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시설 내부로 진입하자 넓은 복도가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미니맵은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전부 알려주었다. 간수들을 마주치는 길과 함정을 피할 수 있는 길 등, 선택하기 쉽게 표시되어 있었다.
충렬이 선택한 길은 당연히 간수들을 마주치는 길이었다. 간수를 잡아서 카르마의 맛을 본 충렬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지금은 복도 저 끝에서 달려오는 간수 2마리를 이제 막 상대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간수 2마리는 함께 순찰을 돌다가 충렬의 무리를 보고서 달려오는 중이었다.
“샤오링, 네가 오른쪽의 녀석을 맡아.”
샤오링에게 명령을 내린 충렬이 정령의 주머니에서 돌멩이들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보병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보병들은 왼쪽 놈에게 돌멩이 투척 실시.”
물론 마법사들과 마렉이 원거리 공격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덤이었다.
그렇게 작업이 시작되었다. 보병들을 시작으로 마법사들의 원거리 마법이 발사되었다. 덕분에 왼쪽에 위치하던 간수는 급속도로 실드가 깎여 나가고 있었다.
팅!
티딩!
팅! 팅! 티딩! 팅!
팅! 팅! 팅! 팅! 팅!
팅! 팅!
가공할 만한 물량 앞에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간수들이 충렬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을 때는 왼쪽 간수의 실드가 모조리 깎여 버린 상태였다. 그 동안 샤오링은 한 발 앞으로 나서 오른쪽의 간수를 막아갔다.
[<죽음을 거부한 샤오링>이 블랙 데스로 ‘집행관의 간수’와의 전투를 시작합니다.]
동시에 왼쪽의 간수에게는 보병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보병들을 뒤로 물리고 마법사들을 이용해서 처치해도 되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죽이나 결과는 똑같았다. 실드가 날아간 간수는 이승을 하직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사방에서 일시에 덮쳐가는 해골 보병들. 녀석들은 몸을 던져 간수에게 뛰어 들어가더니, 본 소드로 마구 찔러갔다. 간수는 실드가 없었기에 보병들의 칼질을 간단히 허용하고 말았다.
푹.
푸욱!
푹!
푹! 푹! 푹! 푹! 푹!
간수는 연신 칼에 찔리면서도 해골들을 향해 공격해 나아갔다.
[‘집행관의 간수’가 <해골 보병5>의 상완골을 ‘에너지 소드’로 절단합니다.]
그러나 단번에 두개골을 파괴하지 못한 이상, 해골 보병이 죽는 일은 없었다.
[<안식을 거부한 마렉>이 <해골 보병5>에게 ‘데스 힐링’을 사용합니다.]
[절단된 <해골 보병5>의 상완골이 다시 수복됩니다.]
결국 아무런 해골도 처치하지 못한 간수는 곧 생명력을 다해야 했다.
[크아아악……!]
생명력을 다한 간수는 연기로 변했다. 그러더니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그 모습이 사라졌다.
[‘집행관의 간수’를 처치하였습니다.]
[5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간수 하나. 샤오링이 맡고 있는 녀석이었다. 충렬은 방금 막 작업을 끝낸 해골들에게 말했다. 아직 살아 있는 간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이다.
“처리해.”
충렬의 명령에 해골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달그락. 달그락.
충렬은 움직이는 해골들을 잠시 바라본 뒤, 상태창을 살폈다. 카르마가 얼마나 쌓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상태창.”
카르마는 충렬이 예상하던 양만큼 모아져 있었다.
[보유 카르마: 10,000]
‘1만 카르마가 드디어 모였군.’
1만 카르마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였다. 바로 스킬의 랭크를 올리는 것이다. 다음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4만 카르마가 필요했다. 때문에 카르마를 사용하려면 스킬에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스킬 중에서도 해골 병력 소환 스킬만 올릴 수 있었다. 다른 스킬들의 랭크를 올리기에는 아직 카르마가 부족했다.
‘뭐, 상관은 없지만.’
어차피 카르마가 모이면 소환 스킬을 먼저 올릴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이제 소환 스킬의 랭크를 올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 해골 병력 소환 스킬의 랭크를 올려줘.”
충렬이 말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10,000카르마를 소비합니다.]
[‘해골 병력 소환’ 스킬의 랭크가 B랭크에서 A랭크로 상승됩니다.]
[해골 병력 소환 - A랭크: 고유의 직업을 가진 해골 병력을 소환한다. 최대 5개체까지 유지 가능(9랭크까지 100,000카르마 필요).]
드디어 소환 스킬을 A랭크까지 찍을 수 있었다. 이제 네임드 해골은 한꺼번에 5개체까지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A랭크 다음도 있었군.’
그러나 9랭크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카르마가 필요했다.
‘10만 카르마나 필요하다니.’
하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스킬의 랭크가 A가 되면서 시스템이 새로운 정보를 알려왔기 때문이다.
[스킬의 랭크가 A랭크에 도달했습니다.]
[스킬의 위력이 강해졌기에 재사용 대기 시간이 생겨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지금껏 스킬의 대기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스킬의 랭크가 높아지면서 대기 시간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스킬의 쿨타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해골 병력 소환’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1분입니다.]
순간 쿨타임이 생기며 제약이 생기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제약이 아니었다. 이후 시스템은 놀랄 만한 것을 알려주었다.
[지금부터 ‘해골 병력 소환’스킬을 사용했을 때, 더 이상은 무기력해지지 않습니다.]
스킬의 랭크가 높아지니 약간의 쿨타임이 생겼다. 하지만 탈진과 같은 상태가 더 이상은 발생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훨씬 이득이다.’
