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토너먼트
***
도대체 얼마나 숙면을 취한 것일까? 제법 오랫동안 잠을 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으나 자고 일어나니 조금은 개운해졌다.
그런 충렬의 주변으로는 해골들이 있었다. 혹여나 밤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미리 소환해 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충렬은 길게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하암…….”
그러면서 자신의 곁에 있는 네임드 해골들을 향해 말했다.
“잘 잤냐.”
잘 잤을 리가. 충렬이 자는 동안 꼼짝없이 근처에 있었는데 말이다. 충렬의 말에 항변하고 싶었는지 데프론이 이빨을 부딪쳐갔다.
따닥. 딱. 따닥.
그런 데프론의 반응에 충렬이 말했다.
“잘 잤다고?”
물론 데프론이 제대로 대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해골들도 멀뚱히 있을 뿐이었다.
해골이 된 샤오링 또한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한순간에 사람에서 해골이 된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의 충렬이 딱히 무언가를 해줄 수는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씁쓸한 기분이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볼까.”
한창 피로를 풀고 일어서니 너무나 허기가 졌다. 충렬은 일어서며 방을 나섰다. 그 뒤를 해골들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따라왔다.
***
현재 충렬의 앞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모든 음식이 무료라고 했으니 생각나는 음식을 뭐든지 다 주문했던 충렬이었다. 그러나 그 음식들을 모조리 비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벨 때문에 위장도 늘어난 것이 분명했다.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충렬이 배를 두드리며 길게 늘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포만감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충렬을 향해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평안한 휴식을 보내셨는지요?]
충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시스템이 이어서 설명해 왔다.
[3일 뒤, 당신은 승급전에 참여하게 됩니다.]
“승급전?”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다른 도전자들과 경쟁하여 승급에 성공해야 합니다.]
[승급전은 50명의 도전자 중, 단 1명에게만 승급을 허락합니다.]
만약 승급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승급에 실패하면 어딘가의 주민으로 배속됩니다.]
‘죽는다는 소리군.’
그렇다면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했다.
‘그나저나 50명의 도전자들과 경쟁을 한다라…….’
경쟁률이 무려 오십 대 일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느긋하게 있을 것이 아니었다.
“도시로 오면 임무를 준다면서? 임무가 승급전은 아닐 테고.”
[수행해야 할 임무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임무는 현재 당신의 상황을 고려하여 주어집니다.]
[승급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끝내시면 됩니다.]
[1. 콜로세움에서 우승하기]
[보상: 블랙 데스]
[2. 첫 번째 임무를 완수하면 개방]
[3. 두 번째 임무를 완수하면 개방]
[강제 임무는 아닙니다.]
[임무를 수행하지 않아도 일정에 차질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 말인 즉, 승급전을 시작할 때까지 여기서 놀고먹어도 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지.’
도시 팔람까지 오면서 조금 아쉬운 감은 있었다. 만져지지 않아 버릴 수도 없는 프리패스 이용권 때문에 두 번째와 세 번째 관문을 그냥 지나쳐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쁘지는 않았다. 편하기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괜히 거기서 얻을 이득을 놓쳐 버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을 반드시 가져간다.’
강제 임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충렬은 보상에 눈이 갔다.
‘그런데 블랙 데스가 뭘까.’
도대체 저게 무엇일까. 그 뜻을 해석하자면 흑사병이겠지만, 단순히 흑사병을 말하는 것은 아니리라.
“시스템, 블랙 데스가 뭐지?”
충렬의 물음에 시스템이 답변해 주었다. 하지만 답변은 시원찮았다.
[무기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콜로세움에서 우승을 거머쥐십시오.]
[그리고 보상으로 얻으십시오.]
결국 우승을 하지 않는다면 알려주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콜로세움 참여는 어떻게 해?”
[다음 회차의 경기가 1시간 42분 뒤에 시작됩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그래. 등록해 줘.”
[미니맵에 콜로세움의 위치를 표시해 두었습니다.]
[경기 시작 30분 전까지 도착하지 않는다면 자동 탈락 처리됩니다.]
동시에 팔람 한쪽에 콜로세움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그럼 그때까지는 자유 시간인가.’
어느 정도의 인원이 참여하게 될지는 몰랐다.
‘뭐,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알겠지.’
나중의 일은 나중이었다. 충렬은 남은 시간 동안 도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팔아야 할 아이템들이 많았다. 도중에 필요한 아이템을 살 수가 있다면 사야 했고 말이다.
그러나 아이템의 구매와 판매에 대해서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도전자들의 캠프 때 겪은 가격 폭리가 여기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
여관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 사람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 수가 매우 적었다. 심지어 함께 다니는 사람들은 더더욱 없었다. 대부분이 서로가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아마 각자 몸을 사리는 것이리라.
‘다들 조심히 다니는군.’
그러거나 말거나 충렬은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현재 가려는 장소는 팔람에 위치한 상점이었다.
상점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딱히 물건을 거래하는 도전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위험했기 때문이다.
도시 내에도 묘비들은 많았다. 제법 큰길가를 지날 때 보이는 묘비에서는 도시 내에서의 주의할 점을 알려주었다.
-웬만하면 돌아다니지 마라. 걍 여관에 짱박혀 있어.
-ㅇㅇ 쥐도 새도 모르게 전부다 털림.
-나 뭐에 죽은 건지 본사람?
