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충렬의 도발에 사내들이 박장대소했다. 어이가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뭐? 덤비라고?”
“푸하하하!”
얼마나 웃기게 한 것인지 그들은 충렬을 공격하려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추었다. 충렬을 앞에 두고 긴장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완전 미친놈이었잖아!”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서 왔다냐?”
저들이 움직일 기미가 없자 먼저 나선 것은 충렬이었다. 더 이상 말을 섞을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충렬은 땅을 박찼다. 충렬이 사내들을 향해 움직이자, 뒤에서 놀란 소녀의 외침이 들렸다.
“위험……!”
그러나 소녀의 놀람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뜻밖의 상황이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파밧!
순식간에 사내들의 앞으로 도착한 충렬이었다. 사내들은 충렬이 단번에 자신들의 코앞으로 도착하자 순간 멍하니 있었다. 당혹스러웠던 탓이다. 설마 이렇게까지 빠른 속도를 보이다니. 그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경지였다.
“어, 어……?”
“뭐, 뭐야?”
“언제 왔…….”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기도 전에, 충렬의 공격이 먼저 들이쳤다. 충렬은 구울의 몸으로 처음 전투를 벌이는 것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피를 갈구하는 언데드의 본능 때문이었다.
죽여. 죽여. 죽여.
본능은 효과적으로 적들을 살상하도록 충렬을 이끌어주었다.
그렇게 충렬은 코앞에 위치한 사내의 양어깨를 꽉 잡았다. 그러자 날카롭게 벼려진 손톱이 그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푸욱.
거기에 더하며 충렬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사내의 양어깨가 그대로 박살 났다.
콰드득득!
도대체 힘이 얼마나 강해진 것인지 그의 어깨가 박살나며 양쪽 팔은 곧 몸과 분리되었다.
“끄아아아아악!”
순식간에 양팔을 잃은 사내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팔을 잃은 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팔이 붙어 있어야 저항이라도 할 텐데, 팔이 붙어 있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다.
충렬은 양손으로 무방비한 그의 목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손아귀에 힘을 주며 그의 목을 꺾어버렸다.
빠드득!
레벨이 높기 때문인지, 구울이 되면서 힘이 강해진 것인지는 몰랐다. 다만 사내의 목은 너무나 간단하게 박살 났다. 그만큼 충렬의 악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내의 목이 꺾임과 함께 시스템은 그의 사망을 알려왔다.
[머더러가 된 도전자 ‘록펠러’를 처형했습니다.]
[당신은 머더러가 아니기에 머더러 처치에 따른 추가 카르마가 지급됩니다.]
[1,310카르마를 습득하였습니다.]
동시에 록펠러의 몸뚱이가 맥없이 쓰러져 갔다.
털썩.
눈 깜짝할 사이에 동료 하나가 당하자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는 사내 둘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스킬을 사용하려고 했다. 지체 없이 움직이는 그들의 행동은 충분히 칭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익! 스트라이……!”
“주, 죽어! 연속 베……!”
그러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그들은 스킬명을 외치기도 전에, 충렬의 양손에 각각 목을 잡혀야 했다. 그들의 목이 붙잡히자 사용하려던 스킬이 취소되고 말았다. 충렬은 사내들이 맥없이 당하자 싱겁다는 어투로 말했다.
“레벨 차이가 3밖에 안 되는데 피지컬 차이는 엄청 심하네.”
충렬의 중얼거림에 마침내 사내 둘의 표정에 다급함이 내비쳤다. 드디어 충렬과의 수준 차이를 알게 된 것이었다. 그 둘은 방금까지 여유만만한 자들이 맞는지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충렬에게 빌기 시작했다.
“케, 켁! 제… 제발……!”
“사, 살려… 줘……!”
하지만 충렬이 그들의 사정을 봐줄 리가 만무했다. 충렬은 거리낌 없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목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빠득.
빠드득.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시스템은 그들의 사망 소식을 알려왔다.
[머더러가 된 도전자 ‘데이비슨’을 처형했습니다.]
[98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머더러가 된 도전자 ‘존’을 처형했습니다.]
[1,03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머더러 셋을 제거하자 카르마를 무려 3천 가량이나 벌어갈 수 있었다.
‘머더러 사냥도 쏠쏠한데?’
일반 사람을 죽이면 도대체 얼마나 되는 카르마를 주는지는 몰랐다.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을 무턱대고 살해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그런 미치광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덤빈다면 봐줄 생각은 없다만.’
