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첫 번째 거점
***
빈센트는 한쪽 방향을 가리키더니 말했다.
[지금부터 나는 저쪽에 있을 거다.]
그가 가리킨 곳은 성채 내부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 자리를 잡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뼈로 만들어진 의자가 존재했다. 일반적인 크기의 의자는 아니었다. 코끼리가 와서 앉아도 될 그런 거대한 의자였다.
그리고 그 의자의 주변에는 수많은 해골들이 호위하듯 정렬해 있었다.
‘그런데 저기에는 왜 간다는 것이지?’
단순히 언데드들의 호위를 받기 위해서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빈센트가 설명해 주었다. 왜 자신이 저기에 있어야 하는지를 말이다.
[저쪽의 마련된 장소에 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채에서 새로운 병력들을 생성하고 진군시킬 수가 있다.]
역시 이곳은 도전자들로만 전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병력들도 함께 싸웠다.
[우선은 보유하고 있는 병력들을 먼저 운용할 것이다. 그대들은 전하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라.]
그렇게 빈센트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거점을 빨리 차지하고 진영의 영향력을 늘려야 한다. 영향력이 늘어날수록 고급 병종을 빠르게 합류시켜 줄 수가 있다.]
단순히 해골 병력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고급 병종도 따로 존재했나 보다.
[그럼, 다들 열심히 해주기를 바란다.]
그 말을 끝으로 빈센트는 뼈의 의자로 이동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충렬의 머리로 빈센트보다 더욱 웅장한 음성이 들려왔다.
***
웅장한 목소리의 주인은 해골들의 왕. ‘레오’였다. 그가 충렬에게 지시했다.
[네크로맨서 이충렬이여. 메두사가 보유한 성채 방향의 거점. 그곳을 차지하라.]
충렬뿐만이 아니었다. 해골 왕의 음성은 모든 도전자들에게 차례대로 전달되었다.
“엇. 나는 천사들을 상대하러 가라는데?”
“저는 중앙 지역입니다.”
“중앙? 같이 가면 되겠네.”
각자 가야할 장소가 정해지자 도전자들은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끼리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다들 고생하라고.”
“그래. 고생해.”
그런데 어째서일까. 천사들 쪽으로 향하는 도전자들의 숫자가 제법 많았다.
“천사들 상대하러 가는 사람?”
“어? 너도 천사들 방향이야?”
“나도 12시 방향으로 가야해.”
12시의 방향으로 가도록 지시를 받은 도전자들의 숫자는 정확히 8명. 해골 왕에게 합류한 도전자들 중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거의 절반 정도가 그쪽으로 향하네.”
“너무 많이 가는 것 아니야?”
그 모습에 충렬은 해골 왕이 어디로 신경을 많이 쓰는지 알 수 있었다.
‘천사들을 크게 경계하는군.’
뭐, 어련히 하겠지 싶었다. 충렬은 어차피 나가들을 상대해야 했으니 이쪽에만 신경을 쓰면 되었다.
다만 박해일은 충렬과 함께하는 부관의 신분이라 그런 것인지, 그에게는 따로 해골 왕의 음성이 전달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해골 왕이 도전자들에게 지시를 하자 성채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쿠웅!
동시에 빈센트가 병력들을 진군시켰다. 첫 병력들은 평범한 해골 병사들이었다.
해골들은 12시 방향, 정중앙 방향, 그리고 5시 쪽의 방향을 향해 나뉘어 움직였다. 각각의 방향마다 50에서 100정도에 해당하는 해골 병사들이 그렇게 진군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로 천사들 쪽을 향해 많은 해골들이 투입되었다.
‘드디어 분쟁이 시작이다.’
그렇게 성채를 방어할 최소한의 병력들은 제외하고는 모든 병력들이 이동을 시작했다.
해골들이 움직이자 장내는 뼈가 부딪치는 소리로 울려 퍼졌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충렬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해일에게 말했다.
