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54화 (54/237)

# 54화.

***

충렬은 현재 해골들과 진형을 맞추어 이동하고 있었다. 향하고 있는 방향은 섬의 중앙이었다. 그러나 가는 길 내내 조심은 해야 했다. 혹시나 모를 기습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하운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포기했다. 사방을 경계하며 전진할 뿐이었다.

[현재 살아 있는 인원: 27명]

[지금까지 처치한 목숨: 4]

30명을 넘어가던 인원수도 20대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아직 절반이 넘는 숫자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도 금방 줄어들게 되리라. 전투를 벌일 장소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으니까.

‘용암이 차오르는 속도가 상상 이상이다.’

아니, 용암이 차오르는 속도가 상상 이상인 것이 아니었다. 섬이 통째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랬기에 용암이 올라오는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충렬이 위치한 곳은 아직 안전 지역이었다. 충렬이 있는 곳까지 용암이 차오르기에는 시간이 제법 있었다. 그마저도 용암이 잠식하는 속도를 보면 최소 5분에서 최대 10분 정도밖에 되질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여러 상황을 고려하며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동하는 도중 간간히 도전자들의 시체가 보였다. 그들의 미간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모두가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정확히 머리를 관통했다.

‘역시 실력이 출중한 놈이었어.’

활을 사용하던 그의 목적지도 결국 충렬과 같았다. 충렬이 향하려는 쪽으로 발자취가 계속해서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양새는 그의 뒤꽁무니를 쫓는 것처럼 되었다. 그렇지만 다른 방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최종 결전지는 그곳밖에 없었으니 이동 경로가 겹칠 수밖에.

어쨌거나 덕분에 다른 도전자들과 마주칠 일은 아직까지 없었다. 마주치는 것은 시체가 된 도전자들이 전부였다. 죽은 도전자들의 시체에서 찾을 수 있는 아이템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 모두 챙겨가다니. 가벼이 볼 상대는 아니었다.

이렇게 이동하는 동안은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일 없이 이동하게 되니 알 수 없는 위화감만 생겨났다.

“너무 편하게 이동하는데…….”

원래라면 마주쳐야 했던 도전자들이 다 사망해 버렸다. 충렬이 상대해야 할 도전자는 없었다. 하지만 충렬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보병들아, 저 시체도 챙겨라.”

아이템을 파밍할 수가 없었지만 보병들을 시켜서 시체라도 챙기도록 했다. 나중에 사용할 일이 있을 지도 몰랐다.

해골 보병이 시체를 주워 들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해골 보병4>가 도전자의 시체를 짊어집니다.]

***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며 얼마나 걸어갔을까? 벽돌로 지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지역이 나타났다.

물론 대부분이 오래된 폐옥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순한 장소는 아니었다.

‘중앙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집합 장소다.’

섬의 중앙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나눈다면, 이곳은 동쪽에서 시작한 도전자들이 모조리 모일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섬의 중앙에 도착하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했다. 등에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 이곳을 통해야만 중앙으로 갈 수가 있었다.

‘동쪽에서 시작을 했다면 말이지.’

충렬도 동쪽의 구역에서 시작한 셈이었다. 고로 여기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중앙으로 가기 직전 모일 수 있는 마지막 장소여서 그런 것일까? 저 앞에서 많은 수의 인물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벼락이 떨어지고 거대한 폭발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죽어라! 썬더스톰!”

“감히 어딜! 파이어 블레이즈!”

콰과과과광!

퍼어어엉!

비단 마법뿐만이 아니었다. 근접 딜러들 또한 서로가 일격 필살의 스킬을 사용했다.

“스피어 스트레이트!”

“하압! 배쉬!”

부딪친 무기가 강렬한 쇳소리를 울렸다.

카강!

카아아앙!

충렬의 시야에서 전투를 벌이는 인물들의 숫자는 정확히 8명이었다. 그들은 서로 죽일 듯이 싸웠다. 그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인지 주변에 몇몇의 시체도 보였다.

저들은 아직 충렬을 발견하지 못했다. 본의 아니게 어부지리를 얻는 충렬이었다.

‘흠… 이거 그냥 대충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숟가락만 얹어도 되겠는데?’

여기에서는 활을 쏘는 인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 그는 먼저 중앙 쪽으로 향했나보다. 저들을 마주치기도 전에 이동한 것이 확실했다. 그러니 보이지가 않는 것이리라.

그런데 전투를 벌이는 이들의 낌새가 무언가 이상했다. 각자 싸우는 것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5명이서 협력해 나머지 셋을 협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다섯 명은 중앙으로 가는 길목을 틀어막고 있었군.’

최대한 경쟁자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편을 먹고 길을 차단한 것이 분명했다. 갈 때 가더라도 가기 전에 경쟁자를 안전하게 제거하려는 속셈이리라.

잠시 고민하던 충렬도 저 난전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대로라면 저 셋은 순식간에 당한다.’

솔직히 당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저들이 모조리 당하면 자신 혼자서 다섯이라는 적을 상대해야 했다. 중앙으로 가는 길목은 저곳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나중에 다섯을 상대하느니 지금 움직이는 것이 좋겠지.’

잠깐 생각하는 사이 3명이었던 도전자의 수는 2명으로 줄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충렬은 즉각 움직이기로 했다.

‘밸런스를 조금 맞춰줘야겠어.’

중앙으로 지나가기 위해서는 5인이 차단한 길목을 뚫고 지나가야했다. 어차피 전투를 치를 것이라면 바로 이때 움직이는 것이 적기였다.

‘그나저나 도전자들의 시체를 주워 오길 잘했군.’

