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서로 일정 거리를 두고 입장한 사람들. 그들은 믿음의 방에 입장되자마자 각기 소유하고 있던 무기들을 파지했다. 그러고서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씨발! 뭐야!”
“도전자들끼리 입장하는 거라며!”
“여기에 왜 몬스터가……!”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로 상황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태 이상을 저항했다는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은 알 수가 있었다.
‘괜히 믿음의 방이 아니었군.’
이곳은 한마디로 시험을 하는 장소였다. 도전자 정신력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말이다. 분명 시스템은 처음에 입장할 때, 이곳의 방을 클리어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걸 믿으라는 소리가 확실했다.
‘1시간만 버티면 된다고 했지.’
만약에 충렬이 언데드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 역시 위험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의미의 위험이겠지만 말이다. 저들을 적으로 오해한 충렬이 마구 쓸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시스템이 클리어 방법을 알려줬다고 한들, 사람들이 그걸 실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당장 눈앞에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적으로 보인다면 말이다.
더불어 사람들은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서로가 몬스터로 보인다면 당연한 소리였다.
“미친, 여기에 리자드맨이 왜 나와?”
“이 고블린 새끼가 뭐라는 거야! 썩 꺼져! 죽여 버린다!”
“가, 가까이 오지 말라고! 몬스터 자식아!”
조금만 더 놔두면 이들끼리 치고 박고 싸울 듯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싸우지 않았다. 자신만 제외하고 모두가 몬스터로 보였기에, 섣불리 나서다가 당할 것이라 생각했던 탓이다.
하지만 단 한 명. 모두가 몬스터로 보일 때, 몬스터로 보이지 않는 한 명이 있었다. 그 대상은 바로 충렬이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충렬을 바라보더니 똑같은 소리를 해대었다.
“동양인 친구! 이리 오라고!”
“이봐! 같이 힘을 합쳐야 할 것 같은데?”
“거기 괜찮아?”
언데드의 상태인 충렬이었다. 그 때문일까? 일반 사람들끼리는 서로가 몬스터로 보였던 반면, 언데드인 충렬이 반대로 사람의 모습 그대로 보였던 것이 분명했다.
가장 먼저 충렬의 곁으로 다가오는 이는 샤오링이었다.
“오, 오라버니!”
몬스터들의 등장에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그녀는 충렬을 발견하자마자 달려왔다.
샤오링이 충렬에게 달려가자 다른 사람들이 충렬을 향해 외쳤다.
“조심해!”
“옆을 봐! 지네 인간이 다가간다고!”
“엄호해 줄 테니 이쪽으로 도망쳐 와!”
그러나 정신과 관련된 상태 이상에 모두 저항해 버린 충렬은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다가오려는 사람들한테 외쳤다. 이대로 놔둔다면 자기들끼리 싸워서 공멸할 것이 확실했다.
“당신들 모두 환상에 걸렸습니다! 모두 다 제자리에 멈추시죠!”
그러자 충렬에게 집중하고 있던 이들이 멈칫하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뭐?”
“환상?”
“모두가 걸렸다고?”
“무슨 소리야! 여긴 자네랑 나밖에 없어!”
처음엔 충렬의 말에 의구심을 가지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이내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어……? 잠깐 저 몬스터들은 또 왜 걸음을 멈추는 거지?”
“설마……?”
이곳에 있는 도전자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요행이 아니었다. 충렬의 외침에 사람들은 곧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환상인가?”
“젠장할. 그러면 서로의 외형만 몬스터인 거야?”
그들은 불안해하는 한편, 충렬의 말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평소 보아왔던 몬스터들과 달리 이곳의 몬스터들의 행동은 이상했기에 의구심이 생긴 것이었다. 그렇게 상황은 조금 진정되어 가는 듯했다.
그러나 상황은 항상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이 중에서도 정신력이 극도로 약한 사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충렬이 말해준 것을 믿지 않고 미쳐가기 시작했다. 패닉 상태에 빠져서다. 그래서 사실만을 말한 충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씨발! 아까 묘비에서 봤다고! 나 빼고 다 죽이면 편하다고 했어!”
그러더니 근처의 도전자를 향해 들이치기 시작했다.
“다 죽어버려!”
괜히 그의 표적이 된 도전자만 경악에 소리를 내지를 뿐이었다.
