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마스터-18화 (18/237)

# 18화.

전면전

***

아군이 위치한 장소까지의 거리는 대략 10여분. 그리 긴 거리가 남은 것은 아니었다. 이제 금방이었다. 그러나 충렬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저쪽에는 인원이 많은 만큼, 추적에 능한 이들도 다수 존재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뛰는 속도를 줄이는 순간, 충렬이 잘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해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상 후퇴가 답이었다. 뭐, 해골이 있어도 미끼로 주면서 도망을 갔겠지만 말이다.

‘그나마 레벨을 올려서 다행이다.’

해골들이 늪에서 적들을 처치하며 얻었던 카르마를 도망치는 와중에 사용했다. 4천 카르마를 소비했지만 덕분에 충렬의 레벨은 현재 5다.

[레벨: 5 (다음 레벨까지 10,000카르마 필요.)]

상태창을 한번 살핀 충렬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레벨이 5나 되어서 도망이나 치고 있다니.’

솔직히 레벨이 5인 만큼, 아무리 직업이 네크로맨서라도 충렬은 순수한 무력만으로도 1 : 1로 싸워 저들에게 이길 수가 있었다. 충렬이 계산해 보기에 저들의 평균 레벨은 2에 불과할 터였다. 아무리 높다고 해도 3에 그치는 수준이 분명했다. 저들은 사냥을 하지 않고 온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만 했다.

‘레벨 차이로 인해 신체적인 피지컬은 달라졌을지라도, 스킬에 당한다면 죽는 것은 똑같다.’

자신의 레벨이 5이기에 그나마 저들의 추격을 아슬아슬하게 따돌리는 중이었다. 도망에 특화된 직업이 아님에도 말이다.

물론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추격자들이 하나씩 디버프 스킬을 충렬에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발레스’가 당신에게 상태 이상 ‘둔화’를 겁니다.]

[당신의 움직임이 2분간 느려집니다.]

[둔화: 1분 59초.]

[‘왕쳰’이 당신에게 ‘표적’을 새깁니다.]

[<사냥>, <맹수>, <추격>, <처형> 계열 재능을 소지한 자들이 당신을 향해 움직일 때 이동 속도가 20% 증가합니다.]

[표적: 3분 29초.]

레벨 차이를 극복할 정도의 상태 이상들. 방금 걸린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충렬에겐 수많은 상태 이상이 걸려 있었다. 만약 레벨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충렬은 그들에게 잡히고도 남았을 것이다.

‘제기랄, 더럽게 힘들군.’

족쇄를 발목에 차고 뛰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충렬도 쉽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온갖 상태 이상에 걸렸음에도 이를 꽉 물고 달렸다. 그 때문일까? 뒤에서 쫓아오던 비특성자들이 발악했다.

“상태 악화 스킬이 제대로 걸린 거 맞아?”

“그렇겠지! 뒤쳐진 발레스를 봐! 스킬을 성공시켰으니 저렇게 뻗은 거겠지!”

“그런데 저렇게 빨리 도망친다고?”

“그러니까 말이야! 이동 스킬도 따로 있었나? 왜 저렇게 쌩쌩해!”

“에이, 몰라! 빨리 가서 해치우자고!”

그렇게 충렬을 악착같이 쫓아오는 인원들은 대략 20명 정도였다. 당연히 그 뒤에도 많았지만 당장 지척 거리는 20명이었다. 자신을 쫓는 인원을 살핀 충렬은 다시금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그리고 곧 아군에게 도착하게 된다면.

‘모조리 학살해 주겠다.’

***

늪지대는 나오면 보이는 장소. 각종 풀들과 덩굴들이 수북하게 자리를 차지한 수풀 속에 일단의 무리들이 숨어 있었다. 수북한 풀들 사이에는 길 하나가 나 있었는데, 그리로 한 사내가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내의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상처를 입은 사람의 정체는 이충렬이었다. 그런 충렬의 뒤로는 악에 받친 비특성자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쫓기는 충렬을 본 특성 보유자 헤르메는 함께 숨어 있는 아군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상대하기 딱 적정한 숫자가 오는군요. 저 친구가 이 장소를 지나치는 순간, 저들을 기습합시다.”

헤르메와 함께한 이들의 숫자는 정확히 10명. 분대 하나의 수준이었다. 쫓아오고 있는 비특성자들은 스무 명 정도로 두 배에 달하는 숫자였으나, 헤르메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 무턱대고 숨은 것이 아니었다. 기습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 많았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헤르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뒤에 위치한 사내가 헤르메에게 질문했다.

“그럼 선공은 제가 먼저 합니까?”

“예, 미리 설치한 가시밭길 스킬을 적들이 가까이 오면 활성화시켜 주십시오.”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나머지 분들은 가시밭길이 활성화되면 곧바로 공격하시면 됩니다.”

대충 공격 타이밍을 정하자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이 입을 열었다.

“알겠소.”

“놈들을 싹 쓸어버리자고.”

