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28화 (28/237)

# 28화.

마르바스

***

엄청난 언데드의 숫자에 깜짝 놀란 듯한 도살자였지만, 그 놀라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도살자 또한 지능이 저하된 악마 추종자에 불과했다. 짧은 시간이 흐른 후, 녀석의 얼굴에 희희낙락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수의 언데드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오히려 눈앞의 충렬을 보고서는 환호성을 질렀다.

“고기! 싱싱한 고기다!”

그러면서 곧장 충렬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런 녀석의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렸고 육중한 몸이 움직일 때마다 땅이 울렸다.

쿵! 쿵! 쿠웅!

하지만 놈의 돌진을 가만히 지켜볼 언데드들이 아니었다. 특히나 충렬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던 해골 기사들이 제일 먼저 도살자를 막기 위해 출격했다.

[<해골 기사1>이 ‘도살자’의 앞을 막아서기 위해 이동합니다.]

[<해골 기사2>가 클레이모어로 ‘도살자’의 옆을 향해 공격해 나갑니다.]

[<해골 기사3>이…….]

다른 보병이나 농민 해골들이 나설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충렬은 움직이려는 보병들과 농민들을 제지시켰다.

“가려면 진작 갔어야지. 그냥 너희는 가만히 있어.”

악마 추종자들 중에서 제일 강한 도살자였지만, 해골 기사들만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다른 해골들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상대할 수가 있다는 소리다. 아무리 도살자라도 숫자가 많은 해골 기사들의 앞에서는 제 역량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도살자는 정말로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해골 기사들의 맹공으로 인해 간신히 버티기에 급급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맹렬하게 달려들던 녀석이 갈팡질팡하며 발이 묶여 버렸다.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녀석이 빠져나오기란 어려울 것이었다.

[<해골 기사10>이 ‘도살자’의 발목을 아작 내었습니다!]

[‘도살자’가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허우적거립니다!]

[<해골 기사9>가 ‘도살자’의 머리를 후려칩니다!]

[‘도살자’가 잠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해골 기사7>이…….]

해골 기사들의 연속된 공격에 점점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도살자였다. 그래서일까? 녀석은 자신이 가진 최후의 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해골들이 자신이 하려는 일을 방해하자, 자신만의 스킬을 사용해 나가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도전자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스킬이었다.

“크아악! 짜증난다! 포식한다!”

괴성과 동시에 도살자의 뚱뚱한 배가 세로로 갈라졌다.

그러더니 갈라진 배 사이에서 괴상한 물체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성인 남성 팔뚝만큼의 굵기에, 채찍처럼 긴 혓바닥이었다. 물론 채찍처럼 혓바닥이 긴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바로 지척거리에 있는 상대에게는 충분히 닿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징그러운 혓바닥은 도살자가 지목한 세 번째 해골 기사에게로 짓쳐들었다.

[‘도살자’가 <해골 기사3>에게 포식 스킬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도살자의 스킬은 성공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녀석의 스킬은 ‘살아 있는’도전자를 한 방에 죽일 수가 있는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공포스럽게 튀어나온 혀는 해골 기사의 뼈다귀를 스윽 핥고서 맛을 보더니, 먹기가 싫었는지 그대로 도살자의 배 속으로 되돌아갔다.

[<해골 기사3>은 고기 종류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포식 스킬에 당하지 않습니다.]

[‘도살자’의 포식 스킬이 실패하였습니다.]

그렇게 스킬 사용에 실패하게 된 도살자. 녀석은 설마 자신의 스킬이 실패할 줄은 몰랐을까? 날뛰며 발악했다. 아마 열을 받은 것이리라.

“크아악! 크아아악! 짜증 난다!”

화가 난 도살자는 주먹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그러면서 무작위로 주변을 공격해 나아갔다. 하지만 놈의 공격에 당할 해골 기사들이 아니었다. 농민들이나 보병들이었다면 눈 먼 공격에 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해골 기사들은 목적 없이 휘둘러지는 주먹 따위는 가볍게 피해냈다. 도살자가 공격을 성공시킨 대상은 땅바닥뿐이었다. 놈이 무거운 몸으로 이리저리 발을 놀리자 애꿎은 땅바닥만 아파할 뿐이었다.

