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충렬과 해일에게 배정된 여관의 방은 하나였다. 2층에 위치한 방은 둘이서 사용하기에 꽤나 넓었다. 그곳에서 충렬은 최대한 잠을 청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했다.
여관 1층에서 딱히 친목을 도모하지는 않았다. 그런 곳에 소비할 기력은 없었다. 박해일도 충렬을 따라 함께 휴식했다. 애초에 그는 충렬 외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경계심을 더욱 갖추는 사람이 박해일이었다.
어쨌거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자,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인간의 신체로 되돌아옵니다.]
[언데드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다만 사람의 신체로 되돌아오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대략 1시간 지나면 각 진영에서 사절단이 방문할 시간이었다.
꼬르르륵.
‘사절단을 만나기 전에 우선 끼니부터 해결해야겠군.’
마침 박해일도 충렬이 일어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직 밥을 먹지 않은 것 같았다.
“식사는 먼저 하시지 그랬습니까.”
충렬의 물음에 그가 대답했다.
“딱히. 시끄러운 곳은 질색이라.”
하긴, 여관은 시장바닥이나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왕 나갈 거면 충렬과 나가려고 한 것이리라.
그렇게 둘은 사절단의 방문을 1시간 남겨두고 1층으로 가기 위해 움직였다.
***
소고기 스테이크. 충렬과 해일이 먹고 있는 음식은 오로지 고기였다. 단순한 소고기는 아니었다. 어떻게 구한 것인지, 시스템은 한우로 만든 스테이크를 요구하자 공짜로 가져다주었다.
그것도 등심이 아닌, 안심으로 만든 스테이크를.
벌써 몇 접시나 비웠을까? 도전자의 위장은 끝이 없었다. 끼니를 해결하면 오랫동안 배고플 일은 없었다만, 그만큼 한 번 먹을 때 엄청난 폭식을 했다. 물론 위장에 무리가 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50분 동안 엄청난 양의 고기를 먹었다.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고기만 끌렸다.
충렬은 마지막 고기를 처리하며 포만감을 느낄 무렵이었다.
‘후… 잘 먹었다.’
때마침 여관의 문이 열렸다.
덜커덕.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각 진영의 사절단이 방문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열린 문을 통하여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사절단은 혼자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무리를 지어서 왔다. 가장 처음으로 들어온 이들은 나가 왕국의 나가들이었다.
뱀의 하체를 가진 나가들이 줄을 지어 여관으로 들어왔다. 나가들은 모두 여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녀들이 이동할 때마다 뱀으로 이루어진 하체가 바닥을 쓸었다.
스스스스스슥.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녀들의 상체는 완벽한 인간 여성과 닮아 있었다. 물론 피부는 뱀의 비늘처럼 돋아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 나가들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였다. 허리춤에 무기를 소지한 나가들과 그러지 못한 나가들. 신기한 점은 무기를 소지하지 못한 나가들의 표정이 침울하다는 점이었다. 무언가 생기가 없었다. 그 이유는 잠시 뒤 알 수가 있었다.
[가장 먼저 나가들의 소개가 있겠습니다.]
[나가들의 소개가 끝난 후에 다음 차례의 사절단이 들어와 소개를 이어갑니다.]
***
여관에 있는 도전자들의 수는 대략 30명이었다. 도전자들은 어느새 각자 테이블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방문한 나가들의 숫자는 총 열다섯이었다. 그녀들은 도전자들이 바라보기 쉬운 위치로 이동했다.
일사분란하게 이동하는 나가들. 잠시 뒤 그녀들 중 대표가 조금 앞으로 나왔다. 인간으로 치자면 한걸음 정도. 그렇게 앞으로 나온 그녀는 자신들의 진영에 대해서 소개하기 시작했다.
“반가워요, 여러분.”
나신의 그녀가 입을 떼자 뱀의 혓바닥이 입술 사이로 튀어나왔다. 그렇지만 소통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들리는 언어 자체는 생소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것은 시스템이 보정해 주었다. 오히려 거기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나가의 인사에 몇몇 도전자들이 환영했다. 나가의 아름다움이 예상하지 못한 정도였기 때문이다.
나가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도전자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환영했다.
“오! 안녕하십니까!”
“와… 진짜 이쁘다.”
“나가들은 다 저런 모습들인가?”
“나가들의 진영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몇몇은 침마저 삼켜갔다.