“이 새끼 뭐야! 몬스터 맞잖아!”
덕분에 장내를 진정시키려던 충렬의 의도는 빗나나고 말았다.
‘이런…….’
솔직히 저들끼리 치고 박고 싸운다는데 충렬은 간섭하지 않으려 했다. 괜히 그 사이에 껴서 손해를 볼 생각이 없어서다. 하지만 충렬은 곧 그 생각을 바꾸었다.
[모두를 생존시키시오.]
[보상: 2,000카르마]
동시에 옆에 있던 샤오링이 충렬을 향해 말했다. 샤오링도 충렬과 같은 시기에 돌발 임무를 받았나 보다.
“오라버니! 이 방에서 아무 몬스터나 한 마리를 죽이면 특별한 아이템을 준다고…….”
그런 그녀에게 충렬이 대답해 주었다. 어느덧 충렬은 자신도 모르게 샤오링에게 반말을 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존댓말이 나오기는 힘들었다.
“그거 보상 못 받아. 여기에는 다 사람들만 있어. 몬스터는 없다.”
그렇게 말해주며 다른 사람들을 말리기 위해 나섰다. 쓸데없는 일은 만들고 싶지가 않았지만 보상이 있다면 그에 응해주는 충렬이었다.
***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된 방. 바닥과 벽에는 사람의 혈흔으로 보이는 것이 묻어 있었다. 혈액의 흔적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누가 코피를 흘린 정도로 작았다. 그 혈흔의 주변으로는 두 사내가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각각 멍이 가득했다.
“아니, 저 새끼가 먼저 덤비려 했다니까요……!”
그런 둘의 사이에 있던 충렬은 한 사내가 무기를 집어 들자 곧장 행동에 나섰다. 그는 자신이 먼저 당했다는 것을 충렬에게 어필하려 했지만 충렬의 주먹이 날아드는 것이 먼저였다. 충렬의 주먹은 억울함을 따지려는 사내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퍽!
“크헙……!”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레벨이 제일 높은 사람이 5였다. 그 말인 즉, 레벨이 7인 충렬의 주먹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소리다. 말로 해서는 상황을 빠르게 진정시키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충렬은 곧바로 폭력을 행사했다.
“무기에 손 올리면 때린다고 했습니다. 내려놓으세요.”
충렬의 협박에 사내는 억울해했지만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복부에 틀어박힌 주먹이 너무나 아팠기 때문이었다. 충렬의 방법은 야만적이었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손에 쥐었던 무기를 다시금 내려놓았다. 그런 그를 향해 충렬이 재차 경고했다.
“가만히 좀 있어요. 또다시 무기에 손대면 알짤 없습니다.”
그랬다. 충렬은 무력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무기에 손을 올리거나 누군가를 공격하려고 한다면, 지체 없이 나서서 제압한 것이다. 강력한 무력 앞에서는 그 누구도 쉽게 행동하지 못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혼란이 오더라도, 당장 눈앞의 폭력이 더 무서운 법이었다.
하지만 충렬의 경고에도 불안했던 탓인지 그가 반박하려 했다.
“아, 그래도 방어하려면 무기가 있어야…….”
충렬은 슬그머니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제가 이러고 싶어서 이럽니까? 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러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사내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기하는 눈빛이었다.
그를 자제시킨 충렬은, 반대로 자꾸 사건을 키우려는 사내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그렇지만 의식의 끝자락을 잡아가며 계속해서 미친 짓을 하려고 했다. 스킬을 사용해 무작위로 누군가를 죽이려던 것이다.
“괴, 괴물들은 다 죽어야 해. 다… 죽여 버릴 거야! 쇼크 웨이……!”
물론 그가 스킬을 성공시키는 일은 없었다.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간 충렬이 그를 연타로 때렸기에 그는 스킬을 시전하기도 전에 먼지가 나도록 두드려 맞았다.
퍽.
퍼벅. 퍽!
당연히 강약 조절은 했다. 죽지 않고 기절할 정도로만 말이다.
결국 기절한 사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털썩.
그렇게 사내 둘을 진정시킨 충렬은 본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쉬기로 했다.
“하아… 피곤하네.”