어쨌거나 머더러 셋을 제거하면서 보유 중인 카르마가 5천을 넘기게 되었다.
[현재 보유중인 카르마: 5,100]
충렬은 현재 모인 카르마로 시체 폭파 스킬의 랭크를 올렸다. 지금 올릴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5,000카르마가 감소됩니다!]
[시체 폭파의 랭크가 B랭크로 되었습니다!]
[폭파의 위력이 약간 상승합니다!]
[시체 폭파 - B랭크: 주변에 위치한 시체를 폭파시킨다. 시체의 수가 많을수록 위력이 상승한다(A랭크까지 14,000카르마 필요).]
덕분에 가지고 있는 스킬들의 랭크는 모조리 B랭크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당연히 이득은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이제는 시체가 된 사내들의 아이템 또한 짭짤한 부가적인 수입이었다. 충렬은 머더러들이 남긴 장비 아이템을 정령의 주머니에 넣어가기 시작했다.
아이템을 집으려 시체에 다가가자, 언데드의 욕구가 시체를 뜯어 먹으라고 유혹한다.
먹어! 먹어버려!
그러나 충렬은 시체 따위를 먹는 취미가 없었기에 아이템만 챙길 뿐이었다.
[‘날이 상한 샴쉬르’를 획득하였습니다.]
[‘방두대도’를 획득하였습니다.]
[‘강철의 글라디우스’를 획득하였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가슴 보호대’를 획득하였습니다.]
[‘초보자용 체인 메일’을 획득하였습니다.]
…….
[‘생명력 회복 포션(소)’를 획득하였습니다.]
생각보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이 많았다. 충렬은 무법 지대로 오자마자 불어나는 아이템에 기뻐했다. 만약 정령의 주머니가 없었다면 저 많은 아이템을 모두 들고 가지는 못했을 터였다.
‘짭짤하군.’
그렇게 충렬이 죽은 자들의 아이템을 챙기고 있을 무렵. 뒤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어…….”
마침 챙길 아이템은 다 챙겼던 충렬이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가까이 다가온 것일까? 소녀는 근처로 와 있었다.
“음?”
그리고 충렬이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소녀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녀는 샤오링이라고 하옵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샤오링의 말투에 충렬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중국 사람 같은데 중국 사람들은 다들 저런 건가?’
아마 아닐 것이다. 조금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충렬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적이 아니라면 나이가 어려 보이는 소녀라도 반말하지는 않는 충렬이었다.
“아, 예.”
그런데 샤오링의 상태는 좋아보이지가 않았다.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그 상처로부터는 피가 조금씩이지만 흘러내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충렬은 샤오링을 쳐다보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찢어진 검은 도복 사이가 펄럭이며 연신 그 속살을 보여주니, 조금은 무안했던 탓이다.
충렬은 눈을 돌리며 방금 얻었던 아이템들 중 하나를 우선적으로 건네주었다. 일단 그녀는 회복 아이템이 절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방금 회복 포션을 주웠는데. 이거 써요.”
충렬이 한손으로 회복 포션을 그녀에게 내밀자, 샤오링은 충렬의 배려에 얼굴을 붉히며 고마워했다. 샤오링의 말투가 이상하긴 했지만 충렬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가, 감사하옵니다.”
그렇게 샤오링이 회복 포션을 집었다. 그러나 샤오링은 회복 포션을 가져갈 수가 없었다. 충렬이 회복 포션을 꽉 잡고 놔주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샤오링은 문득 의문을 표했다.
“……?”
그러자 충렬이 나머지 한쪽 손을 내밀더니 쑥스럽게 말했다.
“하나에 100카르마입니다.”
***
머더러들의 시체는 그냥 두고 왔다. 사용할 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운드 녀석도 저급한 시체 따위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지금은 아까 장소에서 벗어나 ‘팔람’이라는 도시로 가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런 충렬의 뒤로 샤오링이 눈치를 보며 따라왔다.
“같이 가고 싶으면 따라오세요.”
어차피 가만히 놔두어도 계속 따라올 것 같았다. 뒤에서 신경을 쓰이게 하느니, 차라리 옆에 두어서 데리고 가기로 했다. 충렬이 따라오라고 하자 샤오링은 기뻐했다. 그러면서 충렬에게 극존칭하기 시작했다.
