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조폭 네크
***
안드로가 충렬이 있는 공동묘지로 오기까지는 금방이었다. 곧이어 15기의 해골들과 하나의 악마 추종자가 충돌했다. 해골들이 포위망을 구성할 시간도 없이, 선공을 취한 이는 안드로였다. 악마를 추종하면서 신체가 변형된 녀석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해골들을 향해 점프하려 했다. 이성을 상실한 것인지, 도살자와는 달리 녀석에게서 인간의 언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로지 본능만이 남아 있는 녀석이었다. 그것은 녀석의 외마디 괴성을 듣는 순간 알 수가 있었다.
“캬아아악!”
순식간에 부푼 녀석의 허벅지가 이제는 괴물의 발굽으로 변한 자신의 발에 힘을 전달했다. 그러더니 녀석의 발굽이 힘껏 땅을 박찼다. 그로 인하여 높게 뛰어오른 안드로. 녀석은 자신이 수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열세라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해골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해골들에게 포위되는 상황을 마다하지 않았다.
포위를 당한다면 좋지 않았다. 승리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황임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모르는 것일까? 놈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착지하자마자 가장 가까운 해골을 향해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손톱 대신 자라난 놈의 단단한 송곳이 바로 옆에 있던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반으로 쪼개었다.
빠각!
어떻게 대처하기도 전에 발생한 일이었다. 정말로 찰나였다. 그렇게 해골의 머리는 박살이 났고, 결국 신체의 선열을 유지하던 뼈들이 무너졌다.
[<해골 농민15>가 파괴되었습니다.]
순식간에 해골 하나를 처치한 안드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애초에 전투를 길게 끌어갈 생각이 없었는지, 근처의 다른 해골을 향해 공격을 이어나가려 했다.
그러나 해골들도 멍청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번의 공격은 이쪽의 차례였다. 매서운 공격을 보여주는 안드로였지만, 해골들은 거기에 겁을 먹을 존재들이 아니었다. 언데드였기에 공포라는 것을 몰랐다. 때문에 공격의 주도권은 더 이상 안드로가 가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음으로 공격을 성공한 것은 안드로의 뒤에 위치한 해골이었다.
[<해골 농민14>가 양손 조경 가위로 ‘안드로’의 오른쪽 대둔근을 잘라갑니다.]
그랬다. 안드로의 뒤에 위치한 해골 하나가, 자신이 들고 있던 가위로 놈의 엉덩이 한쪽을 점한 것이었다. 미처 안드로가 다른 해골을 이어서 공격하기 직전이었다. 해골 농민 14가 들고 있는 무기는 원예를 위한 조경 전용 양손 가위였다. 그런 커다란 가위의 뾰족한 끝이 안드로의 오른쪽 엉덩이를 파고들었다.
푹.
당연히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가위의 역할은 무언가를 자르는 것이었고, 해골은 벌렸던 양팔을 힘껏 모아갔다. 그러자 안드로의 엉덩이 근육. 즉, 대둔근이 단번에 반으로 갈라졌다.
싹둑.
살과 근육을 자르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마치 고깃덩이를 무식하게 자르는 소리와 같았다.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던 탓일까? 놈은 이어서 공격하려다 말고 크게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악!”
하기야, 자신의 살과 근육이 잘리는데 맨 정신으로 버틴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큼지막한 가위로 엉덩이가 반으로 잘렸는데 누가 멀쩡히 있을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녀석은 평범한 존재가 아니었다. 고통에 잠시 괴성을 질러댔지만, 곧바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그러더니 자신의 엉덩이를 자른 스켈레톤에게 달려들었다. 잘린 놈의 엉덩이에선 연신 피가 뚝뚝하고 떨어졌다. 그러나 안드로의 움직임은 여전히 빨랐다. 오히려 놈은 분노로 인하여 매우 저돌적으로 행동했다. 자신의 안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해골을 공격해 나가던 것이었다.
그렇게 안드로의 재빠른 주먹이 바람을 갈랐다.
쉬익!
너무나 정직한, 올곧은 직선으로 짓쳐드는 주먹이었다. 그렇지만 너무도 빠른 속도였기 때문일까? 해골은 안드로의 주먹을 회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회심의 일격을 성공시킨 해골이었지만, 순식간에 달려드는 안드로의 주먹에 관자뼈가 함몰되어갔다.
퍼억!
주먹 한 방에 모조리 으스러지는 관자뼈. 관자뼈는 머리의 옆 부분에 위치한 뼈였다. 그런 부위가 함몰되니 해골이 더 이상 제 기능을 못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해골 농민14>가 파괴되었습니다.]
물론 안드로가 공격에 성공해 나갈 때마다 녀석은 자신의 몸에 상처를 하나씩 내주어야 했다. 아니, 이번에는 하나가 아닌 그 이상을 내주게 되었다.
[<해골 농민13>이 낫으로 ‘안드로’의 허벅지를 그어갑니다.]
[<해골 농민12>가 장작용 도끼로 ‘안드로’의 옆구리를 찍어갑니다.]
고작 해골 2마리를 처치했을 뿐인데, 안드로의 온몸에 상처가 생기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러나 놈은 역시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었다.
“카아아아아아아악!”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듯이, 섬뜩한 외침과 함께 반격해 나아갔다. 녀석은 자신을 공격한 해골12와 13의 머리를 각각 한 손으로 잡아갔다. 이번에도 역시, 해골들에게는 안드로의 공격을 피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히 해골 둘의 머리를 잡은 안드로. 녀석의 손은 농구공도 쉽게 잡을 만한 커다란 손이었다. 때문에 한번 붙잡힌 해골 둘은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안드로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호두의 껍데기가 부서지듯 해골 둘의 머리가 박살난다.
