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방을 몇 개째 지나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충렬의 사냥은 오래되었다. 쉬는 시간은 없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사냥한 랫맨들의 숫자는 다음과 같았다.
[현재까지 사냥에 성공한 몬스터의 수: 랫맨 192마리.]
이제는 아무리 멀리까지 진행해도 나타나는 랫맨들의 수는 총 15마리를 넘기지 않았다. 그렇게 충렬의 사냥이 멈추었을 때는 하수도의 끝에 다다랐을 때였다. 당연히 모든 장소를 탐색한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한쪽 방향으로 갔을 때의 마지막 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길로도 가야겠어.’
어차피 사냥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고작 여기서 사냥을 멈추려 했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때문에 즉시 오른쪽 길로 나아갔다.
사냥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충렬은 현재 다양한 방식으로 사냥 방법을 시도해 보는 중이었다.
“이번에도 시폭을 써볼까.”
이전에 마주친 랫맨의 무리들에게는 시체 폭파 스킬을 사용했다. 생각 외로 위력은 상당했다. 굳이 시체를 누적시키지 않아도 일반 몬스터들 따위는 간단하게 제압했던 것이다.
‘물론 잘못 사용한다면 보병들의 피해가 커지긴 하지만…….’
그래도 사냥 속도는 월등히 빨랐다. 그렇게 생각하며 얼마나 이동을 했을까? 마침내 또다시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의 방은 역시나 랫맨이 15마리가 있었다.
랫맨들의 모습이 보이자 해골들이 반응했다.
[소환된 해골들이 랫맨들을 발견하였습니다.]
[해골들이 전투 모드에 돌입합니다.]
이제는 사냥에 적응한 해골들이 선공에 나섰다. 충렬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이었다. 처음은 레일리를 포함한 마법사들이었다. 여기서는 강력한 마법을 쓸 필요가 없었기에, 레일리도 다른 마법사들과 같이 기본 마법을 사용해 나아갔다.
[<마법 조장 레일리>가 ‘파이어 볼트’를 전방의 랫맨 무리에게 발사합니다.]
[<안식을 거부한 마렉>이 ‘다크 애로우’를 함께 발사합니다.]
[<해골 마법사1>이…….]
[<해골 마법사2>가…….]
보병들이 돌진하기도 전에 시작된 원거리 공격이었다. 그 공격은 이제 막 이쪽을 인식한 랫맨들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적중되었다. 전방에 위치한 랫맨들은 피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마법들을 말이다.
푸욱!
푸북!
푹!
간단한 기초 마법이었음에도 거기에 목숨을 잃는 랫맨들이 있었다. 각자 다른 4마리에게 적중되었지만 놈들 중 2마리가 즉사했다. 놈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아군들이 당하자 경계했다.
찍찍!
찌직! 찍!
동시에 이쪽으로 달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충렬이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먼저였다.
충렬은 랫맨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려는 동작을 취하려는 순간, 입을 열었다.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물론 스킬을 사용한다면 탈진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 때문에 무방비해질 터였다.
그렇지만 상관은 없었다. 여기에는 자신을 지켜줄 해골들은 차고 넘쳤다. 결국 입을 연 충렬이 스킬을 사용했다.
“시체 폭파.”
충렬의 그 한마디로 인해, 즉사했던 랫맨 2마리의 시체가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즉사당한 ‘랫맨’의 시체를 폭파시킵니다.]
[바로 옆에서 사망한 ‘랫맨’의 시체도 함께 폭파시킵니다.]
[시체의 상태가 평범합니다.]
[추가 대미지: 1.24배]
[지금까지 누적된 총 추가 대미지: 1.24배]
그 말을 끝으로 랫맨 둘의 시체가 터져나갔다. 고작 2개의 시체를 터뜨렸으니 위력이 약할 것 같다고? 천만에. 악마 마르바스와 랜서를 처치했을 때는 미사일 폭격과 같은 위력이었다면, 이번에는 수류탄이 터지는 정도의 위력이었다.
당연히 미사일 폭격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수류탄에 당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것은 랫맨들도 마찬가지였다. 놈들은 지근거리에서 터지는 시체 폭파에 맥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펑!
퍼벙!
랫맨의 시체가 터지며 발생한 파편들이 근처에 위치한 다른 랫맨들을 덮쳤다. 아쉽게도 시체의 위치가 전방에 있었다. 그렇기에 폭파 범위는 바로 근처에 있는 랫맨들에만 적용되었다. 모든 랫맨들에게는 적용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상관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랫맨의 절반가량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으니까.
설마 동료의 시체가 터질 줄 몰랐던 랫맨들은 당황하며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찍찍!
찍!
찍찍찍!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했다. 기초 마법에 죽지 않았던 랫맨 2마리가 즉사했고, 폭파 범위 가장 안쪽에 있던 랫맨 1마리가 추가로 즉사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폭파 범위의 가장자리 쪽에 있던 4마리의 랫맨은 행동 불능 상태가 되었다.
[시체 폭파가 랫맨 3마리를 찢어발기며 즉사시켰습니다.]
[시체 폭파가 랫맨 4마리의 몸을 관통하여 행동 불능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행동 불능이 된 랫맨 4마리는 죽지 않았지만 치명적인 일격에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전력이 단숨에 절반으로 줄어든 랫맨들의 결말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애들아. 가서 정리해라. 한 마리는 제압해서 데려오고.”
해골들에게 포로로 붙잡힐 랫맨 한 마리만 불쌍할 뿐이었다. 충렬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
충렬이 열심히 사냥을 하는 한편, 하수도에 진입한 5인조의 파티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이거 상태 이상이 장난 아니게 발생하는데? 어쩔래. 그냥 밖에서 기다릴까?”