“우리는 5시 방향 쪽으로 향해야 합니다.”
그러자 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6시에 있는 거점을 차지하라는 소리인가?”
“예.”
역시 해일은 말귀를 금방 알아들었다.
“그럼 가시죠. 헬 하운드! 나와!”
“검치호! 가자!”
충렬과 해일이 탈것을 소환하자 아직 출발하지 않았던 도전자들이 수군거렸다.
“응?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것이 있지?”
“와. 부럽다.”
“제기랄. 우리들은 걸어서 가자고.”
아무리 승급전을 통과하고 올라왔다고는 하나, 충렬과 해일처럼 탈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둘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탈것을 얻기란 힘든 것이리라. 어떻게 보면 해일도 대단한 인물이었다.
‘어쨌거나 이제 출발해 볼까?’
충렬은 출발하기 전에 외쳤다.
“나가들 쪽으로 가시는 분. 계십니까!”
충렬의 외침에 도전자 하나가 손을 크게 들었다.
“저요!”
그의 모습은 조금 특이했다. 평범한 외모와 일반적인 여행자의 복장이었다. 그렇지만 사람 둘 정도는 가릴 만한 커다란 방패를 들고 있었다. 방패는 전체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무게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그런 그를 향해 충렬이 말했다.
“타세요.”
그는 거절하지 않고 헬 하운드의 등으로 올라탔다. 육중해 보이는 방패가 무게감을 더했다. 그러나 하운드는 겨우 그 정도로 힘들어하지 않았다.
충렬의 뒤에 탑승한 사내는 반갑다는 듯이 이름을 밝혔다.
“고맙습니다. 제레미라고 합니다.”
그의 소개에 충렬이 답변해 주었다.
“이충렬입니다. 그리고 저쪽은…….”
“박해일이다.”
그렇게 나가들 쪽으로는 충렬과 해일, 제레미가 향하게 되었다.
***
해골 왕 측에서 진군시킨 해골 병사들.
녀석들과 함께 이동하며 거점으로 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충렬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탈것이 있는데 굳이 느리게 이동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었다. 빠르게 갈 수 있다면 속도를 높여야 했다.
‘최대한 기동성을 살려 거점을 먼저 차지한다.’
도전자들의 반응을 보니 탈것을 가진 이들이 충렬과 해일 외에는 없었다. 그렇다면 상대 쪽에서도 탈것이 없는 도전자들이 대부분이리라.
‘아니, 아예 없을 확률 확률이 크다.’
탈것을 타고 직행하면 대충 30분 이내에 도착할 거리였다. 먼저 도착하여 거점을 점령한다면 아군 측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충렬은 이동하는 와중에 제레미에게 물어보았다.
“장비는 방패뿐입니까?”
충렬이 물어본 의미는 단순했다. 무기가 없냐는 뜻이었으니까. 그 의미를 해석했는지 제레미가 말했다.
“네. 제 직업은 실더라서요. 때문에 방패가 무기로도 쓰입니다.”
그는 자랑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웬만한 직업들에 비해 공격력은 약하지 않습니다. 방패로 후려치면 꽤나 아프거든요.”
과연, 충분히 아플 것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방패에 맞으면 가볍게 골절로 끝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대충 그의 포지션을 인지한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렬과 해일의 위치는 솔직히 전방에서 싸우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제레미는 전방에서 활동하기가 제격이었다. 물론 공격적이지 않고 수비적인 전방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앞에서 시간만 끌어준다면 충렬과 해일이 알아서 적을 처리해 줄 테니까.
아직은 그의 스킬 등을 정확히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대충 조합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어쨌거나 거의 다 도착했나.’
탈것을 타고 30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리고 30분이라는 시간은 금방이었다. 마침 저 앞에 거점으로 보이는 것이 나타났다.
옆에서 검치호를 타고 달리던 해일이 입을 열었다.
“거점이 보이는군.”
