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이어서 들려오는 저들의 음성을 들어보니 마치 충렬을 찾으려 했던 것처럼 보였다.
“어… 저길 봐! 찾았어……!”
“야. 조용히 해. 괜히 우리를 적대하면 어떻게 하려고!”
충렬은 잠시 생각했다. 저들의 말투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날 따라왔다고?’
도움이 필요해서 따라온 것일까? 혹시나 그럴지도 몰랐다. 충렬은 감았던 눈을 살며시 떴다. 그러자 저 앞으로 거지꼴의 남자 셋과 여자 하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안타까운 사람들이었군.’
상태 이상이 얼마나 악화된 것이었는지 그들의 행색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피부에 생긴 발진부터 시작해 낭종, 그리고 종기까지. 한눈에 보아도 저들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평소라면 남의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충렬이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불쌍한 모습의 상대방이었다. 물론 도울 방법은 없었다. 남을 치유해 주는 스킬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저들을 도울 방법은 곧 생겨났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도움이었지만 말이다.
“야, 저 새끼 지쳐서 나가떨어진 것 같은데 그냥 가서 덮치자.”
단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를 들은 직후, 충렬은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했다.
‘머더러였나. 그렇다면…….’
묘비의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도와주기로 했다.
***
충렬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지쳤다고 착각한 그들이었다. 약간 피로했기에 충렬이 쉬고 있는 것은 맞았다. 그러나 다가오는 적을 향해 맞이해 줄 정도의 여력은 충분했다.
사실 여력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해골들이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굳이 많은 해골들을 보낼 필요도 없어보였다. 저들의 상태를 보니 그리 뛰어난 도전자들로도 보이지는 않았다. 충렬은 간단하게 샤오링만 보내기로 했다.
“샤오링. 가서 정리해.”
충렬의 명령에 블랙 데스를 손에 쉰 샤오링이 땅을 박찼다.
[<죽음을 거부한 샤오링>이 적대적인 3명을 향해 들이칩니다.]
그러고 보면 저들은 4명이었지만 충렬에게 공격 의사를 보이는 이들은 3명이었다. 그 3명은 사내들이었다. 샤오링 역시 사내 세 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째서인지 여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샤오링도 일단은 여자를 적으로 간주한 것이 아니리라.
‘우선은 적이 확실한 셋부터 처리한다.’
***
일행들 사이에서 레이첼은 음험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사실 다른 일행들과 달리 레이첼은 질병에 어느 정도 저항을 하고 있었다. 면역 강화라는 패시브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스킬의 랭크는 낮았다. 때문에 계속해서 상태 이상은 악화되어 갔다. 그래도 다른 이들에 비해서는 버틸 만한 정도였다.
그런 그녀는 사전에 묘비의 정보를 살핀 뒤, 일부러 일행들을 꼬드겨 하수도 내부로 끌고 왔다.
‘후후. 멍청한 사내놈들. 해골 소환사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면 네 녀석들도 같이 처리해 주마.’
상상만 해도 짜릿한 전율이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얼마일까 감히 계산되지가 않았다.
레이첼의 직업은 그림자 자객이었다. 암살에 특화되어 있는 자신의 재능으로는 여기 있는 모두를 처리할 능력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얼마나 이동했을까? 마침내 목표물이 있는 장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목표물은 지쳤던 것인지 무방비 상태로 있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다가갈 수는 없었다. 근처에 해골들이 지키고 있어서다.
‘자… 그럼 작업을 시작해 볼까?’
레이첼은 도움이 필요한 척 조용히 접근해 충렬을 기습하려 했다. 일행들과 단체로 그렇게 행동을 하면 해골들의 눈을 피해 작전을 성사시킬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자신의 작전을 멍청한 일행들 중 하나가 망쳐 버렸다. 이용하기가 쉬워서 함께했건만, 기어코 일을 그르쳐 버렸다.
“야, 저 새끼 지쳐서 나가떨어진 것 같은데 그냥 가서 덮치자.”
해골들이 쉬워 보였던 탓일까? 겁도 없는 그의 발언에 남은 두 사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자.”
