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팔람의 하수도
***
마을 주민들이 병사들을 모두 도륙하자 세상이 멈추었다.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온다.
[당신은 마을 주민들의 희생을 최소화시켜 절반 이상을 살려내었습니다!]
[무려 40명이나 살려낸 당신의 업적은 칭송받을 만합니다!]
[본래라면 처참하게 몰살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과거가 당신으로 인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지역에서 정착을 시작하였고, 더 이상 불운한 운명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에게는 데프론의 삶이 이전과 다르게 기억되었다.
[데프론의 과거는 그런 그들과 함께 살아가다 죽은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완벽히 임무를 완수한 당신에게 데프론이 크게 감동하며 충성을 맹세합니다!]
이미 데프론 스스로의 기억에는 자신의 잘못이 뼈저리도록 깊이 새겨져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녀석은 사람들의 바뀐 과거를 좋아했다. 비록 사람들과 행복한 추억을 함께 보내지는 못할지라도 녀석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았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은 아니었다. 놀랄 만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데프론이 아닌 충렬과 관련된 것이었다.
[언데드에 대한 당신의 작은 사랑과 관심이 해골들의 격을 한 단계 상승시킵니다.]
[이제 계기가 생긴다면 데프론을 포함한 네임드 해골들을 상위의 언데드로 탈바꿈시킬 수 있습니다.]
‘상위의 언데드로?’
어떤 계기가 필요한 것일까. 지금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뜻밖의 소득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놀라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보상을 받을 차례였기 때문이다.
***
여관으로 의식이 되돌아온 충렬에게 시스템이 알려왔다.
[데프론의 숙련도가 최대치를 넘겼습니다.]
[데프론에게 새로운 능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의 목록을 살펴보시겠습니까?]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줘.”
그러자 시스템은 충렬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나열했다.
[원하시는 옵션을 선택하십시오.]
역시나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데프론의 성장 방향은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으니까. 일단은 물량이었다. 물량과 관련된 옵션은 단 하나가 있었다. 바로 ‘해골 분대장’이었다.
“해골 분대장을 선택한다.”
[<해골 분대장>: 해골들을 부리는 분대장의 지위를 맡는다. 데프론이 소환될 때 해골 보병 8마리가 추가되어 함께 소환된다. 추가로 소환된 해골 보병들은 소환 최대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데프론의 숙련 등급이 상승하였습니다.]
[현재 데프론의 숙련: C등급]
[데프론의 지위가 ‘해골 부분대장’에서 ‘해골 분대장’으로 상승합니다.]
결국 데프론을 해골 분대장까지 승격시킬 수 있었다.
‘이제 데프론만 소환해도 해골 보병이 한번에 9마리가 나오는 것인가.’
어마어마했다. 비록 스킬이 없는 일반 해골 보병이긴 했지만 데프론까지 포함해서 한 번에 9마리를 소환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래서 웬만하면 네임드 해골은 키우던 녀석들로만 쭉 성장시키는 것이 나았다. 여러 잡다한 도전자들을 네임드로 부리면 병종이 다양해지는 것 같아도 좋은 것만은 아니리라.
‘최대 소환 가능한 숫자까지만 네임드를 키워야겠어.’
뭐, 중간에 괜찮은 도전자의 시체가 있다면 미리 만들어놓는 것도 나쁘진 않을 터였다.
물론 네임드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겪어본 결과 죽은 이들도 충렬과 함께하고 싶어야 네임드 해골이 되었다. 그 이유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그만큼 네임드를 만드는 것은 어려웠다.
“그나저나 2번째 임무까지는 무난하게 끝이 났군.”
그러나 지금까지 생각보다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처음에만 해도 3일이나 남았던 승급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대략 이틀 정도의 시간밖에 남질 않았다.
[승급전까지 남은 시간: 45시간 31분]
그래도 45시간 정도면 충분했다.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지막 임무는 조금 의아했다.
[1. 콜로세움에서 우승하기]
[보상: 블랙 데스] [완료.]
