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코앞에 있던 스켈레톤이 아군이 되고난 뒤에, 근처에서 등장한 스켈레톤 2기 역시 아군이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분노로 잠들지 못한 밭 주인’이 당신에게 합류하였습니다.]
[40카르마를 획득합니다.]
[‘사형당한 사과나무 정원사’가 당신에게 합류합니다.]
[40카르마를 획득합니다.]
이들의 전투력을 모두 비슷하게 본 것인지, 아니면 편하게 보라는 것인지 시스템은 스켈레톤들의 이름을 통일시켰다.
<해골 농민1> <해골 농민2> <해골 농민3>
숫자의 표시만 달랐을 뿐. 이름은 같았다. 하지만 해골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가지각색이었다. 생전의 직업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정원사는 살벌할 정도로 큼지막한 가위를 들고 있었다.
‘어쨌거나 뜻밖의 소득이다.’
설마 네크로맨서 직업에 이런 기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소속이 없는 언데드를 합류시키다니. 이렇게 되면 굳이 도망을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아니, 오히려 사냥을 하고 다녀도 된다.”
같은 언데드를 사냥할 생각은 없었다. 합류시키는 것만으로도 사냥에 버금가는 카르마를 주었으니 말이다. 사냥할 대상은 따로 있었다.
‘이곳은 언데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살자와 같은 악마 추종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언데드는 합류시키고, 악마 추종자들은 사냥하면 되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목표가 정해졌다.
“이번 스테이지에서 나오는 악마 추종자들은 모조리 쓸어버린다.”
도살자가 나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8시간이다. 그리고 충렬은 그 8시간 동안 미친 듯이 사냥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8시간 후에 도살자가 나오게 되면…….
“도살자 또한 사냥한다.”
본래 현재의 스테이지는 사냥하라고 만들어진 장소가 아니었다. 특히나 도살자는 개인이서 사냥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스킬이 있다고 해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녀석이었다. 도살자는 도전자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보스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도전자들에게 마련된 이곳의 무대는 스킬 사용이 불가능한 장소였다. 그렇기에 보스가 아닌 일반 몬스터라고 해도 처치하기는 힘든 지역이다. 물론 일반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야 있겠지만, 그것도 가까스로 이겨내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그런데 보스몹으로 분류되는 도살자의 사냥이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렇지만 충렬은 도살자에게 받은 빚을 갚아주기로 했다.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다구리엔 장사가 없는 법.”
우선은 미니맵을 살펴 이동할 계획이었다. 언데드들이 많이 나올 것 같은 장소로 향해서 말이다. 초반에만 하더라도 어딜 가서 포탈을 찾을까 고민하던 충렬이었지만, 이제는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를 명확히 인지했다.
지금 당장은 병력을 모을 때였다.
‘마침 적당한 곳이 있네.’
미니맵을 살핀 충렬의 눈에 띈 곳은 근처의 묘지, 바로 고성의 공동묘지였다. 충렬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영주의 저택 뒤뜰에서 조금만 더 가면 공동묘지가 나왔다. 가까운 거리였기에 다행히 이동하는 동안 적들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근처에 도착하자 을씨년스러운 공동묘지의 광경이 떡하니 보였다.
공동묘지는 크나큰 성벽을 등지고 수많은 무덤을 품고 있었다. 그 숫자가 최소 수십은 넘었다. 물론 모든 무덤에서 언데드가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장소보다는 적지 않은 언데드들이 나타나리라. 당장 언데드들을 모으기엔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그럼, 작업을 시작해 볼까?’
이번에도 마주치는 언데드가 아군이 될 거라고는 보장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히 멍청한 짓이었다.
‘아니, 멍청한 것이 아니지. 겁쟁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공동묘지에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묘비를 살펴갔다. 당장에 보이는 묘비에서는 경고를 하는 글귀가 있었다.
-공동묘지 레알 들어가지 마라. 포탈? 절대 없다.
-여기는 진짜 언데드만 개많네. 슈밤.
-여기서 몇 명 죽음? 나부터… 1.
-2.
-숫자 놀이 극혐. 3.
묘비에는 언데드가 많다는 글들이 대부분 적혀 있었다. 그들이 글을 적은 의도와 다르게, 충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공동묘지로 오길 잘했다. 충렬은 망설임 없이 공동묘지로 발을 옮겼다. 남들에게는 꺼릴만한 장소였고, 위험천만한 곳이었지만 충렬에게는 달랐다.
그렇게 충렬이 묘지로 들어서자, 예상대로 언데드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던 시체들 중, 다수의 시체들이 언데드가 되어 부활합니다.]
그리고 저택에서의 경우와는 달리, 더욱 많은 언데드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숫자의 무덤이 일시에 들썩거리며 뼈가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무덤을 헤치며 튀어나오는 해골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오싹했다.
생각해 보라, 한밤중에 무덤가에 왔는데 주변에서 해골들이 무덤을 가르며 일어서는 상상을 말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나타난 해골들은 주변을 에워싸며 포위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바지에 소변을 지렸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충렬은 덤덤한 표정으로 나타나는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꽤나 많이 등장하는군.’