격렬한 전투를 벌이던 둘을 떼어놓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죽이는 것이 더 쉬웠을 수도 있다. 죽이지 않고 말리는 것은 굉장히 고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 언데드의 몸인지라 피곤한 것은 아니었지만, 충렬은 자신이 피곤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기엔 충렬이 몬스터 두 마리를 쥐어 패고 잠잠히 시킨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여기 모든 이들이 도전자라는 것을 말이다.
“다른 분들은 제발 가만히 자리를 지킵시다. 난동 부리지 말고.”
괴상한 상태이상이 도전자들의 정신을 어지럽혔지만 모두가 다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충렬의 움직임과 거침없는 행동을 보니 나설 엄두조차 나지가 않았던 탓이다.
“다, 당연하지! 나는 처음부터 나설 생각이 없었다고!”
“…조용히 구석에 처박혀 있겠네.”
그들은 서로의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연신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나서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서로가 몬스터와 눈빛을 교환하는 것 같았음에도 그 눈빛에는 다들 조용히 있자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
역시 미친개에게는 매가 약이었다.
단 한 번의 본보기로 다른 사람들을 조용히 시킬 수 있었다. 레벨이 이렇게까지 깡패일 줄은 몰랐다.
‘이 정도라면 이번 관문은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겠군.’
그렇게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충렬이 자리로 돌아오자, 샤오링이 충렬을 반겼다. 그녀가 충렬을 바라보는 눈빛은 이전에 비해 더욱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서 딱딱한 말투를 내뱉는 샤오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말투는 매우 부드러워져 있었다.
“와아… 대단해요! 오라버니는 되게 강하시네요!”
강한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것일까? 혹은 폭력적인 남자가 이상형인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상황을 재빨리 수습하는 모습에 반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어찌되었든 충렬에게 더욱 깊이 빠져가는 샤오링이었다.
***
1시간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자 모두에게 시스템이 알려주었다.
[방에 머물고 있는 도전자들의 상태 이상을 모조리 제거합니다.]
[도전자들의 신체를 완벽히 회복시켜 드리겠습니다.]
동시에 모든 이들에게 빛이 스며들었다. 충렬은 시스템의 말에 순간 쫄아버리고 말았다.
‘언데드라서 치유되지 않고 대미지를 받는 거 아냐?’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일이 발생했다.
[언데드의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당신은 인간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뜻밖의 소득이었다. 언데드의 상태 또한 좋지 않은 것으로 보았는지, 시스템이 치료를 해준 것이었다.
‘만약 관문에 오기 전에 사람으로 돌아오려고 숙면을 취했다면…….’
괜히 시간만 날렸을 뻔했다.
어쨌거나 모든 사람들은 더 이상 환상에 시달리며 떨지 않아도 되었다. 특히 충렬에게 얻어맞아 기절했던 사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선 들지 못했다.
“다, 다들 죄송했습니다! 제가 그만……!”
얼마나 미안하고 겁이 났던 것일까? 그는 진정으로 떨고 있었다. 사시나무가 바람에 의해 떨려도 저렇게 떨어가지는 않으리라. 그만큼 그의 정신은 연약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니 상태 이상에 쉽게 당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의 사과에 아까 공격받을 뻔했던 사내가 성을 내었다.
“너 때문에 죽을 뻔했 잖……!”
그러나 그는 충렬을 힐끔 보더니, 크게 키워가던 목소리를 다시금 낮춰갔다.
“…죽을 뻔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충렬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괜히 혼자서 눈치를 보며 북을 치고 장구까지 쳤다.
그런 그들의 모습과 상관없이 시스템은 충렬에게 카르마를 지급해 주었다. 성공적으로 돌발임무를 수행해 낸 충렬은 2천 카르마를 얻어갈 수 있었다.
[돌발 임무를 성공시킨 당신에게 2,000카르마가 주어집니다.]
그렇게 더 이상 도전자들에게 볼 일이 없었던 시스템은 사람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도전자 여러분들.]
[믿음의 방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믿음의 방에서 내보내 드리겠습니다.]
물론 믿음의 방의 밖으로 내보내 준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도전자들이 내보내진 곳은 예상하고 있던 장소가 아니었다.
[8인 모두가 살아남는 데 성공했습니다.]
[전원이 숨겨진 임무, ‘최후의 결사단’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동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