[2. 네임드 해골 하나의 과거 체험]
[보상: 대상 해골의 숙련도 100% 상승(보유 중인 숙련도의 퍼센트는 사라지지 않고 다음 단계에 그대로 누적된다).] [완료.]
[3. 하수도 청소]
[보상: 처치한 몬스터의 수만큼 카르마로 보상.]
하수도 청소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청소는 아닌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하수도에 서식하는 몬스터를 사냥하라는 소리인 것 같았다.
‘그런데 최소한 얼마만큼 사냥하라는 것인지는 적혀 있지 않네.’
크게 상관은 없었다. 저 말은 닥치고 사냥하라는 소리와 같았으니 충분히 사냥해 줄 생각이었다. 무려 카르마를 얻을 기회였다. 처치한 수만큼의 카르마를 받을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마침 충렬이 세 번째 임무를 살피자 시스템이 알려주었다.
[하수도는 도시 ‘팜람’의 지하에 만들어진 거대한 하수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수도의 입구를 미니맵에 표시해 드리겠습니다.]
동시에 미니맵에 하수도의 입구가 표시되었다. 충렬은 혹시나 싶어 물어보았다.
“거기서 몬스터는 얼마나 사냥해야 하는 거지?”
[사냥하고 싶은 만큼 사냥하면 됩니다.]
[1마리 이상만 잡고 나와도 임무는 완료입니다.]
“그러면 끊임없이 사냥을 해도 괜찮은 건가?”
[그렇습니다. 원하는 만큼 사냥하셔도 됩니다.]
[다만 하수도는 1회만 입장이 가능하며 몬스터를 잡아도 당장에 카르마는 지급되지 않습니다.]
[하수도를 벗어나 도시로 복귀하였을 때 처치한 만큼의 카르마가 정산되어 지급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꾸물거릴 것이 아니었다. 휴식을 취한다고 해도 거기서 취하는 것이 나았다.
“시스템아. 도시락 좀 싸줘라.”
그렇게 승급전까지 사냥의 시간이 찾아왔다.
***
여관 밖으로 나오니 황량한 도시의 거리가 충렬을 맞이해 주었다. 시간이 늦었는지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길을 지나가거나 근처에서 심상치 않은 눈빛을 가진 몇몇의 도전자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은 충렬이 등장하자 재빨리 발걸음을 움직이며 모습을 감추었다. 특히나 밤중이었기에 사람들의 행동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히익.”
“헐. 저게 다 소환수야?”
“야, 다른 장소로 가자 괜히 저런 애한테 찍히면 답 없어.”
간간히 보이는 도전자들도 장소를 모두 벗어났다. 그 이유는 바로 충렬의 뒤를 따라다니는 해골들 때문이었다. 괜한 객기로도 덤비지 못할 만큼 해골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현재 소환된 언데드]
[보병: 데프론 외 8구의 해골.]
[마법사: 레일리 외 2구의 해골.]
[암흑 사제: 마렉]
[기사: 샤오링]
[총: 14구의 해골.]
이제는 파티 단위의 사람들이 몰려와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전력이었다. 평범한 파티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리라. 만약 충렬에게 시비를 걸게 된다면 상대는 그날로 어딘가의 주민으로 배속되어야 했다.
그렇지만 정작 충렬은 사람들의 반응과 다르게 여유로웠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충렬의 관심은 오로지 사냥에 꽂혀 있었다.
‘그럼, 빠르게 가볼까.’
도시 팔람에 있는 하수도라고는 했지만, 입구는 꽤나 멀리 있었다. 걸어서 가기에는 한참동안 걸릴 정도다.
불길한 밤거리를 걸어갈 생각은 없었다.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하운드에 탑승하고 이동해야 했다. 이럴 때 탈것이 있으니 무척이나 편리했다. 충렬은 문양에서 쉬고 있는 하운드를 불렀다.
“하운드. 나와.”
***
불쌍한 해골들은 하운드의 속도를 충분히 쫓아오지 못했다. 때문에 충렬은 어쩔 수 없이 해골들을 역소환하고, 다시금 재차 소환했다. 괜히 스킬을 사용해서 몸은 지쳤지만 하수도 입구의 근처에 금방 다다를 수 있었다.