“충렬이라 했던가? 저 동양인 친구 덕분에 일이 쉬워졌어.”

“덕분에 여기서 살아나갈 확률이 높아졌군.”

***

아군이 있다는 곳까지 도착한 충렬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스킬에 당한 것인지, 왼쪽 팔의 상완근은 크게 파였고 등짝은 갈가리 찢겨 있었다. 덕분에 신이 난 것은 충렬을 추격하던 비특성자들이었다.

“조금만 더 공격하면 저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겠어!”

“제발 막타는 내가!”

“꿈 깨셔. 저 놈은 내가 잡을 거라고!”

“크크큭. 현상범이라 해서 쫄았는데. 별것 없잖아?”

벌써부터 바로 뒤에서 각종 조롱이 들려왔다. 하지만 충렬은 멈추지 않았다. 몸에서는 출혈이 계속 발생되었지만 멈추어 서서 지혈할 시간은 없었다. 평범한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면 벌써 사망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셈이었지만 계속해서 달렸다.

사실 충렬의 상처는 충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상처 없이도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혹여나 그들이 추격을 포기할까 상처를 허용하며 달렸다. 한 녀석이라도 더 많이 달려들게 유인해서 제거해야 했다.

‘멍청한 놈들. 제 무덤인 줄도 모르고 달려드는군.’

몸의 상태가 나빠져 감에도 불구하고 충렬의 도망치는 속도는 느리지 않았다. 애초에 너덜너덜해진 상체와 달리 하체는 멀쩡했다. 물론 이도 충렬의 레벨이 높았기에 가능한 짓이었다. 그만큼 5레벨의 신체 내구력은 2~3레벨들보다 달랐다. 그래도 충렬은 현재 상황에 욕한바가지를 내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정하고 저들을 유인했다고는 해도, 밀려드는 고통까지 유쾌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카밀라. 다들 어디에 있다고 합니까?’

막상 늪지대를 빠져나왔지만 주변에 보이는 것은 무성한 수풀뿐. 아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소리였다. 발각되지 않게 숨어 있었으니까.

[충렬 씨를 발견했다고 해요! 그냥 쭉 앞으로 달리세요!]

진즉에 몸속의 혈액은 부족해진 지가 오래였다. 때문에 정신은 점점 아득해져 갔다. 고의로 상처를 만들긴 했다지만, 혈액 손실로 인한 빈혈과 현기증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충렬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은 카밀라의 말을 믿고 쭉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까? 도대체 아군이 언제 모습을 드러내려는 건지 답답해할 때였다. 충렬이 지나온 길목에서 어떤 사내의 큰 외침이 들려왔다.

“가시밭길 활성화!”

순간 적들이 스킬을 사용한 것이라 생각했던 충렬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님을 곧 알 수가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뒤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알 수가 있었다. 무언가 살을 꿰뚫는 소리가 일시에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자신의 살을 꿰뚫는 소리가 아니었다.

푸슉!

푸슈욱!

푹!

푸욱!

뒤이어 추격자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악! 내 발. 내 발이……!”

“씨, 씨발! 이게 뭐야!”

“아파. 아프다고!”

“젠장할! 누가 이따위 스킬을 쓴 거야!”

비특성자들의 비명에 충렬이 등을 돌렸다.

이제는 더 이상 도망을 가지 않아도 되었다. 저들이 비명을 지르는 이유는 현재 딱 하나의 이유밖에 없었다.

‘타이밍 한번 더럽게 맞춰서 나타나는군.’

역시나, 등을 돌리자 숨어 있던 아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튀어 나왔다.

“지금이다!”

“가시밭길에 당한 지금이 기회야!”

“죽여!”

“흐하하! 죽어라!”

갑작스러운 특성자들의 등장에 비특성자들이 당황했다. 그들은 가시밭으로 인해 발과 다리가 다쳤다는 것도 더 이상 인식하지 못했다.

“어… 저 녀석들은……?”

“흐익! 기습이다!”

“젠장할 속았어! 함정이다!”

“함정이야! 다들 뒤로 후퇴해!”

그러나 그들은 후퇴하지 못했다. 광범위 스킬인 가시밭길 스킬로 인해 이미 발이 꿰뚫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시밭길 효과에는 무려 ‘속박’이라는 적을 묶는 기능도 있었다. 물론 그 효과의 지속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당한 자들이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제, 제기랄! 이 식물들이 발을 묶었어!”

“으아악! 저, 저리 꺼져! 나한테 달려들지 말라고!”

“으……. 제발 살려줘……!”

비특성자들 중 하나가 목숨을 구걸했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답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침 맨 먼저 앞서 나간 특성자가 목숨을 구걸하는 비특성자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의 목을 베는 것으로 말이다.

서걱.

부상당하고 발이 묶인 비특성자의 목이 베어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특성자들의 매서운 공격이 시작되었다. 물론 충렬도 가만히 구경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당한 것을 되갚아줄 차례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적들을 바라본 충렬이 말했다.

“해골 병력 소환.”