쿵! 쿵!

어쨌거나 마지막 발악을 시도하던 도살자도 계속해서 날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뛰어난 맷집으로 버티고는 있다지만 슬슬 한계에 도달해 갔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점점 지쳐가던 도살자가 무릎을 꿇기까지는 금방이었다.

[<해골 기사6>이 클레이모어로 ‘도살자’의 목젖을 강타합니다!]

[‘도살자’가 숨쉬기를 어려워하며 주저앉으려 합니다.]

그렇게 도살자가 해골 기사들에게 제압되기까지는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30초도 길었다. 20초도 걸리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충렬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순간부터 녀석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잠시 뒤, 해골 기사들의 클레이모어로 쉴 시간 없이 난타당하고 두드려 맞던 도살자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놈이 무릎을 꿇자 땅이 움푹 파였다.

쿠웅!

다른 악마 추종자들과는 다르게 녀석은 고통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연신 괴로워했다.

“크엑! 케에엑! 숨이……! 안… 쉬어진다……!”

현재 스테이지에서의 보스 몬스터답지 않은 처량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굳이 예우를 맞추어주기 위하여 힘겹게 사냥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켁켁거리는 도살자를 보며 충렬이 입을 열었다.

“잘 가라.”

***

기진맥진한 도살자를 마무리한 존재는 첫 번째 해골 기사였다.

[<해골 기사1>이 도살자의 수급을 베어갑니다.]

그와 함께 힘차게 휘둘러진 클레이모어가 도살자의 목을 단숨에 잘라갔다.

서걱.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온다.

[‘도살자’가 처형되었습니다.]

목과 분리된 도살자의 머리가 땅바닥을 굴렀다.

데구르르.

그 광경을 지켜보며 충렬이 입을 열었다.

“끝인가.”

그러나 충렬은 이내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 이상함은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적을 처치했을 때 주는 카르마의 유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카르마는 왜 주지 않는 것이지?’

정말로 이상했다. 도살자가 죽었다. 그런데 카르마를 주지 않는다니. 분명 도살자는 사망했고 녀석의 시체는 현재 불타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화르르륵.

하지만 무슨 일이었는지 그것이 끝이었다. 심지어 시스템은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장시간의 침묵 끝에. 시스템의 음성이 다시금 들려왔다. 그러나 그 내용은 충렬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도전자 ‘이충렬’에게 일시적인 하드 모드가 활성화됩니다.]

‘하드 모드라고?’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시스템의 음성은 매우 소름끼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현재 스테이지에서 사망 시, 당신의 영혼은 소멸합니다.]

그 말인 즉, 진짜로 죽는다는 소리였다. 아니, 죽는 것보다 더한 것이었다. 영혼 자체를 소멸시킨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왜……?’

충렬은 다른 악마 추종자들부터 시작해 도살자까지 모조리 척살했다. 그러니 더 이상 이곳에서의 용무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 시스템이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러나 친절한 설명을 요구할 틈은 없었다. 이어지는 시스템의 음성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발생되리라는 것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스킬 사용 제한이 해제됩니다.]

[도전자 ‘이충렬’이 보유한 스킬의 봉인이 모두 풀렸습니다.]

미니맵에는 더 이상의 빨간 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말은 이곳에는 이제 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왜 스킬 사용 제한까지 해제된 것일까? 얼마가지 않아서 충렬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설마… 새로운 놈이……?’

그 예상은 정확했다.

[‘???’가 도살자의 죽음을 느꼈습니다.]

[도살자의 죽음에 분노한 ‘???’가 3초 뒤, 이곳에 당도합니다.]

[도전자 ‘이충렬’의 수준을 고려하여 ‘???’의 본체 대신, 위력이 98% 다운그레이드된 복제품을 이 지역으로 보냅니다.]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다. ‘???’라고만 부를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름 따위를 문제로 삼을 겨를은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충렬의 수준을 고려하기까지 했을까? 무려 98%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면서까지 말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의 액티브 스킬이 모두 제한됩니다.]

[‘???’의 패시브 스킬이 모두 봉인됩니다.]

[‘???’의 종족 특성을 비활성화시킵니다.]

[‘???’의 권능을 없앱니다.]