꿀꺽.
이들의 반응은 당연할지도 몰랐다. 반은 강제적으로 진행되는 임무들이었다. 그 안에서 이성을 만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그랬기에 나가들의 모습이 아무리 몬스터에 가깝다고 하나,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저러한 반응을 보이는 수밖에.
물론 모든 도전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도전자들에게 인사를 한 나가는 곧바로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 쪽으로 오신다면 노예들을 보상으로 드릴 수 있어요.”
노예라는 말에 몇몇의 나가들이 몸을 움츠렸다. 순간적으로 그를 파악한 도전자들 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더니 질문했다.
“노예라고 하심은……?”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노예 계급의 나가들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여관으로 입장할 때 왜 몇몇 나가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인간들에게 팔려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그녀는 뒤쪽에 도열한 나가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가 준비한 노예는 10명밖에 없어요. 죄송하지만 저 숫자만큼만 지원자를 받을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방금 손을 번쩍 들었던 도전자가 즉시 외쳤다.
“지, 지원하겠습니다!”
지원의 의사를 시스템이 받아들였던 것일까? 그가 외치자마자 그의 이마로 초록색의 각인이 새겨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나가가 그를 반겨주었다. 아마도 이마의 각인은 어느 진영의 소속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메두사님의 병사가 되신 것을 환영해요.”
하지만 노예에 눈이 멀어 지원한 이는 그 도전자뿐. 그 외에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끌리기는 해도 섣불리 판단하지는 않았던 탓이다.
충렬도 성급하게 진영을 선택한 그를 보고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선택을 해도 될 것을 저렇게 먼저 지르다니.
‘성미가 급하군.’
그러던 그때였다.
아직 나가의 진영을 선택하지 않은 도전자가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의 질문은 무척이나 예리했다. 그는 나가들의 모습에 매료되지 않았던 도전자였다.
“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까?”
그것이라 함은 노예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질문에 나가가 대답했다.
“네. 죄송하지만 저희 진영은 노예밖에 드리지 못해요. 그래서 이렇게 먼저 드리려는 것이랍니다.”
그 말이 치명적이었다. 나가는 교섭 방법도 몰랐는지 순순히 가진 패를 모두 드러내었다. 아니, 어차피 알게 될 일이라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충렬은 나가의 진영에서 제시하는 보상에 고개를 저었다.
‘저딴 노예를 얻어보았자 1인분도 못한다.’
당장에 해골 보병 하나를 소환해도 노예 계급의 나가는 쉽게 요리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굳이 노예를 얻으려 한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겠지.’
나가 진영에 지원한 첫 도전자는 벌써부터 표정이 헤벌쭉했다. 노예를 가지고 무슨 짓을 하려는지 실실 웃는 그의 표정엔 온갖 욕망이 가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가는 소개를 거기서 끝마쳤다.
“그럼, 저희의 소개는 여기까지 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비어있는 테이블 한쪽을 가리키더니 말했다.
“저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저희 진영과 함께하고 싶은 분들은 노예들이 떨어지기 전에 얼른 오세요.”
***
나가들의 소개가 끝나고, 이어서 들어온 사절단은 신성한 전당에서 온 천사들이었다.
[신성한 전당의 사절단이 입장합니다.]
천사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3명뿐이었다. 하얀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셋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경건함을 선사했다. 각자의 등에는 순백의 날개가 한 쌍씩 달려 있었다.
깨끗한 첫인상을 선사한 천사들은 도전자들의 시선을 받으며 한쪽으로 이동했다. 천사들이 걸을 때마다 날개에서 흰색 깃털이 조금씩 떨어지며 흩날렸다.
저벅. 저벅.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동을 완료한 천사들 중, 가운데 있던 이가 머리에 뒤집어쓴 로브의 모자 부분을 젖혔다.
그러자 완벽한 백색의 단발을 가진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천사라면 온순하게 생길 것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기가 세 보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그녀는 구석진 곳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가들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하등한 것들에게 합류할 이들이 있을 리가 없지.”
그러더니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도전자들에게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보상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 보통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면 무언가를 약속이라도 할 텐데, 천사들에게서 그러한 것은 보이지가 않았다.
“여기 있는 인간들은 현명한 두뇌를 가지고 있구나. 자, 인간들이여 우리 진영으로 오도록 하여라.”
