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23화 (23/237)

# 23화.

***

충렬은 지금 거의 10분 넘게 달리고 있었다. 사실 보통 사람이 전력으로 달리기를 했을 때 10분 동안 달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레벨이 5나 되는 충렬이라고 해도, 10분 동안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전력을 다해 달릴 수 있었던 것도, 끈질긴 집념으로 발생한 결과일 뿐이었다. 때문에 현재 충렬의 숨은 턱까지 차오른 상태다.

“헉헉, 저 돼지 새끼. 지치지도 않나.”

말을 할 힘도 없었다. 하지만 욕지거리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뒤에서는 도살자가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쿵! 쿵! 쿠웅!

꾸준히 쫓아오는 녀석의 움직임에 정말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한술을 더 떠서 녀석은 거친 호흡도 보이지 않고 반복된 대사만 내뱉었다.

“크아악! 멈춰라!”

바보 같은 지능을 가진 듯 보였지만, 녀석의 신체는 결코 바보 같지 않았다. 그래도 슬슬 눈앞에 고지가 보였다. 5분 전부터 통로는 반대쪽으로 꺾였는데, 다행히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오르막길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저 앞에 출구가 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출구 너머로는 공터가 보였다. 날이 어두웠던 것인지, 밖은 어둠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달빛이 밖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기에 밖의 전경은 충분히 식별이 가능했다. 충렬은 악착같이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이제는 이곳을 벗어날 때였다.

‘거의 다 왔다.’

그렇게 출구까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을 때였다. 대략 200m 정도만 더 가면 출구였다. 그런데 일정한 거리에 근접한 것인지, 도살자가 갈고리를 던질 준비를 했다. 풍차처럼 돌리는 갈고리는 묵직한 소리를 내었고, 이내 충렬의 다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후우우웅!

지치지 않았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만큼 정직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충렬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옆으로 살짝 다리를 옮겼지만, 충분히 이동하지 못했다.

‘젠장할!’

이대로는 갈고리에 다리가 걸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갈고리는 무지막지하게 날아들고 있었고, 결국 충렬의 왼쪽 다리에 적중되었다. 적중된 갈고리는 충렬의 왼쪽 다리를 강하게 타격했다.

퍼억!

‘크윽……!’

순간 충렬은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에 자빠질 뻔했다. 하지만 운이 좋았다. 갈고리의 뾰족한 곳에 당한 것이 아닌, 뭉툭한 부분에 부딪힌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뾰족한 곳에 당했다면, 혹은 쇠사슬이 다리를 휘감아 왔다면 녀석에게 끌려가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도살자도 처음으로 충렬을 맞추었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더욱 화를 내었다. 녀석은 제자리에 멈추어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더니 손에 들고 있던 쇠사슬을 한쪽으로 팽개쳤다. 이제는 오로지 달리기로 승부를 보려던 것이다. 쇠사슬이 바닥과 부딪치자, 동시에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출구까지 150m가 남았습니다.]

[도살자가 폭주합니다.]

[10초 뒤, 지상으로 향하는 출구가 폐쇄됩니다.]

그와 동시에 출구로 보였던 장소가 폐쇄되어 갔다. 출구의 위쪽 공간에서 석문이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드르르르르륵.

150m의 거리라면 레벨5 정도 되는 도전자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경우가 아니었다. 10초 안에 지나치기에는 말이다. 하지만 체력이 모조리 소모된 상태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제기랄!’

눈앞에 보이는 출구는 계속해서 좁아져 갔다. 시간제한이 생기자 출구까지의 거리가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충렬은 마지막으로 젖을 먹던 힘까지 쥐어짜냈다.

‘으윽……!’

완전히 탈진해 버릴 것을 각오한 몸부림이었다. 도살자에게 당한 왼쪽 다리가 아려왔지만 이를 꽉 물고 버텼다. 그 덕분일까? 충렬의 몸은 그 의지에 반응해 주었다. 심장이 언제 터질 듯 모를 정도로 거세게 뛰었다. 하지만 별달리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며 제3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냉정한 상태가 된 것이다. 마치 영혼이 육체에서 나오게 되어, 멀리서 관전을 하는 느낌이었다.

[7초 남았습니다.]

덕분에 순식간에 50m를 3초 만에 돌파할 수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자신이 호흡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렇게 또 50m를 눈 깜짝할 사이에 돌파했다.

[4초 남았습니다.]

이제는 나머지 50m만 남은 상황. 석문은 어느덧 출구의 절반을 넘게 내려온 상태였다. 빨리 가지 않으면, 제한시간 안에 도착한다고 해도 통과하지를 못할 터였다.

그러나 출구까지 30m정도 조금 더 남았을 때였다.

[3초 남았습니다.]

쿵! 쿵! 쿵!! 쿵!!