“해골 따위.”
여기까지 사냥을 해올 정도면 해골이 약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사내들은 멍청한 선택을 하였다.
‘저런… 멍청한……!’
심지어 상대는 사내 셋에 맞서 겨우 해골 하나를 보낼 뿐이었다. 더군다나 무덤덤한 그의 반응을 보면 해골 하나로 이들 셋을 상대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레이첼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들과 함께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아깝다. 이놈들은 내가 죽여서 카르마를 챙기려 했는데…….’
그러나 멍청한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레이첼은 일행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공격의 의사가 없다는 것처럼 모습을 보이기로 했다. 그리고 일행인 사내들이 도륙되어갈 때 새로운 계획을 떠올렸다.
‘억지로 끌려 다닌 척을 해야겠어.’
***
샤오링은 충렬에게 적대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충렬을 향해 달려들던 사내 셋의 목은 ‘블랙 데스’에 의해 잘려야 했다. 상태이상으로 약화된 그들은 해골 기사인 샤오링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마지막까지 간신히 버텨내던 사내도 샤오링의 일격에 수급이 베어졌다.
“아, 안 돼……!”
서걱.
목에서 분리된 그의 얼굴엔 경악이 가득했다. 고작 해골 하나가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동시에 시스템이 충렬에게 알려왔다.
[머더러가 된 도전자 ‘페로’를 처형했습니다.]
[당신은 머더러가 아니기에 머더러 처치에 따른 추가 카르마가 지급됩니다.]
[1,150카르마를 습득하였습니다.]
3명을 처치하며 대략 3천이 넘는 카르마를 습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한 명이 남아 있었다. 사내들과는 다르게 심한 상태 이상이 발생하지 않은 여성이었다. 그나마 말끔한 모습을 유지한 여성에게 충렬이 물어보았다.
“당신도 덤빌 겁니까?”
충렬의 물음에 금발의 여성이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흘렸다.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전 어쩔 수 없이 저 사람들에게 끌려 다녀야 했어요……. 흐윽…….”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애절하게 우는 그녀의 모습에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물론 믿지는 않았다.
‘방금 처치한 머더러들보다 상태가 멀쩡하다. 결코 그들보다 약한 여자는 아니야.’
그러나 굳이 공격할 의사가 아니면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충렬도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럼 이만.”
충렬이 자리를 벗어나려하자 울먹이던 여자가 더욱 서럽게 울었다.
“저, 저를 혼자 두고 가지 마세요……!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알지 못해요……. 제발요!”
그녀의 말에 충렬이 재차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손을 내밀었다.
“안내 비용은 1,000카르마만 받겠습니다. 물론 제 사냥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
충렬의 요구에 레이첼은 너무나 당황했다. 단순한 안내에 1천 카르마나 달라고 하다니. 대놓고 요구하는 그의 뻔뻔함에 말문이 막혔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회였다. 카르마를 주기 위해서는 가까이 가야 했기 때문이다.
레이첼은 충렬의 멍청함에 속으로 비웃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걸? 호호. 어서 빨리 아이템을 챙기고 싶다.’
당연히 속마음과는 다르게 겉으로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정황상 아쉬운 사람은 자신이었으니까.
“네… 드릴게요…….”
레이첼은 충렬을 향해 다가갔다. 그녀는 상대에게 다가가며 재빨리 잔머리를 굴렸다.
‘그러고 보니까 저 해골의 무기가 유독 특이했단 말이야.’
레이첼의 시선이 향한 곳은 거무튀튀한 무기를 들고 있는 해골이었다. 생각해 보면 저 해골은 검은색의 검으로 일행 셋을 순식간에 처리했다.
‘엄청난 무기가 아닐까?’
순간 레이첼의 눈빛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그래. 카르마를 주는 척하면서… 해골의 무기를 훔치자.’
마침 검은색의 무기를 소지한 해골이 사내의 옆에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자신에게는 상대방이 가진 아이템 중에서 하나를 무조건 훔치는 스킬이 있었다.