충렬을 포위한 해골들의 숫자만 정확히 열둘이었다. 장소가 무덤인 것에 비해 많은 수의 언데드가 일어선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정도로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물론 녀석들이 충렬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하나같이 억울한 죽음을 당해 언데드로 부활한 녀석들이었다. 얼마나 원념이 강했는지, 녀석들의 분노가 충렬의 머릿속을 강하게 휘저었다. 그들의 원념이 하나하나 충렬의 머릿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많은 원념이 뒤섞이며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충렬은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식을… 죽였다……. 영주가…….]
[동생의… 복수……!]
[악마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아내가… 유린…….]
제대로 된 문장은 없었다. 그저 몇 개의 단어들만 전달될 뿐이었다. 그렇지만 충렬은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가 ‘피의 복수’를 원했다. 도살자를 포함한 악마 추종자들을 철저히 제거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이들은 스스로가 언데드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결국 충렬을 통해 복수 할 기회를 얻어가길 원했다.
물론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이들은 ‘언데드’라는 몬스터로 도전자들을 공격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충렬이라는 네크로맨서의 등장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충렬은 그들의 바람과,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많은 숫자의 해골들에게 둘러싸여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충렬의 표정에선 두려움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 원한. 내가 되갚아주도록 하지.”
충렬의 그 말과 함께, 이해관계가 들어맞은 서로가 네크로맨서라는 이름 아래에 뭉치게 되었다. 그렇게 해골들은 곧 움직이며 충렬의 주변에 정렬하기 시작했다. 모든 언데드가 낙오 없이 충렬에게 몸을 의탁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 때문일까? 12구의 해골 중, 충렬에게 합류하는 것을 거부하는 해골은 단 한 구도 없었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그들의 원한은 깊었다. 골수까지 그 분노가 차 있었다.
[12개체의 해골이 도전자 ‘이충렬’에게 합류합니다.]
[480카르마를 습득합니다.]
합류한 해골들은 질서정연하게 충렬의 뒤로 이동했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해골들이 충렬의 뒤로 움직인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바로 충렬이 앞서서 가는 길을 따라가겠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이제 해골들의 소유권은 충렬에게 있었다. 충렬이 한 발자국 앞으로 가자, 해골들이 단체로 뒤를 따라왔다. 흉험한 날붙이를 가지고 있는 해골들이 뒤따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만약 해골들이 사람이었다면 조폭들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어딘가로 가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묘지에서의 볼일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 때였다.
[순찰 중인 악마 추종자 하나가 당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도살자보다는 전투력이 제법 떨어지지만, 언데드보다 더욱 무서운 적입니다!]
[조속히 현장을 떠나 악마 추종자의 시야에서 벗어나십시오!]
시스템의 음성은 악마 추종자에게 발견을 당했을 때, 모든 도전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였다. 물론 그러한 음성을 받았다고 해도, 충렬은 도망칠 생각 따위를 하지 않았다. 언데드보다 더욱 강력한 적이라지만 놈과는 싸울 생각이었다.
충렬이 등을 돌리니 저 멀리서 하나의 인영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곧 악마 추종자의 위로 이름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대신 글자의 색은 명백한 적을 뜻하는 빨간색이었다.
[합류한 해골들 중 하나가 접근하는 악마 추종자를 알아봅니다.]
[악마 추종자의 이름이 표시됩니다.]
<악마 추종자 안드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녀석의 이름은 ‘안드로’였다. 이름까지 있는 것을 보니 평범한 적이 아니었다. 최소 네임드급에 해당하는 녀석이리라.
과거엔 사람이었겠지만, 악마를 추종하면서 변한 것인지 녀석은 괴물의 모습에 가까웠다. 도살자처럼 거대한 덩치를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2미터는 될 법한 키에 염소와 같은 발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송곳처럼 날카롭고 긴 손톱을 양손에 달고 있어 평범한 사람이라면 금방 찢어 죽일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도살자보다 약한 녀석이라는 시스템의 설명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충렬은 안드로가 쉬운 상대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멀리서 느껴지는 악마 추종자 안드로의 위압감은 가벼이 볼만한 수준이 아니었던 탓이다. 시뻘건 녀석의 두 눈은 마치 악귀를 마주보는 것과 같은 공포감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해서 충렬에게 후퇴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생긴 것만 무서울 뿐. 놈은 혼자다.’
때문에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오는 악마 추종자를 여유 있게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사악한 표정을 지었다. 충렬은 지구에 있을 때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마치 조폭 두목이 조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듯이, 살벌한 대사를 날렸다.
“애들아.”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은 충렬이 손가락으로 안드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담그고 와라.”
그러자 충렬의 명령을 받은 해골들은 안드로에게 날붙이를 쑤시기 위해서 움직였다. 놈을 향해 움직이는 해골들의 안광에 흉흉한 검은빛이 번뜩였다. 살아생전 악마 추종자에게 당했던 설움을 되갚을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악마 추종자 ‘안드로’는 그렇게 분노에 가득 차있는 해골들을 마주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