충렬은 그의 말에 거점을 바라보았다. 역시 먼저 도착하는 것일까? 거점의 근처로 아직 적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확실히 탈것이 빠르긴 해.’
거점의 모습은 스톤헨지를 닮아 있었다. 거대한 바위들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바위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원을 이루었다.
‘그나저나 거점은 단순히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거점을 어떻게 차지할 수 있는지 아직은 몰랐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일정한 거리에 진입하자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거점 내에 서식하는 몬스터를 처치하면 거점의 점령은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대신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것에 주의하십시오.]
[거점은 몬스터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진영에게 소속됩니다.]
시스템의 설명을 들은 충렬은 그제야 이해했다. 어떻게 거점을 점령할 수가 있는지를 말이다.
‘몬스터를 처치하면 거점을 차지하는 방식인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점을 점령하면 처치되었던 몬스터가 재소환이 되어 다시 거점을 방어할 것입니다.]
그 말인 즉, 거점을 점령하면 처치했던 몬스터가 아군의 편이 된다는 소리였다. 물론 적에게 처지가 되면 그쪽의 편이 되겠지만.
어찌되었거나 결론은 거점에 머무는 몬스터를 처치하면 된다는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몬스터가 있었군.’
거점에 가까워질수록 몬스터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처음 보는 몬스터였다. 제자리에 앉아 있는 녀석의 모습은 무척이나 거대했다. 앉아 있음에도 그 높이가 2층 주택 정도는 넘길 높이였다.
앉아 있는 생김새는 사람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아니었다. 덩치를 보건데 마치 거인을 닮아있었다.
‘저게 무슨 몬스터지?’
당장에 어떤 몬스터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점의 지근거리까지 도착했을 때. 드디어 몬스터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시스템이 몬스터에 대해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거점을 지키는 거인족.]
[사이클롭스가 접근하는 당신들의 존재를 인식하였습니다.]
거인족 사이클롭스. 그것이 몬스터의 정체였다.
***
외눈박이의 거대한 덩치. 몸에 걸친 것은 천조가리 뿐인 몬스터. 그 몬스터가 바로 사이클롭스였다.
녀석이 이쪽의 접근을 인식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때서야 놈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박해일은 사이클롭스의 모습을 보더니 한마디로 요약했다.
“엄청난 크기군.”
그랬다. 사이클롭스는 엄청나게 거대했다. 놈이 일어서니 5~6층 정도의 빌라는 가볍게 넘길 정도로 높이가 장난이 없었다. 과연 거인족이라 칭할 만했다.
그 모습에 제레미가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쩝… 저걸 어떻게 잡아야 한다냐.”
물론 그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쪽엔 충렬과 해일이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몬스터가 일어서며 이쪽을 인식하자 해골 왕의 음성이 들려왔다.
[처치하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이클롭스 외에 다른 몬스터는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저걸 잡으려면 꽤나 오래 걸리겠군.’
그만큼 놈의 덩치는 장난이 없었다. 강력한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다 하여도 놈에게는 강아지에게 물린 정도에 불과할 터였다.
‘하지만 계속 공격하다 보면 놈도 죽기야 하겠지.’
박해일과 탈출할 때 얼마나 생고생을 했던가. 특히나 집행관을 처치할 때가 가장 곤욕이었다. 그래도 사이클롭스는 집행관 보다는 사냥하기가 쉬우리라.
그렇게 스톤헨지를 닮은 거점에 다다랐을 때 충렬이 말했다.
“자, 사냥을 시작합시다.”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헬 하운드에 탑승하여 달려왔기에 해골들을 미리 소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괜찮았다. 차근차근 소환하면 되었으니까.
처음으로 어떤 해골을 소환할지는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처음 소환은 보병이었다.
“해골 소환. 데프론 나와.”
왜냐고?
시체 폭파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제법 길었다. 때문에 우선은 시체 폭파로 먼저 공격을 시작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