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간수가 달려오는 속도는 평범했다. 그다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 충분히 반응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속도였다.
아직 간수가 이쪽에 도착하려면 몇 초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때문에 달려오는 간수를 향해 해골들의 원거리 공격이 시작되었다.
강력한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사용된 마법은 빠르게 날릴 수 있는 기본 마법들이었다.
[<마법 조장 레일리>가 파이어 볼트를 ‘집행관의 간수’에게 발사합니다.]
[<안식을 거부한 마렉>이 다크 애로우를 함께 발사합니다.]
[<해골 마법사1>이 라이트닝 볼트를…….]
[<해골 마법사2>가 아이스 볼트를…….]
그 말을 끝으로 모양이 다른 4가지의 마법들이 간수에게 날아갔다. 간수는 마법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는지, 무식하게 돌격해 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간수에게 날아간 마법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적중되었다.
그런데 간수의 신체에 마법이 적중되기 직전, 정체불명의 푸르스름한 막이 나타나더니 마법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마법이 강력하게 부딪치는 소리도 없었다.
팅.
티딩.
팅. 팅.
간단하게 부딪치는 소리를 끝으로 모든 마법이 흩어져 버린 것이다.
[해골들의 마법이 ‘에너지 실드’에 가로막혔습니다.]
[‘집행관의 간수’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절망적인 시스템의 음성이었다. 그렇지만 충렬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걱정되는 상황과는 반대로 여유롭게 숫자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이제 96번만 때리면 되는군.’
그러거나 말거나 첫 번째 마법을 받아낸 간수는 어렵지 않게 충렬이 있는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충렬의 여유는 사라지게 되었다. 첫 격돌이 시작된 순간. 간수가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를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
데프론을 위시한 해골 보병들. 그리고 샤오링이 충렬의 앞을 막아섰다. 달려온 간수를 제일 먼저 맞이해 준 것은 고기 방패의 역할을 맡은 보병들이었다. 물론 고기로 사용될 살은 없었고 뼈다귀밖에 남지 않은 해골들이었다. 그렇지만 고기 방패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충분했다.
처음으로 간수를 향해 무기를 휘두른 해골은 보병1과 보병2였다.
[<해골 보병1>이 ‘독이 서린 날카로운 숏소드’를 간수에게 휘두릅니다.]
[<해골 보병2>가…….]
일시에 휘둘러지는 보병 둘의 일격이었다. 왼쪽에서. 그리고 오른쪽에서 들이치는 숏소드는 무척이나 매서웠다. 가장 기본적인 협공이었지만 막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간수는 보병 둘의 공격을 막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막을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했다. 녀석은 그저 맨몸으로 들이대었다.
그리고 역시나. 보병 둘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마법사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기 자체가 튕겨 나갔다. 간수의 몸에 닿기 직전에 말이다.
티잉!
팅!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한 보병 둘에게. 간수가 각각 쌍검을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너무나 단순한 일격이었다.
보병 둘은 간수의 공격을 막아갔다.
하지만 막으면 안 되었다. 피했어야 했다. 간수의 무기는 막아가는 보병 둘의 무기를 아무런 저항 없이 통과했다. 그런데 단순히 무기를 통과한 것은 아니었다. 보병 둘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잘라 버렸다.
[<해골 보병1>의 ‘독이 서린 날카로운 숏소드’가 ‘에너지 소드’에 의하여 파괴되었습니다.]
[<해골 보병2>의…….]
그 광경에 충렬이 놀랐다. 설마 무기가 이대로 파괴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간수가 왜 강하다고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특히나 도전자들이 왜 간수의 공격을 막지 못했는지, 그 이유도 지금에서야 파악이 되었다.
덕분에 초반에 구했던 독무기 2개를 앞으로는 쓰지 못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제기랄.’
못 쓰게 된 무기가 아까웠다. 그렇지만 푸념은 나중이었다.
무기를 잘라 버린 간수의 에너지 소드가, 이번에는 해골 보병 둘을 절단해 갔다. 숏소드로도 막지 못한 에너지 소드를 해골 둘이 맨몸으로 막아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역소환이었다.
[<해골 보병1>이 역소환됩니다.]
[<해골 보병2>가 역소환됩니다.]