바로 ‘아이템 훔치기’ 스킬이었다. 후유증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24시간에 한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그리고 훔친 무기로 저 사내를 죽이는 거야.’
생각하면 할수록 작전은 완벽했다.
그렇게 충렬의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한 레이첼은 충렬의 손을 맞잡으며 카르마를 전달했다.
[소지한 1,000카르마를 상대방에게 전달합니다.]
충렬은 레이첼이 카르마를 전해주자 방긋 미소를 지으며 친절히 대했다.
“감사합니다. 입구 까지는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죠.”
그리고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 것처럼, 등을 돌려 저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레이첼이 행동에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지금이 기회다!’
그녀는 근처에 있는 해골을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대상은 검은색의 검을 들고 있는 해골이었다.
“아이템 훔치기!”
스킬은 성공했다. 순식간에 그녀의 손에 거무튀튀한 검이 올려졌다. 예상대로 훔친 무기는 평범한 무기가 아니었다.
[블랙 데스: 질병에 조예가 깊은 마녀들이 모여 만든 마검이다. 공격이 적중했을 때 질병과 관련된 상태 이상을 적에게 부여한다. 하지만 착용자에게도 질병이나 관련된 증상을 계속해서 일으키기 때문에 웬만하면 착용하기를 권장하지 않는다.]
설명은 길었다. 그렇지만 레이첼에게 설명을 읽을 시간은 없었다. 마저 해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무기를 이용해서 등을 돌린 사내를 처치하기만 하면 되었다.
‘좋았어. 이제……!’
하지만 급하게 움직이려는 레이첼에게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상태 이상 ‘사지 마비’가 발생하였습니다.]
[‘사지 마비’는 무기를 손에서 놓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잠시 뒤, 좋지 않은 증상이나 새로운 질병이 추가적으로 발생합니다.]
[무기에서 손을 놓으시기를 권장드립니다.]
그러나 움직이지 못하는 레이첼의 의식은 거기까지였다. 샤오링의 무기를 훔친 순간부터, 주변에 있던 해골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푹!
푸욱!
푸북!
서걱!
푹! 푹! 푹! 푹!
그녀 또한 해골들의 실력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 블랙 데스를 손에 쥐어 상태 이상이 발생되지 않았어도 적대적인 모습을 보인 순간, 그녀는 살해될 운명이었다.
***
무너진 레이첼의 몸뚱이를 충렬은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이템 훔치기 스킬이라…….”
솔직히 거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머더러와 한패인 것 같기는 했단 말이지.”
뭐, 상관은 없었다. 언제든지 처리할 자신감은 있었기에 잠시 놔두었던 것뿐이었다. 만약 덤비지만 않았다면 진짜로 살려주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일부러 등을 돌리며 틈을 보여주었는데, 곧바로 반응을 보일 줄이야.
“어쨌거나 이렇게 정리가 되는군.”
덕분에 충렬은 카르마를 잔뜩 챙길 수가 있었다. 머더러들은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선물을 잔뜩 싸들고 방문해 왔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머더러 사냥이 짭짤하단 말이야.’
상대를 처형시키고 얻은 카르마뿐만이 아니었다. 아이템도 얻어갈 수 있었다. 충렬은 시체로 변한 이들의 아이템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머더러들의 시체가 발가벗겨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자객의 대거’를 획득하였습니다.]
[‘커틀러스’를 획득하였습니다.]
[‘오래 된 쇼텔’을 획득하였습니다.]
[‘소가죽 건틀릿’를 획득하였습니다.]
[‘우드 폴드런’을 획득하였습니다.]
…….
특수한 아이템은 없었다. 그럼에도 충렬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서 수거한 아이템의 양이 적은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아이템을 판매한다면 제법 많은 양의 카르마를 벌어갈 수가 있을 터였다.
“흐음… 이거 너무 괜찮은데? 진짜로 머더러 사냥이나 해볼까?”
그렇게 충렬에게 덤볐던 이들은 목숨을 포함해 아이템까지 모조리 탈탈 털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