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32화 (32/237)

# 32화.

언데드의 몸

악마 마르바스는 추종자들과 달리 불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놈의 시체를 보던 충렬은 자신의 패시브 스킬을 떠올렸다. 바로 스켈레톤 커스터마이징이다.

‘몬스터의 뼈를 이용해서 개조를 할 수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녀석의 시체를 챙겨야 했다. 충렬이 마르바스의 시체에 손을 올리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마침 해골의 개조를 위해 수집하려는 것을 알았던 것인지,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런데 시체 폭파의 위력이 너무나 강했던 탓일까? 아쉽게도 수집은 불가능했다.

[마르바스의 뼈가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재료로 수집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부터는 참고해서 사냥을 해야 할 듯 했다.

‘어쩔 수 없군.’

그리고 이곳에서 합류한 스켈레톤들이 죽으면서 무기를 떨구었지만, 무기들은 챙겨갈 수가 없었다. 시체 폭파에 휘말려 모조리 박살났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마르바스의 시체가 이렇게 남아있게 되었음에도 딱히 더 이상 건질 만한 것은 없었다. 충렬은 혹시나 싶어 시스템에게 물어보았다.

“마르바스를 네임드 스켈레톤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몬스터 자체를 네임드화 시키는 것은 아직 당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역시나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애초에 지금은 스킬을 사용할 수가 없었으니 가능하다고 해도 못할 일이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인 충렬이 다음 지역으로 가기 위한 포탈을 기다릴 때였다.

작은 강아지의 모습으로 변한 헬 하운드가 충렬의 다리에 자신의 볼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끼잉. 낑.”

그냥 애교를 부린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달라는 듯, 한곳을 쳐다보며 애교를 부렸던 것이다. 하운드의 시선은 마르바스의 시체에 가 있었다.

[헬 하운드가 마르바스의 훼손된 뼈를 원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곧 녀석은 마르바스의 시체 앞으로 갔다. 거기서 침을 질질 흘리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거리낄 것이 없었던 충렬이 말했다. 어차피 사용할 곳도 없었으니 말이다.

“알아서 해.”

그러자 녀석은 거대한 크기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곧바로 마르바스의 시체를 입안에 구겨 넣기 시작했다.

동시에 섬뜩한 소리가 주변에 울렸다.

콰득!

콰드드득!

살점을 포함해 뼈까지 씹어 먹는 헬하운드의 모습은 무척이나 무서웠다.

‘헬 하운드가 더 보스몹같이 생겼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르바스의 시체를 전부 먹어 치우자, 시스템이 알려왔다.

[헬 하운드의 진화도가 2.1% 상승합니다.]

[100%에 도달하면 다음 단계로 진화합니다.]

[현재 진화도: 2.1%]

‘오, 진화가 가능한 거였어?’

설마 진화가 가능할지는 몰랐다. 그런데 마르바스의 시체를 먹고도 2.1%밖에 오르지 않은 것을 보면 100%까지 올리기가 쉽지 않음을 어렴풋이 알 수가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전부 끝인가.”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는 없었다. 마침 시스템도 10분이 지났음을 알려주었다.

[다음 지역으로 가는 포탈이 생성되었습니다.]

[이동해 주십시오.]

포탈이 생성된 것을 본 충렬이 입을 열었다.

“멍멍아. 가자.”

그러자 작게 변한 녀석이 충렬의 품에 안겨왔다. 딱히 문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나 보다. 그렇게 충렬은 헬 하운드를 품에 안고 포탈로 진입했다.

***

황량한 벌판. 주변의 나무들은 베어져 있었고, 곡창지대로 보이는 곳의 곡물들은 모조리 메말라 있었다. 그런 거칠고 황폐한 땅위에 동양인 소녀가 보였다.

대략 17~18세 정도로 보이는 그 소녀는 누군가로부터 쫓기는지, 열심히 뜀박질을 하는 중이었다. 소녀가 뛸 때마다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가 이리저리 흩날렸다.

얼마나 숨이 찼던 것일까. 소녀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지만 달리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하아… 하아……!”

한바탕 전투라도 치른 것이 분명했다. 검은 무복을 입은 소녀의 옷은 온통 찢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마치 칼질이라도 당한 듯. 찢어진 무복 사이로 보이는 상흔에는 날카로운 것에 당한 흔적이 즐비했다.