빠각!
빠가각!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왔다.
[<해골 농민13>이 파괴되었습니다.]
[<해골 농민12>가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해골들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해골들은 더 이상 공격의 타이밍 따위를 기다리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골 2기가 파괴되는 그때를 기회로 삼았다.
달그락. 달그락.
어느새 안드로의 주변을 오밀조밀하게 에워싼 해골들이 안드로를 향해 동시에 움직였다. 너무나 똑같은 시기에 들이치는 해골들이었다. 그 때문일까? 안드로는 누구를 공격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물론 그 잠깐의 순간으로 인해 전세는 역전되었다.
해골들의 무기가 안드로의 몸을 일시에 파고들었다.
푹.
푸욱!
푹!
그렇게 아군의 죽음으로 기회가 생긴 해골들은 안드로의 몸을 쑤시는 등, 공격을 시작했다. 짧은 시간 동안 살이 찢어지고 갈라지는 소리가 주변을 장식했다. 마치 한 사람을 가운데 몰아넣고, 여럿이 둘러싸서 회를 뜨는 칼로 연신 찌르는 모양새였다. 물론 해골들이 쓰는 무기는 칼이 아닌, 각종 무기들이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해골들의 공격은 쉬는 시간이 없이 계속되었다.
푹.
푸욱.
푹. 푹.
푹! 푹! 푹! 푸욱!
3초를 넘지 않은 찰나의 시간이었다. 잠깐 사이에 날카로운 것들이 자신의 온몸을 쑤셔대자 안드로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살이 갈라지고 근육이 찢어지며, 동시에 주변에는 여기저기 놈의 피로 낭자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집단 린치에 안드로의 몸이 연신 들썩거렸다. 역시나 물량이 답이었다. 악마 추종자의 전투력이 월등하다 하더라도, 압도적이지 않은 이상 물량에는 장사가 없었다.
“카아악…….”
그렇게 독기를 잃어버린 녀석. 그런 녀석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몸을 움츠린 순간부터 놈의 패배는 확정이었다. 물론 녀석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발악을 시도해 보려 했지만.
“카아아악!”
뒤집힌 판세는 쉽게 되돌리기 힘들었다. 곧 놈은 곡괭이를 들고 있던 해골에 의해 이승을 하직해야 했다. 안드로가 일어서며 발악하려는 찰나, 해골 하나가 곡괭이를 크게 들더니 안드로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그리고 곡괭이의 뾰족한 끝은 정확히 녀석의 머리를 쪼개어갔다.
콰직!
얼마나 강하게 내리친 것인지, 곡괭이의 끝이 안드로의 머리를 단숨에 파고들었다. 동시에 시스템이 알려온다.
[<해골 농민9>가 곡괭이로 ‘안드로’의 두정골을 으스러뜨렸습니다!]
[‘안드로’가 뇌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행동 불능이 됩니다.]
[축하드립니다! 악마 추종자 ‘안드로’를 처치하였습니다!]
[200카르마를 습득하였습니다.]
시스템의 음성과 함께 안드로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매섭게 돌진해 오던 녀석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처량한 결과였다.
털썩.
그렇게 쓰러진 녀석의 시체는 스스로 타올랐다. 해골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러나 피해를 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놈의 시체는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그저 혼자 타오를 뿐이었다.
화르르륵.
악마를 추종한 결과일까? 안드로는 결국 자신의 시체마저 남기지 못했다. 활활 타오르며 모조리 재가 된 것이었다. 뼈 하나 남기지 않고 가루가 되어 놈의 흔적을 지워갔다. 안드로가 쓰러진 장소에 잠시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가 바람결에 날아갔다. 먼지마저 사라지자, 그곳에 안드로가 존재했었다는 흔적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놈이 사라지는 과정을 보며 충렬이 입을 열었다.
“강하긴 하네.”
만약 해골들이 없었다면 절대 사냥하지 못할 녀석이었다. 신체적인 피지컬로만은 도무지 잡기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나마 해골들이 단체로 달려들어서 망정이지, 해골들의 숫자가 적었다면 전멸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일대일로 싸운다면 악마 추종자의 압승이 분명했다.
해골 넷을 잃긴 했지만, 결국 충렬은 악마 추종자 안드로의 사냥에 성공했다. 아무리 녀석의 피지컬이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은 사냥에 성공한 것이다. 대충 계산이 되었다. 어느 정도의 해골을 투입시키면 악마 추종자를 잡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나저나 카르마는 생각보다 많이 주지를 않는군.’
아마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서 그럴지도 몰랐다. 그래도 200카르마라면 적은 수치는 아니었다. 때문에 이 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놈을 잡았다는 기쁨도 잠시였다.
[‘안드로’의 죽음을 느낀 근처의 악마 추종자들이 도전자 ‘이충렬’을 인식하고 몰려옵니다!]
[악마 추종자들의 위치가 지도에 표시됩니다.]
안드로의 화형이 끝나자, 미니맵에 수많은 빨간 점들이 표시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악마 추종자들이었다. 고작 한 녀석을 간신히 처치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었다. 어차피 모조리 쓸어버리려고 했지만 그것은 각개격파를 한다는 소리였다. 이렇게 놈들이 몰려들게 된다면 답이 없었다.
“이런…….”
이제는 느긋하게 움직일 시간이 없었다. 충렬은 재빨리 미니맵을 살피며, 다음 장소를 물색했다. 한가하게 병력을 모을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부터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했다.
‘우선 저곳으로 가야겠어.’
마침 미니맵에 갈 만한 장소가 한 곳 보였다. 어디로 갈지를 결정한 충렬은 놈들이 몰리기 전에 다음으로 갈 곳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