[‘???’의 이성을 마비시켜 전략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의…….]

시스템은 등장하려고 하는 녀석에게 계속해서 제약을 주고 있었다. 그 내용을 모두 듣고 이해하기에는 시스템의 음성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어떻게 보면 충렬에게 매우 유리하게 해주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만큼 매우 강력한 녀석이 온다는 소리다.’

하지만 더 이상 잡다한 생각을 할 겨를은 없었다.

‘제길. 겨우 3초밖에 시간을 안 주면 해골을 소환하기도 어렵잖아.’

여기서 충렬이 말하는 해골은 데프론 등의 기존 소환수를 뜻하는 것이었다. 어떤 적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당장 추가적인 해골 소환을 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매우 강력하게 추정되는 적이 나타나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스킬을 사용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쉽게 당할 수가 있었다. 스킬을 사용한 뒤에는 얼마동안 무방비한 상태가 되었으니 당연한 소리였다.

‘그래도 미리 합류하게 된 해골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랬다. 소환 스킬로는 꿈도 꾸지 못할 200마리의 해골들이 아직 함께하고 있었다. 당장 충렬은 이 녀석들을 믿었다.

‘그리고 라이프 드레인도 미리 올려놓아서 다행이야.’

만약 사전에 올리지 않았더라면 진짜로 곤란할 뻔했다. 스킬의 랭크를 미리 올려놓았기에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도 사용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스킬들과 달리 라이프 드레인은 부작용 따위도 없었다. 여차하면 완전히 근접하지 않고 적의 생명력을 쪽쪽 빨아먹으면 되었다.

어찌 되었거나 3초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3초가 지나자 곧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눈앞의 공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공간은 도살자가 죽은 곳 바로 위 1m정도였다.

쩌저적.

평범한 균열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허공의 공간 자체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었으니 무어라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 평가할 생각 따위는 버리는 것이 좋았다. 균열은 곧 부서졌기 때문이다.

콰장창!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었던 공간에 조그만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조그만 구멍 너머로부터 엄청나게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윽…….’

그 열기는 삽시간에 주변의 온도를 후덥지근하게 했다. 현재 스테이지의 배경은 밤이었는데, 구멍에서 발생되는 열기로 인해 쌀쌀하다는 느낌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오히려 땡볕이 자리를 잡은 뜨거운 사막에 홀로 남겨진 정도로 후끈해져만 갔다. 만약 충렬이 레벨을 가진 도전자가 아니었다면 진작 통구이가 되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열기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열기에 대한 생각은 뒷전으로 미루어야 했다. 균열이 깨지면서 만들어진 구멍에서 곧 소름끼치도록 생긴 손가락이 튀어 나와서다.

‘저건……?’

손가락은 조그만 구멍의 틈 밖으로 반 정도 나왔다. 그러더니 틈이 만들어진 구멍의 가장자리를 부수려는 듯이 잡아갔다.

툭.

역시나 그 손은 조그만 구멍을 확장시키려던 것이 분명했다. 놈이 손아귀에 힘을 주기 시작하더니 잡았던 공간을 점점 더 뜯어갔기 때문이다. 조그만 구멍을 가지고 있던 공간은 놈의 악력에 의해 간단히 부서져 갔다.

와장창창!

그 때문에 작았던 구멍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크기의 구멍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사람이 쉽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틈이 만들어지자, 그 사이를 시뻘건 색으로 도배된 ‘그것’이 몸을 비집으며 나왔다.

공간을 헤집고 나온 ‘그것’은 4m는 족히 될 것 같은 키에 검붉은 뿔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전체적인 외형은 사람과 비슷했지만, 온몸을 뒤덮은 가시와 기다란 손톱은 녀석이 명백한 괴물임을 알려주었다. 그렇다고 놈이 진짜로 괴물이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단지 녀석은 괴물보다 무서운 존재인.

악마일 뿐이었다.

[추종자들을 만들어 고성을 피폐화시킨 원흉, 악마 ‘마르바스’가 들이닥쳤습니다.]

[악마 ‘마르바스’의 등장으로 인하여 다음 지역으로 향하는 포탈이 사라집니다.]

[‘마르바스’를 물리치십시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도 양보할 수가 없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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