어떻게 본다면 건방진 말투였다. 그러나 그런 것을 신경 쓰는 도전자들은 아직 없었다. 보상만 완벽하다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한 도전자가 질문했다. 시스템의 말로는 분명 사절단이 어떠한 보상을 약속한다고 했기에, 그는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신성한 전당에서는 어떠한 것을 제공할 수 있습니까?”
“나, 아리엘이 약속하지. 우리 천사들과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을 그대들에게 주겠다.”
“……? 그게 끝입니까? 아이템 같은 것은 없고요?”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이라고? 하지만 그의 질문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물질적 보상이 없냐는 질문에 아리엘의 표정이 일그러져서다.
“하! 우리들과 함께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거늘!”
그 말인 즉, 따로 챙겨 줄 것은 없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개소리다. 충렬은 정신이 나간 소리를 지껄이는 아리엘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신성한 지역도 걸러야겠군.’
아리엘이 하는 소리를 들으니 오히려 나가들의 편에서 싸워야 되나 싶었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노예라도 하나를 얻는 것이 이득이었으니까.
그렇게 더는 볼 것도 없이 신성한 전당 진영의 소개도 끝이 났다.
“우매한 인간들아. 우리들은 저쪽에서 잠시 기다릴 테니 어리석은 판단은 하지 말거라.”
그러더니 아리엘은 한쪽 자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도전자들의 사이를 지나던 그녀가 충렬의 곁을 지날 때였다.
그녀는 잠깐 발걸음을 멈추더니 정확히 충렬을 보고선 막말을 내뱉었다.
“어디서 더러운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했는데 네놈이었구나. 넌 받아주지도 않을 것이니 지원하지 말도록.”
그러고서는 충렬이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쌩 하고 지나쳤다. 아마도 충렬의 직업 때문이리라. 언데드들을 다루는 ‘네크로맨서’였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분명했다.
‘뭐 저런 정신이 나간 년이 다 있어?’
막말을 들은 것은 충렬이지만, 그 말에 반응한 것은 박해일이었다. 활시위에 화살을 장전한 그가 주저 없이 아리엘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피융!
그리고 그 화살은 이동하던 그녀의 발 옆. 정확히 1㎝도 벗어나지 않은 바닥에 박혔다.
푹!
갑작스런 위협에 아리엘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등을 돌려 성을 내려고 했다.
“감히 이게 무슨 짓……!”
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해일이 아리엘의 말을 가로채었다.
“무슨 짓? 참나, 어이가 없군.”
그는 대답을 할 가치조차도 없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꺼질 거면 곱게 꺼져. 시끄럽게 하지 말고.”
박해일은 어차피 충렬을 따라 가야 했다. 그랬기에 이미 적이 확실시된 그녀에게 위협 사격을 한 것이었다. 박해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은근히 한 성깔 하는 성격이었다. 시비를 걸어온다면 굳이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아리엘은 무언가 분했는지 혼자서 부르르 떨었다.
“우리들을 적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중립 지역만 아니었어도 네 까짓 것은……!”
자기가 시비를 걸어놓고 적으로 삼았단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그 이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를 따라온 나머지 천사 둘이 아리엘을 말렸기 때문이다.
“아리엘 님. 여기서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그만 참으시지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행태에 도전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도도한 그녀였지만 인간들의 수군거림에 당황하는 아리엘이었다.
“신성한 전당 진영으로는 가봤자 손해겠는데?”
“메리트가 너무 없어.”
“흠… 난 차라리 나가들 진영으로 합류하는 것이 나은 것 같아.”
도전자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아리엘의 얼굴이 붉어졌다. 무어라 성을 내고 싶었는데 이미 그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잠시 뒤, 화를 간신히 억누른 그녀는 비어 있는 테이블로 이동하더니 혼자서 속을 부글부글 끓였다.
그녀 덕분에 오히려 나가들을 향해 도전자 3명이 이동했다. 아무래도 나가들은 10명까지만 지원자를 받는다고 했기에 미리 움직이는 것이리라.
어쨌거나 한차례의 소동이 지나가자, 마침내 마지막 차례의 사절단이 방문했다.
[해골들의 왕.]
[‘레오’가 보낸 사자가 입장합니다.]
마지막 사절단.
‘레오’의 사자는 과연 무엇을 제시할까?
이제는 그쪽에서 제시하는 보상에 따라 도전자들이 참여하게 될 진영이 판가름이 나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