아감에도 아리엘은 끄떡하지 않았다. 그녀의 옆에 위치한 천사 하나가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주었다. 천사 둘은 각자 평범해 보이는 장검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화살을 쳐내었다.
장검의 날과 화살의 끝이 부딪치자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카앙!
박해일의 공격에 아리엘이 비웃었다.
“흥, 내가 거기에 당할 것 같으냐?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그러더니 의자에 앉아서 새로운 병력을 소환했다.
“신성을 따르는 이들이여.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어라!”
아리엘의 그 말을 끝으로 새로운 병력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우우우우우웅.
하나의 포탈이 생성되더니 거기로부터 창병 20명이 추가로 나온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점을 2개나 차지했기 때문일까? 기본 병력으로 보이는 창병 외에 말에 탑승한 기마병 4명이 등장했다.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기마병들은 한 손에 기다란 랜스를 들고 있었다. 기마병의 말들도 쇠로 만들어진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소환하면 더 많은 병력이 나왔겠지만, 이 정도로도 너희들한테는 과분할 테지!”
아리엘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충렬은 침을 삼켰다.
‘흠… 갑자기 병력이 많아졌군.’
많아진 적들의 숫자 때문일까? 아니면 적의 성채에 진입했기 때문일까? 시스템은 친절하게 적의 병력이 어느 정도 모여 있는지를 표시해 주었다.
[신성한 전당의 성채에 주둔하고 있는 적 병력의 수.]
[대리인: 아리엘]
[천사: 2]
[기마병: 4]
[창병: 30]
적의 병력뿐만이 아니었다. 아군의 전력 또한 마찬가지로 표시가 되었다.
[성채에 침입한 아군의 목록]
[네크로맨서 ‘이충렬’과 헬 하운드, 해골 기사 ‘샤오링’]
[활잡이 ‘박해일’과 검치호]
[실더 ‘제레미’]
그렇게 대리인 아리엘을 처치하기 위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
아리엘은 전투를 질질 끌어갈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명령했다. 천사 둘과 기마병, 그리고 창병들을 충렬이 있는 쪽을 향해 돌진하도록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침입자를 제거해라!”
앙칼진 아리엘의 음성을 끝으로 모든 병력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특히 천사 둘은 두 날개를 펄럭이며 즉각 충렬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아리엘만이 의자에 앉아 느긋한 자세로 지켜볼 뿐이었다. 고귀한 자신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과시한 것이다.
물론 이는 아리엘의 실수였다. 그녀를 보호하던 천사가 거리를 벌린 것을 확인한 박해일이 활을 옆쪽 15도 정도 틀어서 조준했다. 그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유도 화살.”
왜 방향을 틀어서 화살을 쏘았냐고? 날아오는 천사들이 화살을 가로막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피융!
박해일의 스킬을 몰랐던 아리엘은 큰 소리로 비웃었다.
“호호. 어디다가 화살을 쏘는 것이냐. 멍청…….”
물론 그 비웃음은 곧 경악으로 바뀌어야 했다.
박해일의 화살이 천사들을 지나쳤을 때, 화살이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꺾였기 때문이다. 이를 예상하지 못한 아리엘은 화살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깜짝 놀란 아리엘이 당황하며 스킬을 사용했다.
“홀리 실드!”
운이 좋았는지 화살이 그녀의 심장에 박히기 직전, 실드가 완성되었다.
티잉!
물론 집행관을 상대할 때와는 다르게, 실드는 잠깐 발동되더니 사라졌다.
어쨌거나 아리엘이 화살을 막는 모습에 박해일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빌어먹을. 아깝군. 한 방에 보낼 수 있었는데.”
아쉬워하는 박해일과는 반대로 아리엘은 부들부들 떨었다.
“감히, 네까짓 놈이……!”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이거나 말거나 충렬이 말했다.
“졸병들까지 일일이 상대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대충 상대하면서 직선으로 뚫고 지나가죠.”
모든 병력들을 상대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충렬의 말을 알아들은 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한다. 곧바로 길을 뚫고 지나가도록 하지.”
달려오고 있는 적들을 뚫고 지나가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헬 하운드와 검치호라면 충분히 지나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
제레미는 박해일에게 맡겼다. 때문에 검치호에는 박해일과 제레미, 헬 하운드에는 충렬과 샤오링이 탑승한 상황이었다.
“그럼, 출발합니다.”
가장 먼저 상대해야 하는 것은 천사 둘이었다. 아무래도 날개로 날아오다 보니 제일 빨랐던 탓이다. 기마병도 충분히 빨랐지만, 우선은 천사 둘을 상대하는 것이 먼저였다.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는 천사 둘.
그들과의 거리가 대충 50m 정도 되었을 때, 박해일이 화살을 날렸다. 스킬은 아꼈다가 사용할 생각인지, 평범하게 활시위를 당겼을 뿐이었다.
피융!
해일의 화살이 천사의 심장을 노리고 짓쳐들어 갔다.
가까운 거리에서 쏘아져서일까? 먼 거리에서는 화살을 막아내었던 천사가 이번에는 제대로 막지 못했다.