충렬은 조만간 괜찮은 무기가 나오면 해골 보병들에게도 하나씩 쥐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방금의 광경을 목격하고선 생각을 달리했다.
‘너희들은 그냥 본 소드나 써라.’
네임드 해골이 아니라면 무기의 공급은 고려해 볼 문제였다. 앞으로도 이런 적들을 만날 때마다 무기를 날릴 수는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보병1과 보병2가 역소환되었지만 그사이 다른 해골들이 간수를 포위했다.
그렇게 간수 하나를 둘러싼 해골들이 단체로 무기를 찔러갔다.
[<죽음을 거부한 샤오링>, <해골 분대장 데프론>외 6구의 해골 보병이 ‘집행관의 간수’를 향해 무기를 찔러갑니다.]
공간이 공간이니만큼, 여럿이서 하나를 둘러싸서 공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해골들은 요령껏 돌아가며 공격하고 있었다. 물론 그 공격이 아직까지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팅!
티딩!
팅! 티잉!
티디딩! 팅!
실드에 의해 모든 공격이 막혔다. 그렇지만 해골들은 쉬지 않고 공격했다. 충렬도 거기에 합세했다.
“라이프 드레인.”
라이프 드레인 역시 에너지 실드에 튕겨났다.
티잉!
하지만 충렬은 쉴 틈 없이 혓바닥을 움직이며 스킬을 사용했다.
“라이프 드레인. 라이프 드레인. 라이프 드레인. 라이프 드레인. 라이프…….”
티잉! 티잉! 티잉! 티잉! 티……!
비록 당장에 공격이 통하지는 않을지라도 괜찮았다. 충렬의 스킬을 포함해 해골들이 단체로 공격하자 그 횟수는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간수도 뒤늦게 위기를 감지했는지 굼떴던 몸뚱이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걱.
간수가 에너지 소드를 휘두를 때마다.
해골 보병이 하나씩 절단되었다.
[<해골 보병8>이 역소환됩니다.]
[<해골 보병7>이…….]
…….
***
해골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 많았던 해골 보병들은 모조리 역소환이 되어버렸다. 이제 남은 해골들 중 근접전을 벌일 수 있는 해골은 데프론과 샤오링뿐이었다. 그리고 현재 공격은 대략 80회 이상을 성공시킨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거 조금은 아슬아슬하겠는데?’
실드를 부순다고 해도 놈을 처치할 방법이 없다면 안 되었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갈 사이. 데프론도 역소환이 되었다. 다행히 데프론의 무기는 파괴되지 않았다. 보병1과 2의 무기 파괴를 목격했기에 주의를 기울인 결과였다.
[<해골 분대장 데프론>이 역소환되었습니다.]
이제 근접딜러는 샤오링밖에 남질 않았다. 그런데 놀랄 만한 일이 발생되었다.
카앙!
샤오링이 들고 있는 블랙 데스. 그것은 에너지 소드에도 절삭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간수의 에너지 소드를 튕겨내었다. 힘은 샤오링이 더 강했던 것인지 무기를 맞대자 간수의 무기가 밀려났다.
그 광경을 목격한 충렬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뭐야. 그냥 처음부터 샤오링이 공격을 막아내었으면 되었잖아?”
괜히 무기가 파괴될까 봐 소극적으로 대응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보였다.
어쨌거나 간수의 공격을 한곳에 집중시킬 방법이 생겼다. 덕분에 충렬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입은 왜 열었냐고? 역소환이 된 보병들을 다시금 소환시키기 위함이었다.
“해골 병력 소환.”
그렇게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
해골들의 맹공에 간수가 생명을 다하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실드가 깨어지니 간수는 그 순간부터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맷집? 간수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다만 간수는 죽음에 이르는 일격을 받자 연기가 되며 흩어졌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집행관의 간수’를 처치하였습니다.]
[50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영혼 수확자의 반지에 스택이 쌓입니다.]
[중첩이 1증가합니다.]
[현재 중첩된 숫자: 57]
충렬은 간수를 처치하고 얻은 카르마의 양에 깜짝 놀랐다.
“와. 500카르마나 줘?”
보통 몬스터를 처치했을 때보다 10배가량이나 되었다.
‘여기를 그냥 확 쓸어버려?’
