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배의 갑판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여러 곳에 있었다. 무려 항공모함 정도의 크기를 가진 배였다. 그 때문일까? 다행히 충렬이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따로 적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서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공격받지 않은 이유는 곧 밝혀졌다. 남아 있는 도전자들은 충렬이 올라오든지 말든지 신경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갑판 위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다.
배의 모양이라고 말했지만 막상 올라와 보니 따로 내부로 진입하는 공간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매끄러운 석재 갑판과 중간에 위치한 거대한 기둥뿐이었다.
어느덧 용암은 배의 밑바닥까지 차오른 상황이었다. 섬의 모든 땅은 용암에 삼켜졌다. 이제 여기서 결전을 빠르게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목숨은 끝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배마저 용암에 잠기게 되어버릴 터였으니까.
‘그나저나 내가 제일 늦게 도착했군.’
최후까지 남은 5인. 그중에서 충렬이 제일 늦게 도착했다. 늦게 도착하면 불리할 것 같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자기네들끼리 치열하게 치고 박고 싸우니 의외로 안전하게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다.
저 멀리에서는 활을 쓰는 사내와 마법을 쓰는 사내. 그리고 검을 쓰는 여성. 그렇게 셋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광경을 살피던 충렬은 순간 의아한 점을 깨달았다.
‘잠깐… 나까지 해서 총 5명인데?’
[현재 살아 있는 인원: 5명]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한 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멀리 있지 않았다. 충렬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했다. 대충 30m 정도의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도 충렬과 마찬가지로 저 멀리서 발생하는 싸움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충렬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지금 싸움 구경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마침 그도 충렬이 올라온 것을 인식했다. 그러자 구경을 멈추고 충렬에게 집중했다. 그는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쳇. 편하게 가려고 했는데 방해꾼이 등장했군.”
그의 무장은 별 볼 일 없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단검 하나. 그것이 끝이었다. 다만 그의 복장은 조금 괴상망측했다.
‘광대의 분장이라.’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무서운 분장이었다. 그렇다고 길게 생각할 것은 없었다. 충렬은 해골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처리하고 와.”
그러자 해골 보병들이 그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런데 상대는 다가오는 해골들의 무리에도 겁나지 않았는지 마주 달려왔다. 일반적인 도전자들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흐흐. 재미있겠구만.”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일까? 해골들을 혼자서 상대할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상대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 겁을 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가 믿는 것은 스스로의 스킬이었다.
해골 마법사들이 마법을 날리려고 하고 보병들이 일시에 그를 덮치려는 그때. 그의 몸 주변에 연막이 터졌다.
퍼벙!
말이 연막이었지 조그만 연기가 발생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연막이 터짐과 동시에 그의 몸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처럼,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뭐지……?’
어디로 간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모든 해골들도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사라진 그의 모습을 찾기 위해 사방을 이리저리 살펴갔다. 하지만 사라진 그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어느새 모습을 크게 부풀린 헬 하운드가 충렬을 옆으로 밀쳤다.
“컹컹!”
동시에 충렬이 있던 자리의 뒤로 공간이 조금 찢어졌다. 그리고 거기로부터 단검을 들었던 사내의 오른팔이 삐죽하고 튀어나왔다. 사내는 손에 쥐고 있는 단검을 찔러왔다. 방금까지 충렬의 심장이 위치한 곳이었다.
만약 헬 하운드가 밀치지 않았다면 충렬은 목숨을 잃고 언데드가 될 뻔했다.
‘이런… 위험했어.’
충렬은 즉각 자세를 추슬렀다.
상대는 자신의 일격이 실패하자 혀를 내둘렀다. 찢어진 공간의 너머로부터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
“호오. 이걸 피하다니.”
그렇지만 그의 감탄은 거기까지였다. 찢어진 공간 속으로 팔을 집어넣는 그였다. 그가 팔을 집어넣자 갈라진 공간이 봉합되며 그의 모습은 다시금 사라졌다.
난처한 상대의 스킬에 충렬이 고민했다.
‘뭐지? 이건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모습을 투명하게 만드는 스킬은 아닌 것 같았다. 아예 공간 자체를 넘나드는 스킬인 것일까? 잠깐 생각하는 사이 이번에는 충렬의 머리 위의 공간이 갈라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이상한 낌새를 늦지 않게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충렬은 위화감을 느끼자마자 그 즉시 바닥을 굴렀다.
그러자 방금까지 충렬의 머리가 있었던 위치로 단검이 스쳐 지나갔다. 충렬은 피하는 와중에 생각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말이다. 그러나 도무지 상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제기랄…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컹컹!”
하운드가 입을 쫘악 벌리더니 충렬의 옆에 위치한 허공을 물어갔다. 동시에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장창창!
그와 함께 공간 속에 숨어 있던 광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하운드의 이빨에 물리자 무척이나 당황했다. 날카로운 이빨에 몸이 꿰뚫린 것보다 자신의 스킬이 들통나버린 것이 더욱 큰 충격이었나 보다.
“아, 아니 어떻게……!”
그러나 충렬이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대답해 줄 수가 있다고 해도 그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미 하운드가 턱에 힘을 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운드가 턱에 힘을 주자 광대의 육체가 찢어졌다.
콰직!
동시에 모든 뼛조각들이 박살 났다.
콰드드득!
[도전자 ‘피알로’를 처치하였습니다.]
순식간에 도전자 하나를 처치한 하운드는 그의 시체를 냅다 던졌다. 인간의 시체 따위는 맛이 없다는 듯 행동했다.