막으려는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보려 했지만, 완전히 피하지 못해 결국 날개에 화살이 박혀 버렸다
푸욱!
날개에 화살이 박힌 천사가 땅으로 추락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천사의 몸뚱이가 바닥에 추락하니 큰 소리가 울렸다.
쿠웅!
물론 천사는 그 정도로 죽지 않았다. 오히려 즉시 일어나 날개에 박힌 화살을 뽑아버렸다.
푸슉!
그러더니 스킬을 사용했다.
“크으… 신성한 치유!”
동시에 구멍이 생긴 날개가 급속도로 회복되었다. 재차 공격한다면 천사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지만 해일은 그러지 않았다. 아직 날개가 멀쩡한 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멀쩡한 녀석과의 거리는 이제 20m 이내로 좁혀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해일은 다음 화살을 아직도 날개가 멀쩡한 천사를 향해 발사했다.
피융!
방금보다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된 화살이었다. 그 덕분일까? 이번에는 너무나 간단히 천사의 심장에 화살이 들어박혔다.
푸욱!
심장에 꿰뚫린 천사가 추락했다. 그와 함께 충렬의 귓가로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당신의 부관 ‘박해일’이 천사를 처치하였습니다.]
[640의 카르마를 습득합니다.]
예상치 못할 정도로 쉽게 처치된 천사를 보며 충렬은 조금 허탈한 기분을 느꼈다.
‘전에 악마를 사냥할 때는 엄청나게 힘이 들었는데, 천사들은 왜 이렇게 간단히 죽는 것이지?’
하지만 그 이유는 곧 알 수가 있었다. 천사 하나가 처치되자 아리엘이 너무나 분해하며 발을 동동 굴렸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이익! 온갖 제약만 없었어도 당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마 이곳의 규칙상, 천사들의 전투력에 대해서는 많은 제약이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렇다면 이쪽은 이득이었다. 천사는 별것 없다는 소리였으니까.
날개가 꿰뚫린 천사도 스스로를 치유하고 일어섰지만, 이미 그때는 충렬과 해일이 놈을 지나친 상황이었다.
‘문제는 기마병인가.’
기마병은 말을 포함해서 전신에 갑주를 착용하고 있었다. 해일의 화살은 통하지 않을 정도의 방어력으로 보였다.
물론 해일의 스파이럴 애로우라면 기마병 하나쯤이야 충분히 제거할 수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고작 기마병에게 그의 스킬을 사용하기에는 아까웠다. 해일도 마찬가지의 생각인지 조금 고심하는 눈빛이었다.
‘해골 보병을 소환하고 시체 폭파를 쓰는 것도 기마병에게는 조금 낭비다.’
샤오링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그때 제레미가 외쳤다.
“그냥 여기는 저한테 맡기세요!”
제레미의 외침에 충렬이 말했다.
“맡기라고요?”
“예! 지금부터 셋을 세면 양옆으로 비켜서 달리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제레미는 검치호의 등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무언가 있어 보이는 그의 행동에 충렬과 해일은 별다른 의문 없이 방향을 틀 타이밍을 노렸다.
“하나!”
그렇게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둘!”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숫자.
“셋!”
그 말을 끝으로 제레미가 들고 있던 방패를 땅으로 향하며 뛰어내렸다. 그가 뛰어내림과 동시에 충렬과 해일은 살짝 방향을 틀어 양옆으로 갈라졌다.
어쨌거나 검치호의 등에서 뛰어내린 제레미. 그의 방패가 땅에 부딪치기 직전, 그가 스킬을 사용했다.
“대지의 균열!”
기마병들과는 거리가 코앞인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스킬을 사용하자 기마병들을 향해 땅이 갈라졌다.
저적!
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적!
제레미를 시작으로 기마병들을 향해 갈라지는 균열. 그것은 달려오던 기마병들을 집어삼켜 갔다.
당황한 말들이 방향을 틀어보려고 했다.
히이잉!
히힝!
그렇지만 지척거리의 상황에선 이미 늦었다. 때문에 갈라진 땅을 밟은 기마병들이 말과 함께 일시에 엎어졌다.
쿠당탕탕!
콰당!
제레미 덕분에 어렵지 않게 기마병들을 무력화시킨 충렬과 해일은 다시 가운데로 돌아와서 그대로 달렸다. 기마병들을 쓰러뜨린 제레미가 뒤에서 외쳤다.
“기마병들과 하나 남은 천사는 제가 처치하고 합류하겠습니다!”
그의 외침에 충렬은 뒤를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준다면 땡큐지.’
저렇게 말하는 것이라면 계산이 된 것이리라. 혼자서 충분히 상대할 수가 있다고 말이다. 이제 충렬과 해일이 신경을 써야할 것은 전방에 위치한 30명의 창병이었다.
물론 충렬은 창병에 대해서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창병쯤이야.’
문제는 아리엘이었다. 과연 그녀도 직전에 상대했던 천사들처럼 쉽사리 당해줄까? 그것이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