도살자와의 거리가 이제는 지척거리가 되었다. 자신이 쓰던 무거운 무기를 던져 버렸기 때문일까? 녀석의 발걸음은 이전보다 더욱 빨랐다. 충렬이 빨리 달린다고 해도, 그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올 정도다.

[2초 남았습니다.]

이제 몇 걸음만 더 가면 출구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1초 뒤에는, 도살자에게 붙잡히리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쿵! 쿵! 쿵! 쿵!

뒤에서 도살자의 거센 콧김이 느껴졌다. 출구가 완전히 폐쇄되기 직전이었다. 더군다나 석문도 거의 다 내려온 상태에서, 출구를 통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은 극히 일부였다. 기어서 가야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1초 남았습니다.]

이젠 1초 후에, 출구는 완전히 폐쇄될 것이다. 하지만 마침 충렬은 1초를 남기며 석문의 앞까지 도착할 수가 있었고.

‘다 왔……!’

충렬은 그대로 몸을 숙였다. 슬라이딩 하며 빠져나가기 위해서다. 마침 충렬이 몸을 숙이자, 방금까지 충렬의 머리가 있던 위치에서 거센 바람이 발생했다. 도살자의 두터운 손이 허공을 가른 것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쇠사슬을 돌릴 때처럼 묵직했다.

후우웅!

그러나 고개를 숙인 충렬은 도살자의 손에 붙잡히지 않았다. 충렬은 방금, 얼마나 위험인 순간인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밖으로 나가는 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히 충렬은 슬라이딩을 성공시킬 수가 있었다. 몸을 숙이면서 바닥과 밀착하고, 거기에 지금까지 달렸던 속도까지 더해지니, 엄청난 빠르기로 몸이 바닥을 쓸어가며 앞으로 나아갔다.

‘크윽……!’

맨살이 땅을 긁으며 지나가자, 피부가 온통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충렬은 석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곧이어 석문이 닫히며, 거친 소리를 내었다.

쿠웅!

동시에 바닥에 먼지가 잠시 날렸지만, 충렬은 빠져나왔다는 기쁨에 숨을 크게 들이킬 뿐이었다.

‘빠져나왔다……!’

충렬과는 반대로 안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한 도살자가 있었다. 녀석은 충렬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이 분했는지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석문이 음파의 전달을 막았기에, 가까운 거리임에도 녀석의 괴성은 그리 크게 들리지가 않았다. 아득히 먼 거리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크아아! 크아아아아아아!

하지만 도살자가 석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석문이 부서질 듯 크게 들썩였다.

콰앙! 쾅! 콰아앙!

물론 그렇다고 석문이 부서지는 일은 없었다.

[튼튼한 석문은 도살자의 공격에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다만, 8시간 뒤에 석문이 다시 개방됩니다.]

당연히 탈출 성공에 따른 보상도 있었다.

[인육 창고에서 탈출을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으로 1,000카르마가 지급됩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몰아서 쉬었다.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이 도무지 진정되지가 않았다.

“하아… 하아…….”

그렇게 너무나 힘든 추격전을 끝내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충렬이었다. 그러나 시스템은 그런 충렬의 상태를 고려하지도 않고 알려왔다.

[본래 도살자는 성을 다스리던 영주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타락한 인물들과 함께 악마를 추종하기 시작했으며]

[악마를 따르지 않는 이들을 모두 죽여갔습니다.]

처음엔 위급한 상황을 연출하더니, 이제야 현재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스템이었다.

[결국 성 내부의 터전은 모조리 폐허가 되었고]

[민가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시스템은 이곳에서 수행해야 할 최종 목표를 충렬에게 알려주었다.

[도살자가 빠져나오기 전에 포탈을 찾으십시오.]

[포탈의 위치는 랜덤입니다.]

[당신은 포탈을 통해 도망가, 타락한 영주의 소식을 알려야 합니다.]

이번 스테이지의 목표는 역시나 ‘탈출’이 메인이었다.

[주의하십시오.]

[고성의 폐허 곳곳에는 수많은 언데드들과 악마 추종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피하면서 포탈을 찾아나가십시오.]

[특히, 악마 추종자들은 하나하나가 강력하기 그지없습니다.]

[오른쪽 상단의 미니맵에 당신의 위치를 표시합니다.]

[폐허가 된 고성은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그리고 도살자가 다시 등장하기까지의 제한 시간이 표시되었다.

[도살자가 풀려나기까지 7시간 59분 21초가 남았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시스템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충렬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호흡을 간신히 진정시켜 가며 미니맵과 주변을 살폈다. 미니맵에 표시된 현재 장소는 다음과 같았다.