고민은 단순했다. 하수도에서 발생하는 상태 이상이 생각 외로 빠르게 발생해서다. 그러나 그들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이템을 약탈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녀석이 언제 밖으로 나올지 모르잖아. 나는 곧 승급전이라고. 후딱 처치하고 끝내자.”
“동감이야. 나도 당장 24시간밖에 남지 않았어. 최대한 빨리 쫓아가서 아이템을 얻어야 해.”
의견을 조율한 그들은 지체 없이 움직이기로 했다. 그들 중 하나가 스킬을 사용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발자취 탐색!”
그러자 스킬을 사용한 사내의 눈앞에 최근에 이동한 충렬의 발자국이 생성되었다. 충렬이 이동한 방향을 알게 된 그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몸을 회복한 후에 일행들에게 말했다.
“저쪽으로 갔다. 이동하자.”
***
처음에만 해도 5인조는 충렬의 뒤를 쉽게 쫓아갈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이동한 것인지 아무리 따라가도 충렬의 뒤를 밟을 수가 없었다.
“씨발! 이 새끼는 사냥에 미친놈인가?”
“도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상태 이상이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다고! 어떻게 할 거야?”
단순히 뒤를 쫓을 뿐이었다. 하지만 추적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엄청난 고초를 겪고 있었다. 이렇게 추적이 오래 걸릴 줄은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상태 이상마저 최악으로 악화되어 갔다. 하수도의 환경에 오랫동안 노출되다보니 상태가 심각해져 가는 것이다.
“크윽. 우리 그냥 나가자. 나 상태 이상 폐부종에 걸렸어.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
“겨우 폐부종? 나 지금 참고 있는 거 안 보여? 전신에 아토피성 피부염이 발생했다고. 졸라 간지러워 미치겠구만!”
그들은 슬슬 단체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상황이 좋지 않자 신경이 다들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던 탓이다. 그래도 그들 중 평정을 유지하며 상황을 조율하려는 자는 존재했다.
“시스템이 하는 말 들었지? 한 번 나가면 못 들어와. 여기까지 와서 아이템 포기하고 승급전 시작할 거야?”
“그래. 놈도 분명 상태가 좋지는 않을 거야. 괜히 기회를 날리지 말자.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놈이 나오지 않으면 시간만 날리는 셈이야.”
그렇지만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약탈하기 위해 잠깐 만난 사이였다. 서로간의 의리가 있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탈자가 나타났다. 그는 폐부종이 걸렸다고 말한 사내였다.
“됐어. 난 포기다. 너희들끼리 해.”
그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는 돌아가지 못했다. 금발의 여성 레이첼이 떠나려는 사내의 등에 대거를 꽂아갔기 때문이다.
“흥. 어딜 가려고.”
레이첼의 대거는 단숨에 사내의 등을 관통했다.
푸욱!
설마 그녀가 공격할 줄은 몰랐는지 사내의 목소리에는 어이가 없다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크헉… 이게 무슨 짓……!”
그러나 그의 음성은 이어지지 못했다. 함께하지 않는다면 떠나는 이 역시 먹잇감에 불과했다. 다른 일행들도 말리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레이첼을 도와 가지고 있던 무기들로 이탈하려던 사내를 쑤셔갔다.
푹!
푸욱!
푹!
방금까지 같은 편이었던 사내를 살해하는 이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머뭇거림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곧 온몸이 난자당한 사내는 맥없이 쓰러졌다.
털썩.
남아 있는 이들은 그의 아이템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허허. 이 새끼 봐라. 포션 숨겨두고 있었네.”
“혼자만 안전하게 빠져나가려고 그런 거겠지.”
그러나 그들의 표정도 그다지 밝지만은 않았다. 같은 편을 죽여서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슬슬 따라잡아야 할 텐데.”
“신속하게 따라가 보자고.”
***
끊임없이 사냥에 열중하던 충렬은 이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후… 여기서 잠시 쉬어가기로 할까.”
너무 오랫동안 사냥을 한 탓인지 몰려온 피로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냥을 수월하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휴식도 필요한 법이었다.
“보병아. 이리 와봐.”
충렬은 보병들 중 하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적당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어깨 좀 주물러 봐라.”
그러면서 지금까지 처치한 몬스터의 수를 살폈다.
[현재까지 사냥에 성공한 몬스터의 수: 랫맨 342마리.]
사냥한 랫맨의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계속해서 랫맨만 사냥했기에 지겨운 느낌은 있었다. 너무나 단조로웠던 탓이다.
‘그래도 지금 같은 때에 열심히 사냥을 해야 한다.’
나중에 어떤 어려운 난관이 닥칠지 몰랐다. 그러니 현재의 사냥터가 쉬운 사냥터라고 해서 설렁설렁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지겹게 느껴진다고 해도 이 정도면 무척이나 고마운 사냥터였다.
‘어쨌거나 휴식도 제대로 취해야지.’
한번 휴식을 시작하면 대충 쉬어서도 안 되었다. 다음 사냥을 위해서라도 피로감을 풀어줄 수 있도록 확실하게 휴식을 취해주어야 했다.
더러운 바닥에서 휴식을 취하기는 불쾌했지만 충렬은 개의치 않았다.
“잠시 잠이나 자볼까.”
어깨를 주무르는 해골의 손맛이 아주 잠을 솔솔 불러 일으켰다. 잠시 뒤, 충렬은 해골 보병의 뼈에 기대어 잠을 청했다.
그렇게 꿀 같은 휴식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충렬의 귀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헉헉. 죽을 것 같아.”
“난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어.”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하는 것이지?”
평온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충렬은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탓이다.
‘흐음… 사냥하다가 지나가는 이들인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충렬은 자신의 추측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