물론 구출도 성공하기는 해야 했다. 보상으로 주어지는 카르마를 챙겨야 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거나 첫 전투에서 승리한 충렬은 주변을 살폈다. 방금 간수를 처치하는 중에 엄청난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돌멩이가 많은 곳이 어디 없나.”
혹시나 싶어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간수에게 던져보았다. 그런데 웬걸. 돌멩이를 던지고 맞추었더니 그것도 실드의 방어 횟수를 차감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때문에 돌멩이를 미리 챙겨서 다닐 생각이었다.
한참 주변을 둘러보던 충렬은 돌멩이가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을 발견했다.
“오호라.”
오래된 시설이라 그런지 요새의 안쪽 석벽이 조금씩 무너진 곳이 있었다. 그 아래로 돌무더기가 한가득 이었다. 충렬은 그곳을 향하며 해골들에게 말했다.
“해골들아. 샤오링 빼고 돌 주워라.”
돌멩이만 던져도 이제는 간수들은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가 있을 터였다. 물론 혼자라면 100번을 던져야 한다. 그러나 충렬은 혼자가 아니었다. 근접전을 벌여야 하는 보병들. 녀석들의 한쪽 손에는 돌멩이를 쥐어줄 생각이었다.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한다니까.”
다른 도전자들은 하지 못했던 짓을 충렬은 시작했다. 그렇게 충렬은 내부 시설로 들어가기 전에 해골들과 한창 돌멩이를 주워갔다. 담을 공간은 충분했다. 정령의 주머니가 있었으니까.
***
한편 충렬이 간수와 첫 번째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을 때. 기절해 있던 박해일은 어느새 깨어나 있었다. 깨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시스템이 깨워주었던 것이다. 시스템은 박해일을 강제로 깨워 그가 처한 상황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동시에 해일의 눈앞에 스크린을 만들어서 충렬이 오고 있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충렬이 간수와 싸우고 있는 광경이 해일의 시야로 들어왔다.
‘나를 구하기 위해 오는 것인가…….’
승급전에서의 싸움. 비록 상대를 이기지 못했지만 해일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충렬에게 살해당했을 때. 알 수 없는 허무감만이 찾아왔다.
‘결국 내 실력은 거기까지였어.’
마음 같아서는 신이 되어 인류를 멸망시키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충렬에게 죽임을 당해보니 자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초라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하아… 그나저나 저자는 나를 왜 살리려고 하는 것이지?’
이유야 모르지 않았다. 동료로 삼기 위해서라는 시스템의 설명을 들었으니까.
‘또다시 나를 이용하려는 인간을 만나는 것인가.’
문득 과거가 떠올랐다. 다른 사람을 이용해 먹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피폐해졌던가. 아마 충렬이라는 저 사람도 똑같을 것이었다. 앞으로 있을 고난을 조금 더 쉽게 헤쳐가려고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이리라.
그러나 해일은 알 수 없는 감정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무언가 다르다.’
지금껏 해일은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한 사람들의 행동을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단순한 호의를 베풀거나 거짓된 말만 내뱉었을 뿐이었다.
충렬과 같이 실제로 목숨을 걸고 다가오는 이는 지금껏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사실 충렬은 카르마를 벌기 위해, 그리고 박해일을 더욱 쉽게 구출하기 위해 간수와의 전투를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 턱이 없었던 박해일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전쟁터에서 전우를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행동하는 동료.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전우와 관련된 영화에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머리로 이해시키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전달되는 막막한 느낌.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느낌인 것일까. 머릿속에서는 충렬 역시 자신을 이용하려고 할 뿐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고 속삭였다. 그러나 득달같이 간수를 공격하는 충렬의 모습이 해일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하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솔직히 승급전에서 죽었을 때.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삶의 미련은 생기지 않았다. 물론 신이 된다면 인류를 멸망시키고야 싶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는 모든 의욕이 꺾여 버린 상태였다.
‘여기서 살아 보았자 앞으로도 수많은 강자들을 만나야 할 텐데……. 내가 신이 될 수는 있을까……?’
아마 그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저자라면…….’
그렇다고 해서 당장 충렬에게 합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고민을 해볼 문제였다. 만약 자신이 구출되었을 때. 충렬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말이다.
그러나 해일은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상황을 모두 알려준 시스템이 다시금 그를 기절시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