하수도 입구 주변은 정상적인 건물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입구만이 유일하게 공사가 되어 있었을 뿐. 주변은 폐허였고 동시에 공터들이 즐비했다.
그 이유는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근처는 도무지 사람이 살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수도로부터 발생한 엄청난 악취가 주변을 진동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지?’
고기가 썩은 냄새, 분뇨의 냄새, 그리고 각종 쓰레기 등의 냄새가 뒤섞인 전대미문의 냄새였다. 충렬은 살아오면서 지금껏 이러한 냄새를 단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역대급으로 최악의 냄새였다. 임무는커녕 그냥 여관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충렬은 한 손으로 코를 막으며 참았다. 하지만 하운드는 충렬과 달리 버티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았다.
“컹컹!”
녀석은 자기를 역소환해 달라고 연신 부르짖었다. 그렇기에 그냥 문양으로 돌아오게 했다.
“알았어. 돌아와.”
헬 하운드가 문양으로 되돌아오자 충렬은 역한 냄새에 인상을 쓰며, 냄새를 맡지 못하는 해골들을 바라보았다.
“제기랄… 네놈들은 좋겠다.”
어쨌거나 충렬은 입구에서 주변을 살폈다. 하수도의 사냥 임무를 받은 사람들이 꽤나 많았을까? 근처에 묘비가 제법 많이 보였다.
-이 앞에 자란 이끼 먹을 수 있는 거다.
-위에 댓글 구라야…….
-상태 이상 식중독으로 사망각 ㅇㅈ?
-설마 님들 이거 먹어봄?
-미친놈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이런 글들은 걸렀다. 중요한 것은 하수도 사냥터에 대한 정보였다.
-지금껏 이런 최악의 사냥터는 처음입니다.
-ㄴㄴ 정정하셔야죠. ‘최악의’ → ‘더러운’
-상태 이상 제거 관련 스킬이 없다면 입장하지 마시길.
-숨만 쉬었는데 축농증 걸리고 해결 못 해서……ㅠㅠ
-그렇게 죽으심? 저는 몸에 곰팡이 생김 ㅋㅋㅋㅋ
-씨발 진짜. 몬스터 자체는 잡기 쉬운데 상태 이상 개빡친다.
사람들이 사냥하기 쉽다고 하면 생각보다 몬스터의 강함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주로 상태 이상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
만약 라이프 드레인이 없었으면 조금 꺼려지는 장소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회복과 달리 라이프 드레인은 어느 정도 상태 이상도 해결해 주었으니 괜찮을 듯싶었다.
물론 모든 상태 이상이 아니라 생명력과 관련된 것들만 해결이 된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충분히 먹힐 것 같았다.
“라이프 드레인이 있어서 다행이군.”
그나마 몬스터의 수준이 낮다고 하니 나쁘지 않은 사냥터였다. 물론 이 지독한 냄새는 참을 길은 없었지만 말이다.
“어쩔 수 없지.”
코가 냄새에 적응하길 바라는 수밖에.
사냥하기로 마음을 정한 충렬이 하수도의 입구로 발을 옮겼다. 입구를 통과하자 원형의 계단이 존재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충렬은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 충렬의 뒤를 해골들이 따라왔다. 그렇게 충렬이 하수도에 입장하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팔람의 하수도에 입장하셨습니다.]
[한 번 밖으로 나가면 재입장이 불가능합니다.]
동시에 주의할 점도 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오픈된 던전입니다.]
[다른 도전자들을 마주칠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다른 도전자들도 마주칠 수 있다니. 그러나 이런 곳에서 도전자들을 마주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상태 이상 제거 스킬이 있더라도 입구에서의 냄새부터가 발걸음을 되돌리려 했으니까. 더불어 묘비들의 글을 보고 되돌아가는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장소에 충렬이 입장을 했다. 무척이나 더러운 하수도였지만 충렬은 카르마를 벌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