쿨타임이라고 해보았자 1분밖에 되질 않았다. 대신 스킬을 사용했을 때 후유증이 생기지 않는다면.
‘보다 더 다양한 스킬의 활용이 가능해.’
설마 스킬의 랭크를 A까지 찍었을 때, 이런 기능이 생길 줄은 몰랐다. 앞으로는 전투를 하면서도 별다른 걱정 없이 소환 스킬을 사용할 수가 있게 되었다.
“뜻밖의 수확이군.”
시스템의 설명이 끝나고 스킬의 설명창이 조금 수정되었다. 이전에 없던 재사용 대기 시간에 대한 설명이 생겨난 것이다.
[해골 병력 소환 - A랭크: 고유의 직업을 가진 해골 병력을 소환한다. 최대 5개체까지 유지 가능. (9랭크까지 100,000카르마 필요) (재사용 대기 시간: 1분)]
그렇게 충렬이 새롭게 향상된 스킬에 대해 알아가고 있을 무렵. 샤오링이 상대하던 간수가 처치되었다.
[‘집행관의 간수’를 처치하였습니다.]
[5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충렬은 박해일이 갇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며 앞으로 빨라질 사냥에 대해서 기대했다.
“이제부터는 탈진 상태를 걱정할 것도 없이 스킬을 막 써도 되겠어.”
그 전까지는 전투 중에 당할까 싶어서 중간에 해골 소환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라이프 드레인이 있더라도 신중하게 사용해야 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는 달랐다.
***
안쪽으로 진입할수록 나타나는 간수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났다. 3마리의 간수까지는 그래도 평범하게 사냥할 수가 있었다. 4마리부터는 약간 힘들었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되었다. 박해일이 갇혀 있는 장소는 코앞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저기 있는 간수들이 마지막인가.”
물론 아직 감옥 곳곳에는 많은 간수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박해일이 갇혀 있는 장소.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앞을 지키는 간수들은 4마리밖에 없었다.
“가자. 해골들아.”
그렇게 충렬은 박해일의 구출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
미니맵에 표시된 거대한 방과 같은 공간. 그곳의 입구를 지키던 마지막 간수가 쓰러졌다.
[‘집행관의 간수’를 처치하였습니다.]
[5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충렬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간수를 본 뒤, 녀석의 뒤에 위치한 출입구를 살폈다. 나무문으로 가려져 있는 입구. 그 안쪽에는 박해일이 있을 터였다.
“드디어 도착했네.”
문 앞에 있던 간수를 처치하니 박해일의 처형까지 남은 시간이 사라졌다. 충렬은 망설임 없이 걸어가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나무문이 열리며 내부의 광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양옆으로는 철창들이 각각 나뉘어 있었다. 그곳들 중 하나에 박해일이 있었다. 그는 스크린에서 본 것처럼 벽과 연결된 족쇄에 손목과 발목이 묶여 있었다.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몰랐다. 때문에 해골들은 역소환시키지 않고 명령했다.
“샤오링. 가서 풀어줘.”
충렬의 명령을 받은 샤오링이 블랙 데스를 들고 흉흉한 기세로 박해일에게 다가갔다. 언제부터 깨어나 있었던 것일까? 박해일은 지긋이 충렬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샤오링은 블랙 데스를 휘둘러 족쇄를 제거했다.
카앙!
캉!
그렇게 잠시 뒤, 족쇄에서 해방된 박해일이 주저앉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털썩.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몸을 일으키며 입을 봉인했던 마개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서 입을 열었다.
“고맙군.”
그 한마디에 충렬이 대답했다. 다행히 상대는 당장에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박해일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대답은 간결하게 했다.
“천만에.”
그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멘트 따위를 고려해야 할 장소가 아니었으니까.
입마개를 벗어 던진 박해일은 옆에 가지런히 놓인 자신의 아이템을 챙겨갔다. 그는 자신의 장비들을 착용하며 충렬에게 말했다.
“시스템에게 설명을 들었다. 내 실력이 부족하여 죽은 목숨. 그래도 다시 살려주었으니 일단 다음 지역까지는 도움을 주겠다.”
충렬로서는 의외로 느껴지는 그의 말이었다. 하지만 곧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동료라는 허울 좋은 어울림을 할 생각은 없어. 대신 받은 만큼은 돌려주도록 하지.”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그 말. 어떻게 보면 살벌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가 의미하는 바는 달랐다. 목숨을 살려주었으니. 내키지는 않아도 다음 지역까지는 도움을 주겠다는 소리였다.
그의 진짜 속내는 알 수가 없었으나 거짓말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뭐, 도와준다면야…….”
충렬도 거절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계산을 철저히 하는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때문에 방금까지는 조금 거칠게 말을 하였지만, 이제부터는 그를 존중해 주기로 했다.
“그럼 가시죠. 여기를 재빨리 탈출해야 합니다.”
충렬의 말에 박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
박해일을 구출하자마자 충렬은 다급하게 움직여야 했다. 시스템이 알려오는 정보를 보면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집행관이 간수들을 죽인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5분 뒤, 집행관이 당신에게 도착합니다.]
[어서 빨리 옥상으로 올라가 탈출하십시오.]
집행관은 랜덤으로 만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충렬이 간수들을 학살하면서 일이 틀어진 것 같았다.
박해일도 시스템의 음성을 들었는지 충렬의 뒤에서 따라오며 말하였다.
“간수가 온다는군.”
“예. 5분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공간이 협소했기에 탈것을 소환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옥상까지 무작정 달린다면 5분 안에는 도착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한 길목에 간수들이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간수들을 사냥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괜히 간수들을 상대하다가 집행관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간수들은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겠습니다.”
지금은 해골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늦지 않게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