-내가 죽임. ㅋ. 거지 같은 아이템밖에 없더만.
-지나가다 우연히 봐서 복수해 줬다.
-ㅋㅋㅋㅋㅋㅋ 복수해 주고 또 누구한테 죽었나요?
과연 조심해야 했다. 무법 지대라더니 도시 자체도 법이 없었다.
‘신경이 쓰여서 일부러 해골들을 소환하고 나왔는데…….’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았다. 덕분에 충렬의 근처로 얼씬거리는 도전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처음에 도시로 입장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생각은 달랐었다. 눈에 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차라리 눈에 튀더라도 상대할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해골들과 함께 별다른 소동 없이 느긋하게 이동했다. 산책이 좋은 것인지 헬 하운드는 강아지의 모습으로 졸졸 따라왔다.
***
이곳의 상점도 무인 상점이었다. 상점에 도착한 충렬은 예상한 결과를 맞이했다.
“역시나, 값은 그다지 쳐주지도 않네.”
반대로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들의 가격은 무척이나 비쌌다.
‘그렇다고 다른 도전자들과 거래하기도 쉽지가 않은 상황이고…….’
그러면 어쩔 수 없었다. 지금까지 오면서 주웠던 아이템들은 여기서 팔기로 했다.
“혹시 모르니까 무기 하나는 빼고 전부 판매해야겠어.”
때문에 충렬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들 중, 방두대도를 빼고 전부다 가판대에 올렸다.
그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총 700카르마입니다.]
[판매하시겠습니까?]
“어.”
[700카르마를 획득하였습니다.]
[보유 카르마: 4,500]
갑옷 종류도 있었지만 충렬은 모든 것을 팔았다. 별로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서다.
‘갑옷을 입고 한 대 맞느니, 갑옷을 벗고 피하는 것이 훨씬 좋지.’
그리고 필요가 없을 것 같은 아이템들은 빨리 판매하는 것이 좋았다.
‘정령의 주머니가 무한대의 아이템을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상점에서 아이템들을 처분한 충렬이 밖으로 나왔다. 딱히 여기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그래보았자 이제는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이제 콜로세움으로 슬슬 향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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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선수로 뛰는 다른 도전자들은 이미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는 것인지, 가는 도중에 다른 도전자들은 마주치지 못했다. 심지어 구경꾼들조차 없었다.
‘삭막하네.’
어찌되었거나 콜로세움의 입구에 발을 디디자 자동으로 이동되었다.
[선수 대기실로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충렬과 해골들은 선수 대기실로 함께 이동되었다. 선수 대기실을 각자 따로 사용하는 것일까? 주변에 다른 선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투룸 정도 되는 공간에는 충렬밖에 없었다. 그러나 충렬은 얼마 지나지 않아 토너먼트에 참가한 사람들의 수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경기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현재 참가한 선수들의 수: 14명]
[경기 시작까지 43분 남았습니다.]
동시에 사람들의 참여가 적었던 이유도 밝혀졌다.
[경기가 시작하면 한쪽이 사망하기 전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기권하면 경기에 참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경기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물음에 충렬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포기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그럼,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충렬은 경기가 시작되는 것을 가만히 기다렸다. 선수 대기실을 둘러보아도 딱히 할 것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푹신한 침대와 식탁, 그리고 식탁 위에 놓인 각종 과일들이었다. 딱히 여관이나 선수 대기실이나 다를 바는 없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는 시간이 다가왔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기다리기만 하려니 지루할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오랜만의 휴식이다 보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잠시 뒤, 경기가 시작됩니다.]
[현재 참가한 선수들의 수: 16명]
참가한 사람들의 경기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가 끝나는 것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당신을 7번 경기장으로 이동시키겠습니다.]
그렇게 충렬을 포함한 헬 하운드와 해골들은 7번 경기장으로 이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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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었지만 소환된 경기장으로 관객은 아무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건너편의 도전자 한명뿐이었다. 그러나 상대편의 모습도 아직은 볼 수가 없었다. 서로의 사이를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어서다.
결투를 벌이기 직전, 시스템이 알려왔다.
[7번 경기장]
[광전사 VS 네크로맨서]
‘광전사라고?’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직업이었다.
[3초 뒤, 가운데 벽이 사라집니다.]
[벽이 사라지면 전투를 시작하십시오.]
충렬은 긴장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상대인지 몰라서다.
‘그래도 해골들을 미리 소환해 왔으니 상대할 수는 있겠지.’
충렬과 함께 이동된 해골들은 다음과 같았다.
[해골 보병: 5]
[해골 마법사: 3]
[암흑 사제: 1]
[해골 기사: 1]
[총 해골의 수: 10]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상시에 전투인력으로 사용할 헬 하운드까지 있었다. 곧 전투가 시작되기에 충렬이 말했다.
“멍멍아. 커져라.”
그러자 헬 하운드는 충렬의 말대로 원래 모습대로 돌아왔다.
어쨌거나 전투를 준비할 사이 시스템이 알려왔다. 드디어 전투의 시간이 도래했다.
[3]
[2]
[1]
[벽이 사라집니다.]
[전투를 시작하십시오.]
시스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벽이 사라졌다. 그리고 상대 도전자의 모습이 보였다. 상대는 벽이 사라지마자 크게 외쳤다.
“크하하하! 네놈 따위는 내가 도륙해 주……!”
그러나 그는 곧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생각하지도 못한 무리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