현재까지 보병들이 짊어진 시체의 숫자는 총 네 구였다. 그리고 그 시체를 써먹을 때가 지금 찾아왔다.

***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파티. 그들은 소규모로 도착하는 도전자들을 학살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크하하. 이거 너무 쉽잖아!”

“역시 서로 협력하기를 잘했어!”

“크크큭. 여기선 혼자서 하려고 했다가는 개죽음이라고.”

“맞아. 편하게 다른 놈들을 다 처리하고 나중에 우리끼리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거야.”

다섯이 뭉치니 그 어떤 도전자가 와도 자신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도전자 셋이 파티를 결성하며 자신들에게 도전해 왔지만 역시나 숫자가 많은 이쪽이 유리했다.

“크. 내가 방금 한 녀석을 처치했다고! 이제 2명밖에 남질 않았어!”

오 대 삼으로 시작했던 전투는 순식간에 오 대 이가 되었다. 그렇게 한창 승리의 기쁨에 취해있을 때였다.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 칼을 손에 쥔 해골들이 우르르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해골들의 어깨에 사람의 시체가 들려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목격한 이가 근처 동료를 향해 물어보았다. 도전자와 달리 일개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봐, 승급전에 몬스터도 등장한다고 했었나?”

마침 그도 해골이 다가오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들은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몬스터 따위야 여기 있는 다섯이 힘을 합친다면 쉽게 처치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당장의 우선적인 순위는 눈앞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도전자 둘이었다.

그렇게 남은 도전자 둘을 향해 맹공을 펼칠 때였다.

해골들은 신기하게도 도전자 둘을 무시하고 자신들에게 곧장 달려왔다. 설마 사람을 구분하고 들어올지 몰랐던 그들은 조금 당황했다.

“제기랄! 해골들이 저 둘의 편이었나?”

“그런 것 같은데? 일단 도전자 둘부터 조지자고!”

“해골들은 나랑 로이가 먼저 막을게!”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해골 보병들이 보이자마자 거리를 벌리며 원거리 스킬로 요격했어야 했다. 혹은 멀리 도망을 가든가.

이미 해골들은 도전자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들의 사이에서 거대한 폭파가 일어났다.

해골들이 짊어온 시체에 더해서, 주변의 다른 시체들까지 함께 터져 나갔던 것이다.

***

충렬이 시체 폭파 스킬을 사용하자 거대한 폭발이 한창 전투를 벌이던 도전자들을 삼켜갔다. 해골들이 배달한 시체와 저들의 전투에서 사망한 도전자들의 시체가 합쳐졌다. 때문에 폭파의 위력은 매우 강력했다.

펑!

퍼벙!

퍼버버벙!

퍼버버버버벙!

지근거리에 있던 도전자들이 거기에 휘말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당연히 처치된 것은 도전자만이 아니었다. 시체를 배달한 해골 보병들도 같이 역소환이 되었다.

[<해골 보병2>가 역소환됩니다.]

[도전자 ‘푸맛’을 처치하였습니다.]

[도전자 ‘베롬’을 처치하였습니다.]

[<해골 보병4>가…….]

[도전자…….]

…….

충렬은 솔직히 시체 폭파에서 몇 명은 살아남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도전자는 없었다. 강력한 시체 폭파의 위력에 모두가 사망했다.

‘너무 쉽게 끝났군.’

예상하지 못한 시체 폭파에 살아 있던 7명이 전부 즉사한 것이다. 혹시나 몰라 해골 마법사들의 마법을 준비시켰건만 마법사들이 나설 기회는 없었다.

많은 수의 인원을 한꺼번에 제거시킨 덕분에 남아 있는 인원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다른 곳에서 사망한 도전자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현재 살아 있는 인원: 13명]

[지금까지 처치한 목숨: 11]

충렬은 대충 장내를 정리하며 남아 있는 시체들에서 아이템을 수습했다. 죽은 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챙길 수 있는 아이템의 양이 터무니없이 많았다.

[‘노병의 창’을 습득하였습니다.]

[‘철제 메이스’를…….]

…….

그렇게 상황을 마무리 지은 충렬은 다시금 이동을 시작했다.

***

어느덧 용암은 동쪽 서쪽 할 것 없이 모조리 삼켜 버렸다. 발 빠르게 이동한 충렬의 앞으로는 섬의 정중앙. 그곳의 전경이 드러났다.

제일 높은 땅 위에 하나의 건축물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건축물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항공모함 크기 정도의 커다란 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배는 아닐 터였다. 석재로 만들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저곳이 마지막 격전지인가.’

석재로 만들어진 배 외에는 더 이상 높은 장소가 없었다.

어쨌거나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이 저 위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이제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숫자도 적었다.

[현재 살아 있는 인원: 6명]

충렬이 이제 막 이동하려는 때였다. 배에서 도전자들끼리 전투를 벌인다는 추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제 막 배에 오르려는 그때. 충렬의 시야로 배의 난간에서 추락하는 도전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머리에는 기다란 화살이 하나 박혀 있었다.

동시에 살아남은 인원이 하나 줄었다.

[현재 살아 있는 인원: 5명]

충렬은 추락하는 도전자의 머리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박해일이라는 도전자가 저기에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저기에 있었군.’

아마 다른 도전자들도 모두 배 위로 이동했을 터였다. 주변에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추가적인 도전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중앙 지역까지 침범하기 시작한 용암의 물결이었다. 늦게 도착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적어도 동쪽 구역에서 시작한 도전자들 중에서는 충렬이 마지막이었다.

어찌되었거나 충렬은 마지막 전투를 위해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고서 배의 갑판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계단을 향해 발을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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