***

특성자들의 진영에 컨텍터라는 카밀라가 있듯, 비특성자 진영에도 비슷한 직업을 가진 이가 있었다. 비록 특성은 가지지 못했지만 그는 한 명의 아군을 지정해 시야를 공유하는 스킬이 있었다. 그는 충렬을 쫓아간 20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다카무라에게 말하기로 했다.

“저… 다카무라 님.”

“예. 무슨 일입니까?”

“아무래도 쫓아간 사람들이 숨어 있던 적들에게 모조리 당한 것 같습니다. 적들의 숫자는 10명 정도였습니다.”

순식간에 20명이 당해 버렸다니. 그것도 단 10명에게 말이다. 깜짝 놀란 다카무라가 그만 소리치고 말았다.

“뭣이라!”

사실 듣지 않아도 20명이 죽었다는 것은 곧 알 수가 있었다. 미니맵 옆에는 서로의 남은 숫자를 알려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특성 보유자: 17명]

[비특성자: 51명]

뒤늦게 미니맵 옆에 표시된 인원수를 살핀 다카무라는 어이가 없는 상황에 입을 열지 못했다. 때문에 그는 입을 꽉 다물었다. 속은 부글부글 분노로 끓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더 이상 짜증나는 표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럴수록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만 불안에 빠져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감히 이것들이 함정을 파놓다니……!’

이제 비특성자들의 남은 숫자는 고작 50을 조금 넘길 뿐이었다. 100명으로 시작한 인원이 절반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될 줄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다소 느리더라도 최대한 살려서 올 걸 그랬다. 더군다나 현상금에 정신이 팔려 쫓아간 놈들 때문에 전력은 더욱 줄어들게 된 상황이었다.

‘쫓아가지 못하게 할 것을.’

물론 뒤늦은 후회는 늦었다. 그러나 약삭빠른 다카무라는 곧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잠깐. 습격 인원이 10명 정도였다고……?’

지금은 상황이 좋지 못하는 위기와 같은 때였다. 그렇지만 다카무라의 머릿속으로는 하나의 묘수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크크큭, 잘 하면 쉽게 이길 수가 있겠어.’

10명 정도의 습격이 있었다면, 현재 적들의 캠프엔 그 절반만 있다는 소리였다.

‘다른 길로 가야겠군. 멍청하게 내가 또 저쪽의 길로 갈 줄 알고?’

그렇게 길을 피해 적의 캠프에 당도하게 된다면 이쪽이 여전히 유리했다.

‘지금 간다면 아무리 많아도 캠프를 지키는 이들은 10명이 최대일 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다카무라가 입을 열었다. 아군 20명이 당한 저쪽 길에서 녀석들이 숨어서 자신들을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흐흐. 다들 이쪽 길로 갑시다!”

잠시 위기가 찾아왔지만, 다카무라는 다시 대열을 정비하며 약간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

성공적인 기습이었지만 아군 측에서도 3명가량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딱히 안중에 두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겼다는 것이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중요했으니 말이다. 다카무라가 열심히 길을 돌아가기로 결정했을 때, 장내를 마무리 지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충렬에게 다가와 치하했다.

“와, 동양인 친구. 고생했다고.”

“덕분에 놈들의 숫자를 많이 줄일 수 있었어.”

“저 해골들은 자네 소환물인가? 잘 싸우더군.”

“크, 나도 소환 계열 재능이나 선택할걸.”

그런 그들의 반응에 충렬이 멋쩍어할 때였다. 헤르메란 사내가 충렬에게 다가왔다. 그는 정중하게 충렬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아니면 다른 곳에 또 숨어 있다가 기습하면 됩니까?”

그가 그렇게 물어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이곳에서 이득을 보았으니 또다시 비슷한 수법을 쓰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다. 하지만 헤르메의 물음에 충렬이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또다시 매복을 하느냐, 아니면 다른 곳으로 매복을 하느냐를 말이다. 그러나 답은 금방 나왔다.

‘비특성자 녀석들도 미니맵 옆에 표시된 인원수를 보았겠지.’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기껏 잔머리를 굴린 다카무라였지만, 그는 이미 충렬의 손바닥 위에 놓인 손오공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놈들도 아군이 당한 것쯤은 눈치를 챘을 테니 이쪽으로 오지는 않을 겁니다. 빠르게 캠프로 복귀해야 합니다.”

다행히 현재 위치라면 캠프로 빠르게 복귀할 수가 있었다. 적어도 아직 늪지대를 벗어나지 못한 적들보다는 말이다. 여전히 적들과의 전력 차이는 쉽게 볼 수준이 아니었지만 캠프에 가서 농성전을 하며 버틴다면 이기기가 어렵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도 적들의 숫자가 51로 줄었다. 캠프에서 버티는 것 정도야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겠지.’

어쨌거나 충렬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들도 멍청이들이 아닌 이상에야 그러겠군요.”

“자자. 동양인 친구 말대로 빨리 복귀하자고!”

“어서 돌아갑시다!”

그렇게 충렬과 사람들은 캠프를 향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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