“가,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그럼 염치 불고하고…….”
그렇게 샤오링은 곧바로 충렬의 옆으로 오더니 함께 걷기 시작했다.
충렬은 하운드를 탑승하고 이동할 수가 있었지만 문양으로 변하게 했다. 조만간 걸음을 멈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첫 번째 관문이 나온다.’
도시 팔람까지는 그냥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니맵을 보면 도중에 길을 건너기 위한 각 관문들이 존재했고, 그 관문들을 통과해야 하는 것 같았다. 돌아서 간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돌아서 가도 똑같은 관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겪을 관문은 ‘믿음의 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금방 관문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충렬은 도착하기 전에, 슬슬 나타나기 시작하는 묘비들을 살피기로 했다.
“잠깐만 저것들 좀 보고 가죠.”
-‘믿음의 방’에 입장하고 ‘배신의 방’을 체험한다.
-잘 들어 진짜 적은 바로…….
-그걸 알면 거기서 죽었겠냐 ㅋㅋㅋㅋ
-나 빼고 다 죽이는 게 답인 듯.
-진심 에바 참치 꽁치 탐켄치 같은 관문이다.
다른 묘비들은 딱히 볼만한 것들이 없었다. 방금 본 묘비가 그나마 제일 관련된 내용이었다.
‘흐음… 여하튼 남을 믿으면 안 된다는 내용인가.’
그렇다면 자신에게 아주 적절한 관문이 틀림없었다. 애초에 이런 곳에서 누굴 믿다니.
‘믿는 놈이 멍청한 것이지.’
어떤 내용의 관문인지는 자세히 몰랐지만 별일이야 있겠냐 싶었다.
‘이왕이면 관문에 도착하기 전에 숙면을 취하고야 싶다만.’
이런 곳에서 잠들 수는 없었다. 잘못하다가는 털리기 딱 좋은 장소였으니까.
애초에 언데드의 몸을 탈출하는 조건도 ‘안전한 상황’에서의 충분한 숙면이었다.
“그러니 일단 관문부터 빨리 지나쳐 볼까.”
목적지인 팔람까지 시간제한도 있었고, 잠은 거기서 자도 될 터였다.
***
관문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관문의 주변은 커다란 성벽이 높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관문을 통하지 않고 지나치기란 불가능했다.
‘여기가 관문인가.’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주변 묘비에서 어떻게 관문의 시험을 시작하는지 알려주었다.
-관문에 손을 올리면 입장 가능.
-8인으로 진행된다.
-매칭이라 사람 모아서 올 필요 없음.
충렬은 거리낌 없이 관문으로 가서 손을 올리기로 했다.
“갑시다.”
그러자 어느덧 안면을 튼 샤오링이 먼저 관문에 손을 올렸다.
“네. 오라버니.”
겨우 목숨 한 번 구해준 것 가지고 자신을 따르는 샤오링이었다. 이런 상황이 조금 생소한 충렬이었지만, 곧 잡념을 떨쳐내며 마찬가지로 관문에 손을 올렸다.
[다른 장소에서 대기 중인 도전자와의 매칭을 시작합니다.]
[현재 대기 중인 도전자의 수 (5/8)]
매칭은 생각 외로 금방 이루어졌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인원이 채워진 것이다.
[현재 대기 중인 도전자의 수 (8/8)]
[매칭이 완료되었습니다.]
[믿음의 방에 입장합니다.]
입장하는 도중에 시스템은 믿음의 방에 대한 것을 알려주었다.
[믿음의 방을 클리어하면 관문 너머로 자동으로 도착합니다.]
[서로를 믿고 버티십시오.]
[방에서 1시간 동안만 버틴다면 클리어가 가능합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1시간 동안 가만히 버티기만 해도 끝이라고? 이상하긴 했지만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충렬과 샤오링은 곧 어딘가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
도착한 곳은 40평쯤 되는 방이었다. 벽과 천장은 전부 흰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 충렬을 포함한 8명이 각자 떨어져 있었다.
그러한 장소에 충렬이 도착하자 시스템이 알려온다.
[당신은 언데드입니다.]
[상태 이상 ‘공포’에 저항합니다.]
[상태 이상 ‘혼란’에 저항합니다.]
[상태 이상 ‘잘못된 환상’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상태 이상 ‘불신의 저주’가 당신의 정신력을 강화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