그런 소녀의 뒤에서는 3명의 장정이 열심히 쫓아오고 있었다.

“크크. 이년아! 얌전히 붙잡혀!”

“그래! 좋은 말로 할 때 멈추자!”

좋은 말로 할 때 멈추라고? 웃기지도 않았다. 처량한 자신의 상황에 소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소녀는 곧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길을 잘못 들어서고 말았던 것이다.

‘아…….’

소녀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황량한 벌판의 끝. 길이 앞으로 더 있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더 이상 길이 없었던 탓이다. 이 이상 앞으로는 깊이의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뒤에서 쫓아오던 이들도 소녀가 멈추자 희희낙락한 분위기로 발을 멈추었다.

“흐흐흐. 그러게 왜 도망을 가?”

“너는 귀여우니까 죽이지는 않는다고 했잖아.”

“자꾸 힘들게 하면 확 죽여 버린다?”

하는 수 없는 상황에 소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부여잡았다.

“하아… 저는 여기까지인 것입니까…….”

마음을 다잡아가던 소녀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입가에 더러운 미소를 머금은 적들을 마주보았다. 두 눈을 부릅뜬 소녀의 표정엔 결의가 가득했다. 이제 발 뒤에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만이 있을 뿐.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소녀의 절박한 심정과 관계없이, 소녀를 포위한 셋 또한 각자의 무기를 집어 들었다.

“크크. 반항하는 년을 괴롭히는 맛도 괜찮지.”

“충분히 즐긴 다음에 카르마랑 아이템이랑 챙기자고.”

“순번은 내가 먼저다? 대신 카르마는 양보할게.”

그들이 말하는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소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길을 걷다가 저들의 참혹한 짓을 보고 차마 지나치지 못해 나섰던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생각 외로 강력한 저들의 협공에 도주를 택해야만 했다. 결국 이렇게 궁지에 몰리게 되고 말았지만 소녀는 끝까지 저항하기로 다짐했다.

‘항상 정의롭게 살아가라던 아버지. 소녀 여기에서 마지막 불을 지피겠사옵니다.’

마음을 굳힌 소녀가 적들을 향해 일갈을 외쳤다. 소녀의 외모에서는 걸맞지 않은 말투가 흘러나왔다. 마치 조선 시대의 양반집에서 자란 규수의 말투였다.

“이 파렴치한 사내들아! 내가 죽더라도 혼자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소녀의 일갈에도 사내들은 겁내지 않았다.

“낄낄, 우리 셋은 무려 레벨이 4라고.”

“네년은 레벨이 5라고 했나?”

“휴우. 우리도 셋이 뭉치지 않았다면 저년한테 죽을 뻔했어.”

사내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소녀의 레벨은 무려 5였다. 솔직히 일대일로 싸운다면 저 사내들 중 누구라도 소녀를 이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내들의 숫자가 3명이다 보니 저들의 레벨이 4라고 하더라도 소녀가 이기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자신들이 유리한 것을 알았던 사내들 중 하나가 서서히 앞으로 나섰다.

“자, 그럼 얌전히 포기하시라고.”

그런데 사내들이 나서려는 찰나였다. 소녀와 적들 사이의 공간이 일렁이며 포탈이 생성되었다.

지이이잉.

그리고 생성된 포탈로 한 사내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충렬이었다. 충렬은 나오자마자 맑은 하늘을 보더니 기지개를 쭉 피며 하품했다.

“흐음. 언데드의 몸이 되니까 햇빛은 좀 싫어지네.”

그러나 하품을 해가던 충렬은 이내 자신을 사이에 두고 대립 중인 소녀와 사내들을 이리저리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기를 치켜든 그들의 모습이 마치 자신을 공격하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뭡니까?”

***

포탈로 진입한 충렬의 귓가로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3번째 스테이지는 모든 도전자가 무조건 무법 지대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전자들이 각자 가게 되는 무법 지대는 다릅니다.]

[그리고 곧 도착하게 될 무법 지대에서의 시작 위치는 랜덤입니다.]

무법 지대. 이름만 들어도 심상치 않았다.

심상치 않은 이름에 걸맞게 시스템도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었다.

[당신이 그곳에서 무엇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가 챙길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당신이 가게 될 무법 지대에서의 목적지는 도시 ‘팔람’입니다.]