[헬 하운드가 허약한 도전자의 고기 맛을 싫어합니다.]
싫은데도 굳이 나선 이유는 충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어쨌거나 피알로의 시체는 용암 속으로 던져졌다.
그렇게 도전자 하나가 처치되는 동안 충렬은 남은 인원을 살폈다.
[현재 살아 있는 인원: 3명]
[지금까지 처치한 목숨: 12]
‘벌써 3명밖에 남질 않았나.’
저쪽을 보니 한 명이 처리된 듯했다. 충렬은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저쪽에서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은 두 명의 사내였다. 활을 사용하는 이, 그리고 마법을 사용하는 이였다. 그러나 둘 중 하나가 정리되는 시기는 머지않아 이루어졌다.
활을 사용하는 도전자. 박해일이 난간까지 후퇴한 마법사의 미간에 화살을 박아갔다.
마법사는 결국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손발이 어지러웠으니 말이다. 언제 소환한 것인지 박해일이 가지고 있던 탈것. 검치호가 연신 협공을 해대었다.
결국 마법사 사내의 머리에 화살이 박혔다. 그렇게 뇌가 기능을 잃어버리자 마법사의 몸은 실이 끊어진 연처럼 되었다. 몸을 가누지 못한 것이다.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마법사의 몸뚱이. 그의 몸은 이윽고 난간 밖으로 추락했다. 뜨거운 용암의 물결이 마법사의 시체를 반겨주었다.
풍덩.
마법사가 사망하며 갑판에는 두 명의 도전자만 남게 되었다.
[현재 살아 있는 인원: 2명]
도전자 박해일, 그리고 이충렬. 이제는 이 둘 중에서 오로지 한 명의 도전자만이 승급에 성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해일과 충렬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먼저 움직인 것은 박해일이었다. 그는 신속하게 활의 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화살이 충렬의 머리를 향해 짓쳐들었다. 화살의 날카로운 끝은 당장에라도 머리를 꿰뚫어 버릴 듯했다. 그때 나선 것은 샤오링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화살을 샤오링이 블랙 데스로 쳐내었다.
카앙!
그런데 화살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샤오링은 화살을 쳐냄과 동시에 세발자국 뒤로 물러나야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상대를 당황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어떻게 나의 화살을……!”
물론 그의 당황은 잠시뿐이었다. 그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를 두고 볼 마법사들이 아니었다. 그가 첫 번째 화살 공격을 실패한 순간, 해골 마법사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마법 조장 레일리>가 파이어 볼트를 도전자 ‘박해일’에게 발사합니다.]
[<안식을 거부한 마렉>이 다크 애로우를 함께 발사합니다.]
[<해골 마법사1>이…….]
[<해골 마법사2>가…….]
들이치는 마법의 향연에 놀란 그가 즉각 검치호의 뒤로 숨어들었다. 자신의 탈것을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던 것일까? 이유는 몰랐지만 마법들은 이미 검치호를 포함한 그를 집어삼켜 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검치호가 전방을 향해 크게 포효했다.
크허엉!
동시에 녀석의 앞에 동그란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마법진은 짓쳐오는 마법들을 막아내었다. 마법들과 마법진이 충돌하자 큰 소리를 일으켰다.
콰광!
콰과광!
허공에 생성된 마법진. 그리고 그것의 뒤에 있던 검치호와 박해일. 둘은 마법진 덕분에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법과 충돌한 마법진은 금이 생기더니.
쩌저적.
잠시 뒤 박살 났다.
와장창!
처음에만 해도 마법을 막아가는 모습에 충렬은 원거리 마법이 통하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마법은 충분히 통한다.’
하지만 마법사들이 추가로 스킬을 사용하기에는 늦었다. 박해일은 마법진이 박살나자마자 재차 활시위를 당겨갔기 때문이다.
목표는 충렬이 아니었다. 그가 노린 것은 원거리 마법을 사용하는 해골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발사된 화살이 가장 먼저 해골 마법사 하나를 역소환시켰다.
[<해골 마법사2>가 도전자 ‘박해일’의 화살에 의하여 두개골이 꿰뚫렸습니다.]
[<해골 마법사2>가 역소환됩니다.]
해골 마법사 하나를 시작으로 박살 나는 해골들이 줄을 이었다.
[<해골 마법사1>이…….]
[<마법 조장 레일리>가…….]
[<안식을 거부한 마렉>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해골들이 무방비하게 당해 버렸다. 그렇다고 재차 소환할 수는 없었다. 작은 틈을 보이는 순간 상대의 화살에 머리가 꿰뚫리게 될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해골 마법사들이 당하는 동안 충렬 쪽에서도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었다.
데프론을 포함한 해골 보병 9마리가 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충렬은 샤오링을 하운드의 등에 태우고 적을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충렬이 앞서가면 충렬에게 화살을 발사할 법도 했다. 하지만 적은 약삭빠르게도 오히려 뒤처지는 보병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아무래도 화살을 막아낸 샤오링의 존재와, 빠르게 이동하는 하운드의 모습을 보고서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해골 보병8>이 역소환됩니다.]
[<해골 보병7>이 역소환…….]
…….
[<해골 보병3>이…….]
그렇게 데프론과 해골 보병 2마리가 남았을 때, 충렬과 하운드. 그리고 샤오링은 적의 근접거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자 상대도 더 이상은 보병들에게 활시위를 당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