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승급전. 이번 전투 지역은 다른 의미로 엄청났다. 이건 뭐 가만히 있어도 자기들끼리 공멸하는 수준이었다. 언덕을 올라가고만 있었는데 표시된 사람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현재 살아 있는 인원: 37명]
[지금까지 처치한 목숨: 3]
밑에 표시된 3명은 충렬의 손에 죽은 이들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 3명을 처치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충렬은 그렇게 사람들의 숫자를 살피며 좁은 길목을 한참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올라왔군.’
물론 중앙의 장소까지 가려면 아직 거리가 조금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거의 다 왔다는 소리는 그나마 길이 넓고 경사가 완만한 장소까지 도착했다는 소리였다. 이제 몇 걸음만 가면 조그만 공터를 시작으로 수풀 지역이 나왔다. 공터부터는 편안하게 이동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주의해야 한다.’
다른 지점에서 시작한 이들과 경로가 겹치는 장소였다. 설마 먼저 도착했을 도전자가 있을까도 싶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먼저 앞서서 공터에 발을 디딘 샤오링에게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바람을 가르며 짓쳐오는 그것은 무척이나 빨랐다.
쉬이이익!
날아든 것은 화살이었다. 그리고 화살은 샤오링이 반응하기도 전에 샤오링의 두개골을 향해 들이쳤다.
하필 튼튼한 몬스터의 뼈로 교체하지 못한 부위가 머리였다. 때문에 화살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샤오링의 두개골은 단번에 꿰뚫렸다.
평범한 뼈로 구성된 두개골이 퍼석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도전자 ‘박해일’의 화살이 <죽음을 거부한 샤오링>의 두개골을 꿰뚫었습니다.]
[<죽음을 거부한 샤오링>이 역소환됩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단 한 방에 샤오링이 당해 버렸다.
‘미친……!’
샤오링이 당하자마자 충렬은 자리에 누웠다. 샤오링이 당했다면 다음은 자신의 차례였다. 이어서 당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자세부터 낮추고 보아야 했다.
‘혹시나 해서 샤오링을 앞에 세웠는데… 그러길 잘했군.’
예상하지도 못한 원거리 공격이었다. 특히나 저렇게 정확한 조준을 하다니. 만약 샤오링을 앞세우지 않았다면 머리가 꿰뚫린 것은 충렬이었다.
‘적은 하나인가?’
알 수는 없었다. 직접 보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이러고 있어보았자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은 물량으로 밀어보는 것이 답이었다. 적이 활이라는 무기를 쓰고, 만약에라도 혼자라면 많은 수의 보병들을 감당할 수가 없을 터.
신속히 판단을 내린 충렬이 뒤에서 대기하는 중인 해골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보병들. 돌진해.”
충렬의 명에 데프론을 포함하여 총 아홉의 해골 보병들이 공터로 일사불란하게 이동했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그렇게 이동한 해골들이 공터에 발을 올리기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적은 보병들이 모습을 보이자마자 재차 공격을 이어왔다. 활을 사용하는 적은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을 발사했다.
[<해골 보병8>의 두개골이 꿰뚫립니다.]
[<해골 보병8>이 도전자 ‘박해일’에 의해 역소환됩니다.]
무슨 쏘기만 하면 백발백중이었다.
‘이거 엄청난 적을 만나 버렸군.’
하지만 해골들은 더 이상 죽지 않았다.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해골들의 모습에 놀란 것일까? 8번째 해골 보병이 역소환되었지만 그 이후로 공격을 당하는 해골들은 없었다.
‘설마 도망갔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대의 공격은 더 이상 없었다. 그래도 충렬은 혹시나 몰라 조금 더 기다려보았다.
“일단 샤오링부터 다시 불러야겠어.”
다시금 샤오링을 소환하고 보병들의 반응을 기다릴 때였다.
공터에 올라가 수색을 시작한 보병들에게서 들려오는 소식은 좋지 않았다.
[<해골 분대장 데프론>이 적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해골 보병1>이 주변에서 적대적인 존재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해골 보병2>가…….]
엄청나게 용의주도한 인물을 만나 버렸다. 혼자서 모든 해골들을 처리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자 즉각 몸을 빼내다니.
‘일시적으로 후퇴를 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혹시 몰랐다. 샤오링을 향해 날아온 화살의 방향은 지극히 전방이었다. 때문에 충렬은 샤오링을 방패 삼아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충렬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체력이 회복되자 입을 열었다.
“샤오링. 내 바로 앞에서 먼저 이동해.”
언제까지나 가만히 숨어 있을 수는 없었다. 위험한 것이 앞에 있을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나아가야 할 때였다.
***
박해일. 그는 30대 중반의 한국인 남성이었다.
헬리오스에 끌려온 뒤, 그는 활잡이라는 직업을 얻었다. 그리고 이 지옥과 같은 전장을 헤쳐 나갔다.
특히나 이번 승급전은 시작하자마자 도전자 둘을 제거하고 시작했다. 특유의 몸놀림과 정확한 조준이 가미되니 감히 적수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은 후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해일은 현재 검치호의 등에 올라타 수풀 사이를 가로질러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직전에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제기랄. 언데드를 부리는 녀석이라…….”
방금까지 있었던 위치는 좋은 장소였다. 올라오는 도전자들을 죽이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였던 것이다. 제법 괜찮은 명당이었다. 특히나 여러 방향에서 오는 도전자들은 그곳을 지날 확률이 높은 장소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자신의 탈것인 검치호를 이용해 자리를 미리 선점하고 잠복하고 있었다. 나타나는 적을 사살하기 위해서다.