[영주의 대저택 - 정원]

악마를 추종하기 전, 도살자가 살던 저택이었다. 지하의 인육 창고와 이어진 정원은 이미 메말라버린 식물들로 꾸며져 있었고, 저택을 둘러싼 담벼락들도 대부분 무너져 황량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은 주변에 몬스터로 보이는 녀석들은 없었다.

“하아…. 어디부터 가야 한다냐.”

미니맵을 살펴보니 고성의 크기는 작지 않았다. 거의 도시 수준의 마을 하나를 통째로 집어넣은 크기였다. 그만큼 둘러보아야 할 곳이 많았다. 우선은 해골들을 소환해 보기로 했다.

“해골 병력 소환.”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스킬 사용은 불가능했다.

[스킬 사용이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당신의 스킬은 모두 봉인되어 있습니다.]

‘조심히 다닐 수밖에 없는 건가…….’

이곳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언데드와 악마 추종자들이라고 했다. 악마 추종자들은 도살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람일 테지만 괴물의 모습에 가까울 터. 녀석들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조심히 다녀야 했다. 도살자의 수준을 고려하면 악마 추종자들은 결코 쉽게 볼 상대가 아닐 것이었다. 특히나 지금은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마침 주변에는 묘비가 있었다. 충렬은 우선 묘비를 살펴갔다.

-와 시발. 여긴 무슨 달리기만 하다 죽음.

-도살자 따돌리고 나와도 맨날 달리기만 해야 함.

-이거 볼 시간 없다. ㅋㅋㅋ 안전지대 따윈 없지롱.

-ㅇㅇ 여기 저택 정원에서 죽은 사람들 언데드로 부활!

-이거 볼 시간에 빨리 달려.

-ㅇㄱㄹㅇ ㅂㅂㅂㄱ. ㅇㅈ? ㅇㅇㅈ.

그렇게 첫 묘비를 살필 때였다. 갑자기 주변에서 들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충렬이 해골들을 소환할 때 들리는 소리였다.

‘설마……?’

그 예상은 정확했다. 충렬이 위치한 곳 근처에서 언데드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묘비의 말 그대로였다. 곧 주변에서 언데드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정원에서 참수당한 사람들 중 일부가 언데드가 되어 부활합니다.]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었던 정원의 흙바닥에서, 해골들의 손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숫자는 정확히 셋이었다.

‘이런.’

스킬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충렬은 놈들이 올라오기 전에 재빨리 움직였다. 셋 모두 올라온다면 스킬이 없는 지금은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으리라.

‘올라오기 전에 밟는다.’

충렬은 우선 가장 가까이에서 올라오고 있는 스켈레톤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해골이 올라오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충렬이 한 녀석의 앞에 도달했을 무렵, 스켈레톤은 온전히 땅속을 빠져나와 일어섰다. 녀석은 달려오는 충렬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낫을 휘두르려 했다. 녀석이 들고 있는 무기를 보니 죽기 전에는 농민이었나 보다.

충렬은 어쩔 수 없이 계속 돌진했다. 놈이 낫을 휘두르기 전에 몸으로 부딪쳐 녀석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때였다.

충렬이 놈과 몸이 부딪치기 직전,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언데드가 당신이 네크로맨서임을 알아보고 공격을 멈춥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들은 충렬은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스켈레톤에게 부딪치려던 충렬의 몸이 옆으로 비켜갔다. 충렬은 의미심장한 시스템의 음성에 자세를 수습하며 눈앞의 스켈레톤을 경계했다. 하지만 충렬의 걱정과는 달리, 시스템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식을 알려주었다.

[소속되지 않은 언데드입니다.]

[원한이 가득한 언데드가 당신에게 무언가 의지를 전달하려 합니다.]

언데드에게서 공격의 의사가 없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것도 충렬이 소환한 개체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의지를 전달하려 한다니? 충렬은 우선 들어보기로 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충렬의 수준이 높지 못했던 탓인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오는 시스템이었다.

[당신의 수준은 ‘초보자’이기에 완벽한 전달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상관은 없었다. 불완전한 원념이 전달되기 시작했지만 충렬은 곧 그 의미를 해석할 수가 있었다.

[복수… 영주…….]

[네크로… 따른다…….]

그렇게 충렬에게 언데드의 원념이 전달되고, 충렬이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본래 원한이 가득한 언데드는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풍기는 네크로맨서의 기운이 언데드의 의식 일부를 깨웠습니다.]

그리고 도전자와는 적으로 만나야 했던 언데드가, 아군이 되었다.

[‘억울하게 죽은 농사꾼’이 당신에게 합류하였습니다.]

[40카르마를 획득합니다.]

[스스로 일어난 언데드이기에 최대 소환 숫자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와 함께 충렬의 코앞에 있는 언데드의 위로 이름이 스르륵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한 아군임을 뜻하는 표시였다.

<해골 농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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