[당신은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목적지까지 도착하기만 하면 됩니다.]

[도시 ‘팔람’으로 가서 임무를 받으십시오.]

[미니맵에 ‘팔람’의 위치를 표시해 드리겠습니다.]

당장은 이동만 하면 된다는 소리였다. 어쨌거나 시스템의 설명을 다 듣자, 충렬은 포탈에서 빠져나와 다음 지역으로 도착할 수가 있었다.

[무법 지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7일 내로 목적지까지 도착하십시오.]

포탈을 빠져나오자 강렬한 태양빛이 충렬을 반겨왔다. 언데드가 되었기에 빛에 예민해진 것일까? 괜히 어깨가 뻐근해지며 피곤함이 묻어나왔다.

“흐음. 언데드의 몸이 되니까 햇빛은 좀 싫어지네.”

그런데 뭘까. 충렬은 이내 이상한 기류를 느끼고 말았다. 자신을 사이에 두고 4명이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법 지대라더니. 시작부터 골치 아픈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설마 처음부터 머더러같은 놈들을 만난 것인가.’

조금 짜증이 일어났다. 시작 위치가 랜덤이라고 했으면서 어떻게 이들이 이곳에 떡하니 있었던 것일까.

‘대기라도 타고 있었던 것인가?’

그러지 않아도 구울의 몸을 얻으면서 살기에 예민해져 있었는데.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어졌다. 그래도 충렬은 인내심을 가지고 잠깐 참으며 물어보았다.

“뭡니까?”

그런데 저들은 충렬의 인내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크큭, 저 새끼는 피부가 왜 저래? 겁에 질렸나?”

“걍 빨리 죽이고 여자애나 신경 쓰자고.”

“쩝, 귀찮게 되었네. 내가 저 새끼 맡을 테니까 여자애나 도망가지 않게 잘 보고 있어.”

사내들의 대화를 듣던 충렬은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상황인지 대충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남정네 3명이서 어린 여자애 하나를 겁박하고 있었군.’

딱히 도와주어야겠다는 정의감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을 건드리려 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더군다나 이들의 살기를 느낀 존재는 충렬뿐만이 아니었다. 충렬의 품에서 기분 좋게 그르렁거리고 있던 하운드도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었다.

“크르르르…….”

녀석은 충렬의 품에서 나와 저들을 덮치려 했다. 하지만 충렬은 하운드의 행동을 저지했다. 힘들게 얻은 귀중한 탈것이 조금이라도 다치는 꼴을 보고 싶지가 않아서다. 물론 보통의 탈것과 다른 헬 하운드가 다칠 일은 없겠다만, 충렬의 마음은 달랐다.

상상해 보라. 아벤타도르s를 방금 막 구매하고 시승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는데 지나가던 티코가 시비를 걸어온다고 들이박고 싶겠는가?

들이박으면 저쪽의 손해가 당연하겠지만, 진정으로 차를 사랑한다면 조그만 흠집도 내기 싫은 것이 차주의 마음이었다.

더군다나 그보다 더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충렬이었다. 그렇기에 하운드를 잠잠하게 만들었다.

“넌 가만히 있어.”

그런 충렬의 모습에 사내들이 비웃었다.

“저것 봐. 개새끼까지 들고 다니네?”

“개밥 주다가 같이 끌려온 거 아냐?”

“크크크, 빨리 죽이기나 하자고. 딱 봐도 우리보다 레벨도 낮아 보이는데.”

저들의 말은 어떻게 보면 반은 맞는 말이었다. 충렬은 딱히 이렇다고 말할 흉기를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충렬이 가지고 있는 본 완드도 개들이 좋아할 뼈다귀 간식처럼 보였다.

그러한 충렬이 걱정되었을까? 뒤에서 대치중이던 소녀가 방금 나타난 충렬을 향해 다급한 말투로 외쳤다.

“이, 이리로 오세요! 저들의 레벨은 무려 4라구요!”

소녀의 말에 충렬은 피식 웃었다. 자신의 레벨은 저들에 비해서 결코 낮지 않았다. 무려 7이었으니까.

‘레벨이 4라고?’

그 말을 들은 충렬이 하운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허리를 피면서 입을 열었다. 입을 연 충렬의 입에서는 더 이상 고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야, 다 덤벼.”

그렇게 언데드의 몸. 특히 구울의 신체는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지금부터 확인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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