“작전 회의실에서 고심한 끝에 발견한 장소인데…….”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떠나야 했다. 갑자기 몰려드는 언데드를 보고서는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소수와 싸운다면 적이 다가오기 전에 처치하면 되었다. 그렇지만 등장하는 언데드의 숫자가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미련 없이 그 장소를 포기했다.
“한꺼번에 많은 적을 감당하기는 힘드니까.”
때문에 그는 다음으로 봐둔 장소를 향해서 이동했다.
‘해골을 부리는 녀석은 누군가가 처치해 주었으면 좋겠군.’
물론 들이닥치는 해골들의 수를 봤을 때, 쉽게 해치울 수 있는 상대는 아닐 것으로 보였다.
‘쳇, 언데드를 곧바로 처치하지 말고 조금 기다려 볼 것을 그랬어.’
그랬다면 상대가 방심하여 모습을 드러냈을 때 끝냈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매복은 그만큼 완벽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성급했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아무래도 판단이 빠른 유형의 인물 같았다. 해골 하나를 처치하자마자 놀라지 않고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약점을 알았던 것인지 엄청난 수의 해골들을 먼저 들이민 것이다.
‘하기야, 애초에 신중한 인물이었으니 먼저 나서기보다는 언데드를 앞장세운 것이겠지.’
박해일은 골치 아픈 적을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좋은 장소는 아직 차고 넘쳤다. 더욱이 섬의 중앙에 위치한 장소는 매우 요건이 좋은 장소였다. 언데드를 부리는 녀석이 온다고 하더라도 놈의 진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어쨌거나 자신은 승급전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서 1등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신이 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권한이 주어지는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신이 되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거창한 일은 아니었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모두 정리해야 해.”
본래 박해일의 가정은 화목하고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두 부모님과 외아들인 자신까지… 부족하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지인의 탈을 쓴 사기꾼들이 찾아왔다. 덕분에 부모님은 가진 집과 재산을 다 잃고 자살을 했고, 해일은 충격을 받고 매일을 소주만 들이키며 죽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친척? 그런 것은 없었다. 모두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힘들었던 세월을 혼자 버텨내는 데 걸린 시간만 자그마치 5년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힘든 20대의 시기. 친구라는 작자들이 도와준다며 접근했다. 덕분에 당분간은 도움을 받으며 지낼 수 있었다. 친구란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 다른 착각이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공을 들여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이유가 있었다. 목적 없이 친절을 베푼 것이 아니었다. 결국 보증과 대출을 서게 했다. 물론 불법적인 것들이었다. 멍청하게도 그런 것들을 왜 해주었을까? 모르겠다. 당시에는 왜 그랬는지.
덕분에 없었던 빚은 쌓여만 갔고 인생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이후로는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돌아가신 부모님 외엔 모두가 괴물같이 느껴졌다.
부모님을 따라 자살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 이왕 죽을 거. 나도 갑자기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8년을 버텼다. 그리고 8년 만에 헬리오스라는 곳으로 올 수 있었고, 처음으로 목표가 생겼다.
목표는 바로 인류의 멸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인간들은 모두 쓰레기다. 남을 이용해 먹으려고만 하지. 모조리 박멸시켜야 해.’
그러니 자신은 무조건 승리를 해야 한다. 패배란 있을 수 없었다. 악착같은 깡다구로 버티면서 반드시 신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신이 되어서 인류를 멸망의 길로 이끌어야 했다.
그렇게 잊지 않도록 자신의 목표를 상기한 박해일. 그는 검치호와 함께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
공터로 올라온 충렬이 주변을 살폈다. 충렬은 샤오링이 당했던 화살의 방향을 떠올렸다.
‘대충 저쪽 방향에서 날아온 것이 분명한데…….’
과연, 저 멀리 보이는 오르막길의 수풀에 무언가 흔적이 있었다. 방금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인지 풀들이 밟혀 꺾여 있었다. 멀쩡한 주변 풀들과는 달리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 밟았다고 보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은데?”
마치 동물이 밟은 흔적 같았다.
‘설마 상대도 탈것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모든 상황이 설명되었다. 솔직히 도전자의 몸으로 벌써 현재의 장소를 벗어나기란 말도 되지 않았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 탈것이 나만 있으란 법은 없지.”
상대는 고수였다. 아마 지금까지 본 도전자들과는 수준이 다른 존재일 터.
“역시 승급전이라 그런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군.”
어찌되었거나 활을 쏘던 상대는 장소를 벗어난 것이 확실했다. 이렇게 몸을 드러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충렬도 여기서 가만히 있을 때는 아니었다. 계속해서 이동해야 했다.
‘그럼 슬슬 이동해 볼…….’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자신이 올라왔던 방향과는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도전자가 모습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부스럭.
무언가를 밟으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전형적인 초보 도전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해골들을 보더니 깜짝 놀라 제자리에서 굳었다.
“아, 아니 무슨 해골들이 이렇게나 많이……!”
동시에 충렬의 모습을 보자마자 크게 외쳤다.
“자, 잠깐만. 살려줘! 제발 죽이지 말라고!”
그의 말에 무슨 충렬은 자신이 악당이 된 기분을 느꼈다.
“그럼 내가 대신해서 죽어줍니까?”
어차피 여기에서는 최후의 1인 말고는 의미가 없었다. 저 사람을 살려준다고 한들 결국 마지막에는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했다. 충렬은 손을 휘저으며 대충 손짓했다.
“해골들아, 알아서 담그고 와라.”
그러자 보병들이 나설 것도 없이 마법사들이 즉각 마법을 사용했다.
[<마법 조장 레일리>와 해골 마법사들이 기본 마법을 적에게 날립니다.]
그렇게 길을 잘못 들어온 도전자. 그는 잠시 뒤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도전자 ‘몽펠’을 처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